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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범한 가족이야기] 소수자의 가족구성권을 말하다

‘우리 사회에서 정상 가족이 얼마나 될까’ 꽉 짜여진 가족 중심 사회의 틈새에서 ‘비정상 가족’들이 되돌려 묻는다. 가족, 바로 그 안에서 일어나는 충돌과 변화를 발견해나가면서 가족의 경계와 의미를 다시 묻는 ‘비정상 가족’들은 그래서 더 ‘비범하다.’ <가족구성권연구모임>은 변화된 가족-공동체-관계를 모색하면서, 성정체성과 성적 지향, 혼인 여부, 국적, 장애, 나이, 빈곤을 가로지르며 가족과 공동체 사이 어디 즈음을 거닐고 있는 비범한 가족의 이야기를 전한다.

* 더 많은 <비범한 가족이야기>는 www.family-b.net에서 볼 수 있다.

(이 글은 언니네트워크/가족구성권연구모임이 주최한 <정상가족 관람불가>展 전시발표회에서 발표된 글입니다. <정상가족 관람불가>展은 ‘가정의 달’ 5월을 맞아 기존 가족 중심의 사고의 틀을 깨고 새로운 가족구성권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자리로 기획되었습니다.)

정상가족과 비정상가족

‘정상가족’은 사회구성원들의 역할과 위치(아버지, 어머니, 자녀, 남편, 아내 등)를 상상하는 데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관념이다. 나이와 젠더에 따라 부여되는 일종의 선입견과 같은 것이며, 때로는 제도나 국가적 캠페인을 통해 규율되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모두가 그러한 관념에 들어맞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니며, 여기에는 ‘소수’라 하기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관계되어 있다. 한 개인과 그 관계를 ‘가족적 좌표’를 통해 상상케 하는 패러다임으로서의 ‘정상가족’을 변화시킬 필요가 있다.

[사진: <정상가족 관람불가>展 포스터, 전시회는 5월 26일부터 6월 1일까지 대학로갤러리에서 열린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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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정상가족 관람불가>展 포스터, 전시회는 5월 26일부터 6월 1일까지 대학로갤러리에서 열린다]


그렇다고 세상에 정상가족이 관념으로만 존재한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결혼-출산-자녀양육-자녀 결혼이라는, 30년 단위의 세대 재생산 및 생애 주기를 따르는 이들이 다수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전시를 열면서 ‘저 같은 정상가족은 못 보는 건가요?’라는 농담을 듣게 된다. 그리고 자신과 같은 정상가족도 힘들다며 불만을 토로한다. 어떤 분은 이혼하고 아이를 돌보느라 애로사항이 많은데 위로받을 곳도 없고 이 전시회에서 낄 자리가 없다고 속상해하셨다. 다양한 가족사를 가진 이런 사람들이 자신을 ‘정상가족’이라고 생각한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정상가족과 비정상가족은 항상 연결되어 있다. 이혼, 재혼, 한부모 가족은 모두 정상가족에서 파생된 가족이다. 미혼모가족, 동성애, 트랜스젠더 가족 역시 어떤 정상가족의 자녀, 형제, 자매들의 이야기일 수 있다. 「언젠가 싱글」이라는 책 제목도 있듯 ‘독거노인’ 역시 한때 정상가족의 구성원들이었다. 독거노인의 고독사(孤獨死) 문제가 ‘비혼’ 현상의 결과라 말하는 것은 얼마나 넌센스인가. 정상궤도를 걷지 않으면 외롭고 불안한 미래를 맞이할 것이라는 일종의 협박과 같은 보수 담론은 ‘비정상 가족’들의 불행을 눈감을 뿐만 아니라 정상가족 역시 불행을 예측할 수 없도록 둔감하게 만든다. 우리들은 모두 전 생애에 걸쳐 정상가족과 비정상가족을 넘나들 것이기에 ‘비정상가족’의 희로애락을 더 많이 알리고 대비하는 것이 모두의 미래기획에 기여하는 일이라 생각한다.

# <정상가족 관람불가>展 전시발표회에서는 자세히 들여다봐야 보이는 10개의 가족/공동체의 이야기를 전한다.

■ 동성애자 파트너십
성적친밀감은 관계적 욕망의 한 형태이다. 이는 협력과 신뢰관계, 돌봄과 의존 관계를 구축하는 주요한 요소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동성애자의 관계적 욕망과 가족구성권리는 근본적으로 부정된다. 동성애자 파트너 간의 친밀감-동성애 혐오 사회 안에서의 대응방식을 중심으로 세 커플의 각기 다른 이야기를 보여준다.
레즈비언 파트너십ⅰ: 은재와 희수는 함께 바를 운영하다 만난 지인들과 함께 2011년 가을 자신들의 결혼식을 올렸다. 그들의 일터인 bar는 그들의 미래를 준비하는 공간이자 사회적 네트워크이다.
레즈비언 파트너십ⅱ : 꾼, 기이라 불리우는 그녀들은 각각의 원가족 및 주변에 커밍아웃했으며 현재 동거 중이다. 동성애자 파트너십을 제도화하기 위한 싸움을 꿈꾸고 있다.
게이 파트너십 :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의 전/현 대표를 지낸 그들은 언론을 통해서도 소개되었다. 현재 거주하고 있는 북아현동으로 모여드는 주변인들과 함께 즐거운 ‘게이동네’를 꿈꾸며 살고 있다.

