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오름 > 언니네 방앗간

[언니네 방앗간] 바이섹슈얼과 비혼

바이섹슈얼이라고 커밍아웃하면 매우 다양하면서도 전형적인 질문들을 많이 받는다. “남자랑 자는 거랑 여자랑 자는 거 중 어떤 게 더 좋냐”부터 시작해서 “남자를 사귀고 있을 때 여자를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거나 여자를 사귀고 있을 때 남자를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드냐”, “동시에 두 성을 만나본 적이 있느냐”, “어떻게 양쪽이 다 좋을 수 있느냐”, “레즈비언인 걸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뿐 아니냐”, “이성을 만날 때도 동성을 만날 때도 커밍아웃을 제대로 하느냐” 등등. 그저 ‘좋다’라는 부인할 수 없는 감정들로 막연하게 스스로의 정체성을 탐구하고 있을 때는, 호기심 어린 그 질문들이 당황스러웠지만 분명 도움은 됐다. A, B 중 하나를 고르는 것이 정답으로 느껴지지 않아 스스로에게 더 많이 질문하고 ‘바이섹슈얼’이라는 이름표를 둘러싼 지형을 알려고 노력한 시간들이 지금의 정체성을 만든 8할이라고 할 수 있으니. (오히려 지금은 그 질문들 하나하나로 이성애중심주의에 어퍼컷을 날리는 아주 문란한 운동을 해보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중에서 가장 최근에 받은 질문이자, 여전히 현재적인 질문은 이런 내용이었다.

“바이섹슈얼인데 왜 비혼이야? 선택할 수 있잖아.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정체성이었다면 나는 결혼하는 삶을 선택했을 것 같은데. 자기는 결혼할 수 있는데 왜 비혼으로 살아?”

그녀가 언급한 ‘선택할 수 있는 정체성’이란 이런 의미였을 것이다. 이성애중심적인 사회에서 이성애자로서의 삶을 선택할 수 있는 것 말이다. 좋아하는 상대방이 이성일 수 있다면, 이성애법률혼이라는 이성애 파트너쉽에 대한 법적 인정을 받을 수 있고, 이성애법률혼의 테두리 내에서 법률혼에 부착된 다양한 가족으로서의 지위, 법적 권리를 행사할 수 있으므로 커밍아웃할 필요 없이 그 삶을 선택하는 것이 편하지 않은가 하는 의미.

바이섹슈얼로 산다는 것은 만나는 사람이 이성이냐 동성이냐에 따라 이성애자로 살거나 동성애자로 사는 것이 아니라 그저 바이섹슈얼로 사는 것으로 커밍아웃의 문제는 언제나 존재한다고 말하고 싶지만, 실제로 스스로를 바이섹슈얼이라고 말하는 사람들 중 이성애자로 살아가는 삶을 택하는 사람들도 있으니 단순히 오해- 잘못 알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그것이 무엇을 ‘선택할 수’ 있는 삶인가에 대해서는 다시 이야기하고 싶다.


무엇을 선택할 수 있는가

서울시가 지난 5월 19일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2014년 만 13세 이상 남성은 44.0%, 여성은 52.7%가 가사 노동은 공평하게 부담해야 한다는 견해를 갖고 있지만, 실제로 가사노동을 공평하게 분담하고 있다는 응답은 남성 응답자 기준으로 15.4%에 불과하다고 한다. 남성 응답자 기준으로 부인이 가사를 전적으로 책임지고 있다는 응답은 23.4%, 부인이 주로 가사를 책임지고 남편이 분담한다는 응답은 58.7%로 공평해야 한다는 의식과 현실은 여전히 괴리가 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편, 5월 17일 통계청이 발표한 남성대비 여성 임금비율 자료에 따르면 2014년 여성의 월평균 급여는 174만2000원으로 남성의 월평균 급여 276만1000원의 63.1% 수준에 머물렀다. 이러한 임금 격차는 출산과 육아 등으로 임금노동 경력 단절과 이후 재취업 시 임금 수준의 하락이 주요한 원인으로 지적된다. 이성애법률혼과 가부장 중심의 가족제도, 이를 기반으로 한 노동시장과 국가 복지시스템의 연동은 돌봄노동을 사회화하거나 남성과 여성이 동등하게 돌봄노동과 임금노동 사이의 이동을 가능하게 하는 노동시장의 재편을 이끌어내는 것이 아니다. 그저 이성애법률혼 안에서, 출산과 육아를 여성이 전담하며 복지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작동함으로써 불평등을 심화시킨다.

여성이 개별적인 권리 주체로서가 아니라 가족 내에서 남성을 경유하는 어머니/아내/딸이라는 역할로 호명되고 그 역할에 따라서 자원을 배분받는 이성애 중심적 가족 복지체계에서는 그 체계를 벗어나서 사는 삶을 꾸리기 어렵다. 그래서 비혼 정치는 이성애 중심적 가족 제도가 강제하는 결혼과 여성의 불평등한 성역할에 의문을 제기하며 ‘선택하지 않을 권리’, 결혼을 경유하지 않고 여성 개인에게 주어지는 시민으로서의 권리와 친밀성과 돌봄을 기반으로 한 가족 구성의 권리를 이야기해왔다.

바이섹슈얼의 정체성에 대한 이해가 다른 것은 차치하고, 그래서 바이섹슈얼이 파트너의 성별정체성에 따라 법제화된 파트너쉽을 ‘선택할 수 있는’ 정체성으로 여겨지더라도, 비혼을 이야기하게 되는 현실적 맥락이 있다. 그것은 이성애중심의 결혼과 가족제도가 재생산하고 있는 이러한 여성에 대한 불평등을 ‘선택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질문의 지형은 계속해서 변화한다. 김조광수-김승환의 공개 동성결혼식 이후 동성결혼 소송이 진행되고 성소수자의 다양한 가족구성권을 위한 네트워크가 꾸려져 동성 파트너쉽 법제화를 향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동성 파트너쉽에 대한 법제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한국의 현실에서 가족으로서의 지위와 다양한 법적 권리가 보장되는 이성애법률혼과 이를 통한 가족제도는 성소수자의 입장에서 상대적으로 ‘권리’로서 호명된다. 누가 그 권리를 누릴 수 있는가, 권리의 내용은 무엇인가, 왜 그동안 배제되어왔는가를 이야기하면서 이성애중심적인 기존의 가족제도와 결혼의 문제점에 대해서 지적하고 이성애중심을 해체하려는 시도와 함께 결혼이 ‘권리’의 총체로 계속해서 언급될 때에, 여성주의 정치는 다시 무엇을 ‘권리’로 이야기할 것인가로 도전받는다. 결혼평등권, 선택할 수 있는 권리로서의 결혼이라는 담론이 그동안 여성주의 정치에서 이야기해온 불평등의 맥락을 삭제한다는 비판만으로는 부족하다. ‘평등’, ‘권리’, ‘선택’의 의미를 다양한 위치에서 재정의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덧붙임

나기 님은 언니네트워크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