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오름 > 인권문헌읽기

[인권문헌읽기] 인권 조약과 상원, 반대의 역사

국제인권법을 받아들이지 않는 미국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 때문에 겨울이 더욱 춥게 느껴진다. 살림살이에 엄청난 한파를 가져올 것이라 하는 법 내용에 대해 알려진 바는 거의 없다. 알려고 노력해도 이런저런 전문용어로 가득 차 있어서 친절한 정부의 설명이 필요할 터인데, 자세한 건 알려주지도 않고 그냥 좋은 것이라는 선전만 가득하다. 어렸을 때 할머니 손잡고 구경한 장터 약장수의 공연 같다. 그냥 좋으니까 일단 한번 잡숴보라는….

나는 통상법에 대해서는 전혀 모른다. 내가 아는 것이 있다면 국제인권법이다. 미국에 대해서 이모저모를 많이 안다고 말할 수도 없다. 하지만 안다고 할 수 있는 것은 미국이 국제인권법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해왔는지에 관한 것이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국제법과 거의 동의어로 쓰이는 국제인권법에 대해 취해온 태도를 보면 한국과 FTA를 맺을 상대가 어떤 상대인지 조금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일단 미국은 주요인권조약을 거의 비준하지 않았다. 대표적으로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사회권규약), 아동권리협약, 여성차별철폐협약, 장애인권리협약 등을 비준하지 않았다. 사회권규약은 1977년에 서명해놓고 30년이 넘도록 비준하지 않았고, 아동권리협약은 거의 모든 정부가 비준해 193개국이 당사국인 국제조약인데 미국은 비준하지 않았다.

주요인권조약을 비준하지 않을뿐더러 인권의 기준을 향상시키기 위한 결의안 등에 반대표를 던지기 일쑤다. 대표적인 예가 ‘발전권 선언’이다. 개별적인 권리목록의 나열이 아니라 인권을 보장할 수 있는 국제질서를 만들자는 취지의 이 선언에 유일하게 반대표를 던진 것이 미국이었다. 반대표를 던질 뿐 아니라 약소국과 따로 쌍무협정을 맺어 이미 만들어진 다자간 조약에 물타기를 하는 경우도 많았다. 마지못해 비준한 몇 개 안되는 인권조약에 대해서는 조건을 잔뜩 단다. 그것을 ‘유보’라고 하는데 구속받고 싶지 않은 조항에 대해서는 자국에 구속력이 없음을 선언하는 것이다.

이상하지 않을 수 없다. 세계인권선언을 만들 때 그 기초위원회의 위원장이 미국의 전 영부인인 엘리노 루즈벨트였고, 그 이후 여러 국제인권조약을 만드는 과정에서 목소리가 높았던 게 미국 대표였다. 국제인권조약을 만들고 교육하는데 열심인 것도 미국에 기반을 둔 인권단체들이다. 하물며 미국 정부는 인권을 국제정치에 이용하며 인권을 이유로 전쟁까지 불사해왔다. 인권을 명분으로 국제정치에 개입하려면 국제인권법을 활용하는 게 당연할 텐데, 정작 미국 자신은 국제인권법의 당사국이 아니다.

십여 년 전 뉴욕 컬럼비아대 인권연구소의 초청을 받아 세계 곳곳에서 온 15명의 인권활동가들과 함께 5개월 여 국제인권법을 공부한 일이 있었다. 우리들의 세미나에는 우리가 읽고 공부해온 국제인권법 책의 저자들이 직접 참여하여 같이 토론을 하곤 했다. 그때마다 나온 질문은 ‘왜 당신들 정부는 국제인권조약을 비준하지 않는가?’, ‘우리한테는 그렇게 국제인권법을 강조하면서 정작 당신들 정부가 비준하지 않는 것은 왜 내버려 두는가?’라는 것이었다. 그때마다 하나같은 대답이 ‘미국법과 상충되는 기준을 받아들이지 않는 전통’ 때문이며 ‘미국의 시민권 기준이 월등하기 때문에 (국제인권법보다) 더 높은 기준을 따르는 것’이라 했다.

