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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석의 인권이야기] 경영자의 인사권, 경영권보다 중요한 것은 노동자들의 생존권이다.

보름쯤 전 출판계에 작은 소동(?)이 있었다. 주로 인문, 사회 분야에서 진보적인 책을 내는 어느 출판사가 신입직원을 채용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출판사는 면접까지 보고 합격자를 정해 전화로 합격 사실을 알리며 출근 날짜도 알렸는데, 바로 다음 날 채용을 취소한다는 메일을 합격자에게 보냈다. 채용을 취소하는 까닭은, 합격자의 트위터 글들을 우연히 봤는데 자기 회사와는 맞지 않는다는 판단을 했다는 거다. 합격자는 새롭게 취직한 것을 주변 사람들에게 알리고, 강사로 일하던 학원에도 연락해 그만두겠다고 한 상황에서 난데없이 출근도 못 해 보고 백수가 되어 버렸다.

여기까지는 출판계에서 뉴스랄 것도 없는 흔히 있는 일이다. 당사자가 이것은 부당해고라며 회사에 찾아가고, 공개적으로 알리지 않았다면 이 일 또한 아주 조용하게 넘어갔을 거다. 하지만 당사자는 자기가 겪은 일을 알렸다. 회사는 즉각 입장글을 냈는데, 트위터 글을 사찰한 것이 아니고 정식으로 회사에 들어오기 전이니 부당해고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일을 알게 되면서 출판사에 항의하고 SNS를 중심으로 출판사를 비판하는 글이 올라왔다. 결국, 출판사는 자기들이 한 행동이 부당해고나 다를 바 없음을 인정하고, 피해자가 이 일을 공론화했을 때 회사의 대응이 여러 면에서 적절치 못했음을 인정하며 당사자와 독자들에게 사과했다. 그리고 앞으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노조를 만들고, 언론노조와 다른 출판사 (노조)분회를 만나 조언을 듣겠다고 했다. 피해당사자에겐 따로 인격권 침해로 인한 정신적 피해에 대해 보상하겠다고 했다.

회사가 자기가 저지른 잘못을 반성하고, 그걸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약속한 것은 아주 예외적인 일이었다. 대부분 출판사들은 그렇지 않다. 내가 다니는 회사만 해도 그렇다. 회사에 입사하고 한 달이 채 안 되었을 때, 나보다 두 달 먼저 회사에 들어온 수습사원이 잘렸다. 회사가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면서 채용한 사람이었는데, 그 사업에 대한 구상이 달라지면서, 수습사원을 정직원으로 채용하지 않게 된 것이다. 당사자는 다른 부서라도 좋으니 이 회사에서 일하고 싶다고 의사를 밝혔지만, 회사는 듣지 않았다. 회사는 ‘보안 문제와 경영상 판단으로 부득이하게 계약을 연장하지 않는다’고 밝히며,‘특채로 들어온 수습사원이기 때문에 부당해고가 아니라 계약해지’라고 했다. 그 뒤로도 수습사원이 수습기간을 마치고 정직원이 되지 못한 사례는 몇 차례 더 있었다. 회사는 그때마다 이건 부당해고가 아니라고, 직원을 채용하는 권한은 회사의 고유한 권한이라고 주장했다.

[그림: 윤필]

▲ [그림: 윤필]


출판노동자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면 이와 같은 사례들은 수도 없이 쏟아진다. 꼭 어느 회사 하나가 잘못이라고 하기엔 너무 많은 회사들이 비슷한 일들을 저지르고 있다. 인턴사원으로 뽑아서 막 쓰고 버리는 건 부지기수고, 수습사원을 여러 명 뽑아 놓고 당신들 가운데 몇 명만 정식채용될 거라고 대놓고 경쟁시키는 회사 이야기도 들었다. 서로 자기 회사가 저지른 나쁜 짓을 이야기하다가 다른 회사들도 다르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면서 ‘이 바닥은 어딜 가나 마찬가지구나’이런 좌절에 빠지기도 한다.

정식채용이 아니니 부당해고가 아니라는 생각, 수습사원을 자르는 것은 계약해지이지 해고가 아니라는 생각, 비정규직을 자르는 것은 계약해지이지 해고가 아니라는 생각은 출판계 경영자들에게 만연해 있다. 출판사들이 대체로 영세하고 규모가 작아 합리적인 체계를 갖추지 못해서 그렇기도 하고, 수습사원이나 비정규직들을 자르는 건 노동법에서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생각해서 그러기도 할 것이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경영자들이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것이 ‘경영권과 인사권은 법이 보장하는 경영자의 고유 권한’이라는 말이다.

노동법에서 경영권과 인사권이 명확하게 사용자의 고유 권한으로 규정되어 있지는 않다. 다만 다양한 판례들에서 그것이 사용자의 권한인 것을 확인시켜 주는 사례가 있을 뿐이다. 혹 법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어느 노동자를 회사가 해고하는 것이 법을 어기는 것이 아니라 해도 그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법은 넘지 말아야 할 최소한을 규정할 뿐이어서 법에 어긋나는 행동을 기업이 저지르는 것은 불법이 되는 거지만, 법을 지켰다고 해서 그 행동이 무조건 정당한 것은 아니다. 최저임금보다 적게 주는 거는 불법이지만, 최저임금을 딱 맞춰 준다고 해서 옳은 일이라고 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게다가 법은 어차피 사람들 사이에 맺어진 일종의 규칙이기 때문에, 당연히도 완벽할 수 없으며 시대에 따라 변하기 마련이다.

경영자들이 마음대로 휘두른 인사권과 경영권은 노동자들에겐 폭력이 된다. 특히 경영권과 인사권에 따른 결정이 ‘해고’라면 더더욱 그렇다. 계약해지든, 채용취소든, 권고사직이든 이름이 어떻게 붙고, 법에 따라 어떻게 나뉜다 해도 이 모든 것은 노동자들한테는 해고다. 정규직 노동자들, 비정규직 노동자들, 수습사원이든, 인턴사원이든 노동자들이 스스로 동의하지 않았는데 일터를 잃는 모든 상황은 해고다. 일터를 잃은 노동자들은 밥 벌어 먹고사는 것이 위태로워지고, 회사에서 잘렸다는 자괴감으로 마음에도 커다란 상처를 입는다. 생존권을 위협하고, 자존감을 망가뜨리는 일은 법의 테두리 안에서 일어났든, 불법으로 일어났든 노동자에 대한 폭력일 뿐이다.

경영자의 인사권과 경영권보다 중요한 것은 노동자들의 생존권이다. 쉽게 생각하면 된다. 경영자들이 인사권과 경영권을 지금처럼 마음대로 휘두르지 못하게 되더라도 그이들 목숨이 위태로워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회사에서 잘리면 자기 자신과 식구들의 생존이 쉽게 위협받는다. 우리나라처럼 사회안전망이 미약한 나라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생존권보다 중요한 법은 없다. 경영자들이 부여받은 권리 가운데 노동자들 생존권보다 더 존중받아야 할 권리는 단 하나도 없다.
덧붙임

용석 님은 출판노동자이며 전쟁없는세상 회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