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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문헌읽기] 미래에 대한 권리 (사회적 감시 네트워크, 2012)

새해가 되고 첫 달을 맞으면 이런 저런 계획을 잡기도 하고 이런 저런 기대와 흥분으로 설레던 때가 있기는 했다. 그런데 어느 때부턴가 새해 첫 달의 그런 기분이 사라졌고 뭔가 불안한 것으로 바뀌었다. 폭설에 살림살이의 기능이 멎는다거나 꼭두새벽에 철거민이 불타서 죽거나 지구 반대편에서 들려오는 대지진에 마음이 갈라지면서 또 어디서 마음 뒤숭숭한 소식이 들려오지나 않을까 조마조마한 것이 새해의 가슴앓이가 돼버린 것이다. 이런 가슴앓이가 1월에 국한된 것도 아니고 이웃에서의 원전 참사가 내 집 앞 교통사고와 같은 일이 돼버리면서 어느 때고 어디서고 불안불안하니 계획과 기대란 단어가 초등학교 때 동그라미 생활 계획표 그리던 때를 떠올릴 때나 써먹을만한 단어로 여겨지게 됐다.

주변을 산책하다 보면 눈에 들어오는 흔한 광경은 폐업과 새로운 간판이 붙는 일의 반복이다. 다닥다닥 붙은 작은터에 누군가의 퇴직금이나 대출금을 쏟아 부었을 고만고만한 가게가 들어서고 서너달을 버티지 못하고 또 다른 누군가의 그것으로 바뀌는 일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각종 지표의 악화를 신문에서 읽지 않아도 내가 숨 쉬는 거리의 광경이 생방송으로 그것을 전해준다. 두 집 건너 하나가 커피집이요, 떡볶이와 만두집이요, 편의점이다. 두 집 건너 하나 있으면서 다 알만한 상표를 내걸고 있으니 비싼 이름값을 치르면서 바지사장 역할로 종종거리다 털어먹는 사장님들 천지다. 그런 상표조차 내걸지 못한 집은 잡아먹힐 것이 너무도 뻔히 보이는 옹색하고 궁색스러운 모습이다.

그런 가게들 중 하나가 온갖 영화포스터와 유명 대사를 적은 색종이로 벽과 유리창을 채웠던 커피집이었다. 시각적으로 전혀 세련되지 않았지만 영화 카피와 대사를 읽는 맛이 쏠쏠했다. 지나갈 때마다 오늘은 어떤 구절이 붙었나 살펴보곤 했는데, 어느날 맘에 들어온 구절이 “간신히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이다”였다. 어디서 인용했는지를 써놓지 않아서 누가 했던 말인지 모르겠거니와 그 누구의 말이 아니라 주인장의 삶의 철학이라 여겨지기도 했다. 하지만 몇 달을 못 버티고 포스터와 색종이들은 낱낱이 뜯기었고 다른 가게로 바뀌었다. 그 앞을 지날 때마다 “간신히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이라는 말조차 지켜내지 못한 이의 절망을 느낀다.

돈과 시간을 빼앗긴 사람들은 계획도 도둑맞았다. 몇 살 쯤엔 학교를 졸업하고 몇 살 쯤엔 취직을 하고 몇 살 쯤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몇 살 쯤엔 은퇴한다던 계획을 할 수 있는 삶은 드물다. 사람의 삶뿐이 아니라 계절과 기온도 달라졌다. 이때쯤 펴야 할 꽃이 아무 때나 피고 선선해야 할 때쯤 무지 덥고 이때쯤 와야 할 비가 제멋대로 한꺼번에 내린다.

