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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위, 파장? 파장!] 성폭력 관련법 전면 개정, 인권위는 제 할일을 다 했다?

10월 25일, 국가인권위원회는 성폭력 범죄의 친고죄 폐지를 포함, 성폭력 관련법 개정에 대해 국회의장 및 법무부 장관 앞으로 몇몇 굵직한 권고를 발표했다. 구체적으로는 1)성폭력 범죄의 친고죄 조항 폐지, 2)강간죄에 있어 유사성교행위에 대한 규정 신설, 3)강간죄 등 성적자기결정권 침해 범죄의 보호 객체를 ‘사람’으로 변경, 4)강간죄에 대한 최협의의 폭행·협박 정도의 완화, 5)장애인 대상 성폭력 범죄의 구성요건에 있어 피해자 특성을 반영한 법조항 개정, 6)친족 범위에 동거하는 친족을 포함하도록 개정하는 것이다.
성폭력 관련 법률에 대한 인권위의 의견표명과 권고안은 타당하다. 해당 의견표명의 배경에는 친고죄 조항의 폐지, 강간 구성요건 및 객체의 확대, 더불어 이번 개정안에 포함되지는 못했지만, 강간죄에 있어 폭행·협박 정도의 완화까지 반성폭력 운동 진영의 주장이 대부분 포함되어 있다. 특히 친고죄 폐지에 있어서는 한국성폭력상담소가 발표한 상담 일지 및 사례 분석 결과를 참고하는 등 한국사회의 현실을 반영하여 충분한 설득력을 가지고 개정에 대한 의견을 개진하고 있다.
그러나 이미 9월 중 여·야 양측에서 성범죄 친고죄 조항의 즉각 폐지안이 결의되고 성폭력 특별위원회를 구성할 것이 공식 발표되어 언론을 통해 대대적으로 보도된 상황에서 인권위의 권고안은 뒤늦은 감이 있었다.

2010년 3월 23일 국회에서 성폭력상담소, 여성단체, 민변 여성인권위원회 등이 '비친고죄 개정이 우선이다'라는 제목의 기자회견을 열었다.

▲ 2010년 3월 23일 국회에서 성폭력상담소, 여성단체, 민변 여성인권위원회 등이 '비친고죄 개정이 우선이다'라는 제목의 기자회견을 열었다.


무더기로 통과된 성폭력 관련 법안

지난 11월 22일, 국회 본회의에서는 다수의 성폭력 관련 법률 제·개정안이 통과되었다. 이날 통과된 법안은 6개, 개별 조항으로 따지면 더 많다. 성폭력 관련법에 있어 진일보한 조항도 있으나 우려되는 조항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
우선 가장 큰 의미를 가지는 것은 성폭력 관련 형법의 개정이다. 특히 그동안 반성폭력 운동 진영에서 가장 중요하게 해결해야 할 과제로 제기하던 성폭력 관련 법률의 친고죄 조항이 전면 폐지되었다. 더불어 그동안 ‘부녀’로만 한정하던 강간의 객체를 ‘사람’으로 변경하고, 타인의 신체에 대한 신체 일부, 도구 등의 삽입을 추행보다 높은 수위로 처벌가능한 ‘유사강간행위’ 조항을 신설함으로써 성폭력 관련법이 여성의 ‘정조’가 아닌 개인의 성적자기결정권 보장을 위한 것임을 의미화한 것도 유의미한 변화라 할 수 있다.
한편으로는 성범죄 가해자의 처벌 범위를 확대하는 정책 역시 다수 통과되었다. 성범죄자에 대한 성충동 약물치료(화학적 거세) 대상 확대, 신상정보의 공개 범위 확대, 취업제한 대상 기관 확대 등이 그것이다. 시행 이전부터 실효성 유무와 인권침해적인 측면에 대한 우려로 논란이 된 바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리 소문 없이 개정안이 통과된 것이다.

앞뒤 가리지 않는 가해자 처벌 대책, 인권위의 역할은 어디에?

인권위는 그간 우후죽순 발의되는 성폭력 가해자 처벌 정책에 제동을 가하는 역할을 했다. 2008년의 성폭력 범죄자의 치료감호법, 2010년 12월의 신상 정보 공개 수위, 2011년 2월의 성충동 약물치료까지 성폭력 가해자의 처벌 관련 정책에 대해 그 실효성과 타당성을 고려하여 면밀히 검토한 후 개정할 것을 권고했다. 그러나 이번에 무더기로 통과된 가해자 처벌 정책에 대해 인권위는 어떠한 의견도 표명하지 않은 상태다.
성폭력 관련법은 특히 국민의 법감정과의 충돌이 크게 발생하는 영역이다. 가해자 처벌 강화의 기조가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큰 문제 없이 계속되고 있는 것은 성폭력이 비일상적인 사건이며 성폭력 가해자는 사회에서 축출해야 하는 ‘괴물’일 것이라고 믿는 사회적 인식으로 인한 것이다. 정부가 성범죄, 특히 가해자 정책에 있어서는 초당파적으로 처벌 법안을 우후죽순 내놓고 있는 것도 인권의 기준과는 무관한 강력 처벌 정책이 성폭력을 해결할 것이라는 잘못된 믿음에 의한 것이다.
이번 국회 본회의에서는 성범죄 재범 대책으로 시작된 위치추적 전자장치(전자발찌)의 대상이 강도죄까지 적용되는 법안이 통과되기도 했다. 성폭력 가해자에 대한 강화 일변도의 처벌 정책은 개인에 대한 국가 통제 강화의 흐름으로 이어져 우리 사회의 인권 수준을 낙후시킬 뿐이라는 사실을 인권위는 명확히 알아야만 한다. 이러한 흐름을 되돌릴 수 없는 것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 지금이라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때다.

현병철 위원장 취임 이후 반인권적인 행태와 구색 맞추기용 권고안으로 명맥만을 간신히 유지하고 있는 인권위의 현 상황을 생각하자면 이미 발표된 성폭력 관련법의 권고안만을 가지고 정부가 차려놓은 밥상에 수저 하나 얹는 격으로 끝나는 것은 아닐지 우려스럽다. 자신들이 문제적이라고 지적했던 법률이 시정되지 않은 채 확대되려 하는 것만을 보더라도 인권위는 이번 성폭력 가해자 처벌 정책에 대해 합리적인 판단에 의한 권고를 해야 할 것이다. 국가의 정책을 인권의 관점으로 견인하는 것이 중요한 역할 중 하나임을 잊지 말고 인권위는 지금이라도 성폭력 관련 개정법에 대한 의견을 표명하고 권고안을 내렸으면 한다.
덧붙임

마도 님은 한국성폭력상담소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