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운동사랑방 후원하기

인권오름 > 청소노동과 청소노동자의 삶

[기획 : 청소노동과 청소노동자의 삶 ① ] 엄마 같은 청소노동이라고..?

청소노동에 나타난 여성되기와 도시락

[편집자 주] 인권운동사랑방 사회권팀은 올 초 청소노동자들의 저임금과 쉴 공간도 없는 열악한 노동조건을 알리고 바꾸고자 ‘따뜻한 밥 한 끼의 권리 캠페인’에 함께 해왔습니다. 건물 청소노동자들은 나이가 많은 여성비정규직들로 유령처럼 취급당하고 있습니다. 청소노동자들을 만나 그녀들의 목소리, 그녀들의 삶의 모습을 담아내고자 기획했습니다. 기사는 청소노동과 청소노동자의 삶을 △청소노동에 나타난 여성되기와 도시락 △노동공간에 나타난 성별 분리 △청소노동의 고단함과 나이듦 △노동의 위계와 비정규직 △청소노동/자와 관계 맺기 등으로 실을 계획입니다.


청소노동에 나타난 성별화

얼마 전 모 방송국에서 청소노동자들이 쉴 공간도 없이 힘들게 일을 하는 모습을 다룬 적이 있다. 아나운서는 ‘엄마 같은 분들이 대접받지 못 한다’며 내용을 소개하였다. 한 포털 게시판에 청소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해야한다고 네티즌이 올린 청원에도 ‘엄마 같은’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다.

왜 청소노동자하면 엄마를 떠올릴까? 그 이유 중 하나는 실제 청소노동자들의 대다수가 나이 많은 여성이기 때문일 것이다. 2008년 중앙고용정보원의 산업별 직업별 고용구조조사(OES: Occupational Employment Statistics Survey) 데이터를 활용한 조사에 따르면 청소노동자는 여성이 308,220명(81.6%)이며, 60세 이상의 여성 41%, 여성 평균연령 56.5세이다. 사람들이 이러한 청소노동자들의 실태를 잘 알고 있어서 표현한 것만은 아닐 것이다. 아마도 그건 우리가 흔히 보게 되는 집안 청소를 대부분 여성이 하고 있어서 ‘여성’, ‘엄마’를 떠올리는 것이기도 하다. 또 다른 이유는 건물 내에서 수행하는 청소노동이 집안에서 하는 청소노동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간호사하면 여성을 떠올리는 것처럼, 성별화 된 사회에서, 성별화 된 직업군 중 하나가 청소노동자이다. 청소노동은 집에서 하는 청소와는 노동강도나 작업횟수나, 다른 작업과의 연관성 측면에서 질적, 양적 차이가 있다. 또한 ‘엄마 같은 청소노동자’로 부르는 것은 우리사회가 여성을 가족의 구성원으로만 보려는 경향, 사회생활을 하는 노동자일지라도 여전히 여성은 가족성원으로서만 주체화되는 성별화 된 가족주의적 인식을 보여준다. 이러한 가리킴은 청소노동자들을 ‘노동자’, ‘인간’으로서는 드러내지 못하고 성별화 된 ‘가족’의 이름으로 드러내는, 또 하나의 ‘투명 망토’이지 않을까. 우리가 만난 난 A 사업장 청소노동자인 ㄱ님과 ㄴ님의 말처럼 우리사회가 얼마나 성별화 된 사회인지를 알 수 있다.

“남자는 바깥일, 여자는 집안 일. 그러니까 청소하면 엄마가 떠오르지 아빠가 떠오르는 일은 없다. 그렇게 인식이 되 버려서 모든 사람들이 청소는 여자가 한다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엄마가 청소노동을 한다고 해서 그것 가지고 기분 나빠하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우리도 청소노동자 하면 엄마를 생각한다.”


남성의 일과 여성의 일을 나누고 이를 넘을 수 없는 것처럼 만드는 사회가 성별화 된 사회의 모습이고, 이는 직업군으로까지 이어진다. 그런데 청소노동처럼 성별화 된 직업군 중 여성들이 하는 분야는 중요한 노동임에도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청소는 가사노동 중 하나로, 대부분 여성들이 주로 한다. ‘집안일이 뭐 어려운 게 있겠어.’, ‘여성들이 하는 일이 뭐 그리 중요하겠어.’라는 식으로, 노동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사회에서 청소노동에 대한 가치를 인정하기란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하지만 집안에서도 마찬가지겠지만 청소는 회사든, 학교든, 병원이든, 공장이든 하루라도 청소가 되어있지 않으면 일 처리를 제대로 할 수 없을 정도로 매우 필수적인 노동이다. 그럼에도 청소노동은 ‘최저임금만 받아도 되는’ 노동, ‘직업군으로 존중하지 않는’ 노동으로 취급받고 있다.