<사회적 감시(Socail Watch) 네트워크>는 전세계 60여개 이상의 나라들에서 왜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지를 감시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의 망이다. 해마다 감시의 결과에 대한 보고서를 내고 있는데, 올해 보고서의 제목이 ‘미래에 대한 권리’이다. 보고서에 담긴 내용들은 익히 알려진 것들이다. 투기금융자본과 무역자유화가 얼마나 많은 삶과 자연을 피폐하게 만들었는지, 지키지 않은 헛된 약속이 얼마나 많았는지, 상황이 얼마나 악화되고 있는지에 대한 유쾌하지 않은 재확인이다. 그럼에도 이 보고서의 제목이 ‘미래에 대한 권리’라는 것에 설레었다. 무슨 근거로 ‘미래’를 말할 수 있단 말인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미래를 말할 수 있다는 것은 우리가 잃어버린 ‘계획할 수 있는 삶’을 회복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극적인 대답은 없었다. 대신에 보여주는 것은 세계 곳곳에서 꿈틀거리며 움직이고 있는 사람들의 행동이다. 그리고 그 사람들을 움직이게 하는 생각이다. 그 생각이란, 계속 성장을 통한 파이 키우기는 오답이라는 것, 이미 대기 중의 자기 몫이라 할 것을 온실가스로 다 채우고도 모자를 만큼 에너지를 써대고 탄소를 배출하는 생활수준이 기준일 수는 없다는 것, 인간의 존엄성을 위한 기본선을 지키는 삶이야말로 기준이라는 것이다. 그런 기본적인 삶은 새로운 자원을 더 써대지 않아도 지금 당장 누구에게나 보장될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의 불안을 벗어날 수 있는 길은 내일을 포기하고 오늘 다 써서 없애 버리는 것도 아니고 투기와 횡재와 약탈을 시샘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것들을 멈추게 하는 것이다. 인간 존엄성의 문턱을 지켜내는 것은 미룰 수 없는 과제이며 그것을 위한 행동이 지금 있어야 미래가 열린다고 말한다. 이 보고서를 읽으면서 “간신히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이다”란 문구가 자꾸 겹쳐지는 것이 우연만은 아닌 것 같다.

미래에 대한 권리; 사회적 감시 네트워크 보고서 2012년 개괄

유엔총회는 2012년 6월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약칭 리우)에서 열릴 정상회의를 소집했다. 이 도시에서는 20년 전에도 역사적인 ‘환경과 발전에 대한 유엔 회의’가 열렸다. 지구정상회의로 널리 알려진 1992년 리우 회의는 ‘지속가능한 발전’이란 개념을 지지하고 기후변화, 사막화, 생물다양성에 관한 국제협약을 승인했다.

그 당시 브룬트렌드 위원회(‘환경과 발전에 관한 세계위원회’로서 그 의장이었던 전 노르웨이 수상 브룬트렌드의 이름으로 알려졌다)는 “지속가능한 발전”을 “자신들의 필요를 충족시킬 미래 세대의 역량을 위태롭게 하지 않고 현재의 필요를 충족”하는 일련의 정책으로 정의했다. … 1992년 리우 회의는 무엇이 “현재의 필요”인지를 상세하게 정의하지 않았지만 1990년대에 이어진 유엔 회의들에서 많은 사회적 약속이 정해졌고, 거기에는 빈곤 철폐와 성평등의 성취가 포함됐고 몇몇 지표와 목표들이 정해졌다. 하지만 바르샤바조약의 붕괴와 소비에트연방의 해체 후, 자유무역과 경제 자유화가 가야할 길이라는 것이 광범위한 합의인 것처럼 보였다.

따라서 세계무역기구(WTO)는 1995년 창설되면서 그 홈페이지에 “국가 시장을 국제무역에 개방하는 것이 지속가능한 발전을 고무하고 기여하며, 인민의 복지를 향상시키고, 빈곤을 감소시키고 평화와 안정을 배양할 것”이라 선포한다. 마찬가지 방식으로, 1989년 수정된 세계은행(World Bank) 협약 조항들의 첫 조항은 “회원국의 발전을 위한 국제 투자를 장려하고 그를 통해 회원국에서의 생산성․생활수준․노동조건 향상을 지원함으로써, 장기간 균형 잡힌 국제무역의 성장과 국제수지 균형의 유지를 증진하는 것”을 주요 목적으로 세운다.

이런 두 개의 강력한 국제기구가 국제무역에 대한 지배와 부채 경제에 부과한 대부 조건을 통해 지난 이십년간 개발도상국들의 경제 정책을 형성해왔다. 이들 기구 둘 다가 무역과 경제 성장을 그들 정책의 핵심 목표이자 회원국들의 지속가능한 발전에 대한 가장 중요한 기여라는데 확실히 합의하고 있다.

그리고 두 기구는 자기들의 목표를 달성했다. 20년 새, 세계 총수출은 거의 다섯 배가 됐고, … 지구상의 평균 거주자들은 소득이 두 배가 됐다.

존엄성의 결여

이런 지표들은 지구상의 자원이 풍부하며, 세계의 70억 거주자들의 필수적인 필요를 보장하기에 충분하다는 걸 보여준다. 하지만 이들 거주자들 중 너무 많은 사람이 굶주림으로 고통 받고 있다. 2010년 유엔식량농업기구의 보고에 따르면, 8억5천만의 사람이 영양실조이며 그 숫자는 식품가격의 상승 때문에 더 늘어나고 있다.

