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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이야기

‘위안부’ 문제, 다시 이야기하기

전쟁은 사람을 함부로 다룬다. 몇 명 죽고 다치는 것쯤이야 우습게 여기는 것만 같다. 그런 전쟁에 위안부로 동원된 여성들은 심지어 ‘비공식적’이고 ‘비인간화’된 존재다. 우리에게는 여성주의적 관점을 통해 이들을 ‘공식화’되고 ‘재인간화’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위안부 문제가 동시대 섹슈얼리티 의제/쟁점과 어떻게 만나는지 등을 살피며, 탈식민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위안부 문제를 다시 이야기하는 시간들을 가져보는 것이다. 동시에, 당시 전쟁 시스템이 갖고 있던 자본주의적 특성과, 전쟁 후에 위안부 문제를 왜곡하며 쏟아진 ‘망언’들이 사실상 ‘신자유주의 역사 만들기 기획’의 일환이었음을 함께 짚고, 나아가 ‘반신자유주의 맥락 속에서 위안부 문제를 바로 보는 운동의 노력’을 구상할 필요가 있다.

10월 15일, 2025 반성폭력 교육이 열렸다. 올해 교육은 해방 80년을 맞아 ‘위안부’ 문제에 대해 공부했던 책모임(지난 6월 진행)에 이어, 위안부를 둘러싼 고민들을 이어가보고자 마련된 자리였다. 김주희 님의 강의가 있었고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 활동가들이 함께했다. 나는 위안부 운동에 직접 몸담고 있는 활동가가 아니지만, 인권운동 활동가이자 어느 시기의 수요집회와 위안부 운동을 경험했던 한 청년 여성으로서 교육에 임했다.

망언으로 짚어보는 신자유주의 기획

‘그녀는 알고 있었다.’ 위안부 피해 부정론자들은 위안부가 강제 동원된 피해자가 아니라 노동 계약의 당사자이며, 경제적 주체로써 합리적으로 그들이 ‘알고’ 선택한 일이었다고 주장한다. 김주희 님은 이들의 망언에 주목했다. 망언을 통해 부정론자들은 위안부 피해자를 도덕적으로 흠집 내고, 거짓 증언을 하는 ‘자발적인 매춘부’로 낙인찍으면서, 피해자의 ‘증언’과 ‘앎’의 의미를 훼손하고 강제동원의 책임을 회피한다. 문득 그런 질문이 생겼다. 이런 망언들을 마주했을 때, 활동가인 나는 뭘 할 수 있었을까? 일단 누가 시키지 않아도 불쑥 치고 올라오는 화가 있었을 것 같은데, 그 이상으로 어떤 고민을 이어갈 수 있었을까? 조금은 막막했다.

“어떤 기획 속에서 이 망언들이 이루어졌을까?” 김주희 님은 이런 질문을 던지며, 저 망언들이 그냥 만들어진 망언이 아니라는 점을 짚었다. 그는 저 망언들을 만들어낸 세계관을 가리켰다. 저 망언들은 모든 걸 경제적 목적만으로 해석하는 세계관 기획의 일부다. 미국의 신자유주의 역사 만들기 기획 말이다. 법경제학자 램지어의 경우, 위안부가 ‘자유로운 계약’을 체결한 것이라는 경제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위안부 강제동원 부정론자들의 호응을 받는다. 모든 인간은 동일한 본성을 타고났는데, 그 본성이란 경제적으로 사고하고 주체적으로 자유롭게 선택하는 것이며, 이 세계는 그러한 ‘합리적 경제인’들의 세상이라고 바라보는 관점이다. 이러한 주장은 위안부 피해자들이 경험한 폭력을 ‘인간의 자연적 본질에 의거한 합리적 선택 논리’로 취급하며, 지배-피지배, 가해-피해란 결코 없는 것으로 취급한다. 식민 지배를 옹호하는 것을 넘어, ‘시장 질서를 통해 운영되는 성매매 비즈니스’까지도 옹호한다. 이 모든 것이 신자유주의 역사 만들기 기획 아래에서 벌어진다.