그런 대답에 우리 참가자들은 ‘별로 그렇지 않은 것 같은데’라고 씁쓸해하곤 했다. 가령 아동권리협약을 비준하지 않는 이유는 협약이 18세 미만 아동과 청소년에 대한 사형을 금지하고 있는데, 미국의 일부 주에서는 청소년에 대한 사형이 시행되고 있기 때문이었다. 미국법을 우선시 하는 건 맞는데 과연 그게 더 월등한 기준인가란 의문은 계속됐다. 컬럼비아대 프로그램에 따라 뉴욕과 워싱턴디씨에 있는 40여개의 인권관련 연구소와 단체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그때 나는 특별히 ABA(미국변호사협회) 방문을 요청했다. 국제인권조약의 비준을 반대하는 의견을 내온 대표적인 전문가단체였기 때문에 그 이유를 물어보고 싶어서였다. ABA 공보담당 변호사의 답변도 마찬가지였다. 미국법 우선주의의 전통은 주권국가로서 당연한 것이며 미국법이 다른 기준보다 월등하다는 것이었다.

좀 더 상세한 이유를 알고 싶었던 나는 도서관을 뒤져봤다. 그때 찾아 읽은 책이 오늘 소개하는 <인권조약과 상원, 반대의 역사>이다. 1950년대부터 지금까지 유지돼온 국제인권법 ‘반대’의 역사가 기록돼있었다. 최초의 반대는 ‘제노사이드 협약’에서 시작된다. 제노사이드 협약은 세계인권선언이 채택되기 바로 전날 채택된, 2차 대전 이후 최초의 인권조약이다. 제노사이드란 국민‧인종‧민족‧종교적 집단을 파괴할 의도로 집단살해하거나 중대한 위해를 가하는 등의 범죄를 말한다. 2차 대전에서 엄청난 반인도적 행위를 목격했기에 다시는 그런 일이 있어선 안 된다는 취지의 인권조약이었다.

그런데 미국이 이 조약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인종을 이유로 한 학살과 분리를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미국에서 횡행하던 인종 분리를 해체하는데 이용될까봐 두려워한 것이었다. 비준 반대자들은 인종관계의 변화를 가져오는 게 전통적인 미국의 생활양식을 변화시킨다는 공포, 미국법이 아닌 외부의 법으로 그런 강제를 받게 된다는 공포, 각 주의 자율성(특히 남부)이 침해받게 된다는 공포를 자극했다. 더 근본적인 공포는 당대 미국사회를 지배하던 내외부적인 공산주의 세력에 대한 공포였고 국제인권조약의 반대자들은 공산주의에 물든 세계정부(유엔을 말함) 운운하며 그런 공포를 대거 동원했다.

제노사이드 협약에 대한 논쟁에서 만들어진 구도는 모든 국제인권조약에 대한 반대로 이어진다. 유엔에서는 세계인권선언을 만든 이후 선언을 국제조약으로 만들려고 박차를 가한다. 여기서 미국은 엄청난 활약(?)을 한다. 무엇을 위한 활약이었냐 하면 전통적인 미국의 인권관에 따른 시민‧정치적 권리만을 인권으로 인정하게 하거나 그게 아니라면 조약을 두 개로 찢어놓기 위한 활약이었다. 세계인권선언이 한 개이니 그것을 국제조약으로 만들 때도 한 개여야 하는 게 당연했다. 그러나 경제‧사회적 권리에 대한 미국 등의 완강한 반대로 인해 두 개로 갈라서 만들게 됐다. 또 시민‧정치적 권리는 당장 실현해야 할 의무를 가진 강한 권리로, 경제‧사회적 권리는 점진적으로 노력할 정도의 약한 권리로 만드는 것이 미국의 전략이었고 미국은 성공했다.

양대 규약(시민‧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을 만드는 과정에서 미국은 소련과의 대결에서 아주 성공적이었고 전통적인 개인의 권리에 대한 미국의 견해를 보호하는 조항이 대부분 받아들여졌다. 한 가지 예외가 있다면, 인종적 혐오를 고취하거나 전쟁에 대한 선전을 금지하는 조항이, 미국이 원치 않는데 들어갔다는 정도였다. 원하는 바를 이뤘음에도 미국은 두 개로 분리돼 만들어진 양대 인권규약 중에서 ‘사회권 규약’(1966년 채택)은 여태 비준하지 않고 있다. 자기 뜻에 맞는 ‘시민‧정치적 권리규약’(1966년 채택)을 비준한 것도 한참을 미적거린 후(미국 비준 1992년)였다.

2011년 현재에도 미국의 주요 인권조약 비준기록에는 변화가 없다. 그래서 걱정이 된다. 통상법에 대해서는 끔찍하게 강조하면서 비준하고 당사국이 된 국제인권조약의 실현에는 별 관심 없는 정부와, 자국법 우선주의를 끔찍하게 강조하면서 국제인권조약에 가입조차 하지 않는 정부가 만나 맺은 협정이 인권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걱정되는 건 당연하지 않을까?