지구적인 결핍 경향을 감시하기 위해, ‘사회적 감시’는 기본역량지표(Basic Capabilities Index)를 개발했다. 기본역량지표는 유아사망률, 훈련된 요원을 동반한 출산 수, 초등학교 등록률로 구성된다. 이런 기본적 복지 지표들은 “사회적 최저치(minimum social floor)”로 고려돼야만 하는 요소들을 제공한다. 이것은 100%여야만 하는 것으로, 그 의미는 어떤 아동도 학교를 못 다녀서는 안 되고, 어떤 여성도 도움 없이 출산해서는 안 되고, 태어난 아이는 살아야 하며 적어도 5살도 되지 못해 죽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런 피할 수 있었던 죽음의 주원인은 영양실조와 가난이기 때문이다. … ‘사회적 최저치’ 밑에는 존엄성의 결핍이 있다. … 하지만 세계는 이런 기본적 목표의 성취로부터 거리가 멀다. 1990년과 2010년 사이에 ‘기본역량지표’는 겨우 7포인트 상승했는데, 후반 10년 동안보다 전반 10년 동안에 조금 더 나아졌다. 이런 경향은 무역과 소득 지표와는 정반대다. 무역과 소득지표는 2000년 이후 더 빨리 성장했다. …

경제가 성장 경향을 보여줄 때조차 사회적 지표가 악화되는 명백한 이유는 국가 내와 국가들 간에서의 불평등의 증가이다. 2011년 국제통화기금(IMF)의 발표에 따르면, 2010년 미국의 일인당 순소득은 1980년대 수준보다 65% 이상이고, 영국의 경우는 77% 더 높다. 같은 기간 미국의 불평등은 지니 계수(Gini points; 가장 흔히 사용되는 불평등 지표. 계수는 0에서 1사이이며 0에 가까울수록 평등하다)가 35에서 40 포인트 이상 상승했고, 영국은 30에서 37포인트 상승했다. 이런 상승은 소득 분배의 심각한 역행을 반영한다. … 비정한 숫자들이 증명하는 바는 번영이 “넘쳐 흐르지”(낙수효과, trickle down) 않는다는 것이다. 경제성장이 빈민에게 이롭고, 떠오르는 조수는 크건 작건 모든 배를 띄우며, 일단 파이를 키워야 파이를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이 상식이었지만 사회 진보의 지표들이 보여주는 경향은 정반대인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또한 ‘사회적 감시 네트워크’의 전 세계 회원들이 보고하는 바이기도 하다.

무슨 대가를 치르더라도 성장?

경제성장을 모든 정부들은 최우선시한다. 일부 정부들은 성장을 핵심적인 정책 우선사항과 동일시한다. 왜냐하면 2008년 시작된 지구적 금융 위기 동안 성장이 아주 둔화되거나 심지어 후퇴했기 때문이다. 일부 국가들은 경제성장을 많이 했다. 상당수 아프리카 국가들인데 그들의 경제성장은 필수품 가격의 상승 때문이다. 그런 성장은 대다수를 이롭게 하는 게 아니다. … 또 다른 성장은 사회적 혜택은 없으면서 환경 파괴의 결과를 낳았다. … 부자 나라든 가난한 나라에서든 똑같이, 지극히 소수만이 세계경제가 아주 잘 나갔을 때부터 2008년 금융위기에 이르기까지 혜택을 얻었다. 그리고 나서 벼락 경기 때 이익을 보지 못한 사람들은 세계의 최고 부자 국가들의 은행들(망하기에는 너무 덩치가 큰)을 구제하기 위해 돈을 낼 것을 요구받았다.

… 경제성장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고 에너지는 ‘사회적 감시’가 비난하는 많은 문제들의 핵심에 있다. 석유 채출은 쉽사리 오염으로 인식하지만, 수력발전, 바이오연료 등 “더 깨끗한” 에너지원이라고 가정되는 것에 문제가 많은 것으로 많은 국가들의 사례 증언들에서 등장했다. … 사막화는 되풀이해서 등장하는 주요 문제이다. 나이지리아에서는 해마다 35만 헥타르의 경작지가 사막으로 변하고 있는데 그것은 가뭄, 지나친 인간 착취, 지나친 방목, 남벌, 빈약한 관개시설의 결과로서 이런 관행들은 사람이 살기에는 너무 힘든 사회경제적 조건에서 파생되는 것이다. 기후변화는 가뭄과 정반대의 재난인 파국적인 홍수의 원인이다. … 기후변화로 가장 심각한 영향을 받은 나라들 중 하나는 방글라데시로 비와 홍수로 이미 식량부족이 야기되고 있고 수백만의 사람들이 “기후 난민”이 되어가고 있다. 모순되게도 방글라데시는 문제를 가장 적게 일으킨 나라들 중 하나이다. 왜냐하면 방글라데시의 1인당 탄소 배출량은 세계에서 가장 적기 때문이다. … 반면 OECD 국가들은 세계 평균보다 훨씬 많이 소비할 뿐 아니라 대기 중 온실가스 축적에 역사적으로 원인이 돼왔으며 대기 중의 그들의 몫을 이미 다 써버렸다고 할 수 있다.

