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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석의 인권이야기] 아무에게도 하지 못한 내 수감 시절 이야기

나는 수감생활이 그렇게 힘들지 않았다고 사람들한테 늘 말했다. 정말이다. 학교가, 회사가 감옥과 크게 다르지 않은데, 감옥 밖 세상보다 감옥이 크게 더 힘들게 뭐가 있겠나. 맘씨 착한 교도관이나 교도소장 만나면, 나쁜 교장이 있는 학교나 못된 사장이 있는 회사보다 더 나을 때도 있다.
감옥이 힘들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던 건, 가장 수치스러웠던 기억은 나도 몰래 지우고 살았기 때문이다. 아무에게도, 아무 곳에도 말하지 않았던 그 기억을 말하려고 한다.

2006년 8월 17일, 나는 부천지법에서 1년 6개월을 선고받고 바로 법정구속 됐다. 재판받으러 나온 재소자들, 나처럼 법정 구속된 사람들과 함께 인천구치소로 갔다. 이미 감옥 살다 나온 병역거부자들에게 감옥에 대해 여러 번 듣고 몸과 마음의 준비를 다 하고 있었기 때문에 수감이 크게 두렵진 않았다. 구체적인 거는 겪어봐야 알겠지만, 감옥 안에서 교도관들과 부딪혔을 때, 혹은 같은 방 재소자들과 부딪혔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도 나름 정리했다.
헌데 이런 준비나 생각들은 그야말로 머릿속 생각이었다. 인천구치소에 들어가자마자 내 매뉴얼이 산산이 부서지는 일이 생겼다. 구치소에 입소하기 위해 내가 가지고 있던 옷과 신발들을 영치시키고, 간단한 서류 같은 걸 적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리고 미결수들이 입는 똥색 관복으로 갈아입으려고 하는데, 교도관이 옷을 벗으라고 했다. 나는 못 알아들었다. 말뜻을 못 알아들은 게 아니라, 그 말이 나한테 한 말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거다. 나는 다시 한 번 물었고 교도관은 똑같은 말을 반복했다. 할 수 없이 옷을 벗었다. 이번에는 속옷을 벗으라고 했다. 나는 당혹스러웠다. 어느 병역거부자한테도 이런 상황이 있을 거라는 이야기는 들은 바 없었다. 나는 저항했다. 속옷을 벗지 않겠다고 했다. 이건 인권침해라고 했다. 교도관은, 조금 귀찮다는 표정으로 "그럼 인권위에 인권침해 당했다고 진정해. 지금은 속옷 벗고 검신 받고 나서." 라고 말했다. 인권침해를 강하게 주장하면 교도관이 한 발짝 물러설 줄 알았는데 웬걸 더 당당하게 나오는 게 아닌가. 나는 그만 기가 죽었고, 속옷까지 벗을 수밖에 없었다.
정말이지 끔찍하게 수치스러웠다. 내가 끝까지 저항하지 못하고 굴복한 게 수치스러웠고, 알몸 검신을 당했다는 게 너무나 창피하고 분하고 수치스러웠다. 그 교도관 얼굴이며 말투 하나하나 또렷이 기억에 남는다. 나중에 출소하고 나면 인천교도소 가서 그 사람 이름 알아내서 고발이라도 할까 생각하기도 했다. 창피해서 누구한테 그동안 말도 못했다. 내 뒤로 병역거부로 수감되는 친구들한테도 이런 일을 겪을 수도 있으니 이럴 땐 이렇게 대처해라, 이런 말도 못했다.

[그림: 윤필]

▲ [그림: 윤필]


한동안 잊고 지냈던, 아니 지우고 지냈던 그 기억이 떠오른 건 지금 대구구치소에 수감되어 있는 어느 병역거부자 이야기를 듣고서다. 그 병역거부자는 가족접견을 하는데 알몸 검신을 당했다고 한다. 자세한 이야기를 듣지 않아도 다 상상이 된다. 속옷을 벗으라는 교도관 지시에 병역거부자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항의했겠지. 교도관들은 아무 문제의식도 못 느끼고 얘가 왜 이렇게 별것도 아닌 거에 까칠하게 구나 하는 표정으로 거듭 옷을 벗으라고 했을 거고. 병역거부자는 면회하러 온 가족이 밖에서 기다리고 있어서 갈등했을 거다. '알몸 검신은 인권침해인데, 근데 여기서 내가 계속 싸우면 가족들은 면회를 못하고 돌아갈 수도 있고, 그럼 무슨 일이 생긴 게 아닐까 하고 부모님이 많이 걱정하실 거야.' 결국, 알몸 검신에 응하고 가족 접견을 마친 뒤 병역거부자는 인권위에 진정했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듣고 많이 후회했다. 그날, 2006년 8월 17일, 인천구치소로 들어가던 첫날, 알몸 검신을 거부하고 끝까지 싸웠다면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아니, 내가 출소한 뒤에라도 수감을 앞둔 병역거부자들한테 이 이야기를 했다면 좀 더 대비를 하고 대처할 수 있지 않았을까. 지금 이 일이 나 때문에 일어난 것은 아니지만, 내가 혹은 내 앞에 누군가가 이런 일을 당했을 때 제대로 싸웠다면 다시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
대구구치소에 수감 중인 병역거부자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구치소는 놀랍게도 병역거부자가 인권위에 진정을 낸 날, 계장이 병역거부자를 불러 인권위에 진정한 거에 대해 불편한 감정을 표시했다고 한다. 인권위 조사가 있고나서 이틀 뒤 구치소 관용부 계장이 인권위에 진정한 것을 취소하라고 권유하면서 앞으로 알몸검신은 없을 거라고 했다. 병역거부자는 약속한 것을 기록으로 남겨달라고 했지만, 계장은 그것은 할 수 없다고 했단다. 3일 뒤 구치소 가족접견이 있었다. 병역거부자는 참여하지 않았지만, 이날도 유사 알몸 검신이 있었다고 한다. 옷을 다 벗기지는 않고 교도관이 속옷을 들춰 들여다보는 것으로 확인을 했다는 것이다.

교도관들이 수감자들에게 수치심을 주려고 나쁜 마음으로 그러지는 않았을 거다. 그냥 늘 하던 대로 아무 생각 없이 그랬겠지. 그게 더 나쁘다. 권력을 가진 사람이 아무 생각 없이 때로는 좋은 의도라 할지라도, 나쁜 행동을 하는 건 용납될 수 없다. 나쁜 마음이든 아니든, 인권침해를 당한 사람들에게는 그게 아주 오래가는 큰 상처로 남는다. 평소에는 그 상처를 애써 묻어두고 지우고 살겠지만, 그건 완벽하게 지워지지 않는다, 마치 잊고 지내던 내 기억이 이번 일을 계기로 살아난 것처럼 말이다.

이제 나도 수치스러웠던 기억에서 벗어나야겠다. 그때는 입소 첫날이라 아무것도 모르고 당했지만, 그때 못한 싸움을 이제라도 해야겠다. 대구구치소에서 일어나는 일을 널리 알리고,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나 같은 수치심을 어느 누구도 느끼게 하지 않게 해야겠다.
덧붙임

용석 님은 출판노동자이며 전쟁없는세상 회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