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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리벡 특허 기각시킨 인도대법원 판결의 의미

한국은 제약회사의 특허권 횡포를 견뎌낼 수 있을까

지난 4월 1일 인도 대법원에서 역사적인 판결이 나왔다. 스위스 제약회사 노바티스가 인도특허법에 대해 문제제기한 약 7년간의 소송에서 대법원이 패소 판결을 내린 것이다. 본 패소 판결은 제약회사의 특허권과 독점권에 대한 국가의 규제를 증명해낸 종류의 것으로서, 가난한 환자들이 싼 복제약에 접근하는 것을 보호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제아무리 초국적 제약자본이라 할지라도 특허를 계속 연장하여 비싼 가격을 유지할 수 없고 국가가 제약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결과인 셈이다.

드디어 제동 걸린 초국적 제약회사의 특허 ‘에버그리닝’

본 소송은 그간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아 왔다. 노바티스는 백혈병의 특효약인 글리벡으로 유명하고, 인도는 이 특효약과 똑같은 약을 아주 싼 가격으로 생산하고 공급하며 소위 ‘세계의 약국’으로 불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 다른 항암제나 에이즈치료제, 항생제 등을 싼 가격으로 120개국이 넘는 개발도상국에 공급하고 있다. 인도 특허법은 1995년 이후 생산된 약에만 특허권을 부여하지만, ‘현격한 치료 효과 증가 등 중요한 혁신’을 입증하지 않고서는 특허권을 부여하지 않는다. 1990년대 초에 개발된 글리벡의 경우 노바티스는 화학구조 형태를 조금 바꿔서 2000년대에 또 특허를 신청했다. 하지만 ‘현격한 치료 효과 증가 등 중요한 혁신’ 입증을 요구하는 인도특허법 때문에 형태가 조금 바뀌었을 뿐인 글리벡은 특허를 받지 못했다. 그래서 노바티스는 인도대법원에 ‘현격한 치료 효과 증가 등 중요한 혁신’ 입증을 요구하는 특허법의 조항에 대한 해석을 요구하는 소송을 낸 것이다.

노바티스가 특허를 주장한 글리벡은 인도에서 1달에 240만 원에 살 수 있다. 그러나 복제약은 1달에 13만원으로 충분히 사용할 수 있다. 만약 노바티스가 승소했다면 제3세계 몇 천 만 인구가 값싼 복제약을 사용할 수 있는 기회가 차단되었을 것이다.

소송 내용에서도 보다시피 인도에서 모든 발명에 대한 특허가 불허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인도 대법원 역시 의약품 혁신의 특허 보호의 의미 자체를 거두지는 않고 있다. 문제는 혁신적이지 않은 발명에도 특허권이 주어지고, 그 독점을 무한히 연장하려한다는데 있다. 그 동안 제약회사는 에버그리닝(evergreening)이란 전략을 통해 오리지널 약의 화학구조를 부분적으로 바꾸거나 특허범위를 넓게 설정하는 방식으로 특허기간을 연장해 시장에서 독점적 권리를 유지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오리지널 약의 화학구조의 일부 변형만으로 특허 독점을 유지하는 것은 약값을 턱없이 높이고 공공적 접근을 가로막을 뿐이다. 뉴욕타임즈 편집인은 “본 판결 결과는 제약회사가 현존하는 인도 약보다 현격한 실제 효과 개선을 보여야만 특허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제재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언급하고 있다. 즉, 판결은 제3세계 가난한 환자들에게 접근 가능한 가격의 약품을 제공할 수 있게 하는 한편 혁신이 실제 환자에 대한 이익, 혹은 공적 이익에 이바지하는 혁신이어야 함을 보여주고 있다.

노바티스의 특허에 맞선 인도활동가들의 시위모습(사진 출처 : Stop the EU India Free Trade Agreement)<br />

▲ 노바티스의 특허에 맞선 인도활동가들의 시위모습(사진 출처 : Stop the EU India Free Trade Agreement)


제약회사들은 특허에 매우 집요하게 의존한다. 특허에 의존하지 않고서는 제약회사 천문학적인 이윤을 내기 어려운 구조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는 약품이란 것이 다른 제품과 달리 약의 화학적 구조만 알게 되면 매우 복제가 쉬우며, 일단 복제되면 기존 약값의 5%만으로도 충분히 이용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국적 제약회사들은 특허를 따내고 유지하는 데에 현저한 노력을 기울인다. 그러나 기본적 인권에 해당하는 건강권과 의약품의 공공재적 성격으로 인해 이러한 특허는 늘 의문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약이 있는데 죽어서는 안 된다'는 말보다 상식적인 말이 있을까? 그렇기 때문에 WTO(세계무역기구)에서도 전쟁, 국가비상사태나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경우에는 특허 만료 이전에도 특허권자의 허락없이 특허약과 똑같은 약을 만들 수 있는 권한(강제실시권)과 복제약 수입을 보장하고 있다


