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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문헌읽기] 기다림에 대하여

사회권 규약의 의무에 대한 해석원칙과 노신부의 말

아니 벌써?, 또 지났네, 어느새 그렇게 됐네…. 시간이 가고 세월이 가는 것에 대해 한숨이 절로 나오는 게 일상이다. 내 일상의 시간이 쏜살같이 가고 있다면 티끌처럼 차곡차곡 쌓여가는 고통의 시간들이 있다. 김진숙의 309일 고공농성이 그랬고,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1000일, 재능교육 노숙농성 1500일, 제주 강정 해군기지 저지 투쟁 6년째 등 일상의 빠른 속도를 비웃는 기록들은 계속 갱신되고 있다. 또 지난 2월 23일 해고된 지 5년 만에야 ‘부당해고’란 판결문을 받아든 콜트악기 노동자들, 같은 사건임에도 같은 날 파기환송을 받은 콜텍 노동자들이 있다. 종잇장에 쓰인 판결문이 원직복직과 임금지급이란 현실이 되기까지, 또다시 법원의 판단을 받아 종잇장에 쓰인 판결문을 받기까지 그들이 또 얼마나 오래 기다려야 할지 모른다.

그새 자살하거나 병사한 쌍용자동차 노동자와 가족들이 21인, 그들을 포함해 노동현장에서 죽어간 넋들을 기리는 천도제가 얼마 전 추위가 강타한 서울 밤거리에서 있었다. ‘쌍용차 21명의 죽음은 엄연히 사회적 타살’이라는 조사로 시작하여 ‘정부와 회사가 해고자를 전원 복직시키고 정리해고 관련법 개정 등 제도개선이 이루어질 때까지 계속 싸우겠다’는 다짐, 아니 ‘우리 절대 죽지 말고 같이 싸우자’는 호소로 마무리됐다.

그날 밤 아랫도리가 날아갈 것 같은 추위에 제자리걸음을 종종거리는데 눈에 들어오는 한 사람이 있었다. 중년이라 하기에도 노년이라 하기에도 애매한 그분은 폐지수거용 캐리카를 얌전히 세워놓고 천도제에 참여한 후 정성껏 분향을 했다. 사람들 무리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단을 향해 단정하게 한 번 더 절을 한 후 폐지함을 끌고 밤거리 속으로 사라지는 뒷모습에 갑자기 울컥했다. 힘없고 추레한 한 사람이 강하고 폼 나는 많은 인사와 조직이 외면하고 기억하지 않는 걸 지켜보고 기억해주고 있다는 것에 같은 사람으로서 고맙고 또 고마웠다. 그런 눈과 기억이 있기에 버티는 것, 기다리는 것이 가능하다. 적금을 부었으면 만기가 되고도 넘었을 기간, 인연을 만들었으면 기념일을 만들어도 숱하게 만들었을 기간, 그런 기간을 맞고 채이고 굶고 거리에서 자며 버티게 하고 기다리게 하는 힘은 서로에게 적금 붓는 심정으로 만들어온 숱한 인연이 아닐까 한다.

이런 기다림의 연대에 비해 강한 쪽의 의무를 강제하는 규정은 빈약하기만 할 뿐이다. 노동권 등을 규정한 국제인권조약 중에 ‘사회권규약’(약칭)이란 게 있다. 이 규약에서 국가의 의무는 “특히 입법 조치의 채택을 포함한 모든 적절한 수단에 의하여, 이 규약에서 인정된 권리의 완전한 실현을 점진적으로 달성하기 위하여, 개별적으로 또한 특히 경제적, 기술적인 국제지원과 국제협력을 통하여, 자국의 가용 자원이 허용하는 최대한도까지 조치를 취할 것을 약속한다.”(제2조 1항)라고 되어 있다.

