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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꺼비의 인권이야기] 청소노동자에게 해고 걱정 없는 연말을!

“연말이면 소장에게 잘 보이기 위해 없는 살림에도 돈 봉투를 챙기고 선물을 준비했다. 모두가 그랬다.” - 홍익대 청소노동자

“평소 ‘짤라, 짤라’를 입에 달고 살던 관리자가 있었다. 그자가 돈을 빌려달라고 해서 울며 겨자 먹기로 빌려줬다. 그런데 돈 빌린 적 없다고 오리발을 내밀었다. 노조를 만들고 나니 그때야 돈을 갚더라. 이런 이야기를 원청 직원에게 하니 ‘안 빌려주면 되지 왜 돈을 빌려줬느냐’고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묻더라. 나는 그 원청 직원을 이해할 수 없었다.” - 서울시립대 청소노동자


왜 청소노동자들은 없는 살림에 소장에게 줄 돈 봉투와 선물을 챙기고, 평소 싫어하던 관리자에게 차용증 하나 없이 돈을 빌려줄 수밖에 없었을까요? 바로 12월, 청소노동자들의 12월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탄절과 송년회로 들뜨는 12월입니다. 거리에는 캐럴이 흐르고, 트리가 화려한데, 더욱이 올 12월은 대선으로 전국이 뜨거운데, 청소노동자들은 12월이 두렵습니다. 대학교에서 일하는 청소노동자 이00씨는 얼마 전 용역업체로부터 ‘00대학교와의 용역계약이 종료되어 근로계약이 12월 31일로 만료된다’는 근로계약만료통보서를 받았습니다. 대형빌딩에서 일하는 청소노동자 김00씨도 최근 ‘12월 31일자로 상기근로자와 맺은 근로계약이 만료되었다’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청소노동자 대다수는 건물주가 직접고용하지 않고 용역업체를 통해 고용되어 있습니다. 12월은 상당수 기관에서 용역업체를 변경하는 시기입니다. 또한, 용역업체가 청소노동자와 맺는 계약기간이 종료되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이러다 보니 청소노동자들은 연말이면 혹시 ‘짤리지 않을까’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습니다. 2011년 새해 벽두에 해고된 홍익대 청소노동자들도 바로 업체가 변경되면서 집단해고된 것입니다. 그래서 청소노동자에게 12월은 그야말로 달력에서 없어졌으면 하는 달입니다.

고용불안은 청소노동자들의 기본적인 권리조차도 박탈합니다. 소장이 욕설을 입에 달고 살아도, 원청 직원들이 “어이! 누구!” 이렇게 반말을 해도, 남의 집 산소 벌초를 시키고, 자가용 세차를 시켜도, 남성 관리자가 노크도 없이 옷 갈아입는 휴게실 문을 벌컥벌컥 열어도, 근로기준법조차 지키지 않아도,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임금을 받아도 청소노동자들은 말 한마디 제대로 하기 어렵습니다. ‘말 한마디 잘 못했다가는 짤릴지도 모른다’는 불안 때문입니다.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했던가요? 불안은 권리를 잠식합니다.

건물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청소일이 없어지는 것도 아닌데 연말마다 반복되는 고용불안, 이제는 바꿔야 합니다. 청소노동자에게 해고 걱정 없는 연말을 위해 필요한 것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 진짜 사용자인 건물주(원청)가 용역회사 핑계 대지 말고 청소노동자의 고용을 보장해야 합니다. 용역업체 입찰시 기존 청소노동자의 ‘고용보장’을 입찰조건으로 명문화한다면 청소노동자들은 연말을 고용불안에 떨지 않고 보낼 수 있습니다.

둘째, 노조법상 사용자 개념 확대를 통해 원청이 사용자 책임을 지도록 해야 합니다. 청소노동자의 고용과 임금을 실질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건물주인 원청입니다. 따라서 법 개정을 통해 노동조건의 실질적 지배력이 있는 원청이 사용자로서의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상시적으로 필요한 업무는 비정규직 사용을 규제하고 정규직으로 고용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정부와 국회는 기간제 및 간접고용을 규제하도록 노동관계법을 개정해야 합니다. 또한, 공공부문부터 청소 등 상시적인 일자리를 직접고용 하도록 해야 합니다.


이처럼 연말이면 반복되는 청소노동자들의 고용불안과, 제도개선의 필요성을 알리기 위해 ‘청소노동자에게 해고 걱정 없는 연말을 캠페인’이 시작되었습니다. 캠페인단은 시민선전전, 청소노동자를 만나기 위한 새벽선전전을 진행합니다. 다양한 온라인 선전과 함께 고용불안을 상징하는 12월 달력을 찢고 인증샷을 SNS에 올리는 공동행동도 제안하고 있습니다. 다음 아고라에서는 ‘청소노동자에게 해고 걱정 없는 연말을’ 위한 이슈청원 서명운동도 진행 중입니다. 연대란 ‘띠를 잇는 것’이라고 합니다. 다음 아고라 서명과, 12월 달력을 찢기 인증샷으로 40만 청소노동자들과 보이지 않는 띠를 이어보는 것은 어떨까요?
덧붙임

꺼비 님은 공공운수노조 활동가로 청소노동자조직화 사업을 담당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