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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인권보고서] 특허 및 강제실시권: 최근의 몇몇 경험

제3세계 네트워크의 지적재산권 시리즈 10번째 보고서 (마틴 코어, 2007년 2월)

<번역자주>

제3세계 네트워크는 발전, 제3세계 및 남북 문제를 다루는 단체 및 개인들의 비영리 국제 네트워크다. 제3세계 네트워크의 목적은 남반구에 속하는 경제ㆍ사회ㆍ환경 문제를 연구하고, 책과 잡지를 발행하고, 세미나를 조직하거나 참여하며, 유엔 대회 및 절차 등 국제회의에 남반구의 이해와 관점을 광범하게 대변하는 것이다.
이 보고서는 제3세계 네트워크의 지적재산권 시리즈 중 10번째로서, 비상업적인 공공의 목적을 위해서는 정부가 특허권자의 동의 없이 특허 약품의 복제를 강제로 실시할 수 있음을 주장하고 있다. 특히 제3세계 국가들의 최근 사례를 제시함으로써 정부의 강제실시권 발동이 실제로 가능하다는 사실을 역설하고 있어 흥미롭다.
보고서의 저자 마틴 코어는 제3세계 네트워크의 지도자로서, 캠브리지 대학에서 훈련받은 경제학자이다. 코어는 무역관련 지적재산권, 즉 트립스 협정의 유연성을 슬기롭게 활용할 것을 권하고 있다.


보고서 표지 [출처] www.twnside.org.sg

▲ 보고서 표지 [출처] www.twnside.org.sg

특허권, 강제실시권 및 의약품 접근성: 최근의 몇몇 경험
PATENTS, COMPULSORY LICENSE, AND ACCESS TO MEDICINES:
SOME RECENT EXPERIENCES


A. 배경

의약품에 대한 특허는 1995년 세계무역기구에서 무역관련 지적재산권(TRIPS, 아래 트립스) 협정이 체결된 이후 더욱 널리 시행되어 왔다. 트립스 협정은 세계무역기구 회원국들이 의약품에 특허를 허가하도록 명령했지만, 한편으로는 유연성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특허 약품이 너무 비싸면 기관이나 회사가 특허 약품의 복제판을 수입하거나 생산하게 하는 강제실시권(compulsory license)을 정부가 발동함으로써 환자들이 더 싼 값에 약을 살 수 있도록 할 수 있다.

제3세계 네트워크 지도자이자 보고서 저자인 마틴 코어 [출처] www.iisd.ca

▲ 제3세계 네트워크 지도자이자 보고서 저자인 마틴 코어 [출처] www.iisd.ca



B. 트립스에 부합하는 국가적 공중보건 조치

정부는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의약품에 대한 접근성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정책 조치들을 취할 수 있다:

B1. 약품 수입: 정부가 “공적이고 비상업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특허 약품의 복제판을 수입할 수 있다. ‘정부사용권’(government use) 절차 하에서는 특허권자와 했던 이전의 동의나 협약은 필요하지 않고, 다만 적절한 보상이 있어야 한다. 또한 ‘병행수입권’(parallel import)이 있을 수 있다. 이것은 수출국의 시장에 합법적으로 출시된 특허 상품을 다른 나라에서 특허권자의 동의 없이 수입하고 재판매하는 것이다.

B2. 자체 생산: 어떤 약품이 한 나라에서 특허를 받았으면, 그 약품의 복제판은 강제실시권을 받은 회사나 기관에 의해 지역 내에서 생산될 수 있다. 또한 상업적 목적이 아닌 공적 목적에 의해 제공될 것이라면, 정부는 특허권자의 허락이 없이 특허 상품을 지역에서 생산할 권리를 공공이나 민간 기관들에게 할당할 수 있다.

B3. 적절한 제조 능력을 갖지 못한 나라들을 포함한 수출: 강제실시권이나 정부사용권 조항 아래에서 특허 상품의 복제판을 생산하는 지역 생산자들은 생산물의 일정 부분을 수출할 수 있다. 그러나 트립스 협정 31조 f항은 이런 생산이 “자국 시장의 공급을 중심으로” 이루어질 것을 요구한다. 2003년 8월 세계무역기구 일반이사회는 31조 f항에 대한 잠정 유예 형식으로 ‘임시 해법’(temporary solution)을 마련하여, 강제실시권 아래 특허 상품의 복제판을 생산하는 나라들이 자격 있는 수입국들에게 수출 물량에 제한을 두지 않고 제품을 수출할 수 있도록 하였다. 2003년 8월의 ‘임시 해법’은 여전히 효력을 발휘하고 있다.

