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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미란의 인권이야기] 기술 발전도, 의약품 이용도 가로 막는 특허독점

‘푸제온 강제실시’를 둘러싼 논의들

최근에 치료에 필수적인 의약품을 환자들이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의 하나로써 ‘강제실시제도’에 관한 포럼 및 토론회가 연이어 있었다. 건강권과 특허권을 둘러싼 여러 쟁점과 주장들이 쏟아졌다. 그 중에서 정말 터무니없는 주장이 있었는데 혼자 열 받고 끝내기에는 건강권에 반하는 치명적인 말이라 여러 사람들에게 알려야겠다고 벼르고 있었다.

특허가 기술발전을 이끈다는 거짓말

특허제도는 기술의 공개를 통해 기술의 이용을 도모하고 기술의 발전을 촉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런데 제약회사는 특허로 보장된 독점권을 이용하여 오히려 기술발전과 그 이용을 막고, 천문학적인 이윤창출의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 예를 들면 생산단가가 700원 남짓한 글리벡을 노바티스는 23,000원에 판매해서 세계 제약회사들 중 톱 5에 들 수 있게 된 대신 비싼 약값을 감당하지 못하는 백혈병 환자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백혈병 치료제인 스프라이셀 역시 생산단가가 1,900원 남짓한데 그 약값은 55,000원이다. 로슈와 트라이머리스는 돈이 안 된다며 에이즈치료제 푸제온에 대한 연구와 푸제온에 내성이 생겼을때 사용할 차세대 약물의 개발을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이 회사들이 푸제온에 대한 독점권을 갖고 있기 때문에 다른 이가 관련기술을 개발해도 사용할 수가 없다. 특허로 보장되는 독점권 즉 ‘유일함’은 환자에게 생명의 빛이 아니라 칼날이 된 지 오래다. 오죽하면 세계 각국의 환자와 활동가들은 ‘특허에 의한 살인(death under patent)’이라고 부르겠는가. 이러한 독점의 칼날에 대처할 수 있는 수단이 강제실시제도이다. 강제실시는 특허권자의 이익과 공공의 이익간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제도로서, 특허권자 외에 정부나 제 3자가 특허로 보호된 그 기술을 이용하게 하는 제도이다. 의약품 특허에 대한 강제실시가 허락되면 특허권자인 제약회사 외에 제3자가 똑같은 의약품을 만들고 공급할 수 있다.

로슈가 합리적인 근거도 제시하지 않은 채 비싼 약값을 요구하며 에이즈치료에 반드시 필요한 약인 ‘푸제온’을 한국에 5년째 공급하지 않고 있다. 한국의 에이즈환자가 많지도 않은데 약값을 올려주는 게 현실적인 방법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전혀 현실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니다. 왜냐하면 푸제온 약값은 푸제온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한국의 약가제도 그 자체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근거도 없이 푸제온 약값을 올려주게 될 경우 선례가 되어 약가제도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이유로 복지부는 약값을 올려주지 않았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 뿐이었다. 연간 2200만원을 낼 ‘구매력이 없는 환자는 건강할 자격이 없다’는 로슈에 대해 복지부는 사기업의 상품을 강제로 공급시킬 방법이 없다며 손을 땠다. 그래서 결국 작년 12월에 환자단체와 사회단체는 ‘푸제온’과 똑같은 약을 만들 수 있도록 강제실시해야 한다며 특허청에 청구하였고, 6월말에 그 결정이 내려질 예정이다.

2006년 8월, 국제에이즈회의. ACT UP-Paris, Health Global Access Project, 태국HIV/AIDS감염인네트워크(TNP+), 한국HIV/AIDS공동행동, 3세계네트워크(Third World Network)등의 단체는 '자유무역협정과 지적재산권이 의약품접근권을 파괴한다'고 주장하며 시위를 벌였다.

▲ 2006년 8월, 국제에이즈회의. ACT UP-Paris, Health Global Access Project, 태국HIV/AIDS감염인네트워크(TNP+), 한국HIV/AIDS공동행동, 3세계네트워크(Third World Network)등의 단체는 '자유무역협정과 지적재산권이 의약품접근권을 파괴한다'고 주장하며 시위를 벌였다.


누구나 건강할 권리, 누구에게는 보장할 수 없다고?

3월 31일 특허청에서 있었던 ‘강제실시제도 전문가포럼’에서 보건사회연구원의 한 연구위원은 강제실시 외에도 다른 방법을 생각해볼 수 있다며 ‘자기잘못으로 질병에 걸린 사람과 어쩔 수 없이 질병에 걸린 사람에게 차별적으로 보험혜택을 주는 것도 방법’이라는 주장을 했다. 민간보험회사에서도 대놓고 이렇게 말하지는 않는다.

