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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범죄를 보는 다른 시선


"최근 미군범죄가 증가하고 있는데 이유가 뭐라고 보십니까?"

평소 울리지도 않던 전화기가 바빠질 때가 있습니다. 서울 어디에선가 미군 병사가 말썽을 부린 게 분명합니다. 경험적으로 서울이 아닌 곳에서 일어난 일에는 그렇게 많은 관심이 집중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사회면에 실리는 기사는 대게 가까운 곳에서 일어난 일에 관심을 갖게 되는 모양입니다. 최근에 일어난 미군의 도심난동 사건을 처음 접했을 때에도 비슷한 생각을 했습니다. 물론 미군이 총기를 사용했을지 모른다는 사실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는 했겠지만, 서울 도심 한 가운데에서 범죄가 발생했다는 사실 역시 중요한 이유였을 겁니다. 그럴 때 전화기 너머로 기자들이 물어오는 질문은 대개 비슷합니다. 기사 한 귀퉁이에 한 줄짜리 인터뷰를 싣기 위해 미군범죄의 이유를 묻거나, 그도 아니면 처음부터 통계자료를 요구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아마 제목은 '갈수록 증가하는 미군범죄'이거나 '날로 흉폭해지는 미군범죄'일지 모릅니다. 저도 그런 비슷한 자료를 보도자료로 쓰기는 합니다만 마음에 들지는 않습니다.

대개 이때부터 저의 고민은 시작됩니다. 이 문제를 어느 미군 병사 개인의 무분별한 행동으로 몰아가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미군 범죄에 대응하는 단체에서 상근하고는 있지만 그것은 가장 하고 싶지 않은 일입니다. 범죄를 저지른 미군 병사를 괴물로 만들어버리는 일말입니다. 결국 그런 결론에 다다르게 되면 그 나쁜 미군을 강력하게 처벌하라는 말밖에 생각나지 않을게 분명하니까요. 하지만 그런다고 문제가 해결 될 리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한편으로 유혹이기도 합니다. 제게 주어진 몇 마디의 인터뷰 안에서 미군범죄 문제를 진지하게 설득할 자신이 없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차피 그 한 줄조차 제가 선택할 기회는 없겠지만 말입니다. 그래서 이 짧은 글에서 그 한 줄을 넘어서는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도주 중인 이태원 총기난동 가해자 차량 < 사진 출처: 서울지방경찰청>

▲ 도주 중인 이태원 총기난동 가해자 차량 < 사진 출처: 서울지방경찰청>


미군 범죄가 계속 증가하지 않는다면 문제가 없는 걸까?

사람들에게 미군범죄 문제를 설득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아마 그동안 일어난 끔찍한 범죄를 나열하거나, 그동안 미군범죄가 얼마나 늘어났는지 근사한 그래프로 설명하는 것일지 모릅니다. 이런 일들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뒤돌아서면 무언가 아쉬움이 남습니다. 이런 질문이 돌아오기 때문입니다. '미군 범죄가 계속 증가하지 않는다면 문제가 없는 것일까?'

미군범죄, 혹은 미군기지 문제로 제법 시끌벅적했던 한 해를 보내고 나면 다음 해에는 여지없이 통계치가 감소합니다. 의미있는 변화는 아니더라도 오르기만 하던 미군범죄의 화살표가 방향을 바꾸기 시작합니다. 당연히 여론을 의식한 미군 당국도 병사들의 외출과 행동을 통제할 테고, 합동순찰도 강화하다보면 범죄도 조금은 줄어들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미군범죄의 해결책을 찾은 것도 아닐 테고 몇 해가 지나면 다시 범죄는 증가할 텐데, 반대로 미군범죄가 증가하길 바라며 제사라도 지낼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통계는 말할 때와 침묵할 때를 가리키는 지표가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런 질문, 그러니까 "미군범죄가 증가하고 있습니까?"라는 질문을 받게 되면 그냥 이렇게 대답하곤 합니다. "미군범죄는 예전에도 많았고, 지금도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라고요. 그런데 실제로 그렇습니다. 범죄가 증가할 때도 마찬가지지만, 50건 100건쯤 줄어든다고 문제가 달라진 것은 아닐 테니까요. 사실 단지 몇 건의 범죄가 발생하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오히려 저는 군대의 엄격한 통제를 받는 특별한 신분인 군인들의 범죄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미군기지가 있는 곳에서 범죄가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과 함께 말입니다.

그런데 오늘은 조금 다른 이야기를 꺼내볼까 합니다. 어디 환경잡지를 읽어보니 환경문제를 다루는 사람들 사이에는 '환경정의'라는 말이 있다고 합니다. 이 환경정의는 환경오염이 생물학적 약자, 혹은 사회적 약자에 집중되는 사회적 현상을 설명하는 말입니다. 쉽게 말해 환경을 오염시키는 사람들과 그 오염된 환경으로 피해는 당하는 사람들이 분리, 혹은 역전되는 문제를 설명하는 말입니다. 우리는 공해나 홍수, 토양오염 같은 다양한 환경문제를 통해 오염 책임자들에 비해 그 책임이 많지 않은 사회적 약자들이 고스란히 그 피해를 떠안게 되는 경우를 목격하곤 합니다.