■ 트랜스젠더 파트너십
FTM (성전환남성)으로 살아온 그는 노모를 모시며, 17년간 아내와 함께 살아왔다. 어디서든 평범한 부부로 보이는 그들이지만 성별변경 및 이를 위한 외과적 성전환을 해야만 혼인신고를 할 수 있다.

■ 비혈연 공동체
전주 비혼여성공동체 비비 : 7명의 여성이 ‘비혼여성공동체 비비’라는 이름으로 10년을 함께하고 있다. 각자의 공간과 공동의 공간 ‘여성생활문화공간 비비’를 함께 마련했다. 10년이라는 시간의 무게감과 그들이 차곡차곡 쌓아온 흔적들을 만나본다.
엉망진창 시스터즈 : 당연히 주어지는 가족이 아니라 각자가 선택한 가족으로서 ‘가족되기’에 대한 치열한 노력과 적극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다. 헤어짐조차도 이들에겐 실패가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며, 함께 만들어온 역사를 자양분으로 삼아 변화와 성장의 기회를 스스로 만들고 의미화 하고 있다.
꾸러기 395 : 여러 명이 한집에 모여 사는 만큼 수많은 고민, 이야기, 노력, 약속, 욕망, 실천과 에너지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소용돌이치고 있는 그 공간의 그 사람들을 만나본다.

■ 가족의 경계에 선 여성들
비혼모 지순 : ‘아버지 존재를 주는 것’ ‘과거의 실수를 만회하는 것’은 아이를 위한 미혼모의 필수적인 노력으로 간주된다. 아이가 아닌 여성 개인의 신념과 자율성을 이유로 결혼을 거부하거나, 가족으로부터의 도움을 마다하는 것은 ‘이기적’이라는 비난을 받는다.
비혼 여성과 반려동물 : 결혼과 출산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비혼여성이 반려동물과 함께 산다는 것은 ‘모성’을 수행하지 않는 소비적인 생활형태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다.
장애여성 지원 : 장애로 인해 일방적으로 가족에 ‘의존’할 것이란 시선. 가사 및 양육 등에 대한 활동, ‘보조’와 가족의 경계 등 중증장애여성에게 주체적인 가족 만들기란 끝나지 않은 미션이다.

(1) 가족관계 형성, 그 이후 : 비혼모와 장애여성

한국여성정책연구원과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의 2009년 조사 결과, 미혼모들이 주변인들로부터 가장 많이 받는 조언은 ‘결혼해야지 않겠냐’는 것이라고 한다. ‘아빠라는 빈자리’ ‘미완성의 가족’이라는 시선과 인식은 미혼모가 미혼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아이에게 불행이 될 것이라는 염려를 끊임없이 반복하고 있다. 미혼모의 애로사항은 미혼부의 양육 역할을 강제하는 것, (정상가족도 마찬가지 상황인) 여성의 일-양육의 이중부담을 개선하는 차원에서 고민되어야 한다. 미혼모가 ‘정상적인 가족 틀’을 선택해야 하는 개인적 차원으로 고민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2000년대 초반, 장애여성공감과 여성영상집단 움이 제작한 다큐멘터리 <거북이시스터즈>가 나왔다. 세 장애여성의 독립을 다룬 다큐멘터리로 장애여성의 가족으로부터의 독립, 주체성과 연대, 사회적 제약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후로도 장애여성의 독립은 중요한 화두가 되어왔다. 장애로 인해 사회적 보조를 요청할 수밖에 없지만, 그것이 ‘의존’으로 의미화되면서 한 개인으로서의 주체성과 독립성을 실현해나가기 어려운 조건에 놓이기 때문이다. 사실, 전시 기획을 하면서 <거북이시스터즈>와 같은 장애여성공동체를 찾아보려고 했다. 하지만 이전보다 장애여성공동체를 찾기 어려웠고, 공동체를 경험했던 여성들 몇몇은 결혼을 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장애여성공동체라는 실험이 지속되거나 다른 형태로 나아가지 못했던 조건과 제약을 살펴볼 필요가 있는 동시에(이 과제는 이후로 미루고), 혼인을 통해 제도적 가족 안에 속해있더라도 여전히 장애여성이 가족구성원의 지위를 형성하는데 ‘다른’ 이야기가 있다는 것에 주목하려고 했다.