경제, 사회, 문화적 권리를 향유할 기본적인 존엄성의 수준을 실현하는 일이 지속가능성과 양립할 수 없는 게 아니며 기존 자원으로 성취 가능한 것이라면,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윤리적 잘못일 뿐 아니라 지구적 생태에 대한 위협이기도 하다.

지속가능한 발전의 기초인 권리

기본적인 시민‧정치적 권리가 없을 때 시민사회는 평화적으로 조직화할 수 없고, 인민은 자신들의 목소리를 들리게 할 수 없으며 정부 정책의 질은 형편없게 된다. … 하지만 시민사회는 씨알 같은 기회가 생기자마자 놀라운 복원력과 창조성을 보여준다. 이라크에서는 2011년 2월 전국을 흔든 시위가 있었다. 이 시위는 빈곤, 실업, 부패의 철폐를 요구하며 민주적 참여가 예전에 폭력적으로 억압되거나 침묵 당했던 사회에서 이라크 시민들이 시작한 새로운 역할을 보여주었다. 여전히 불안이 드리워져 있고 시민적 자유의 결핍이 심한 상황이지만 시민사회 조직들이 성장하며 더 많은 역할을 하고 있으며 중동지역의 “아랍의 봄”의 민주적 봉기에 결합하고 있다.

케냐에서는 진정한 주권과 시민권을 위한 오랜 투쟁 뒤에 마침내 2010년 획기적인 헌법을 협상하게 됐다. 기본적 권리, 참여, 시민에 대한 책임성을 강조하고 있는 헌법은 평등과 기본적인 사회적 및 경제적 권리를 실현할 경제 건설을 국가의 중심적인 역할로 정의하기 위한 기초를 제공하고 있다. 환경과 관련해서 새 헌법은 깨끗하고 건강한 환경에 대한 모든 케냐인의 권리를 수립하고 있기에 또한 한 단계 전진했다.

마찬가지로 대다수의 지지를 받은 볼리비아와 에콰도르의 헌법 개혁 과정도 원주민의 권리를 강화했으며, “지속가능한 발전”이란 용어 대신에 자신들의 문화에서 영감을 받아 헌법적 차원에서 ‘Pachamama(‘어머니 지구’라는 뜻)의 권리’를 수립했다. 하지만, 사회적 감시자들이 확인하듯이, 이들 권리를 경제성장을 위한 냉혹한 요구의 약탈로부터 지키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투쟁이 요구된다. 불가리아의 감시자들은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에 환경 문제가 아주 중요했다고 회상한다. 냉담만 늘어난 수년이 지난 후, 지금은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환경 문제에 관여하고 있다. 유전자변형작물의 시장 도입과 자연 지대의 보존을 위한 NATURA 2000 프로그램의 이행에서의 몇 가지 결점이 정치 논쟁과 시민 동원에서의 주요 사안이 됐다. 이탈리아에서는 지속가능한 발전이 베를루스코니 정부의 우선순위에서 결코 자리를 차지하지 못했을 때조차, 시민사회에 의해 성공적인 국민투표(원자력 반대, 물과 여타 공공서비스의 강제 민영화 반대, 수상을 법의 지배로부터 면제하는 것 반대)가 진척되어 거의 2천7백만의 이탈리아인이 투표했고 더욱 지속가능한 방향으로 이탈리아를 추동하는 데 성공했다. … 하지만 성공은 아직 당연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수행, 감시와 집행, 인식 향상과 정치적 지지의 보장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 “미래에 대한 권리”는 현재의 가장 긴급한 과제이다. 그것은 물론 자연에 관한 것이지만 또한 우리의 증손자․증손녀에 관한 것이고 우리 자신의 존엄성에 관한 것이고, 세계 70억 남녀와 소년소녀 99%의 기대이기도 하다. 이들은 20년 전에 지속가능성을 약속받았지만 그 대신에 발견한 것은 그들의 희망과 기대가 자신들의 통제를 넘어선 지구적 금융 카지노의 도박 칩 속으로 녹아들고 있는 것이다. … 이보다 더 분명한 메시지는 없다. 사람들에겐 미래에 대한 권리가 있고 미래는 지금 시작되는 것이다.
덧붙임

류은숙 님은 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