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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네 방앗간] 결혼 못하는 것이 청년의 비극인가

[편집인 주] “여자들이 돌려 말하기보다 분명하고 직설적으로 말하면 그때마다 세상은 조금씩 바뀐다(몬터너 캐츠)”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요즘 여자들이 너무 드세다’는 언설은 변화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여성들의 목소리에 붙이는 딱지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여자들이 있다. 여성주의 단체인 언니네트워크 활동가들이 새롭게 시작하는 [언니네 방앗간]이라는 꼭지는 ‘다르게 생각한다면 모여서 입방아부터 찧어볼까?’ 하는 생각에서 출발한 연재이다. 수다처럼 마냥 유쾌하지만은 않지만, 여성들이 꿈꾸는 새로운 삶에 대한 열망이 두려움이나 어려움으로 귀결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선은 입방아부터 찧고 보겠단다. 망설이는 것도, 가끔씩 멈춰서는 것도 괜찮지만, 여성주의적 개입과 실천이 입방아로부터 시작된다는 유쾌한 믿음으로 여성주의 시각에서 다양한 이슈를 이야기할 예정이다.


최근 <비혼 시대>라는 제목의 한 교양프로그램이 전파를 탔다. 한국방송(KBS1)에 새로 편성된 <지식콘서트 내일>의 1회차 테마였다. 여기에서는 ‘비혼 현상’의 사례로 ‘결혼하고 싶어도 꿈꿀 수 없다’는 이른바 ‘불혼不婚’이 등장한다. 비혼 운동을 해온 언니네트워크 역시 취재에 응했다. 만약 이 프로그램이 ‘고독사(1인가구로 살다가 아무도 모르게 죽어 뒤늦게 발견되는 것)’로 시작해서, ‘나의 신랑, 나의 신부. 삶의 동반자를 맞는 순간, 우리 생애 가장 기쁜 날. 행복하게 잘 살겠습니다.’라는 멘트가 나오는 결혼식 장면으로 마무리되는 줄 알았다면 취재를 완강히 거부했을 것이다.


2000년대 이후 사회적으로 ‘비혼 여성’들이 조명되기 시작했다. ‘가족 안의 어머니, 아내로 머무르고 싶지 않다’, ‘가족 내에서의 성별분업으로 인해 여성들은 일-돌봄이라는 이중부담을 떠안는다’ 등 가족을 둘러싼 페미니스트 분석부터, ‘모두가 결혼해야한다’는 전제를 무너뜨리고 결혼제도 밖의 삶을 지지하고자 하는 여성운동, 그리고 명절 때 부모님 댁에 가고 싶지 않다는 비혼 여성들의 ‘앓이’까지. 여전히 사회는 결혼하지 않는 여성에 대해 관용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한 남성이 돈이 없어 결혼을 꿈꿀 수 없다며 스스로를 ‘불혼不婚’이라 일컫고, 이것이 전파를 탔을 때 ‘이런 방식으로 비혼 상태를 동정 받는 것은 참 편리하다’는 생각에 허탈했다. 결혼을 하고 싶어도 못한다는 이 계급적인 불안은 ‘계급적’이기만 한 불안일까.

불혼不婚이라는 용어는 ‘동성동본불혼’이라는 제도에서 처음 쓰였다. ‘비혼’이라는 용어가 등장했을 때, 게이-레즈비언과 같은 동성애자의 경우 비혼 상태로 읽히지만, 파트너가 있어도 결혼이 인정되지 않는 ‘불혼’에 가깝다는 비평이 있었다. (모든 근대적 결혼제도는 동성불혼이라는 불문율로 시작된다.) 이때까지 불혼은 혼인에 관한 제도적인 금지를 의미했다. ‘삼포세대(불안정한 미래 때문에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청년세대)’는 교육, 고용, 복지의 측면에서 미래를 전망할 수 없는 암울한 처지가 된 청년세대를 명명, 위로, 조소하는 말로 쓰이고 있는데, 이로부터 최근 사용되기 시작한 ‘불혼’이라는 새로운 개념이 형성되었다.