[삽화] 윤필

▲ [삽화] 윤필



청소노동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필요하다

하지만 청소노동은 숙련도가 높고 작업과정이 복잡한 노동이다. 강의실이나 작업장의 얼룩을 지우는 것 뿐 아니라 병원의 오염물을 처리할 때 익혀야하는 기술, 세심한 수작업이 필요한 일이다. 병원 청소노동자의 경우는 환자건강과 직결되는 위생을 책임지는 전문노동인력이기도 하다.

성별화 된 직업군 중 여성들이 하는 직업군은 대부분 저임금, 비정규직이다. 장지연의 <비정규여성노동 실태와 보호방안>이라는 논문에서도 “여성이 비정규직 노동자가 되는 데는 학력과 같은 인적자본의 차이에서 나타나는 영향이나 가족의 특성에서 나타나는 자발적인 선택이 아니며, 일자리의 특성 자체에서 구조적으로 결정되는 것”으로 분석한다. “여성노동에 대한 자연화 된 가정들이 존재하며, 이러한 가정에 따라 여성노동이 남성노동에 비해 평가절하 되거나 성차별적인 대우를 받게 된다. 예컨대 감정노동, 모성적 보살핌이나 가사 관련 노동, 여성적 서비스 노동 등이 그런 경우에 해당된다.” (이영자, <신자유주의 노동시장과 여성노동자성>)

이러한 암담한 현실을 바꾸려면 가사노동과 청소노동의 유사성에 갇힌 성별화 된 청소노동평가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재평가하는 일이 필요하다. 청소노동을 할 때 요구되는 숙련성, 필수성과 다른 노동의 효율성을 높이는 기반노동이라는 점에 주목하여 재평가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러한 재구성은 청소노동자들이 자신의 노동을 당당히 드러내고 ‘재정체화’하는 일로 시작될 것이다. 실제 우리가 만난 A사업장 청소노동자 ㄱ님은 자신이 노동자임을 여러 번 강조하며 청소노동에 대한 부당한 평가에 문제제기하였다.

“여자청소노동자를 불쌍한 사람, 밑바닥 인생으로 보지 말고 똑같은 직장인, 동등한 사람으로 봐줬으면 좋겠다. 딴 사람들도 별 일 안한다. 직장에 양복입고 간다고 좋은 일만 하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 자기들처럼 고고하게 살면 이 세상 청소는 누가 하느냐? 자기들도 고맙게 생각해야 한다.”

청소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현실을 바꾸어가는 것은 청소노동자에 대한 동정어린 시선이 아니라, 노동자에 대한 동등한 평가, 청소노동에 대한 정당한 평가이다. 그리고 청소노동자들의 목소리내기이다.

“내가 이백 몇 십 명의 대표인데 왜 아줌마냐고 말 고치라고 하고.. 회사 하고 엄청 싸웠어. 그래서 나도 들이댔어. 이런 데 나 당장 나가도 좋다, 당장 잘라라. 진짜 대한민국에 이런 소굴이 있는 줄 몰랐다. 어떻게 사람을 종 취급을 하느냐면 막 들이댔어. 그랬더니 회사에서 인정을 하더라고요.”

B 사업장에서 처음 노조를 만들던 2007년에 용역회사와 싸우던 기억을 회상하던 간부가 당시에 사장에게 한 말이다. 청소노동자로서의 정체성과 자부심을 잃지 않는 이러한 모습이 청소노동을 가벼이 여기는 현실을 바꾸는 기본 힘이 되지 않을까.

“지겨워, 도시락 싸는 것도, 반찬 걱정을 하는 것도 ...”

밥 한끼의 권리 캠페인

▲ 밥 한끼의 권리 캠페인



앞서도 얘기했듯이 청소노동자들의 대다수는 저임금의 비정규직이다. 2008년 조사에 의하면 평균임금은 79.6만원(남성이 102.9만원, 여성 74.3만원)이다. 이러한 저임금 현실은 하루 두 끼를 일터에서 해결해야 하는 청소노동자들이 식사를 해결하는 방식으로 밥을 사먹기보다는 도시락을 싸오게 만든다. 올해 서울대병원 노조에서 설문한 결과에 따르면 청소노동자들은 식사비 부담 때문에 도시락을 싸온다고 하였다. 인권운동사랑방 사회권팀이 서울 3개 사업장에서 설문한 결과에 따르면 도시락을 싸오는 것이 부담스럽다는 노동자가 92.35%였다.

