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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리] 인도 자유무역협정과 의약품 접근권

인도-유럽 FTA를 115개국 나라가 응시하는 이유

FTA(에프티에이, 자유무역협정)라는 경제관련 용어가 이제는 한국, 아니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의 목숨과 삶의 질에 값을 매기는 기준이 되고 있다. 마치 자동차를 사고파는 것처럼 ‘생명’도 사고팔겠다는 FTA는 인도-EU(이유, 유럽연합) FTA를 통해 그 본질을 다시 한번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지난 3월 2일 한국에서도 인도-EU FTA 협상 내용에 대해 항의하는 환자단체와 보건의료관련 시민사회단체의 기자회견이 열렸다. 왜 인도와 유럽의 FTA에 한국 환자들과 활동가들이 눈길을 모으는 것일까? 인도와 ‘약’의 생산에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일까?


필자가 현대 인도를 조금씩 알아가면서 놀라웠던 분야가 바로 정보기술(IT)산업, 발리우드(Bollywood)라 불리는 영화산업, 그리고 의약품 산업의 규모와 그 파급력이었다. 아직까지 한국의 많은 사람들이 IT, Bollywood는 알고 있지만 인도의 의약품 산업은 생소해 한다.

세계의 약국, 인도

인도와 ‘약’을 이해하는 데는 인도에 대한 기초지식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인도뿐 아니라 아시아, 아프리카, 남아메리카에 있는 가난한 환자와 그들이 속한 국가의 의료 환경, 의약품공급의 문제점을 이해해야 한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텔레비전 프로그램 등을 통해 이들 대륙에 있는 가난한 HIV(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 감염환자, 결핵, 말라리아 환자의 극단적인 상황에 대해서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 프로그램에서는 이와 같은 수많은 환자들의 생명을 구하는 약이 바로 인도에서 생산된다는 사실은 언급하지 않는다.

에이즈 치료제의 경우만 보더라도 인도의 제약회사는 미국, 유럽 등 선진국을 제외한 대략 115개 나라 HIV감염 환자들에게 약을 생산, 공급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 등에 보고된 자료에 의하면 2006년 개발도상국에 보급된 에이즈치료제의 80% 정도가 인도산이고 그 비율은 불과 2년 후 87%까지 올라가게 된다. 특히 소아용 에이즈 치료제 공급에서 인도산은 90% 이상으로,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물론 아직까지 전 세계 가난한 환자들이 에이즈치료제를 구입하는 비율은 전체 HIV 감염환자 중 1/6 정도(약 500만 명)에 그치고 있지만 인도산 에이즈치료제의 보급을 넓힌다면 환자들의 치료비율은 급속도로 올라갈 수 있다. 이런 이유로 현대 인도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말이 ‘세계의 약국’이다.

그렇다면 인도의 제약회사는 천사의 날개를 달고 경영하는가? 당연히 아니다. 바로 인도의 특허법이 인도 국민뿐 아니라 전 세계 가난한 환자들의 ‘의약품 접근’을 가능하게 했다. 인도도 1972년까지는 대부분의 의약품을 수입하는 나라였다. 따라서 그때까지 많은 인도 국민들은 현대의료의 치료를 받기 어려웠다. 하지만 1972년 인도정부는 의약품에 대한 물질특허를 폐지하였다. 그 이후 지금까지 40여 년간 인도의 제약회사들은 자유롭게 값싸고 질 좋은 의약품을 생산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2005년에 다시 의약품 물질특허제도를 도입하였지만 특허요건을 까다롭게 만들어 아직까지 제네릭의약품(복제의약품) 생산에 큰 지장을 받지는 않았다. ‘한 달에 2~3만원씩 기부하면 많은 환자들이 치료제를 구입할 수 있다’고 선진국 국민들에게 호소하는 구호단체들의 목소리는 바로 이런 인도산 의약품에 기댄 것이다.