인권 조약과 상원, 반대의 역사(Human Rights Treaties and the Senate: a history of opposition), 나타리 헤브너 카우프만, 노스캐롤라이나대학 출판부, 1990

공포의 정치

인권조약에 반대하는 행동은 당대(1950년대)의 정치 환경을 반영했다. 국내외에서의 공산주의에 대한 공포, 공산주의가 지배하는 세계 정부에 대한 공포, 그리고 국내의 변화, 특히 인종관계의 변화에 대한 공포를 말한다. … 이런 공포들이 인권조약이 도입될 때의 상황이었다. 보수주의자들이 아주 자주 유창하게 말하는 것이 전통적인 미국의 자유와 평등의 이상이었기에 국제인권조약을 받아들일 것이라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 인권조약들은 파괴적인 변화를 초래할 모든 공포의 상징으로 보였다.

제노사이드 조약

제노사이드 조약은 미국 상원의 동의를 구하기 위해 의회에 전달된 최초의 유엔 인권조약이었다. 처음에는 수백만의 사람들을 대표하는 광범위한 조직들의 압도적 지지 때문에 통과가 보장된 것으로 보였지만, 조약은 곧 상원의 안건 가운데 가장 논쟁적인 항목이 돼버렸다. … 공산주의와 세계 정부에 대한 당대의 공포에 의존하는 한편, 조약은 각 주의 권리를 폐기하게 될 것이고, 남부에서의 인종분리와 인종관련 범죄에 대한 연방 정부의 간섭을 초래할 것이라고 주장함으로써 반대자들은 제노사이드 조약과 모든 인권조약들에 ‘비-미국적’이란 꼬리표를 붙이는데 성공했다.

… 1950년 12월의 <의회 다이제스트>에 실린 기사에 반대자들의 전략이 반영돼있다. 그 기사는 말하기를 “제노사이드 조약은 미국에서 전통적으로나 법적으로나 각 주 안에서 다뤄져온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 따라서 이런 질문이 제기된다. 제노사이드 조약, 그리고 지금 만들어지고 있는 다른 유사한 인권조약들은 ‘국제조약에 의해 다스려지는 정부’를 향한 행보인가? 대답과 상관없이, 이런 질문을 제기하는 것은 전적으로 타당해 보인다.”

… 이런 식으로 질문함으로써 입증의 부담은 조약의 반대자들이 아니라 찬성하는 쪽이 지게 돼버렸고, 이것은 조약 반대자들의 완전한 승리의 지표이다. … 조약 비준의 상황을 역전시키고 논쟁의 용어를 바꿔낸 반대자들의 성공이 제노사이드조약과 그 후 이어진 인권조약들의 역사에 초석이 됐다.

양대 인권 규약

미국은 양대 인권 규약을 만들 필요성을 압박하고 실제로 만드는데 능동적이었고, 미국 대표들은 규약을 기초하는 과정에서 소련의 무수한 권고와 수정안들을 좌절시키는데 매우 성공적이었다. 결과적으로 미국은 자기가 원하는 바대로 두 개로 분리된 규약을 얻었다. 하나는 전통 서구식 형태의 시민적‧정치적 권리를 규정했고 권리이행을 즉각적으로 구속하는 의무를 정했다. 반면에 다른 하나, 경제적‧사회적 권리는 “점진적 실현”의 언어를 강조하고 있다. 미국이 원하는 바대로 됐음에도 불구하고, 반대자들은 이 규약들이 너무 위험해서 미국체제의 안전을 회복하려면 (방법은) 헌법 개정 뿐이라고 인식했다.

존 브리커 상원의원의 주도로 헌법개정전략이 전개됐고, 개정의 첫 단계를 통과하는데 필요한 2/3에서 한 표가 모자라긴 했지만 광범위한 지지를 끌어냈다. 미국 상원 안팎에서의 논쟁 속에서 국제인권조약에 반대하는 초기 논리들은 확장되고 다듬어졌다. … 인권조약에 대한 미국의 강력한 역사적 지지와 조약 기초 과정에서의 주도적 역할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왜 미국이 그런 조약을 비준하지 않는지에 대해 의아해할 것이다. 존 브리커 개정안에 대한 청문회는 이런 질문을 효과적으로 돌려놨다. 인권조약의 찬성자들은 수세적인 위치에 놓였고 적대적인 법적 및 정치적 비판에 대응해야만 했다. …

