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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감염인은 꼭 알아야 할 이야기, WTO와 에이즈 치료제

[공동기획] 강요된 침묵, 이제 감염인의 목소리를 들어라 ④

[편집자 주] HIV/AIDS 인권모임 나누리+, 한국감염인연대(KANOS), 민중언론 <참세상>, <인권하루소식>은 HIV감염인/AIDS환자들이 겪고 있는 인권침해 현실을 진단하는 연속기획 '강요된 침묵, 이제 감염인의 목소리를 들어라'를 진행 중입니다. 당초 이번 기획은 국내 감염인 인권문제를 중심으로 총 4회에 걸쳐 진행한 뒤 마무리 될 예정이었으나, 추가로 3회에 걸쳐 해외 HIV감염인/AIDS환자들의 투쟁을 소개하는 꼭지를 덧붙입니다. 따라서 4회로 예정되었던 좌담기사는 마지막 7회로 옮겨지게 되었습니다. 내용이 추가되어 기획 순서가 변경된 점 독자 여러분께 양해를 구합니다. 추가될 3개의 기사는 '세계 에이즈 이야기'라는 소주제 하에 다른 나라의 에이즈환자들과 한국의 에이즈환자들의 삶이 어떻게 같고, 어떻게 다른지, 그리고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곳곳에서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전 세계적으로 우리가 함께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4회는 WTO와 의약품 접근권 이야기입니다. 이어 호주, 태국,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자신의 인권을 쟁취하기위한 감염인들의 투쟁이야기를 전할 예정입니다.


환자는 누구보다 자신의 치료제의 종류, 부작용, 약가 등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에이즈치료제는 1987년에 지도부딘이 처음 사용된 이후 90년대 중후반에 많은 치료제가 개발되었다. 특히 1995년에 사퀴나비어가 단백분해효소 억제제로 미국에서 최초로 승인됨으로써 삼제병용요법을 시작하게 되었다. 삼제병용요법은 역전사효소 억제제 두가지와 단백분해효소 억제제를 함께 복용하는 것이다. 그리고 기존의 에이즈치료제가 이미 감염된 세포내의 바이러스 증식을 막는 약이었던 반면 2003년 3월에 바이러스와 정상세포 간의 융합을 억제(fusion inhibitors)하는 새로운 기전의 치료제 'Fuzeon'이 미 FDA에 승인되었다.

이러한 치료제의 개발과 의학의 발전으로 에이즈에 대한 의학적 정의가 바뀌었다. 이것은 에이즈로 인한 사망률 감소, 감염인의 삶의 질 향상, 에이즈에 대한 두려움과 차별 해소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에이즈 감염인의 사망원인을 분석한 유럽 연구에 따르면, 에이즈 감염인 사망 중에서 에이즈 관련 질병으로 사망한 비율은 1994년 54.0%에서 2000년 16.7%로 감소하였다. '에이즈=죽음'이었던 인식은 적절한 치료와 관리만 잘 한다면 당뇨나 고혈압처럼 만성 질환인 상태로 일상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질병으로 바뀌었다.


이상한 에이즈 치료제 이야기

그러나 좋은 치료제가 빨리 개발되기를 기다리는 것만이 환자의 몫은 아니다. 2004년 2월, 미국의 에이즈건강관리재단이 초국적 제약사 애보트에 대해 미국반독점법 위반으로 소송을 제기한 일이 있었다. 애보트사가 노비르(성분명: 리토나비어)라는 에이즈치료제의 가격을 500%나 인상했기 때문이다. 애보트사가 노비르의 약가를 갑작스레 500%나 인상한 이유는 노비르를 시장에서 퇴출시키기 위해서였다. 한국에서도 수요부족으로 노비르는 판매중단 되었다. 더욱 정확히 말하자면 다른 제약사에서 노비르를 사용하는 것을 막기위해서이다. 노비르는 다른 에이즈치료제와 같이 복용했을 때 다른 치료제의 효능을 증대시키는 효과를 가진다. 애보트사는 리토나비어와 로피나비어의 복합제인 칼레트라를 출시했고, 칼레트라의 시장을 확대함과 동시에 다른 제약사의 에이즈치료제의 경쟁을 억제하기위해 노비르의 가격을 500%나 인상한 것이다. 따라서 에이즈환자는 다른 치료제와 노비르와의 병용복용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했다.