중증장애여성 지원씨는 장애를 이유로 ‘엄마’라는 지위를 인정받기 어려웠다. 세 식구가 길을 가거나 교회에 나가면 종종 딸에게 다가와 “엄마 어디 있니”라는 말을 하는 이들이 있다고 한다. 지원씨의 활동보조인은 지원씨 딸의 양육을 주로 도맡게 되며, 지원씨의 활동보조는 주로 남편이 하게 된다. 지원씨는 이 집의 일과 양육이 자신의 생각과 판단으로 돌아가는 부분이 분명 있지만, 장애여성이기 때문에 가족의 돌봄을 받기만 하고 돌봄을 수행하는 사람으로 인식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양육역할의 공백이 지원씨의 장애로부터 발생한다는 편견의 결과이기도 하다. 만약 지원씨가 남성장애인, 아내가 비장애인이라면 남성장애인의 활동보조인은 양육의 역할을 ‘보조’하게 될까.

장애인은 또 다른 제도적 난관에 처한다. 지원씨의 경우 부부 두 명이 모두 기초생활수급권자이다. 하지만 이 중 한 명이 경제활동을 하게 되면 배우자의 기초생활수급권이 박탈된다. 또한, 기초생활수급권자 중 부모나 자녀와 같은 부양의무자가 있으면 자동적으로 수급권이 박탈되는 제도적 문제 역시 심각하다. 결혼하게 되면 비혼 상태일 때보다 활동보조를 지원받을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기 때문에, 사실혼 관계에 있으면서도 법적인 부부로 등록하지 않거나 1인 가구로 존재하는 상황이다. 개인에게 제공되었던 지원이 오히려 가족을 이뤘을 때 축소되는 것은, 그만큼 우리 사회가 그 가족의 실제 조건과 무관하게 ‘가족’의 돌봄과 부양 역할을 당연시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2) 성소수자의 파트너십

성소수자 파트너십에서 주목할 점은 경제적 문제일 것이다. 트랜스젠더의 경우 필연적으로 경제적인 어려움에 처한다. 주민등록번호를 등록해야 하는 일자리에 도전하기 어렵고, 외과적 수술과 성별변경을 선택하는 것은 막대한 비용과 건강상의 위험을 무릅쓰는 일이기도 하다.

동성애자 커플의 경우, 둘 각각의 경제적 지위에 따라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놓이는 문제는 이들이 서로를 돌보고 지원하는 배우자로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에 파트너에게 찾아올 수 있는 건강 문제나 불의의 사고와 같은 불행에 함께 대비할 수 없다는 점이다. 제도적인 보호가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사적인 방식으로 불안에 대비할 수밖에 없고, 돈을 모아 미리 서로에게 증여하는 방식을 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증여, 또는 상속은 한 명이 사망했을 때 유언이 있더라도 보장되기 어렵기 때문에 남은 파트너의 생활기반이 흔들리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파트너십법 또는 동성결혼은 반드시 사회적인 의제가 되어야 한다.

(3) 비혈연 공동체

비혈연 공동체의 성격은 하나로 정의할 수 없다. 돌봄이나 친밀감을 중요시하는 공동체, 공동생활과 주거를 통해 발생하는 관계망을 만들어나가는 공동체 등 다양한 모습이 있다. 따라서 공동체를 통해 제안할 수 있는 의제들은 다양하다. 이는 생활동반자법(등록파트너십법)의 형태를 보다 확장한 세 명 이상의 비혈연 관계 및 동거인들 간의 생활보호를 상상할 수 있다.

가족구성권리에 대한 새로운 상상력을

이번 전시를 기획한 것은 이러한 제도적인 측면에 대한 문제제기보다는, 정상가족 중심의 제도를 확장하고 변화시키는 데에 중요한 상상력을 제공한다는 점 때문이었다. 타인과 함께 사는 삶과 돌봄에 대한 깊은 사유는 언제나 돌봄을 담당하는 자의 몫이었다. 정상가족에서 돌봄 담당자는 엄마, 또는 여성으로 당연시된다. 하지만 공동체들에게 ‘당연한 것’은 없다. 엄마, 아빠, 돌봄, 가사, 경제적 부양의 역할이 당연시되지 않기 때문에 수평적인 관계 속에서 함께하는 삶을 어떻게 만들어나갈지 고민하고 의논한다. 이러한 공동체 경험은 타인과의 삶, 자신이 살아가는 데에 요청할 수밖에 없는 돌봄이나 연대에 대한 깊은 성찰을 가능케 해준다.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정상가족이데올로기의 연관성을 다뤄온 활동은 이것이 처음이 아니다. 가족구성권연구모임의 조사연구 활동을 포함하여 성소수자운동 진영의 가족구성권 및 파트너십에 대한 고민, 여성운동진영의 가족이데올로기 비판 및 비혼 운동, 미혼모운동, 이주여성운동 등 다양한 소수자 운동의 거듭되고 발전된 결과 위에 서 있다. 이 전시가 그러한 운동이 ‘가족구성권리’라는 이름으로 묶여 다시 알려지고 진지하게 다뤄지기를 바란다.
덧붙임

더지님은 언니네트워크(www.unninetwork.net)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