유보

유보(국제인권조약을 비준할 때 구속받고 싶지 않은 조항에 대해서는 자국에 구속력이 없음을 선언하는 것)가 초창기부터 인권 조약의 핵심 요소가 돼버렸다. 미국 국내의 인권법의 우월성을 출발점으로 하면서, 유보와 기타의 부속조건을 취하는 것이 국제조약을 채택하여 미국법에 가져올 변화를 거부하는 전략이 됐다. 미국 법에 변화를 요구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어떤 조항도 미국의 부속조건들에 의해 중화돼야 했다. 이런 전략적 행동의 한 가지 뛰어난 사례가 카터 행정부가 양대 인권 규약에 제시한 일련의 추가사항이다. 자유 언론에 대한 헌법적 보호와 갈등한다는 한 개의 유보가 아닌, 부속조건들의 패키지는 이들 규약에 반영된 국제적 인권의 합의를 조롱거리로 만드는 것이다. … 정치적 문제의 토론을 제약하기 위해 법률의 틀을 사용하는 것은 인권조약에 대한 반대의 성격을 위장하는 것이며, 미국 자신의 가치를 반영하고 있는 국제적 합의의 평화적 추진을 위해 미국이 이용할 수 있는 최상의 장치를 훼손하는 법적 처방으로 귀결된다.

결론

국제인권조약을 미국이 계속 비준하지 않는 것의 함의는 무엇인가? 부분적으로, 그 중요성은 상징적이다. 미국은 인권에 대한 지도력을 스스로 자랑스러워 해왔다. 인권에 대한 국제적 정의를 비준하길 거부하는 것은 자국중심주의 또는 무관심의 인상을 준다. 인권을 침해했다고 하는 다른 정부들에 대한 미국의 비판은 인권조약을 비준하지 않음으로써 손상된다. 인권침해국이 미국의 기준에 의해 정해진다거나 또는 미국은 예외로 하고 외국의 정부들에게만 적용될 수 있는 국제기준에 의해 정해진다고 암시하고 있는 꼴이다.

상징을 넘어 실체적인 함의도 있다. 미국은 현 국제 체제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국가 중의 하나로서 인권조약의 당사국이 되지 않음으로써 국제인권운동을 해치고 있다. 미국의 비준은 구체적으로는 국제인권에 대한 일반적으로는 국제법에 대한 지지의 신호가 될 것이다. … 인권조약의 당사국이 되지 않음으로써 또한 미국은 조약에 의해 설립된 인권기구들에도 참여하지 않고 있다. 인권기구들은 국가들의 인권 실천을 모니터하고, 조약 용어들의 의미와 함의를 지속적으로 해석하고 있다. 미국은 자신의 인권개념과 인권법을 배양하고 미국의 전문가들이 국제인권의 이론과 실천에 대한 발전하는 논쟁에 기여할 중요한 기회를 놓치고 있다.

최종적으로 인권조약을 비준하지 않음으로써, 미국은 미국 자신의 인권법과 관행을 재검토하기 위해 중요한 관점과 기준의 가치를 떨어뜨리고 있다. 인권조약은 미국법의 일부가 됐고 공적 토론에서나 법원에서 인용될 수 있다. 인권법의 주요 목적 중의 하나는 정부의 행위에 대한 지침과 비판을 제공하는 것이다. 인권조약은 미국 내에서 전방위적인 정치적 스펙트럼에서 인권의 이행을 진전시키려고 노력하는 국내인권단체들에게 중요한 근거가 될 수 있다. 불필요한 유보 없이 인권조약이 수용되고 다른 법령을 기다리지 않고 즉시 시행된다면, 인권조약을 특별하게 이용하는 것은 대부분 유용할 것이다. 이런 태도로 인권조약을 비준한다면 미국의 법과 관행을 검토하는데 인권조약의 조항들을 인용하는 국내 단체들의 역량이 강화될 것이다.

… 미국 국내법의 깊고 광범위한 변화와 지역 및 국제적 장에서의 인권의 우위에도 불구하고 인권조약에 대한 반대 주장은 오늘날에도 여전하다. 인권조약에 대한 미국의 계속된 방임은 미국 시민의 대부분과 미국의 많은 동맹들을 혼란스럽게 한다. 하지만 여전히 국제인권조약을 비준할 것 같지는 않다. 존 브리커 상원의원의 인권조약을 “묻어버리자”는 개인적 운동은 계속됐다. 1971년에 그는 제노사이드 협약의 청문회 동안에 상원의 외교관계위원회에 “나는 미국 헌법과 권리장전이 허접 쓰레기가 되는 날을 살아서 보고 싶지 않다. 이 국제인권조약이 비준된다면 그런 과정이 시작될 것이다.”라고 썼다. … 인권조약에 대한 지속적인 반대, 지속적인 방임은 인권조약 묻어버리기 전략의 성공이 계속되고 있다는 증거이다.
덧붙임

류은숙 님은 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