이 뭉뚱그린 의무 속에 특히 ‘점진적 달성’이란 문구가 발목을 잡는다. 국가 및 국가가 강제해야 할 사회경제적 강자들은 ‘점진적’이란 말을 ‘기다려라. 차차 하겠다’는 말로 바꿔치기 하고 아무것도 안하는 것을 숨기는 방패로 삼는다. 이런 회피가 골칫거리였기 때문에 국제법의 전문가들이 모여서 이 의무조항에 대한 해석원칙(1986년, 림버그 원칙)을 만들었다. 이에 따르면 ‘점진적 달성’이란 말은 어떤 상황에서도 ‘권리의 실현을 위한 노력을 무제한적으로 연기할 권리를 부여하는 것으로 해석되어서는 안 된다’ 그와는 반대로 ‘사회권 규약하의 의무실현을 위한 조치에 즉각 착수할 의무를 가진 것으로 해석되어야 한다’고 했다. 이 원칙에 이어서 유엔사회권위원회는 1990년에 국가의 의무에 대한 일반논평 3을 내놓는다. 이에 따르면 ‘조치를 취하겠다는 약속’에서 ‘약속’의 의미는 ‘행동한다’ 혹은 ‘조치를 취한다’는 의미다. 따라서 해당 권리의 완벽한 실현은 점진적으로 이루어가는 것이겠지만 그 목표를 향한 조치는 ‘합리적으로 짧은 시간 내에 밟아야 한다’는 의미라고 했다. 완전한 실현이라는 것이 어느 국가에게나 어려운 일이고 실제 현실을 반영하는 일종의 유연성을 발휘한 것이 ‘점진적’이란 표현인 것이지, 점진적인 실현을 예정하고 있다는 것을 의무가 없는 것처럼 잘못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오히려 국가의 의무에 대해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최대한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행동할 의무를 부여한다”고 했다.

이런 의무를 회피하는 쪽이 있다면 의무이행을 바라는 쪽은 수동적으로 기다리기만 하는 존재가 아니다. 이 기다림은 전리품을 나누고자 하는 기다림이 아니고 함께 겪고 함께 버티는 기다림이다. ‘차차’라는 말을 ‘당장’으로 바꿔놓을 힘을 만들고 북돋는 기다림이다.

오래전 <인권문헌읽기>에서 소개한 적 있는 시인 랭스턴 휴즈는 이렇게 외쳤다.

나는 저들의 이야기를 듣는 데 신물이 난다
일이 되어가는 대로 놓아두자는 따위의 말
내일이 되면 좋아진다는 따위의 말
나의 자유는 나의 죽음 뒤에는 필요 없다
내일의 빵으로는 나는 살 수가 없다


마틴 루터 킹은 감옥에서 이런 편지를 썼다.

시민권의 그 어느 한 부분도 압력을 가하지 않고서는 쟁취할 수 없었음을 인식해야할 것입니다. 유감스럽지만 특권층이 그들의 특권을 자발적으로 포기한 일은 역사적으로 한 번도 없었소. … 우리는 피나는 경험을 통해 자유라는 것은 압박자가 거저 주는 것이 아니라 피억압자가 강력히 요구해야만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소. … 그런데 수 년 동안 ‘기다리라!’는 말만 들어왔소. 이 ‘기다리라’는 말은 항상 ‘결코 안 된다!’라는 뜻으로 쓰여 왔습니다. ‘지나치게 오래토록 지연된 정의는 부정된 정의다’라는 어느 저명한 법관의 말이 생각납니다.

그리고 나는 평생을 싸우면서 기다려온 노신부의 말을 기억한다. 2007년 봄, 익산 미륵사지 산 정상 헬기장터에서 지는 해를 바라보며 문정현 신부와 나누었던 대화의 기록이다. 제주 강정 해군기지 건설을 막아내기 위해 노심초사하던, 하얗게 새다 못해 빛이 바랜 백발의 노노신부에게 며칠 전 징역 8월에 집행유예 선고가 내렸다. 기다림을 비웃는 자들이 하는 짓거리에 진짜 기다림을 아는 이들은 이렇게 답할 것이다.