B4. 결론: 트립스 협정의 이러한 유연성을 “최대한 이용할” 권리를 실행하기 위해서, 개발도상국들은 이용 가능한 정책의 선택지점들을 연구할 수 있고, 적절한 법과 구체적 조치를 도입할 수 있다. 장기적으로는 현존하는 유연성을 확장하여 환자와 소비자의 욕구에 맞출 수 있도록 트립스 협정을 개정하는 것도 바람직할 것이다.

제3세계 및 남북 문제를 다루는 제3세계 네트워크 홈페이지 [출처] www.twnside.org.sg

▲ 제3세계 및 남북 문제를 다루는 제3세계 네트워크 홈페이지 [출처] www.twnside.org.sg



C. 트립스 유연성의 사용: 최근의 경험들

여러 해 동안, 심지어 트립스 협정이 발효되기 훨씬 이전에도, 많은 경우 몇몇 선진국은 강제실시권을 사용했다. 반면, 개발도상국은 트립스 유연성을 거의 이행하지 못했다. 여기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는데, 예를 들어 유연성에 관한 인식이나 이해의 부족, 정부 부처 내에서 (특히 개발옹호적 관점에서) 지적재산권 관련 현안에 대한 법적 전문지식의 부족, 트립스 유연성에 관한 부적절하고 불충분한 법률, 끝으로 이러한 유연성을 사용하지 말라는 선진국 정부와 산업, 특히 대형 다국적 제약업계의 압력이 그것이다.

그러한 사례가 2001년에 있었는데, 남아프리카 정부가 법률을 개정해 강제실시권과 병행수입권에 관한 조항을 포함시킴으로써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의약품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려 하자, 39개 제약회사들이 이에 맞서 소송을 제기했던 것이다. 이후 제약업계는 국내외적으로 심각한 비난에 직면하자 소송을 포기하고 철회했다.

특허가 가격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에 대한 비난은 2001년 11월 14일 트립스와 공중보건에 대한 도하 선언으로 귀결됐으며, 선언의 4항이 인정하고 확인하는 바, “회원국이 공중보건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는 것을 트립스 협정은 방해하지도 않으며 방해해서도 안 되고 … 공중보건을 보호하고, 특히, 모든 사람을 위해 의약품 접근성을 증진하려는 세계무역기구 회원국의 권리를 지지하는 방식으로 협정은 해석되고 이행될 수 있으며 또 그러해야 한다.”

에이즈 치료약 복제판을 생산하는 인도 시플라 사 홈페이지 [출처] www.cipla.com

▲ 에이즈 치료약 복제판을 생산하는 인도 시플라 사 홈페이지 [출처] www.cipla.com



말레이시아

2003년 말레이시아는 트립스와 공중보건에 대한 도하 선언의 채택에 따라 ‘정부사용’ 실시권을 발동한 최초의 나라가 됐다. 이는 특허를 얻은 항바이러스 치료제의 복제판(generic versions of patented ARVs)을 인도 시플라 사로부터 수입해 국립 병원에서 사용하기 위함이었다. 아지도티미딘(AZT), 디다노신(ddl) 및 콤비비어(Combivir)의 수입을 위해 국내 무역 및 소비자 사무부는 2003년 11월 1일부터 2년 동안 승인을 해 줬다.

정부사용 실시권의 결과, 매달 환자 1인당 소요되는 복지부의 평균 진료 비용은 315 미국달러에서 58 미국달러로 떨어졌다. (이는 81%의 비용절감과 맞먹는다.) 매우 낮은 진료 비용에 고무되어 복지부는 진료가 필요한 모든 사람들에게 무상으로 진료를 했다. 이전에는 몇 가지 선택된 범주의 환자들만이 무상 진료를 받았다. 게다가, 복지부에 따르면, 국립 병원 및 진료소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었던 환자의 수가 1500명에서 4000명으로 증가했다.

짐바브웨

2002년 전국을 강타한 HIV/AIDS 유행성 질병을 고려하여, 법무부 장관은 6개월 동안 ‘(HIV/AIDS) 비상시국 선언’을 고시했다. 고시의 의도는 국가나 장관의 승인을 얻은 개인이 (a) 항레트로바이러스 약품을 포함해 어떠한 특허 약품도 만들거나 사용할 수 있고 (b) HIV/AIDS 감염인이나 HIV/AIDS 관련 상황을 치료하는 데 사용된 어떠한 복제 약품도 수입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비상시국은 행정 명령 2003년 32호에 의해 2008년 12월 31일까지 5년 더 연장됐다.

중국

2005년 10월, 중국 정부는 정부사용권에 대한 명령을 내려, 중국에서 특허를 얻은 몇몇 항바이러스치료제의 복제판을 (인도의 몇몇 복제약 제조회사로부터) 수입했다. 보건부 장관에 의하면, HIV/AIDS 약품은 상업적 목적 없이 사람들을 치료하기 위해서 그리고 정부사용권을 위해서 사용될 것이다. 공식 자료에 따르면, 1년간 치료를 위한 항바이러스치료제의 비용은 매년 495달러에서 235달러로 거의 50% 떨어졌다.