사회적 약자에게 집중된 미군기지의 범죄

반대로 저는 평화문제, 소위 안보문제에도 비슷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군사기지, 특히 미군기지가 그렇습니다. 굳이 안보세력이라고 부르지 않더라도, 안보 문제를 통해 기득권을 유지하고, 권력을 나누는 사람들을 떠올려볼 수 있습니다. 그도 아니라면 적어도 지금의 불안정한 정전체제를 지지하거나 유지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있겠지요. 그런데 이런 갈등에는 무기구매나 군대유지 뿐만 아니라 다른 사회적 비용도 발생합니다. 동의하지 않는다면 그런 사람들이 없다고 생각해도 좋습니다. 반대편에는 어떤 사람들이 있는지 알게 된다면요. 징병제를 유지하는 거대한 병영국가의 국민들을 떠올려보거나 군의문사 같은 다른 문제를 떠올릴 수도 있겠지만, 저는 군사기지와 함께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의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그 중에 특히 미군 기지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 소위 기지촌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기지촌은 미군기지 주변에 형성된 마을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특히 기지촌은 미군을 상대로 술을 팔거나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 집중되어 있는 곳인데, 이는 다른 나라와는 다르게 한국에 오는 미군들이 가족을 데리고 올 수 없고 1년밖에 머물지 않는다는 특징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니 이 미군들을 대상으로 한 술집들, 소위 클럽들이 자연스레 모이면서 마을이 형성되었고, 박정희 정권 때에는 기지촌을 관리하거나 유지 강화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지난 역사를 살펴보면 미군범죄는 특별히 이 기지촌에서도 사회적 약자인 여성들에게 집중되었습니다. 미군들을 가장 많이 만나고, 그들을 상대해야 하는 여성들이 범죄의 피해자가 된 것이지요.

제가 활동하는 단체 역시 지난 1992년 동두천에서 있었던 윤금이라는 클럽 여성의 끔찍한 죽음을 계기로 이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결성되었습니다. 과거에 비슷한 사건들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 사건의 끔찍함과 함께 1987년 민주화를 거치면서 합법적인 운동 공간이 생기면서 비로소 미군범죄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들이 생기게 된 것이지요. 소위 미군과 군대에 대해 비판을 하더라도 빨갱이 소리를 덜 들을 수 있었다고 해야 할까요. 대개 미군범죄라고 부를 때는 좁은 의미로 이런 여성들에 대한 범죄를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미군범죄 반대운동이라는 것은 미군기지를 중심으로 한 지역적인 운동과제인 동시에 이런 여성과 사회적 약자들의 문제를 다루는 소위 '정의'의 문제도 포함됩니다. 그런데 과거에는 이런 기지촌과 미군기지가 있는 마을을 낙인찍으며 차별했던 역사가 있었습니다. 소위 안보정의의 비용을 특정지역에 부담시키면서 차별을 통해 그들을 효과적으로 분리해냈던 것이지요. 특히 기지촌의 여성들에 대해서는 사회적 차별이 훨씬 심했는데, 그래서 90년대 까지도 이런 여성들에 대한 범죄는 '미제사건'이라는 특징을 보입니다. 가족도 형제도 찾지 않는 여성들, 소위 버림받은 여성들의 범죄에 대해 사회도 무관심했기 때문에 생겨난 현상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달라진 환경과 바뀌지 않은 것들