제네릭 의약품 생산을 막게 될 인도-EU FTA

이런 인도산 의약품의 역할이 인도-EU FTA가 통과되면 사라지게 된다. 3월 말 체결예정이라는 인도-EU FTA는 마지막으로 ‘의약품에 대한 자료독점권’과 ‘지적재산권’ 집행조항에 대한 합의만을 남겨두고 있기 때문이다. ‘의약품에 대한 자료독점권’이란 의약품 특허권을 갖고 있는 제약회사의 의약품 관련 정보, 즉 그 제품의 유효성과 안정성에 대한 자료를 다른 제약업체가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여, 특허가 끝난 제품에 대해서도 제네릭 의약품의 생산을 막거나 지연시키는 제도이다. 본래 특허란 제품에 대한 모든 자료를 공개하는 것을 전제로 독점을 보장해주는 것이다. 특허가 끝나고 나면 누구나 자료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 특허 보호의 원래 의미이다. 하지만 특허제도로 인해 발생한 독점적 이익에 취해 이런 저런 구실을 붙여 특허보호에 준하는 제도를 자꾸 만들어 요구하는 것이 의약품과 관련한 FTA 협상의 특징이다.


우리나라가 체결한 한-미 FTA, 한-EU FTA에서도 마찬가지다. 특히 한-미 FTA의 경우 의약품의 보험적용과 가격 결정, 의약품 특허 관련 문제를 포괄적으로 규정한 세계 두 번째 FTA(첫 번째는 호주-미국 FTA)로써, 한-미 FTA의 통과는 한국과 다른 국가와의 FTA뿐 아니라 전 세계 개발도상국의 FTA 협상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한-미 FTA는 선진 7개국 의약품 가격을 한국에 동일하게 적용하게 하는 ‘선진국 평균약가’ 도입의 명문화, 의약품의 건강보험 등재 여부 및 보험약가 결정의 모든 단계에 제약회사의 개입을 허용한 것, 이런 의약품과 관련한 내용을 의료기기까지 확대 적용하는 등의 내용과 더불어 가장 중요한 ‘의약품 특허’와 관련한 강력한 독점 보장을 주 내용으로 하고 있다.

한-미 FTA는 인도와 마찬가지로 ‘자료독점권’에 대해 관대할 뿐 아니라 의약품 허가-특허 연계를 포함하고 있다. 원래 특허권은 사적인 권리이므로 특허 침해 여부에 대한 대응은 개인 또는 법인이 사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허가-특허연계는 의약품 허가의 주무관청인 식약청이 특허 침해 사례를 조사하여 국가기관이 우선적으로 허가에 반영하도록 하는 제도이다. 제약자본이 손안대고 코푸는 대표적인 특혜조항이다.

이와 같은 한-미 FTA, 인도-EU FTA가 서둘러 진행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이유는 한-미 FTA가 특허의약품을 갖고 있지 않은 국가와 특허 선진국의 FTA 모범사례로 보이게 만드는 것, 제약시설이 부족하고 부실한 많은 국가와 환자들에게 값싸고 질 좋은 의약품을 공급하는 인도의 역할을 통제하여 초국적 제약자본의 영향력을 강화하려는 것이다.

FTA 체결 이후의 미래

이런 FTA 타결 5년 후 10년 후 인도와 대한민국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아니 전 세계 환자들은 그때까지 안녕할 수 있을까? 당장 인도-EU FTA가 통과되면 지금껏 몇 천 원 안팎의 돈으로 살 수 있는 의약품이 몇 만 원 또는 몇 십만 원의 제품으로 둔갑할 수밖에 없다. 위에도 언급하였듯이 에이즈치료제로 대표되는 특허와 무관한 인도산 제품은 바로 이런 선진국의 특허제도 운영으로 피해를 입는 전 세계 많은 환자들에게 유일한 생명줄이다. 생명줄이 끊어지면 남게 되는 것은 무엇일지 상상하기조차 끔찍하다.

한-미 FTA 통과 반대뿐 아니라 인도-EU FTA 타결 반대를 외치는 이유가 일맥상통하고 있다. 특히 인도-EU FTA는 인도 국민뿐 아니라 115개국의 환자와 어린이의 눈동자가 함께 주시하고 있다.
덧붙임

송미옥 님은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에서 활동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