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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이야기

9부 능선에 다다른 노조법 개정 쟁취를 위해!

“노동자는 노동조건의 향상을 위하여 자주적인 단결권ㆍ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 이러한 헌법상 노동3권의 구체적인 작동에 대해 규율한 법이 바로 노조법(노동조합및노동관계조정법)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노조법은 노동자 그리고 노동조합의 권리를 제약하고 탄압하는 수단으로 기능해왔다. 오랫동안 이러한 노조법을 바꿔야 한다는 문제제기가 이어져 왔지만, 자본의 이해만을 대변하며 정치권은 외면해왔다. 작년 여름 대우조선 거통고하청지회 노동자들의 파업 투쟁은 다시금 노조법의 문제를 사회에 드러내는 계기가 되었다. 수년간 동결됐던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파업했다는 이유로 원청인 대우조선은 거통고지회에 수백억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노동조건을 좌우하는 실질적 사용자인 원청에 제대로 책임을 물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노동자들의 투쟁을 가로막고 노조를 와해하는 수단이 된 손배가압류를 남용치 않게 해야 한다는 것, 이를 위해 시작된 노조법 2·3조 개정 운동에 사랑방도 함께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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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노조법 개정 운동은 ‘9부 능선’에 다다른 상태다. 지난 2월 노조법 2·3조 개정안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통과됐다. 이후 법제사법위원회로 넘어갔지만, 법안 심의를 하지 않은 상태로 두달의 기한이 흘렀다. 다시 환경노동위원회로 돌아온 노조법 개정안이 6월 30일 국회 본회의 부의가 결정됐다. 노조법 개정 쟁취까지 눈앞에 넘어야 할 2개의 고개가 있다. 21대 국회가 저물어가는 하반기, 하루라도 빠르게 노조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 상정되어 통과되도록 해야 한다. 그 다음에 하나의 고개가 더 남아있다. 국회에서 노조법 개정안이 통과되어도 정부여당은 대통령 거부권을 행사해 이를 무력화하겠다고 공언해왔다. 양곡관리법, 간호법에 이어 노조법에 대해 3번째 거부권 행사를 예고하고 있어 이에 대한 대응을 준비해야 한다.
지난 7월 27일 <노조법 2·3조 개정 운동, 현재와 이후 대응을 위한 간담회>가 있었다. 현재 노조법 개정 운동이 어디쯤 와있는지 살피며, 앞으로 넘어야 할 2개의 고개를 함께 잘 넘기 위해 머리를 맞대는 시간에 인권단체, 노동안전단체에서 활동하는 이들이 함께 했다. 함께 되짚어본 노조법 개정의 내용과 의미를 소개해본다.

“진짜 사장이 책임지게 하는 법”

정의조항인 노조법 2조 ‘사용자’ 부분에 “노동자의 노동조건에 대하여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를 추가해 원청의 사용자 책임을 명시했다. 관련한 판례가 지난 시간 동안 계속 쌓여왔다. 2003년 현대중공업은 하청노동조합을 깨기 위해 하청업체와의 도급계약을 해지해 폐업토록 하면서 노조 조합원을 해고했다. 이에 대해 2010년 ‘실질적 지배력’을 가지는 지위에 있는 현대중공업이 부당노동행위를 한 사용자라는 대법원의 판결이 있었다. 하지만 십년이 지나도 달라진 게 없다. 2020년 코로나19 펜데믹에서 물량 급증으로 과로에 내몰리는 택배기사의 노동권 보장을 요구하는 택배노조에 원청인 CJ대한통운은 자신들이 사용자가 아니라며 교섭을 거부했다. 또다시 사용자로서 부당노동행위를 한 것이라는 법원의 결정이 있었지만, CJ대한통운은 불복하고 항소한 상태다. 이렇게 20여 년의 시간 동안 노동자들이 건건이 소송으로 시간과 비용을 쓰도록 내몰면서 국회는 입법기관으로서 제 역할을 방기해왔다. 이미 한참이나 늦은 개정이지만, 이를 두고 “노사관계 질서에 혼란”이 될 거라는 재계의 반대와 다를 바 없는 입장을 정부여당은 고수하고 있다. 쉽고 싸게 노동자를 쓰고 버리면서 더 많은 이윤을 챙길 수 있었던 부정의한 구조에 ‘균열’을 내는 것으로, 이윤 있는 곳에 책임 있다는 원칙이 더 분명하게 세워져야 한다.


