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운동사랑방 후원하기

인권하루소식

'아웃팅 반대'를 다시 생각한다

아웃팅 방지 캠페인을 둘러싼 시각차 조명

아웃팅 피해를 강조하다 보면 커밍아웃을 위축시키게 되는가. 성정체성을 말하지 않을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동성애자들을 또다시 벽장 속으로 가두는 결과를 초래하지 않는가. 아웃팅은 과연 범죄인가.

한국여성성적소수자인권운동모임 '끼리끼리'가 벌여온 아웃팅 방지 캠페인을 바라보는 동성애자인권운동 내부의 찬반양론이 뜨겁다. 지난달 25일 레즈비언인권연구소와 이화레즈비언인권운동모임 '변태소녀 하늘을 날다'가 공동으로 주최한 토론회에서는 그동안 물밑에서 전개되어 온 아웃팅 방지 캠페인에 대한 시각차가 전면에 드러났다.

끼리끼리가 벌이는 아웃팅 방지 캠페인 [출처] 끼리끼리 홈페이지

▲ 끼리끼리가 벌이는 아웃팅 방지 캠페인 [출처] 끼리끼리 홈페이지



아웃팅은 당사자의 의사에 반하여, 혹은 당사자의 의사와 무관하게 타인에 의해 성정체성이 폭로되는 것을 의미한다. 호모포비아가 널리 퍼져있는 이성애주의 사회에서 동성애자임이 알려지는 것은 차별과 폭력에 직면하게 될 위험을 야기할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아웃팅 방지 캠페인은 '아웃팅은 범죄'라는 구호 아래 아웃팅 피해 사례들을 수집해 왔고, 이를 기초로 아웃팅 범죄에 대한 가중처벌조항 도입 등 제도적 방안을 모색해 왔다.

그러나 아웃팅 방지 캠페인이 의도하지는 않았다고 해도 아웃팅 피해를 강조하다보면 동성애자들에게 공포심을 조장함으로써 커밍아웃을 가로막고, 다양한 소통과정에서 성정체성에 관한 이야기를 얼어붙게 만드는, 이른바 '입막음' 현상을 낳았다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아웃팅 반대는 커밍아웃을 가로막나

언니네트워크 운영위원인 페이퍼문은 "아웃팅 방지 캠페인은 안전하게 살 권리, 말(커밍아웃)하지 않을 권리를 주장하고 있다"면서 "커밍아웃 이후에 닥쳐올 위험과 싸움으로써 아웃팅 자체가 무력해지도록 만드는 커밍아웃의 정치학을 실천해야지, (아웃팅) 위험을 강조함으로써 동성애자들을 벽장 속으로 더 꽁꽁 숨어들게 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1996년 한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 자신이 레즈비언임을 밝힌 바 있는 전해성 씨(끼리끼리 초대 회장)도 "운동단체가 브루카(이슬람 여성들의 전신을 가리는 천)를 벗어던지라고 하는 게 아니라 더 견고한 브루카를 짜주겠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올바른 방향이 아니"라고 꼬집었다.

반면 레즈비언인권연구소의 수연 씨는 "이 캠페인은 커밍아웃을 가로막기 위한 것이 아니라 안전하게 커밍아웃할 수 있는 사회적 토대를 닦기 위한 운동"이라면서 "대 동성애자 범죄의 대부분이 아웃팅 협박을 매개로 이루어지고 있는 현실에서 피해를 예방하고 개선하려는 노력이 공포심을 갖게 한다는 이유만으로 옳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끼리끼리 활동가 케이 씨도 "동성애자들은 원할 때 원하는 사람에게 원하는 방식으로 커밍아웃할 권리를 갖는다"고 전제하고, "아웃팅 반대는 말하지 않을 권리가 아니라 말을 하고도 안전할 수 있는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라고 맞받았다.