망언의 함정, 피해자다움

저 망언에는 함정도 있다. ‘알고 있었다’는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 ‘그녀는 몰랐다’고 항변하게 만드는 함정이다. 그의 논문에 따르면, 한국 사회는 여전히 위안부 피해자의 전쟁 경험을 ‘여성 수난 서사 혹은 매춘 서사의 이분법으로 수렴’시키고 있다. 강의에서는 이러한 이분법의 주요 예시가 제시됐다. ‘하루에 상대한 사람의 수가 3.5명인지 70명인지’, ‘위안부를 하며 번 돈이 거금인지 푼돈인지’. 70명이면 폭력이고 3.5명이면 쉬운 일이 되는, 10억이면 매춘한 창녀고 2만 원이면 피해자가 되는 구도 말이다. 그 구도 안에서 ‘피해자다움’을 수호해야 하는 순간, 어떤 위안부는 자기 삶을 함구하게 된다. 위안부 피해자 문옥주의 증언들이 그랬다.

논문에 따르면, 여성이 자신의 경험을 공식화하는 ‘재인간화의 공간’을 확장하기 위해서는 여성주의적 관점에서의 해석적 개입이 필요하다. 당시 전쟁의 최전선에 배치됐던 위안부 여성들의 생존투쟁을 분석할 때, 완벽하고 무결하고 도덕적인 피해자다움을 요구하는 시선은 그닥 쓸모가 없다. 아유수비츠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이들이 경험한, ‘비인간으로서의 생존투쟁’이 그러했듯 말이다.

군표와 피해자들의 앎

강의에서 우리는 여성들을 위안부로 만들어낸, 매춘화 장치 및 시스템들을 살폈다. 그중에서 군표가 가장 인상 깊었다. 일본군에게 ‘군표’는 약탈과 폭력에 자격을 부여하는 전쟁 장치였다. 병사들은 위안부 사용료를 군표로 지불했다. 절반 이상의 수수료를 떼간 뒤 위안부에게 남은 군표가 주어졌다. 그 군표는 여성들로 하여금 자신을 강간하는 병사를 ‘손님’으로 해석하도록 이끌며 ‘매춘화 장치’ 노릇을 톡톡히 했다. 동시에 군표는 여성들이 ‘탈매춘화를 상상하도록 하는 장치’가 됐다. 저금해두면 나중에 한국에 돌아가서 가난하지 않게 살 수 있을 거라 기대하며 현재를 버티게 했다. 또 어떤 여성은 ‘전시자금을 충당하기 위하여’ 저축을 장려하고 강요받았다. 전쟁이 끝난 뒤, 결과적으로 이들의 인출은 불가해졌다. 논문에서 김주희 님은 “제국주의 전쟁터에서 비인간으로 동원된 여성에게 오직 저금할 권리만이 부여되었다”는 점을 주목했다. 그는 군표를 통해서 “폭력이 발명되면서 동시에 ‘미래’가 발명된다. 하지만 군속으로도 분류되지 않은 비공식적인 존재, 비인간으로 생존했던 위안부는 해방 이후 자신의 저금을 돌려받을 수도 없는 이중적인 피해를 경험하게 되었다”고 보았다. “스스로의 재생산은 박탈당한 비인간 재생산 담당자로 위안소에 배치되었고 유일하게 미래에 기반해 있는 군표와 저금통장에 의존해 위안소의 시간을 일시적인 과거로 만들고자 했으나 군수물자화된 이들은 결국 미래의 시간성도 박탈”된 것이다.

위안부 피해자가 박탈당한 ‘미래의 시간성’이란 무엇이었을까. 이것저것 생각해본다. 강제동원되지 않았다면 계속 삶을 이어갔을 어떤 자리를 향한, 통한의 복귀였을 수도 있다. 혹은 강제로 끌려가지 않았더라도 하여간 직접 떠나기를 선택했던 이유를 극복할 무언가, 예를 들어 진득히 눌어붙어 있던 빈곤의 자리를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기대였을 수도 있다. 둘다였을 수도, 전혀 다른 무언가였을 수도 있다. 그게 무엇이든 간에, 무언가를 깨닫고 바라며 저축했던 그 피해자들의 ‘앎’은 그들을 망언 프레임 안에 더 가두는 위협이 됐다. 뭘 알고서 저금했고 뭘 알고서 손님을 더 받았던 위안부 피해자는 망언들로 인해 속박되고 검열되고 2차 피해를 입게 된다. 많은 돈을 번 위안부를 향한 망언의 프레임에 갇혀버린 이후에는 군표의 화폐가치를 셈하기에 앞서 ‘셈할 수 없는 것’들에 관해 이야기하기가 너무도 어려워진다.