청소노동자들이 도시락을 부담스러워 하는 이유는 “집에서 도시락을 싸기 위해 반찬을 만들어야하고, 시간도 들고, 버스에서 냄새나고 덜컹거려 들고 다니기 어렵기”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같은 공간에서 일하시는 “남성청소노동자들은 도시락을 싸오지는 않는다.”고 한다. A사업장 ㄱ님과 ㄴ님에게 물었다. 왜 굳이 밥을 싸오시냐고? 집에서도 밥을 해야 하는데 일터에까지 와서 밥을 차려먹는 게 힘들다면 싸오지 않는 게 낫지 않느냐고…….

“물론 불편하다. 근데 (그래야) 돈을 덜 쓰니까... 우리 식구들도 밖에서 다 사먹는데 나까지 사먹으면 소비가 너무 심하다. 한 푼이라도 아껴야 한다. ”

“날마다 사먹으면 편하고 좋다. 매일 다른 반찬 먹고. 근데 그게 안 된다. 여자들은. 하루에 4~5천 원씩 나가면 한 달에 100만원도 안되는데 밥값에다 가끔 부조 돈도 나가고 끝이 없다. 그런데 어떻게 밥까지 사먹을 수 있는가?”

“지겹다. 오며가며 어딜 가든 (가사 일)일해야 하니까. 딴 것도 힘든데. 집에 가면 앉지도 않고 또 밥해야 된다.”


아침 일찍 출근해서 청소일을 마쳐야하는 노동자들은 하루 두 끼를 작업공간인 학교나 병원, 건물에서 해결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한 달에 최저임금 90만원을 겨우 넘는 임금구조에서 두 끼 밥을 사먹는다면 임금의 1/5에 해당하니 엄두도 낼 수 없다. 청소노동자들이 도시락을 싸오는 가장 큰 원인은 저임금이다. 청소노동자에게 도시락은 웰빙이나 슬로우라이프로만 여겨지기 어려운 현실이다. 더구나 문제는 이렇게 도시락을 싸오는 일이 청소노동자에게 노동을 추가하는, 집에서나 작업장에서의 가사노동을 늘린다는 점이다. 저임금의 구조가 낳는 가사노동 증가라는 또 다른 여성억압이 존재한다.

도시락을 싸오는 이유가 저임금 외에 여성노동자가 집안 경제(가계)를 주로 다루는 현실로 인해 ‘비용에 대한 심리적 부담이 높’았다. 이러한 심리적 부담이 높은 것은 성별화 된 사회가 여성들의 소비 규범을 유포해온 탓도 있을 것이다. 여성학자 김은실의 말처럼 “음식을 소비하고 즐기는 여성에 대한 문화적 터부”, “음식을 제공하는” “여성과 음식에 관련된 문화적 메타포”가 음식은 ‘사먹는 것’이 아니라 ‘해먹는 것’으로 만들었지 않았을까.

즐겁게 도시락을 먹을 수 있는 공간이라도 있다면…….

[삽화] 윤필

▲ [삽화] 윤필



그런 점에서 얼마 전 교섭으로 아침 식사가 식권으로 제공되는 B사업장의 사례는 긍정적이다. 더구나 청소노동자들도 다른 직원들과 동등하게 식사가 제공되는 사실에 대해 “우리 병원은 차별이 없어요.”라며 매우 만족해했다. 고된 노동을 잠깐 마치고 먹는 한 끼 식사는 ‘쉬는 여유로움’만이 아니라 ‘일에 대한 보람’과 ‘사람에 대한 대접’을 느끼는 순간이다. A사업장 ㄱ님과 ㄴ님의 얘기처럼 밥은 생존과정이기도 하지만 존중이 드러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밥만 아니면 이렇게 일할 필요도 없다. 밥 안 먹고 옷만 입는다면 이렇게 일 안할 것이다. 밥 때문에 이렇게 일 하는거 라고 생각하면 된다.”

“점심밥 같은 거 먹으면서 ‘우리가 이 밥 한 끼 먹으려고 이 고생을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도시락을 싸오거나 직장에서 밥을 해먹는 것은 최저임금을 받는 여성노동자가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차선의 선택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러한 차선의 선택을 최소한이라도 즐겁고 존중받을 수 있도록 휴게공간을 마련하는 일이 필요하다. 그 공간은 ‘겨우 끼니를 때울 수 있는 공간’이 아니라 ‘밥에 대한 권리를 누릴 때 느끼는 존엄성’을 확인 할 수 있도록 충분해야 한다. 그러할 때, 청소노동자들이 그 공간에서 먹고 쉬고 이야기를 나누며 ‘밥에 대한 권리’만이 아니라 노동을 반추하며, 동료애를 높이며 ‘사람의 권리’를 외치는 공간으로 재구성할 것이다.

10월 16일 서울역에서 청소노동자 노래자랑이 개최된다. 행사를 알리는 포스터.

▲ 10월 16일 서울역에서 청소노동자 노래자랑이 개최된다. 행사를 알리는 포스터.


덧붙임

관수, 깡통, 명숙, 홍차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