동성애자들의 자긍심을 고취시키고 동성애자들의 존재를 드러내기 위한 퀴어 퍼레이드 [출처] 2004 퀴어문화축제 홈페이지

▲ 동성애자들의 자긍심을 고취시키고 동성애자들의 존재를 드러내기 위한 퀴어 퍼레이드 [출처] 2004 퀴어문화축제 홈페이지



'아웃팅=범죄'다?

'아웃팅=범죄'라는 구호에서 말하는 아웃팅 개념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모든 아웃팅을 범죄라고 규정할 수 있는지를 두고도 논란이 오갔다. 끼리끼리는 그동안 여러 글들을 통해 설령 악의가 없었다 해도 성정체성에 관한 정보를 흘리는 일은 아웃팅이며, 이는 범죄이자 폭력이라고 주장해 왔다. 자칫 잠재적 가해자에게 악용돼 심각한 피해를 낳을 가능성이 상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날 토론회에서는 이러한 아웃팅 개념은 성정체성을 언급하지 못하도록 만든다는 우려가 쏟아져 나왔다. 끼리끼리의 정의에 따르자면, 한 동성애자가 자신이 누구와 연애를 하는지를 밝히는 것도, 한 동성애자의 커밍아웃 사례를 타인에게 전달하는 것도, 책에서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밝힌 적 없는 역사 속의 동성애자들의 이름을 거론하는 것까지도 모두 아웃팅이 되는데다, 일일이 당사자의 동의를 받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도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게다가 이를 굳이 범죄화해야 하는지 의문이라는 비판도 제기됐다.

이와 관련, 레즈비언인권연구소 수연 씨는 "아웃팅 방지 캠페인은 애초 아웃팅 협박을 매개로 한 범죄사건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고, 악의적 의도 없이 개인적 관계망에서 일어나는 아웃팅까지 범죄로 규정한다는 주장은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언니네트워크 운영위원 땐 씨는 "캠페인의 대상이 명확하지 않아 개인적 차원에서 성정체성을 언급하는 행위까지 범죄라고 규정한다는 오해는 필연적이었다"고 지적하고, "막연한 대상을 향해 아웃팅 방지 캠페인을 벌일 것이 아니라 커뮤니티 내부를 향해서는 강력한 가해자 처벌 지침을 만들고 외부를 향해서는 호모포비아 자체를 직접 겨냥한 운동을 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웃팅의 위험과 커밍아웃의 정치적 중요성 사이의 긴장

이날 토론회는 여러 가지 혼란과 차이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자리였지만, 아웃팅 위협을 매개로 한 범죄의 심각성과 커밍아웃의 정치적 중요성을 다시금 환기시키는 자리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둘 사이의 긴장과 현실적 충돌을 어떻게 해소할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답은 나오지 못했다.

최근 아웃팅 협박에 못 이겨 청소년 레즈비언들이 연쇄 강간 피해를 입은 사례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듯이, 동성애자인권운동은 피해자 지원이나 가해자 가중처벌, 차별금지 입법 등 아웃팅 관련 범죄를 예방하기 위한 법제도적 장치를 만들어내야 할 절박한 과제를 안고 있다. 하지만 "아웃팅 방지 캠페인이 커밍아웃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더 많이 만들어내고 있는 것은 문제"라는 지적도 간과되어서는 안된다. 더 많은 동성애자들이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한, 동성애자인권운동의 미래도 어둡기 때문이다. "차별과 폭력에 직면하더라도 커밍아웃을 감행하는 이유는 그 직면이야말로 차별과 폭력에 대항하여 싸울 수 있는 힘이 되기 때문"이라는 페이퍼문 씨의 말처럼, 동성애자들의 존재를 가시화시키고 호모포비아와 차별적 현실에 전면으로 맞서는 커밍아웃의 발걸음 역시 동성애자 운동의 빼놓을 수 없는 핵심 과제이다.

동성애자인권운동이 이 두 가지 과제의 충돌을 극복하고 어떻게 발전적으로 융합해나갈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