경향신문에서는 연재기획 <복지국가를 말한다>의 한 꼭지로 “과부하 걸린 한국의 가족(2011.5.11)”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게재했다. 현재의 젊은 세대는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하게 되는 이른바 ‘삼포세대’가 되며, 이러한 ‘가족의 종말’이 가속화되면 일본과 같은 ‘무연無緣사회(가족, 친구 등 모든 인간관계와 떨어져 홀로 사는 현상을 일컫는 일본의 사회 현상)’로 귀결될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을 이야기하고 있다. 기사에서는 『누구도 돌보지 마라』의 저자 엄기호의 말을 다음과 같이 인용하고 있다. “한국도 가족을 구성할 수 있는 계층과 없는 계층으로 나누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불안 때문에 인생 예측이 안 되니 동반자적 사랑으로 인생을 기획한다는 것도 쇠퇴하고 있죠.”

한국 사회의 새로운 복지 패러다임을 논의할 때, ‘가족의 종말’을 이야기하는 것은 꼭 필요하다. 남녀의 성별분업을 전제로 한 가족 중심의 복지를 지향하는 것을 넘어 결혼 제도가 무력화되고 있는 계층 및 개인들의 재생산 문제를 논해야할 시점이다. 하지만 더 이상 결혼과 출산을 하지 않는 것이 무연사회의 징후로서 특별히 문제적인 현상으로 읽혀야 하는가? 빈곤층의 경우 가족 의존과 유대를 기대할 수 없는 현재의 비극이, 특별히 청년의 관계적 욕망(특히 ‘결혼’)을 배반하고 있다고 이야기되어야만 하는가? 이전 사회에서는 ‘동반자적 사랑으로 인생을 기획하는 것’이 누구에게나 가능했다는 말인가?

가족 내의 성역할, 성별 임금 격차, 비정규직의 여성화 등 여성들은 생계와 돌봄의 이중부담을 안고 있다. 정년 없이 일하는 어머니, 노부모를 부양하는 비혼 자녀, 맞벌이 부부의 가사 및 돌봄 노동을 맡는 어머니, 치열한 경쟁 속에 교육기간이 끝날 줄 모르는 30세 이상의 자녀를 뒷바라지하는 어머니, 남편보다 시어머니를 더 오래 돌보는 고령의 며느리 등 여성에게 돌봄이란 언제나 평생과제였다. 만약 이전의 한국 사회가 무연사회가 아니라 ‘유연’사회라고 간주한다 할지라도, 그것은 여성의 돌봄 역할에 의존해온 사회였다. 게다가 2010년 고용노동부 고용형태별조사에 따르면 여성임금 평균은 147만원으로 남성임금 평균인 236만원의 62%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여성의 맥락에서 ‘삼포세대’의 경제사회적 처지는 그다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전 사회적으로 여성에게 주어지는 자원과 기회 자체가 적었기 때문에, 가족임금을 받는 남성 가장과 연계하는 ‘결혼’을 주된 생활방식으로 삼지 않고서는 살아가기 어려웠던 것이다. 자의․타의․어쩌다 결혼하지 않는 여성들이 대거 출현하게 된 것도 2000년대에 와서야 일어난 현상이다. 이는 여성들이 남성에 비해 ‘살만해졌기 때문’이 아니라 경제난과 복지 공백 속에서 개인의 재생산과 생애전망을 고려한 결과이다. 여성의 역할을 통해 가족 수명을 연장해온 해묵은 체제가 무력화되고 있는 징후 앞에서, ‘불혼’을 애도하는 것은 어쩌면 남성의 목소리로 공명하고 있는 울림일지도 모르겠다.

청년세대/삼포세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지표로 미혼율과 출산율이 빠지지 않는다. 이를 청년세대의 아픔과 ‘꿈의’ 좌절로 읽는 것과 성별분업, 여성의 부담으로 이야기 되는 것 사이에 얼마나 먼 길이 놓여 있을지를 천천히 생각해보게 된다. 홀로 방안에서 죽어갔던 노인들은 생전에 결혼하지 않거나 자녀가 없는 사람들이었을까. 오늘날의 사건과 불안은 바로 가족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고 이야기해야한다. 결혼, 출산을 하지 못하는 상황을 애도하기보다 이미 결혼, 출산, 재생산의 기능을 전담해온 지금까지의 ‘가족’, 바로 그곳을 애도하는 것으로부터 이전과는 다른 사회를 기획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덧붙임

더지님은 언니네트워크(www.unninetwork.net) 활동가입니다.
* 이 글은 여성주의 커뮤니티 사이트 ‘언니네’(http://www.unninet.net/)의 채널[넷]에 동시 연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