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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위, 파장? 파장!] 정리해고에만 너무 힘쓰는 거 아니냐고?

상임회의록 작성 안 하니 대놓고 막말하는 홍진표 상임위원

살다 보면 비슷한 일을 반복적으로 경험할 때가 많다. 그런데 그 반복이 정체이거나 후퇴라면 너무 지겹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최근 몇 년간의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의 모습이 그렇다. 2008년 이명박 정권이 취임하고 현병철 무자격자가 인권위원장이 된 이래, 무자격 인권위원들의 반복되는 망언들과 눈치 보기는 인권운동을 하는 사람으로서 부셔야 할 두터운 벽이라 정말 답답하게 다가온다. 그들은 왜 국가인권위원회에 있는지, 정말 의아하기만 하다.

민감하니까 노동부가 수용하는 방안으로 수정?

2013년 1월 17일, 2013년 첫 상임위원회 방청을 갔다. 안건 중 하나가 ‘정리해고자에 관한 제도개선 권고’의 건이었기 때문이다. 2009년 2,646명이 정리해고된 이후, 2013년 현재 24명의 노동자가 죽을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지난 대선 때 여야 후보 모두 관심을 가졌던 사안이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문제이다. 쌍용차 정리해고 문제는 정말 정리해고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우리 사회에 던졌으며, 과거 기업이 한 정리해고를 평가하면서 정리해고제도가 폐지되거나 개선되어야 한다는 대중적 공감대를 형성했다. 이러한 분위기에서라면 인권위가 어떤 입장을 내놓기가 매우 쉬운 상황이기에 관심을 갖고 모니터링을 하러 갔다. 한편 재상정된 안건이었기에, 재상정된 이유가 무엇인지도 궁금했다.

상임위원회의를 방청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재상정된 이유’가 쉽게 드러났다. 정리해고에 관한 제도개선안이 ‘민감한 사안’이기 때문이었다. 인권위원장 현병철 씨는 “민감한 것”이라며, 정리해고 요건별 검토에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에 해당하지 않는 사유를 열거하는 것에 불편함을 표현했다. 그러면서 인권위 직원들에게 고용노동부와 협의가 어떻게 되었는지를 물었다. 그는 고용노동부와 사용자가 받아들이게 하려면 표현이 수정되어야 한다고 했다. 물론 정책 권고를 했을 때 수용하도록 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수용 여부를 중심으로 권고한다면, 수용 가능한 권고만 하겠다는 것이니 사실상 권고의 의미와 효력이 없게 된다.

인권위원회가 다루는 사안은 민감할 수밖에 없는 것들이다. 기존의 제도나 관행이 약자들을 배제하거나 사회적 약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기에 당연히 기득권 세력에게 민감한 것은 당연하다. 따라서 민감함이 정책권고를 하지 못할 사유가 아니라 정책권고를 해야 하는 이유가 되는 것이다. 기득권의 잣대를 인권의 잣대로 바꾸는 일이 인권위가 할 일이고, 그러한 역할을 충실히 해야만 우리 사회의 인권의 기준이 높아지고, 인권의 제도적 보장이 높아지는 것이다. 따라서 ‘민감한 사안’이라 신중해야 한다며 권고를 회피하는 것은 사실상 ‘인권’도 아니며, ‘인권위의 역할’도 아니다. 이러니 대놓고 권력 눈치 보는 인권위를 보기가 지긋지긋하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당연하다.