제약회사의 특허권에 질문을 던져야

본 재판 결과를 계기로 다국적 제약회사에 대한 특허권 보장이 실제 전 세계 인구들이 발전된 기술 혜택을 충분히 누릴 수 있도록 짜여 있냐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하나는 특허로 표현되는 재산권이 온전히 다국적 제약회사의 것으로만 여길 수 있는가이다. 대규모 임상연구로 대표되는 제도와 인프라는 공공의 것인 동시에 임상 연구에 참여한 개인 및 환자들에게도 수혜가 돌아갈 것으로 기대되어 짜인 시스템이기도 하다. 특허 독점은 이들 약의 공공재적 가치를 떨어뜨리며, 도리어 의약품 기술 개발을 저해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만약 다국적 제약회사의 ‘에버그리닝 전략’처럼 특별한 의약품의 혁신 없이 특허 연장만 지속되는 전략이 용인된다면, 의약품 혁신을 위한 동기는 사라져버릴 것이다. 또한 국제적 역학 관계 속에서 제1세계 시장만을 위한 특허 시장을 용인한다면, 제3세계 환자에게 적정한 의약품을 개발하려는 동인 역시 사라져 버릴 것이다. 이는 이번 노바티스 사례뿐만 아니라 HIV/AIDS 의약품을 둘러싸고 빈번하게 발생하는 일이다.

한국활동가들이 2012년 2월 22일, 23일에 노바티스앞에서 릴레이1인시위하는 모습<br />

▲ 한국활동가들이 2012년 2월 22일, 23일에 노바티스앞에서 릴레이1인시위하는 모습


한국은 이와 같은 불균형에서 너무 많이 나간 사례이다. 한국에는 글리벡의 주요성분인 이마티닙 메실산염에 대한 특허가 올해 6월에 끝나지만 이게 다가 아니다. 고함량의 이마티닙 메실산염에 대한 조성물특허기간이 2023년 4월까지다. 또 노바티스는 2021년 10월에 만료되는 위장관기질종양(GIST) 적응증에 대한 용도특허도 갖고 있다. 현재 국내제약사들이 이 특허들에 대해 무효소송을 벌이고 있고, 3월 29일에 고함량에 대한 특허는 무효하다는 특허심판원의 결정이 있었다. '부실'특허를 수년간이나 인정해주었던 셈이다. 인도처럼 특허를 주기 전에 특허를 반대할 수 있는 사전이의신청제도가 한국에는 없다. 도입하고 싶어도 한미FTA에서 도입할 수 없도록 규정해두고 있다. 또한 설령 한국정부가 인도특허법처럼 "치료 효과의 현격한 향상"을 특허의 조건으로 도입하려고 할 경우 한미FTA는 외국 제약회사와 미국정부의 의견을 듣도록 하고 있어서 반대에 부딪힐 것이다.

글리벡 약값이 너무 비싸서 복지부가 약가인하를 결정하자 2010년 노바티스는 복지부의 약가인하처분 취소 소송을 낸 바 있고, 아무런 이의 없이 행정법원 1심과 2심에서 모두 승소하였다. 애초에 잘못된 약값결정을 한 복지부, 값싼 인도약을 수입하기위해 청구했던 강제실시를 기각한 특허청, 미흡한 약가 인하였지만, 그조차 무용지물로 만들어버린 노바티스의 행보 이 모든 것들로 인해 현재 한국은 부실한 건강보험재정을 통해서 한해 1000억 원의 글리벡 약값을 매우고 있다. 이 불균형은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을까?

진주의료원 사태와 같이 정부가 공공의료를 포기하려는 지금, 한국의 건강보험체계는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다국적 제약회사에 맞선 제3세계 국가와 민중의 지혜들을 우리가 돌아보아야 할 이유이다

덧붙임

토리 님은 성소수자 무지개행동 활동가이며, 2010년 초에 푸제온, 스프라이셀 공동행동 차원에서 인도를 방문하여 글리벡투쟁에 대해 인도활동가들과 함께 토론을 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