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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석의 인권이야기] 노동자들이 겪은 일을 있는 그대로 써야 세상이 바뀐다

노동조합을 만들려고 동분서주 할 때 일이다. 직원 전체가 모이는 자리를 가졌는데, 그 자리에서 한 사람이 “왜 꼭 지금 만들어야 하냐?”고 물었다. 그 사람은 한 부서를 책임지는 직책을 달고 있었고, 나는 그 질문을 단순한 질문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 일을 내 블로그에 썼다. 자칫 민감할 수 있어서 말한 사람 이름이나, 회사 이름 따위는 밝히지 않고, 이른바 시기상조론에 대해 비판을 했다. 프로야구 선수들이 선수협 만든다고 했을 때, 병역거부자들이 대체복무제도 입법을 요구했을 때 번번이 등장했던 시기상조론에 빗대어 노동조합 만들자고 하니 시기상조론을 펼친다고 썼다. 헌데 그 말을 한 당사자가 내 블로그에 들어와 그 글을 보고 댓글을 마구 달았다. 불편했지만, 그냥 뒀다.

그리고 얼마 뒤 회사 회식자리에서 상무이사가 내 블로그 글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공개적인 장소에다 회사 비판을 쓴 것은 잘못이라는 거다. 나는 바로 반박했다. 내 블로그는 공적인 장소가 아니라 했다. 상무이사는 내 블로그 방문자 수가 30만 명이라며 이게 어떻게 공적인 공간이 아니냐고 했다. 어이가 없었다. 몇 년 동안 누적인원이 30만 명이고 그 가운데는 여러 번 들어 온 사람들이 많다고 설명해줘도 소용이 없었다. 더군다나 내가 쓴 글은 특정인을 거론하지도 않았고, 사실 관계를 왜곡한 것도 없었다. 공적인 곳에 올려도 크게 문제가 될 리 없는 글이라고 해도 소용없었다. 직원들 블로그 글을 문제 삼는 건 이명박이 언론 통제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하자, 상무이사가 버럭 했다. 자기를 어떻게 이명박과 비교 하냐고.

또 이런 일도 있었다. 어느 직원이 트위터에서 상사 뒷담화를 했다. 그게 어찌어찌해서 대표이사 귀에 들어갔다. 대표이사는 어느 날 그 직원 아버지에게 전화를 해서 “OO가 전세계인이 보고 있는 트위터에 회사 욕을 쓰고 있다”고 했다. 대표이사와 그 직원 아버지가 원래 알고 있던 사이라고 해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그 직원은 평소 하룻밤에도 트윗을 수백 개 쓰면서 여러 번 리밋에 걸리는 걸로 유명한 직원이었는데, 그 많은 트윗 가운데 회사와 관련된 건 극히 일부였다. 그리고 문제로 삼은 그 트윗도 회사 이름이나 상사 이름을 거론하며 욕하는 수준도 아니었다.

가만 뒀으면 그 수많은 트윗에 떠밀려 본 사람도 거의 없고, 쓴 본인조차도 언제 자기가 그런 트윗을 썼는지 모르고 지나갔을 일이다.

이 두 경우는 공개적인 공간에다 회사 비판을 해서 회사 명예를 실추시켰다는 것일 게다. 우리가 아무리 블로그와 SNS는 공적인 공간이 아니라고 해도 회사에선 다르게 생각한다. 그리고 위 두 경우 크게 문제가 될 내용이나 표현이 아니었지만, 회사는 또 생각이 달랐다. 뭐 그럴 수도 있겠지. 헌데 아래 경우는 어떨까? SNS나 블로그처럼 다른 사람도 볼 수 있는 곳이 아니라면 어떨까?

대표이사가 한 번은 모든 직원들에게 우리 회사 책 리스트를 나눠주며 읽은 책에 동그라미를 쳐오라고 시켰다. 당연히 반발이 일어났다. “이 조사를 왜 하는 거냐, 나중에 인사에 반영하려는 거냐”부터 해서 “어떻게 책을 ‘읽었다’, ‘안 읽었다’로 구분할 수 있냐, 이건 책에 대한 모독이다” 같은 의견까지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 사람들은 비판하면서도 각각의 방식으로 설문지를 냈다. 헌데 직원 한 명이 백지를 냈다. 대표이사는 그 직원에게 백지를 낸 것이 책을 하나도 안 읽었다는 것인지, 아니면 설문을 작성하라는 업무지시를 거부한 것인지 밝히는 경위서를 내라고 지시했다. 그 직원은 자기가 백지를 낸 까닭을 편지로 써서 대표이사에게 전달한 뒤 경위서를 냈다. 대표이사는 경위서를 제출하라고 한 시간까지 경위서를 제출하지 않았기 때문에 업무지시 불이행이고, 그 직원이 쓴 편지에 모욕적인 표현이 있어서 자기가 언어폭력을 당했다는 이유로 그 직원에 대한 징계위원회를 소집했다. ‘강제적인 업무 지시’, ‘생뚱맞다느니’, ‘억지 설명’, ‘기계적 충성도 조사’, ‘어설픈 자구책’ 따위 표현을 문제 삼았다. 분명 다소 감정적인 표현들이었지만, 말단 직원에게 대표이사가 심한 모욕을 당했다고 하기에는 많이 부족한 표현들이었다. 그 직원은 징계위원회에서 노동조합이 반대하여 중징계는 받지 않을 수 있었지만, 경징계를 받고 그 뒤에도 한참동안 교묘한 회사의 괴롭힘에 힘들어야 했다.

그나마 우리 회사가 노동조합도 있고, 다른 회사에 비해 노동자들 처지가 좋은 회사기 때문에 저 정도에서 그친 것이다. 아마 다른 회사였다면, 노동조합이 없거나 노동자들 처지가 굉장히 열악한 곳이었다면, 세 사례 모두 해고로 이어졌을지도 모른다. 우리나라 굴지의 기업인 삼성에서 사내 게시판에 노동조합을 만들자는 글을 올렸던 박종태 씨는 그 일로 해고당해 지금도 힘든 싸움을 계속 하고 있다. 이렇듯 노동자들에겐 자기들이 겪은 일을 솔직하게 쓰거나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일은 위험을 무릅써야 하는 일이다. 명예훼손으로 걸릴 수도 있고, 자칫하면 해고당하고 이 바닥에 발 못 붙일 수도 있다. 그나마 징계를 피할 수 있어도, 회사 윗분들에게 찍히는 것마저 피해갈 순 없을 거다.

사장님들은 노동자들이 자기 생각을 말하고, 자기가 겪은 일을 글로 쓰는 걸 두려워한다. 그렇기 때문에 노동자들이 하는 말과 글을 명예훼손이나 해고 따위를 들먹이면서 가둬두고 싶어 하는 것이다. 아동문학가이자 교육운동가였던 이오덕 선생님은 “노동자들이 겪은 일을 있는 그대로 써야 세상이 바뀐다”고 하셨다. 옳은 말씀이다. 노동자들에게 있어서 ‘겪은 일을 있는 그대로 쓸 자유(표현의 자유)’는 언론출판의 자유로 대표되는 자유권이기도 하지만, 세상을 바꾸는 싸움 그 자체이기도 하다.
덧붙임

용석 님은 출판노동자이며 전쟁없는세상 회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