알맹이는 빠진 추상적인 제도개선안으로 의견표명

더구나 이번에 인권위 정책교육국에서 준비한 제도 개선안이 다른 국가기구나 학계의 입장에서 발표된 안보다 더 나아간 새로운 것도 아니다. 한마디로 급진적인 안도 아니다. 따라서 인권위가 이러한 내용으로 권고하는 것은 ‘인권’의 이름으로 노동자의 권리를 최소한도로 보장하는 의미가 있는 것이지, 정책을 새롭게 발굴하고 생산한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빨리 권고하여 사회적 환기를 불러일으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이번 정책권고로 나온 내용은 크게, 근로기준법의 정리해고 관련 조항의 개정과 정리해고자의 생계보장안, 정리해고자에 대한 고용안정대책이었다. 후자는 홍진표 위원의 딴지걸기가 있었지만 크게 이견이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법 개정안에서 다루고 있는 근로기준법 24조 1항과 2항에 대한 거부감은 차이가 있었다. 크게 이견이 없었던 근로기준법 24조 2항 해고회피 노력에 대해서는 민주당 홍영표 의원을 비롯한 126인이 작년 12월 발의한 <근로기준법 일부 개정 발의안>이 이미 있다. 그리고 24조 1항에 대해서는 2011년 한진중공업의 사회적 관심이 있던 시기에 이미 제도개선안이 논의되었다. 정리해고가 남용되는 현실에 대한 비판이 ‘희망버스’로 드러나면서 제도개선안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매우 높았기 때문이다. 그때도 인권위는 아무런 권고나 의견표명을 하지 않았다.

현행 근로기준법 제24조 1항에 명시된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라는 것이 처음 법이 만들어지던 시절에 비해 남용되고 있다는 것이 판례해석에도 나오기에,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로 볼 수 없는 사유를 열거하는 것은 최소한의 장치이다. 법이 모든 것을 해결하지는 않지만 최소한의 장치를 만들자는 것이 법 개정안의 취지이다. 2011년 당시 민변 노동위의 권영국 변호사가 마련한 안을 구체적으로 보면 제24조(경영상에 의한 해고의 제한) 1항에 ‘생산성 향상을 위한 구조조정 내지 업무형태의 변경, 신기술의 도입이나 업무방식의 변경 등 기술적 이유, 업종의 전환, 일시적인 경영 악화, 장래에 올 수 있는 경영 위기에 대한 대처 등’은 경영상의 필요에 의한 정리해고가 아니라는 것을 열거하는 방안이다. 이번 인권위 정책교육국에서 상임위원회에 제출한 내용도 이와 같은 내용이었다. 하지만 홍진표 상임위원과 현병철 위원장의 반대로 구체적인 사례를 열거하는 것이 아니라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남용되지 않는 방향으로 개정하라’는 추상적인 문구로 대체될 지경에 놓였다.

청년 실업도 있는데, 왜 정리해고에 신경쓰냐고?

그런데 홍진표 상임위원은 상임위원회에서 현병철 씨보다 더욱 황당한 이야기를 내놓았다. 그는 “인권위가 왜 정리해고에 이렇게 관심을 쏟는지, 청년실업처럼 고용시장에 진입하지 못한 사람들도 있는데”라고 하면서 “인권위가 균형감 있게 접근했으면” 한다고 말을 했다. 도대체 지금 사람들이 왜 정리해고에 관심을 갖는지 모르겠다는 식이었다. 인권위원이지만 한국 인권의 현실에 대해서는 작은 관심도 없나 보다. 같은 땅에 살면서 그가 24명의 쌍용차 노동자의 죽음을, 한진중공업 정리해고를 막기 위한 희망버스라는 사회적 연대를 보지 못했다는 것이 놀랍다. 사실 청년 실업을 해소하기 위한 권고도 인권위가 연구해서 하면 되는 일이다. 둘은 대립관계가 아니다. 더구나 인권위는 최근 정리해고에 관해 몇 년 동안 아무 의견도, 정책권고도 내지 않았다. 정작 문제는 이것임에도, 인권위원이라는 사람이 “인권위가 정리해고에 너무 힘을 쓰는 거 아니냐”는 말을 할 수 있는지 한심하다. 그럼에도 그가 그렇게 이야기한 이유는 사실상 ‘정리해고에 대한 제도개선안’을 인권위가 권고하는 것을 막기 위한 꼬투리 잡기일 뿐이다. 그의 속내는 다음 발언에서 확인됐다.