“일터의 주체로 노동자들이 더 너르게 싸울 수 있는 법”

현행 노조법 2조는 ‘노동쟁의’의 범위를 “임금ㆍ근로시간ㆍ복지ㆍ해고 기타 대우 등 노동조건의 결정”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미 결정된 것에 한해 권리 주장을 할 수 있다고 협소하게 적용하면서 ‘정리해고’, ‘구조조정’, ‘민영화’와 같은 노동조건에 너무도 큰 영향을 미칠 사안에 대해 노동조합이 개입하고 요구하는 것을 가로막아왔다. 개정안은 ‘결정’을 삭제하며 앞으로 예상되는 노동조건의 변화에 대해서도 노동자들이 목소리낼 수 있도록 하는 방향이다. 이는 3조 손해배상 청구와도 연결된다. 2009년 정리해고에 맞서 함께 살기 위해 싸운 쌍용차노동자들의 파업도, 2016년 민영화를 막고 공공성을 지키고자 싸운 철도노동자들의 파업도, 지금과 같은 쟁의 규정에서는 모두 ‘불법’이었고, 이로 인해 ‘피해’를 입었다며 막대한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기나긴 손배소송 속에서 노동자들은 또다시 고통의 시간으로 내몰려왔다. 2003년 두산중공업 배달호 열사, 2012년 한진중공업 최강서 열사, 2018년 쌍용자동차 김주중 열사, 십수 년의 시간 속에서 죽음으로 내모는 손배가압류의 고통이 이어졌다. 동료와 가족을 잃는 손배가압류라는 ‘폭탄’은 기업에겐 눈엣가시 같은 노조를 무너뜨릴 도구가 되었다. 막대한 손해배상을 청구하고, 노조에서 탈퇴하면 청구대상에서 빼주겠다는 식으로 이간질하면서 노조를 파괴하는 수단으로 쓰여왔다. 이러한 손배가압류의 문제가 알려지며 함부로 남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노란봉투법’이 19,20대 국회에서 발의되지만,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임기 만료로 폐기되었다. 3조 개정은 손해배상 청구시 포괄적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책임범위를 따지도록 하고, 신원보증인의 책임을 면제하다는 것이다.


법의 한계에 갇힐 수 없는 노동자의 권리와 존엄

지금의 노조법이 제정된 1997년 이후로 26년이 지났다. 지난 시간 계속된 노동자들의 투쟁 그리고 죽음이 있었다. 현실과 맞지 않고 뒤처진 법의 한계에 갇히지 않고 권리와 존엄을 지키고 세우기 위해 싸워왔던 투쟁의 역사 속에서 지금의 개정 국면이 열렸다. 그러한 무게로 8월 임시국회에서 반드시 노조법 개정안이 통과되도록 하고, 대통령 거부권 행사를 막는 ‘마지막’ 싸움을 함께 잘 만들어가고 싶다.

일터에서 폭염으로 쓰러지는 노동자들의 소식이 계속 잇따른다. 노동자들이 모이고 뭉쳐 우리의 문제로 함께 요구하고 싸울 수 있는 노동조합이 있다면? 노동자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노동조합이 더 잘 싸울 수 있다면? 이런 질문들을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시간으로 ‘9부 능선’에 다다른 노조법 개정 운동의 끝을 그려본다. 설사 법적으로는 반영되지 않게 되더라도, 그 한계에 갇힐 수 없는 노동자의 권리와 존엄을 지키고 세워가는 투쟁을 이어갈 힘을 축적하는 시간들로 채워갈 8월을 맞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