해방 100년이 가까워지는 시간선 위에서

해방 100년이 가까워진다. 시간이 흐를수록 위안부 문제는 더 많은 사람에게 과거의 역사로 기억될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느낀다. 오래된 차별과 억압의 역사 속에서 위안부가 위치할 자리는 너무 좁았다. 그러나 분명 그 틈새를 비집고, 어떤 공간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 골몰하는 이들이 있다. 반신자유주의, 탈식민,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더 많은 고민과 이야기들을 풀어내며 더 많이 논쟁하고 더 많은 해석과 개입이 이뤄질 때 어쩌면 더 많은 사람이 위안부 문제를 기억하게 되지 않을까, 과거에 끝난 역사의 한 장면이 아니라 현재의 우리에게도 영향을 끼치고 나아가 미래의 전망을 그리는 데에도 중요한 고민 지점들을 남기는 무엇이 되어갈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초록 레인코트를 입고 동남아시아 야시장을 걸어다녔다는 문옥주의 이야기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의 ‘놀랍도록 생생한 기억력과 진솔함’이 그를 오히려 위험에 빠뜨렸던 프레임을 벗어나고 싶다. 내가 상상하며 그리는 페미니즘 세계는 그런 세계가 아니다. 그렇다면 어떤 이야기를 나누고 퍼뜨려야 하는 걸까? 어렵지만 강의 이후 질의응답을 나누며 오갔던 대화들을 곱씹으면서 내가 몸을 기울이고 싶은 방향을 좀 더 더듬어본다. 우리는 “통장의 금액, 숫자에 대한 논쟁”을 넘어 무엇을 이야기할 것인가에 관한 다양한 질문과 답들을 주고받았다. 그중에서 내가 인상 깊었던 것은 “화폐를 창조하는 폭력, 자본주의적 전환의 폭력성에 대한 포스트식민 여성주의 연구”로 시선을 돌리기도 하면서, 가능하다면 “여성의 몸을 지대화하는 전쟁경제”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는 지점들이었다. 또한 성산업은 단지 불법적이고 비공식화된 경제의 장이 아니라 아주 본격적인, ‘금융화된 자본주의의 구조적 구성요소’이며, ‘금융화는 여성의 생존 전략을 구조적으로 금융 시스템에 종속시키는 통치의 형태’라는 설명도 와닿았다.

교육을 통해 나는 '위안부'라는 운동/의제가 위치한 자리를 구조적으로 이해하고, 이에 개입하는 신자유주의의 기획을 파악하고, 그리고 이에 대응하려면 운동이 어떤 위치에서 어떤 역할을 구상해볼 수 있는지 등을 배워볼 수 있었다. 물론 여전히 어렵다. 분명 신자유주의와 여성의 관계는 복잡하다. 전략을 세우기에 앞서 신자유주의 역사 만들기 기획에 의한 망언들이 먼저 쏟아진다. 이에 반격하는 과정에서 때로는 무고한 피해자의 도덕성을 강조하는 혼란을 겪으며, 놓치거나 이탈하는 이야기들이 늘어가는 함정에 빠진다. 그렇지만 나는 문옥주의 초록색 레인코트를 놓치고 싶지 않다. 동시에 어떤 피해, 어떤 빈곤, 어떤 불평등과 차별을 분명히 얘기하고 싶다. 만약 내가 함께 바꾸고 싶은 구조가 무엇인지, 긍정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무엇인지를 선명히 만들어낼 수 있다면, 나도 좀 더 잘 고민하는 활동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게 됐다.

생존 위협을 맞닥뜨린, 불평등과 차별의 당사자들을 떠올려본다. 논문에서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아남는 이들이 경험했던 ‘비인간으로서의 생존투쟁’을 해석하는 방식을 언급하기도 했다. 이런 이야기들이 내게 유의미한 참조점이 되어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며 한 번 더 곱씹어보게 된다. 서로의 세계가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 아래, 나는 ‘위안부’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며 인권운동을 해나가는 사람이 될 수 있을지, 그 답은 오늘 당장 내게 뾰족이 주어지는 게 아닐테다. ‘위안부’ 문제는 피해자의 죽음을 통해 그대로 종결되는 일이 아니고 또 아니어야 한다. 질문하고 고민하기를 게을리하지는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램지어는 저렇게 부지런해서 식민지배도 옹호하고 시장 질서를 통해 운영되는 성매매 비즈니스까지도 옹호하며 살았는데, 하여간 우리도 부지런히 살아야겠다. 저런 이론에 근거해서 망언 일삼는 사람들에게 더 많은 활자와 주파수와 사람들을 뺏길 수 없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