1차 삼제병용요법으로 많이 사용하는 것 중 한가지가 '스타부딘+라미부딘+네비라핀'의 병용요법이다. 삼제병용요법에 사용하는 에이즈치료제의 복용법은 복잡하고 개수가 많다. 어린이를 비롯한 많은 에이즈환자들이 매일, 하루 몇차례씩, 복용법도 다르고 개수도 많은 치료제를 잘 챙겨서 복용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복용법을 간편하게 하기위해 캡슐 한 개에 세 가지 약물을 포함시키는 방법이 기술적으로는 가능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다. 왜냐면 스타부딘, 라미부딘, 네비라핀을 개발한 제약사는 각각 BMS, GSK, 베링거인겔하임이고, 이들 제약사는 각각의 치료제에 대한 특허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인도의 시플라사와 헤테로사는 이 복합제를 싼 가격으로 공급하고 있는데, 이는 2005년이전까지 인도에 물질특허제도가 없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즉 특허제도로 인해 에이즈환자는 간편한 복용법을 차단당했다.

한가지 더 주목할 것이 특허로 인한 약가이다. 2000년 8월기준 '스타부딘+라미부딘+네비라핀'의 연간 환자당 비용을 비교해보면 오리지널 의약품(특허의약품) 비용은 10,439달러이고, 브라질에서 공급한 제네릭 의약품의 비용은 2767달러였다. 2001년 1월 오리지널 의약품을 공급하는 초국적제약사는 브라질의 제네릭 의약품만큼 파격적인 가격인하를 하였다. 그리고 2001년 2월에 인도제약사 시플라가 350달러에 공급하였고, 2003년 4월 인도제약사 헤테로가 201달러에 공급하는 등 제네릭 경쟁이 지속되면서 2005년 2월 기준 오리지널 의약품 비용은 562달러, 헤테로사의 제네릭 의약품 비용은 168달러로 인하되었다. 4년간 경쟁을 통해 오리지널 의약품 비용은 약 18배 인하되었고, 제네릭 의약품도 약 16배 인하되었다. 실제 생산비용은 168달러가 안된다는 것이고, 오리지널 의약품의 가격이 파격적으로 인하되었지만 여전히 제네릭 약가보다 약 3배 비싸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세계보건기구가 12가지 에이즈치료제의 활성성분을 공급하는 중국, 인도, 브라질 제약사의 가격을 조사한 자료를 보면, 같은 에이즈치료제 부류내에서도 인디나비어의 최하 가격은 285달러, 로피나비어는 2900달러로 큰 차이를 보인다. 이유는 인디나비어는 충분한 제네릭 시장이 있기 때문이다. 인디나비어는 브라질에서 특허가 없지만, 로피나비어는 브라질과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특허가 있다. 뉴클레오사이드계 역전사효소 억제제(NRTI)에 대해서는 아바카비어가 다른 성분보다 3~5배 비싸다. 아바카비어는 브라질에서 특허가 있는 반면, 다른 NRTI는 1996년 이전에 발명되었고 브라질에서 특허가 없다. 비뉴클레오사이드계 역전사효소 억제제(NNRTI)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네바라핀은 브라질에서 특허가 없고 에파비렌즈보다 싸다. 에파비렌즈는 브라질에서 특허가 있다.

그리고 삼제병용요법에 사용하는 1차약물과 2차약물의 가격을 비교해보면 2차 약물이 1차약물보다 2∼12배 가량 비싸다. 특허의 유무에 따라, 즉 제네릭 의약품이 존재하느냐에 따라 환자의 의약품 접근권은 엄청난 차이를 보이고, 1차약물에 내성을 가진 환자의 치료는 여전히 요원함을 알 수 있다.


약이 있어도 못 먹는 이유

현재의 치료기술로 에이즈를 완치할 수는 없지만 바이러스의 활동을 억제시켜 정상적인 생활을 유지시킬 수 있는 수준에 와 있다.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에이즈환자의 5%미만이 치료를 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에이즈치료제가 비싸서 먹을 수 없기 때문이다.