한 예로 저임금, 장시간노동에 시달리는 사람이 더 많이 다치고 아프다는 것을 우리사회의 경험으로나 여러 연구에서 수없이 확인되었다. 건강한 삶을 살기위한 개인의 노력도 필요하다. 하지만 개인의 노력이 의미있으려면 사회적 조건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의 말대로라면 ‘담배를 많이 펴서 폐암에 걸렸으니(당신의 잘못이니!) 건강보험의 혜택을 받을 수 없다’ 내지는 ‘운동을 게을리하여 심장질환에 걸렸으니(당신의 잘못이니!) 건강보험의 혜택을 받을 수 없다’고 해야 한다. 그는 ‘성적으로 문란하여 에이즈에 걸린 사람과 아닌 사람을 차별하자’고 말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성적으로 문란하여, 부도덕하여, 불법적이어서’ 에이즈에 걸렸다고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고 그 대가로 죄인취급을 해야 한다는 편견과 차별이 우리 사회에 팽배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누구의 눈과 기준으로 ‘문란함’과 ‘부도덕’과 ‘불법’을 규정하는가? 의학적으로나 국제사회의 경험으로 볼 때 오히려 그러한 차별과 편견이 에이즈를 확산시키고 있음이 분명해졌다. 그래서 에이즈의 지구적 확산에 대처하기위해 구성된 UNAIDS같은 국제기구는 개인의 책임을 묻는 것이 아니라 빈곤, 성차별, 성소수자차별, 이주민차별을 철폐하고, HIV감염인의 인권을 증진시키기 위한 각국의 노력과 계획을 주문하고 있다. 환자를 차별하자는 그 연구위원의 주장이야말로 건강보험제도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건강보험제도는 사회연대를 원리로 하고 있다. 질병의 발생이 개인 잘못이 아니기 때문에 의약품과 의료서비스를 이용하는데 필요한 인적, 물적 자원을 개인의 책임이 아닌 사회의 책임 하에 마련하여 누구나 건강할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비싼 약값을 낼 수 있는 사람만이 건강할 ‘자격’이 있다는 제약회사의 주장이나, 이에 즉각 이의제기를 하지 않고 환자를 차별하는 방법으로 해결하자는 보건정책연구자의 말이 오가는 한국사회의 수준은 정말 급이 떨어진다.

제약회사에게 돈벌이가 되는 의약품제도로 바꿔라?

한편 ‘강제실시 전문가포럼’과 4월 2일에 국가인권위원회가 주최한 ‘필수의약품 접근권 보장 방안 마련 토론회’에서 다국적 제약산업 협회의 변호사는 ‘G20의장국이자 OECD가입국인 한국에서 강제실시를 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고 ‘태국정부가 7가지 의약품에 대해 강제실시를 한 것은 우스꽝스러운 일’이라고 주장하였다. 태국정부는 2006년과 2007년에 비싼 에이즈치료제, 항암제 등을 건강보험체계에서 공급하려고 강제실시를 발동한 바 있다. 그는 강제실시는 가난하고 무법천지인 국가에서나 하는 것이라고 폄하하고 싶었던 것이다. 따라서 G20의장국이자 OECD가입국으로서 ‘급 떨어지는 짓’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G20의장국은 2008년 브라질, 2009년 영국에 이어 2010년에는 한국이 맡게 된다. 2008년 의장국이었던 브라질은 2007년 5월에 에이즈치료제에 대해 강제실시를 발동했다. 게다가 OECD가입국인 미국 역시 9.11 이후 탄저병의 확산 ‘우려’에 대해 강제실시를 고려를 하는 것만으로도 약값을 대폭 인하시켰다. 미 의회 화물승강기에 탄저균 포자가 검출되면서 2001년 9월말 당시 32건의 노출 사례, 13명 감염사례, 이중 3명이 호흡기 감염으로 사망한 사례가 발생했다. 탄저병 치료제로는 바이엘의 ‘시프로’가 유일했기에 미국정부는 시프로의 대량생산과 가격인하를 요구했으나 바이엘이 거부했다. 톰슨 미국보건장관이 2001년 10월 23일에 “바이엘이 가격을 낮추지 않는다면 미국 내 특허를 취소할 수도 있다”고 하자, 바이엘은 생산량을 4배로 늘리고 4불 50센트에서 95센트로 가격을 인하하였다. 그가 이 사실들을 알고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그의 말은 푸제온 강제실시는 에이즈환자의 건강권에만 해당하는 문제가 아니라 제약회사의 이윤을 위해 근거도 없는 비싼 약값을 지불하도록 ‘보건의료정책과 제도를 바꾸라’는 주문의 다른 표현이었기에 너무도 섬뜩했다. ‘제약회사의 이윤을 보장하지 않는 각국의 의약품통제정책이나 약가제도는 불법이며 무시해야 한다‘는 억지를 우리가 따라야 하는가.

2008년 10월 3일 프랑스에 있는 액트업파리라는 단체가 초국적제약회사 로슈가 한국에 푸제온 공급을 하지 않는것을 비판하는 피켓팅을 로슈회사 앞에서 하고 있다.

▲ 2008년 10월 3일 프랑스에 있는 액트업파리라는 단체가 초국적제약회사 로슈가 한국에 푸제온 공급을 하지 않는것을 비판하는 피켓팅을 로슈회사 앞에서 하고 있다.


이 두 사람의 주장은 ‘누구나 건강할 권리를 누릴 수 있는 것과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한국의 보건의료정책과 제도를 바꾸라’는 결론으로 귀결된다. 뭐가 부끄럽고 우스꽝스러운 것일까? 필수약제를 건강보험체계에서 공급하려고 강제실시를 발동했던 태국사회가 부끄러운가? 건강권을 무시하는 말이 통하는 한국사회가 부끄러운가? 6월말이면 시민사회가 청구한 푸제온 강제실시 청구에 대한 결정이 내려진다. 특허에 의한 살인을 받아들일 것인지, 건강권을 보장할 것인지 한국사회가 어떤 결정을 할지에 따라 약가제도와 건강보험제도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란 점은 자명하다.
덧붙임

권미란님은 HIV/AIDS인권연대 나누리+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