홍진표 상임위원은 근로기준법 제24조 1항의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아닌 경우의 사례를 열거하는 것에 반대하였다. 재판에서도 인정되는 게 일시적인 경영 악화라며 “일시적인 경영 악화”가 들어가는 것은 안 된다고 했다. 그 당시는 회사가 힘드니까 경영진이 해고할 수도 있는 건데 그걸 넣어서 되겠냐고 했다. 하지만 쌍용차 매각에서 보여지듯, 일시적으로 경영이 악화된 것처럼 보이기 위해 회계를 조작하며 위장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또한, 일시적인 경영 악화를 만들어 사실상 구조조정을 하려는 경우도 많다. 회사 이윤만을 극대화하려는 기업들이 노동자에게 책임 떠넘기기만이 아니라 노동자 쥐어짜기, 정리해고가 손쉬운 경영방식으로 자리 잡고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그런데도 그는 ‘일시적인 것을 넣으면 안 된다’며, 다른 부분들도 살펴봐야 하므로 구체적으로 열거하지 말자고 했다. 그러나 사법부의 판결에 영향을 미치려는 게 인권위의 권고이므로, 그러한 개정안이 나오면 재판부가 일시적인 경영악화를 이유로 한 해고를 합법적이라고 인정하지 않게 될 것이다. 그러니 오히려 더 필요한 것이다. 설상가상 현병철 씨는 노동부에 권고하는 것은 부담이 될 수 있으니 그냥 ‘입장표명’으로 하자고 했다. 결국, 상임위 회의에 올라온 안에서 24조 1항의 안에 경영상의 필요에 해당하지 않는 것을 열거하지 않는 방향으로 수정하기로 하고 통과되었다. 주심 위원이 홍진표 씨이므로 어떻게 수정될지 뻔하다. 아직까지 최종안이 인권위 홈페이지에 게시되지 않았다.

홍진표의 막말이 가능한 것은 상임위원회 회의록을 작성하지 않기 때문

이렇게 홍진표 상임위원의 막말이 가능한 것은 근본적으로는 인권위원으로서 자격도, 관심도 없는, 그와 같은 사람이 인권위원이 될 수 있는 현행 인권위원 인선제도 때문이다. 그를 추천한 한나라당(지금은 새누리당)은 인권에 관심 없는 자를 정략적으로 인권위원으로 추천, 임명했다. 그는 뉴라이트 계열의 대표적 언론인 <시대정신>의 편집인으로 반북 활동을 중심으로 북한인권운동을 한 사람이다. 사실 북한인권운동이라고 말하기도 부끄럽다. 그런 그가 사회적 약자의 인권보다는 기득권 세력의 이익을 옹호하는 입장을 인권위에서 공공연하게 밝히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이러한 발언을 버젓이 할 수 있는 것은 ‘인선 문제’라는 근본적 원인 말고도, 상임위원회 회의록을 따로 작성하지 않는 ‘인권위 운영’ 문제 때문이다. 상임위원회 회의록이 공개되지 않다 보니 방청을 가지 않으면 상임위원들이 어떤 맥락에서 반대나 찬성을 하고, 어떤 반인권적, 인권적 기준에 의한 발언을 했는지 알 도리가 없다.

이는 2012년 인권위 국정감사에서도 지적받았던 문제점이다. 전원위원회 회의록이 익명으로 발언자의 이름이 가려져 있는 것이 문제라면, 상임위원회는 회의록이 아예 없다. 요약해서 나갈 뿐이다. 누가 어떤 발언을 했는지, 어떤 맥락에서 발언했는지 도무지 알 수 없다. 공공기관임에도 이렇게 무책임하고 불투명하게 운영된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다. 더구나 많은 인권위 업무가 상임위원회에 가있는 현실을 본다면 사실상 인권위 운영의 비공개성, 불투명성이 얼마나 높은지를 알 수 있다. 그러나 상임위원회 회의록 작성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법적 규정은 없다. 인권위 운영규칙에도 상임위원회는 회의록 작성을 안 해도 된다는 내용은 없다.

물론 이러한 문제는 현병철 인권위원장 이전에도 있었던 일이다. 우리가 주목할 것은 이전 인권위원회에서도 관례적으로 안 해왔고, 그 관례의 문제점이 인권위원들의 무자격성으로 더욱 확대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제 현병철 위원장 시기 드러난 제도의 문제점을 개선하는 것이 우리의 과제라는 것은 분명하다. 반인권 인물들이 공식 회의에서 막말을 대놓고 하더라도, 역사의 심판과 인권의 눈으로 평가할 수 있도록 기록으로 남길 수 있도록 개선해야 한다.
덧붙임

명숙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이자 인권위 제자리찾기 공동행동 집행위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