2006년 국제에이즈회의장 시위 “자유무역협정: 특허에 의한 살인” [출처] 민중언론 <참세상>

▲ 2006년 국제에이즈회의장 시위 “자유무역협정: 특허에 의한 살인” [출처] 민중언론 <참세상>



D. 양자간 자유무역협정이 공중 보건에 관한 트립스 유연성의 이행에 미치는 의미

미국과 몇몇 국가들 혹은 그룹들이 맺은 양자간 자유무역협정은 세계무역기구에서 허락된 조치들이나 유연함을 제한하고 있다. 그 결과 개발도상국들이 맺은 자유무역협정은 환자들에게 더 싼 복제 약품을 제공할 강제실시권이나 ‘정부사용권’과 같은 조치들을 취하기 어렵게 혹은 아예 불가능하게 하고 있다.

(a) 자료독점권(Data exclusivity): WTO는 ‘자료독점권’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러나 양자간 자유무역협정에서 미국은 신약개발 회사가 제공한 실험 자료들에 대한 ‘자료독점권’을 세우거나 확장하여, 그 약품에 상응하는 복제판의 등록을 막아, 결국 강제실시권의 효과를 어렵게 하고, 복제 약품의 공급을 효과적으로 억제하고 있다. 이 제한은 미-싱가포르 협정에 있다.

(b) 특허 기간 연장(Extending patent life span): 대부분의 나라에서 약품 특허권은 제출일(date of filing)로부터 20년간 지속되고, 이는 세계무역기구의 요구이기도 하다. 그러나 미국은 한 국가의 의약 당국이나 특허청이 심사하고 승인하는 데 걸리는 모든 ‘비합리적인’ 시간에 대해 제약회사를 ‘보상’해 주려는 방법을 찾고 있다. 그래서 특허 기한을 ‘비합리적인 시간’이 걸린 만큼 연장하려 한다. 이 연장 조치는 미-중미 자유무역협정에 있다.

(c) 특허 추가에 의한 특허 연장(Evergreening the patent): 세계무역기구 아래 회원국들은 기존의 물질을 새로운 용도로 쓰는 데 특허를 보장할 의무가 없다. 미국은 상품의 ‘새로운 용도’마다 새로운 특허를 회사가 신청할 수 있도록 하는 조항을 자유무역협정에 삽입하길 원하며, 이에 따라 원래 특허의 만료일을 지나서도 특허가 계속될 수 있도록 보호하고자 한다. 이 조항은 미-멕시코 자유무역협정에 있다.

(d) 강제실시권 발동 조건의 제한: 트립스는 국가들이 강제실시권을 발동하고 사용하는 데 조건 제한을 두지 않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은 의약품에 대한 강제실시권 발동을 특정 상황으로 제한하는 방법을 찾는다. 예를 들어, 미-싱가포르 자유무역협정은 오직 특허권자에 의한 비경쟁적 환자 치료, 공공을 위한 비상업적 사용, 국가 비상 상황이나 극심한 긴급 상황에서만 강제실시권을 제한한다.

태국 국가인권위원회 로고 [출처] www.nhrc.or.th

▲ 태국 국가인권위원회 로고 [출처] www.nhrc.or.th

태국의 국가인권위원회는 태국이 미국과 협상중인 자유무역협정의 인권 평가에 대한 보고서 초안을 발표했다. 보고서는 이러한 협정이 태국 국민의 인권을 침해하고 국가 주권에 영향을 줄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그러므로 협정은 이러한 영향을 총체적으로 검토할 때까지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고 했다.

보고서는 미국이 만든 요구안이 세계무역기구의 트립스 협정을 넘어서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 트립스-플러스 조약에는 △식물, 동물, 치료 방법의 특허화 △트립스에 의해 요구된 20년을 초과하는 특허 기간 연장 △자료독점권 △특허 상태와 의약 등록 연계 △특허 사전승인 반대 폐지 △강제실시권 사용 제한 등이 포함된다.

위원회는 태국에서 상표가 붙은/처음 개발된 의약품 가격이 복제판보다 열 배 더 비쌀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연구 결과를 강조했다. “이에 더하여, 비용이 공중 보건 1년 예산보다 많은 1천억 바트를 넘는 액수로 증가할 것이라고 추정되었고, 이는 분명히 태국에서 성실하게 보건 체계를 운영하려는 시도를 침식할 것이다. 특히 건강 보험 계획에서… 태국 국민들은 의약품에 대한 접근이 거부될 것이며, 공중 보건과 사회 문제를 엄청나게 야기할 것이다….”
덧붙임

◎ 범용, 성희 님은 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