1987년 승인된 지도부딘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에이즈치료제는 90년대 중후반에 승인되었다. 특히 95년에 삼제병용요법을 사용하여 탁월한 치료효과를 기대할 수 있게 되었는데, 에이즈치료제의 생산과 사용은 우연히도 95년 세계무역기구(WTO) 출범시기와 유사하다. 세계무역기구 무역관련지적재산권협정(TRIPS)에 따라 대부분의 에이즈치료제는 특허가 있다. 그리고 에이즈치료제를 생산하는 제약사는 브리스톨마이어스스큅(BMS), 글락소스미스틀라인비첨(GSK), 로슈, 머크, 베링거인겔하임, 애보트, 길리어드, 화이자 등으로 몇몇 제약사가 주도하고 있다.

제약산업은 다른 제조업과 달리 인건비 등 생산비를 절감함으로써 이윤을 극대화하기보다는 특히 신약개발에 관련된 기술을 독점함으로써 이윤극대화를 꾀한다. 신약개발에 관련된 기술을 보호함으로써 독점을 인정하는 가장 확실한 수단이 바로 '특허'이다. 제약자본의 이윤창출을 위한 세계화 전략에서 가장 핵심적인 것은 특허권 강화, 특허제도의 통일, 그것의 적극적 추진으로서 세계무역기구(WTO) 무역관련지적재산권협정(TRIPS)이다.

TRIPs(Trade-Related Aspects of Intellectual Property Rights)는 무역관련 지적재산권에 대한 협정으로 1995년에 출범한 세계무역기구(WTO)체제에서 채택된 협정 중의 하나이다. WTO/TRIPs 협정의 특징은 지적재산권에 관한 기존의 국제규범을 강화하였을 뿐만 아니라 이에 관한 집행규정과 독자적인 분쟁처리절차를 마련하여 강제력을 가지게 되었다는 점이다.

TRIP협정에서 20년간의 특허기간을 보장함으로써 제약사는 독점적, 배타적 소유권을 갖는다. 즉, 특허기간이 만료되기 전까지는 특허권자인 제약사외에는 특허의약품을 생산, 판매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제약사는 미국이나 유럽시장에서 팔릴 수 있는 가장 비싼 가격으로 의약품 가격을 정한다. 제약사에게 아프리카 등 돈이 안 되는 대륙은 고려의 대상이 아니다. 제약사는 독점권을 강화시키면서 독점적인 가격을 통해 천문학적인 이윤을 추구하고, 의약품에 대한 접근을 차단하고 있다. 그리고 거대한 의약품시장은 막대한 판촉비, 판매비, 광고비와 신약개발에 소요되는 자금을 감당할 만한 거대 초국적 기업에 의해 독과점적 지배를 당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는 에이즈치료제의 비용을 환자나 국가가 감당할 수 있는지, 치료제의 개발과 생산여부를 환자의 필요가 아닌 몇몇 초국적 제약사의 시장이윤동기에 내맡겨도 되는지, 기술적으로 가능하지만 특허제도 때문에 간편한 치료제를 생산하지 못함으로써 치료효과를 향상시키지 못하는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 등의 질문을 던진다.


도하, 칸쿤 그리고 홍콩

12월 13일 홍콩에서 6차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가 개막되었다. 1500여명의 한국민중투쟁단도 홍콩에서 다른 나라의 활동가들과 함께 'WTO실패'를 외치며 투쟁하고 있다. 2001년 카타르 도하에서 있었던 4차 WTO각료회의에서 초국적제약사의 탐욕에 맞선 문제제기가 있었고, 2003년 멕시코 칸쿤에서 있었던 5차 WTO각료회의는 전 세계 활동가들의 투쟁으로 인해 무산되었었다.

2001년 11월 카타르 도하, 4차 WTO각료회의에서 아프리카 국가들은 지적재산권과 의약품의 접근성에 대한 TRIPs 규정의 해석과 적용을 분명히 하기 위해 TRIPS이사회에서의 토론을 제안했다. 이 제안에 따라 2001년 6월의 TRIPs 이사회에서는 TRIPs와 공중보건에 대한 토론이 진행되었다. 이 자리에서 아프리카를 비롯한 47개국의 개발도상국은 연합 문서를 제출하여 TRIPs협정 중 어떠한 것도 각 국가들이 공공의 건강을 보호하기 위한 대책들을 채택하는 것을 방해하지 않는다는 것을 WTO가 확실히 밝힐 것을 요구했다.

