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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범한 가족이야기] 공동체와 비혼 여성

‘우리 사회에서 정상 가족이 얼마나 될까’ 꽉 짜여진 가족 중심 사회의 틈새에서 ‘비정상 가족’들이 되돌려 묻는다. 가족, 바로 그 안에서 일어나는 충돌과 변화를 발견해나가면서 가족의 경계와 의미를 다시 묻는 ‘비정상 가족’들은 그래서 더 ‘비범하다.’ <가족구성권연구모임>은 변화된 가족-공동체-관계를 모색하면서, 성정체성과 성적 지향, 혼인 여부, 국적, 장애, 나이, 빈곤을 가로지르며 가족과 공동체 사이 어디 즈음을 거닐고 있는 비범한 가족의 이야기를 전한다.

* 더 많은 <비범한 가족이야기>는 www.family-b.net에서 볼 수 있다.

‘공동체’는 종종 의미 있는 관계-삶 모델로 여겨진다. 여성운동 혹은 여성주의자들 역시 혈연 가족, 파트너십 혹은 개인 안에만 갇혀있지 않은 호혜, 연대적 관계, 돌봄과 나눔, 비도시에서의 자연 친화적 삶을 맺고 살아가는 것에 대한 이상을 가지고 있기도 하며, 종종 현실화하는 이들을 만나게 된다. 비혼 여성들 역시 많은 경우 ‘공동체’에 그 꿈과 설렘을 가지고 있다.

대안사회의 키워드 중의 하나인 ‘공동체’는 현재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을까. 이미 몇몇 대안공동체들이 정착 과정에 있는 가운데, 유독 ‘비혼여성공동체’에 주목하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포털사이트에서 ‘공동체’에 관한 이미지를 검색해보니 관공서의 회의실에서 양복쟁이들이 잔뜩 모여 있는 사진들로 가득했다. 이는 ‘공동체’가 지방정부의 의미 있는 사업 아이템이 되었다는 것이며, 이는 귀농, 귀촌을 유인하거나 돌봄의 부족, 젊은 세대의 공백을 회복하려는 취지, 지역 특성화 및 상품화와 연관되기도 할 것이다. 주민센터나 복지관의 실적내기용 이벤트인 경우도 많이 있다.

한편, 인간 중심적 개발주의에 대한 생태적 저항으로서 귀농 및 농촌지역의 공동체가 많이 탄생한 듯하다. 그 외 도시지역에서는 ‘돌봄’의 문제가 공동체의 산파 역할을 했던 것 같다. 마포구에 소재한 성미산마을의 경우 공동육아를 위한 어린이집 운영이 마을의 첫 시작이 되었다고 회고한다. 생태주의공동체건 돌봄공동체로 시작된 마을이건 어린이집, 학교, 어린이 도서관 등은 구성원들을 이어주는 마을의 핵심적인 공간의 하나로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마을공동체는 ‘가족의 기능’을 사회화하기 위한 고민을 발전시켰다. 노인이 있다면 돌봄과 봉양 역할, 아이들이 있다면 육아 및 교육기능을 사회화하는 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실질적으로 든든한 지지기반이자 안전망이 될 것이다. 하지만 자녀가 없는 3, 40대의 비혼 여성은 가족의 기능을 사회화한 마을공동체에서 어떤 역할을 통해 구성원이 될 수 있을까.

[사진: 지난 <정상가족 관람불가> 전시회에서 소개된 비혼여성공동체 엉망진창 시스터즈(왼쪽)와 비비(오른쪽)]

▲ [사진: 지난 <정상가족 관람불가> 전시회에서 소개된 비혼여성공동체 엉망진창 시스터즈(왼쪽)와 비비(오른쪽)]


성미산마을의 유창복 대표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었다. “성미산이 가능했던 또 하나의 이유는 육아라는 특수성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처음엔 점잖게 만났지만 아이 문제를 두고 그럴 수가 없거든요. 오장육부를, 자기 욕망을, 속을 다 보이는 겁니다. 그런데 안 맞는다고 쉽게 이사를 갈 수는 없어요. 방 빼는데 1년 반 걸리지, 어린이집 새로 찾아야지, ‘앓느니 죽지’ 이러면서, 나와 다른 사람을 인정하고 공존하는 방법을 배워갔습니다. 협동이 유지되게 하는 소통을 제대로 익힌 겁니다.” (2012.3.2 짱가의 마을살이 인터뷰 녹취록 중)

마을공동체에서 구성원들이 자기욕망을 사회적으로 해소하고, 구상하고, 연대하는 치열함이 발생하는 지점으로서 ‘공동육아’를 핵심적인 계기로 삼고 있다. 이는 마을이 ‘가족 중심적’이어서라는 비평 이전에, 마을이라는 곳에서 비슷한 삶의 조건이나 욕망을 가진 구성원들을 만났기 때문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비혼여성들이 공동체와 만나기 위해서는 적어도 ‘비슷한 지위, 고민과 연대’라는 측면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성미산마을의 경우 ‘불쌍한 사람 돕자’는 방식이 아니라 ‘필요한 사람이 만든다’는 자치가 중요하기에 비혼자들이 직접 나서 <비혼자들을 위한 공공주택>을 만들고 있다고 한다. 마을공동체가 하나의 단일한 집단이 아니기에 비슷한 사람들끼리 작은 네트워크들을 직접 만드는 것은 마을을 풍성하게 만드는 일일 것이다.

비혼 여성 1인 가구의 관계-삶의 대안적 모델에 관한 박원순 서울시장의 구상을 전해 들을 기회가 있었다. 젊은 비혼 여성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세대의 여성들, 여성독거노인 등이 함께 어울려 사는 세대통합형 주택을 통해 비혼 여성들이 다른 세대와 관계 맺고, 여성독거노인에게 돌봄을 제공하는 돌봄의 선순환이 핵심적인 아이디어였다. ‘멋지다’는 생각이 먼저 들면서도 비혼 여성들은 ‘가족’을 이루지 않기에 사회적으로 단절된 존재라는 가정, 비혼 여성들이 구성하고 있는 친밀성을 간과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양육자’ 역할을 담당하지 않는다고 생각되는 20, 30, 40대의 비혼여성들은 어떻게 공동체라는 상상과 관계 맺을 수 있을지 고민한다.

동시에 공동체를 꿈꾸는 비혼 여성에게도 질문을 던져본다. 공동체를 ‘한 주택에 같이 살기’로만 떠올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공동생활’이라는 것을 어떻게 상상하고 있는지, 공동공간의 윤리를 어떻게 만들지, 친밀성/성적친밀성이 배제된 호혜관계가 자신의 바람과 부합하는지, 서로의 경계를 이해하면서 친밀감을 형성해나갈 수 있는 인내심이 있는지, 연애 또는 파트너와 함께하고자 하는 조건과 욕망은 ‘공동체’ 욕망과 어떻게 양립 가능할지, 시간과 사건, 공감과 갈등을 통해 만들어진 ‘공동체’라는 우연적인 덩어리들은 어떤 마음들로 가능했는지에 대해 고민이 필요할 것 같다.
덧붙임

더지님은 언니네트워크(www.unninetwork.net)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