그런데 최근에 우리가 언론을 통해 보게 되는 미군범죄에서는 이런 모습들을 쉽게 발견할 수 없습니다. 이 기지촌의 여성들이 대부분 외국인 여성들로 교체되면서 한국사회와의 접점을 많이 잃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같은 문제가 사라진 것은 아닌데 과거보다 이런 사정을 알기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다른 측면은 미군 병사들이 도심에서 한국인들을 만나는 빈도가 상대적으로 많이 증가했다는 사실입니다. 인터넷과 한국계 미군들이 증가하면서 이제는 기지촌뿐만 아니라 홍대나 압구정동, 강남 등에서 미군들을 만나게 되는 일들이 많이 늘었습니다. 당연히 지방이었다면 관심을 끌지 않았을 사건들이 더 자주 관심을 받게 되었겠지요. 하지만 무엇보다 최근 미군 범죄가 많이 보도되고 있는 것은 한국에 너무나 많은 CCTV가 생기면서 이들의 범죄가 영상을 통해 사람들에게 전파되기 때문일 것입니다. 최근 언론 보도된 범죄들은 대개 CCTV나 블랙박스 영상으로 보여지다보니 미군들의 폭력성이 부각된 것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바뀌지 않은 것들이 많습니다. 여전히 범죄를 포함한 기지의 사회적 문제는 기지촌을 중심으로 나타날 때가 많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폭행과 같은 남성들에 대한 범죄보다 여성들, 아동들에 대한 성범죄가 해결하기 훨씬 어렵습니다. 지역적인 분리와 역전현상은 더욱 넓게 나타나기도 합니다. 지난 미국의 이라크와 아프간에서 벌인 10년 전쟁으로 병사들의 전쟁 스트레스가 동맹국에서의 범죄로 나타날 가능성이 훨씬 높아졌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안보세력 뿐만 아니라 실제 미국의 안보세력이 만들어낸 전쟁이 한국 시민들의 안전에도 영향을 끼친다는 의미입니다. 실제 미군 병사들의 재판에서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를 직접 호소하는 경우뿐만 아니라, 실제 미군부대 내에서 무분별한 행동의 증가와 성범죄의 증가가 최근 미군범죄의 증가를 설명하는 하나의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환경정의의 문제에서는 환경경제학을 바탕으로 오염은 외부비용 때문에 발생한다고 보고, 인위적으로 이런 외부경제에 비용을 매기는 방식을 선택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오염책임자에게 비용을 물어 환경정화에 사용하는 것들이 대표적입니다. 기지로 인한 피해들 중에서 특히 소음과 관련한 부분이 이런 방식을 택합니다. 소위 군사기지 주변의 주민들이 받은 소음피해를 금전으로 해결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무엇보다 그 피해 범위가 다른 군기지 피해에 비해 훨씬 광범위하게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기지촌으로 분류되지 않는 사람들의 피해가 증가하면서 사회적인 공감대를 더 쉽게 획득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다른 군기지로 인한 피해에서는 아직 이런 공감대를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여전히 이런 사회적인 문제를 개인들이 감수할 수밖에 없는 방식으로 해결하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범죄 해결을 위해 미군과 협상하거나 피해자들의 원상회복을 위한 보상과 같은 노력보다는 이들을 은폐시키고 분리해내는 방식이 아직은 더 익숙합니다. 그나마 언론을 통해 관심을 모은 사건에 한 해서만 문제 해결에 사회적인 자원을 투여할 뿐입니다.

군산미군기지 인근 주민들이 전투기로 인한 소음으로 심각한 건강상 문제를 겪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사진은 군산비행장에서 착륙훈련 중인 미군전투기 <사진 출처 : 참소리>

▲ 군산미군기지 인근 주민들이 전투기로 인한 소음으로 심각한 건강상 문제를 겪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사진은 군산비행장에서 착륙훈련 중인 미군전투기 <사진 출처 : 참소리>


삭제된 기지촌의 사회적 맥락

그런데 "미군범죄가 증가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은 이런 기지촌의 역사적 사회적 맥락을 탈락시킵니다. 그곳에 미군기지가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이야기하지 못합니다. 미군범죄 대응은 이런 왜곡된 안보정의의 문제와 함께 피해자들의 인권을 회복하고 같은 문제가 반복되지 않도록 관심을 기울이는 일이 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미군 개인의 폭력성과 특수성을 강조해서 다른 외국인 범죄에서처럼 '미녀와 야수'라는 자극적인 프레임에 넣어버리게 되면 문제는 심각해집니다. 역사적 사회적 맥락을 탈락시킨 미군범죄는 오로지 병사 개인의 폭력성으로만 설명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문제의 원인이 그들이 야수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버리면 아무런 해결책도 찾을 수 없을 뿐 아니라, 피해자의 인권도 이런 폭력성을 설명하는 도구가 되기 쉽니다. 이런 경우 결국 해결책이라고는 그들에게 더 강한 처벌을 요구하는 것밖에 찾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실제로 사회가 원하는 대답은 경찰의 행정권 강화와 가해자 처벌 강화 같은 손쉬운 방식인 거 같습니다. 무엇보다 제게 요청하는 한 줄짜리 인터뷰 역시 그런 면을 강조하고 싶을 때 사용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군기지에서 사는 사람들의 평화권

저는 미군범죄가 미군기지 주둔의 사회적 비용 문제와 함께 군사기지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평화권 문제를 고민할 수 있는 주제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미군범죄 뿐만 아니라 기지로 인한 환경오염과 주민건강 문제, 그리고 훈련피해 등도 그렇게 다루어지길 바랍니다. 미군범죄를 이야기할 때 전쟁이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과 그로 인한 피해자들의 지친 얼굴을 떠올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강정마을과 대추리 투쟁에서 주민들의 생존권만이 아니라 군사기지 확장과 새로운 군사기지 건설 문제를 보면서, 여전히 전쟁을 준비하고 연습하는 우리 사회의 평화안보 문제를 들여다 볼 수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몇 년이 지나면 미군범죄를 뉴스에서 잘 보지 못하게 될지 모릅니다. 지금 서울에 있는 미군기지는 대부분 경기도 남쪽의 평택으로 이전하게 될 계획이기 때문입니다. 거대한 기지와 뉴스를 장식하는 폭행사고가 우리 눈앞에서 사라졌을 때, 미군의 도시는 거대한 벽으로 둘러싸인 육지 위의 섬이 될 지도 모른다는 사실은 지금 우리가 접하는 불편한 미군범죄 앞에서 함께 고민해야 할 숙제일지 모릅니다.

덧붙임

박정경수 님은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에서 활동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