TRIPs 이사회에서의 주요 논쟁 지점은 1) 지적재산권은 건강권을 포함한 인권에 우선할 수 없음, 2) TRIPs 협정의 유연성 있는 해석이라는 것을 중심으로 하여 지적재산에 대한 입법은 회원국 자율에 맡겨져야 하는 주권의 문제라는 것임, 3) 필수의약품을 포함한 공공재를 지적재산의 대상으로 할 수 있는가 라는 것이었다. WTO(세계무역기구)는 개도국의 주장을 일정 수용하여 '공중보건을 위한 선언문'을 발표했다. 'TRIPS협정중 어떠한 것도 WTO 회원국들이 각국의 공중 보건과 관련된 조치들을 채택하는 것을 막을 수 없고, 회원국은 강제실시권을 부여할 권리와 부여조건을 결정할 자유가 있다'는 내용을 담은 선언문은 미국, 스위스, 일본,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등의 압력에 맞선 개발도상국의 강력한 연대의 결과물이었다. 의약품 '강제실시'는 특허권자의 허락 없이 제 3자에게 특허의약품을 복제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것이다.

그러나 TRIPS협정에서 강제실시는 '국내이용'으로 제한되어있기 때문에 제조능력이 없거나 불충분한 경우 실제로 강제실시를 통한 저가 약 공급이 불가능하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위해 제조능력이 없거나 취약한 국가들에 한해 제3국에 '강제실시'를 의뢰해서 특허의약품을 복제, 생산한 뒤 이를 수입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수출을 위한 강제실시'가 2003년 5차 각료회의의 쟁점이 되었다. 멕시코 칸쿤에서 있었던 5차 각료회의의 골칫거리가 될것으로 예상되었던 'TRIPS와 공중보건'에 관한 문제는 각료회의 직전에 갑작스런 합의를 하게되었다. 미국과 개도국간의 대립이 점점 커지자 도하개발의제(DDA) 협상이 난항을 겪고있는 상황을 고려한 미국의 수작에 불과했다. '수출을 위한 강제실시'를 현실적으로는 어렵게 만들면서 미국의 양보를 끌어낸 '역사적 합의'로 미화시키기 위한 함정이었다.


WTO는 감염인의 생명권을 박탈한다

아프리카, 아메리카, 아시아 지역의 대부분의 국가들은 환자수가 많은 만큼 에이즈치료제의 비용이 약을 먹을 수 있느냐를 결정짓는다. 한국은 환자수가 비교적 적은 편이고, 치료제를 국가에서 공급하고 있기 때문에 정부와 환자들이 현재는 약값에 대한 부담을 덜 느낀다. 하지만 한국에서 하루 약값으로 4∼5만원의 비용은 결코 적은 것이 아니다. 그리고 국내에 아직 시판되고 있지 않은 2000년 이후에 개발된 신약은 더욱 비싸다. 새로운 기전의 치료제 Fuzeon은 다른 치료제에 내성을 가진 환자에게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더욱 주목이 되는데 미국에서의 환자1인당 연간 비용이 2만5천 달러이다. 최근 HIV감염 발생률이 증가하는 추세로는 한국정부도 에이즈치료제 비용에 대해 둔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아지도민 캅셀을 제외하고는 수입의약품에 의존하고 있다. 아시아에서 HIV감염 발생률이 급증하고 있고, 국가간의 이동이 자유로운 상황에서 감염이 확인된 외국인을 강제출국시키고 국내환자를 철저히 감시하는 방식으로 에이즈에 대처하는 것은 인권침해일 뿐만 아니라 효과적이지도 않다. 한국도 에이즈치료제에 대한 자체연구와 국내생산을 정부의 책임하에 준비해야 한다. 또한 이라크 전쟁을 지원하기위한 파병에 수천억을 쓸 것이 아니라 글로벌펀드나 3by5 등 에이즈치료를 위한 국제적인 지원을 확대해야한다. 국내감염발생률만 통제한다고 해서 에이즈는 예방되지 않는다.

WTO는 감염인의 삶과 무관한 것이 아니라 감염인의 생명과 가장 밀접한 권리를 박탈하고 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감염인은 WTO가 감염인의 생명을 좌지우지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감염인이 WTO에 반대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덧붙임

김동숙 님은 'HIV/AIDS 인권모임 나누리+'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