래디컬, 진보의 핵심은 현장이야. 구체적인 것. 구체적인 것! 국회에서 아무리 지랄을 해도 현장을 떠나선…. 저희들이 이권이라든가 지들의 진로라든가 해서 뭐든지 포기하는 것은 현장을 놓친 거야. 지들이 중심이지. 다른 사람, 고통 받고 있는 사람이 중심이 아니라. 그러니까 이 새끼들 말야, 대추리를 놓고도 청문회를 여야 할 것이 없이 다 기피하잖아. 기만이지. 그러면서 뭐, 마음이 아프다. 헛소리 하지마라, 이놈들아. 래디칼한 게 진보적인 게 뭐야? 가 있을 곳에 가야 되는 것이고, 거길 떠나지 않고 같이 있는 것, 그게 래디컬이지.

그걸 해결하고 뭐 승리하고는 뒷전이야. 그건 우리 몫이 아닌 것 같아. 그럼 분신하고 자살하고 간 사람들은 정말 불행한 사람들이게? 좋은 것도 못 보고 가고. 그게 아니라 그 사람들은 좋은 것을 향해서 간 사람이지. 좋은 것을 지향하고 가는 거지. 내가 두발을 딛고 있는 그 자리에서 피하지 않고 그걸 계속 머물러 있으면서 소리를 내는, 그게 우리 몫이야.

보이스리스(voiceless)란 단어가 있지? 아무리 목청을 돋우어도 소리가 들리지 않는 보이스리스라도 떠나지 않고 있는 것, 그게 진보지. 빠삭하고 한 게 진보가 아냐. 얼마든지 유연할 수 있는 거고. 오히려 사형언도를 받고도 태연해질 수 있는 마음자세, 그게 중요한 거지.

… 나는 시간적인 제약을 받아. 나이 칠십이니, 몸이 안 움직이니 못하잖아. 건강 신호도 있고. 그렇다고 해서 건강을 지키기 위해 천장이나 쳐다보고 운동하고 그러고 싶지는 않아.…
작은 것을 놓치지 않고 몰입하다 보면 더 유사한 그런 것이 보이게 된다구. 그러니까 하던 일을 하게 되는 거지. 그래서 앞으로는 이런 저런 분야의 사람들이 만날 수 있는 계기가 있으면 참 좋겠어. 장애인운동도, 노동운동도, 농민운동도, 빈민운동도 모두가 …. 다들 허탈감에 빠져있을 그러고 있을 일이 아니지. 부지런히 사람들을 만나서, 내내 그 사람들하고 얘기해야 맞아 떨어지는 거지. 요놈하고 요놈하고 공통분모가 많다구, 그럼 이해도 빠르구.

지금 평화란 문제, 인권이란 문제, 세기를 두고도 해결이 안되고…. 반평화, 반인권 세력들이 더 기승을 부리고, 이거는 어두움이 깊어지면 새벽이 가까워진다고 그럼 우리도 지구촌의 어떤 변화를 위해서 간다고 그런 희망을 갖고 살아야지. …

어떤 계기가 올 때까지 계속하는 거야. 해야 하는 일이니까 하는 거야. 성과를 보면 못하지. 성과는 우리 일이 아닌 것 같아. 무엇이 조성돼야 그게 성과로 나타나고 그건 누구도 몰라. 지속적으로 싸우던 사람도 뭔가 변화가 오니까 지도 놀라는 것이지. 그런 것이지. 누구의 영도력으로 뭐, 그런 건 어림도 없는 얘기야. 해야 하니까 하는 거지. … 우리는 정에 굶주린 사람이어야 하는 것 같아. 애착, 관심! 보는 눈이 예민해야 돼. 옆에 뭔 일이 벌어졌을 때 그냥 넘어갈 수 없는 거야. 그렇게 만나는 게 임자지.
덧붙임

류은숙 님은 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