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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녹보라, 우리 지금 만나] 대기업 정규직 중심의 노동 운동을 넘어서기 위한 고민들

두 번째 이야기: 노동 운동의 속내 들여다보기

속내를 드러낸다는 것, 그건 내부와 외부를 넘나드는 아슬아슬한 줄타기와 같다. 속에 있는 이야기들을 밖으로 꺼내는 순간 그것은 이미 더 이상 속의 이야기가 아니다. 속에 들어가 본 적도 없는 누군가의 시선에 대답해야 하고, 그 시선을 통해 각색이 될 수도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그래서 속내를 꺼내놓는 시도는 내부를 외부로, 또 외부를 내부로 끌어내는 시도이다.

4월 15일에 열린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의 가나다 토론회에는 삶의 많은 시간을 노동 운동의 현장에서 보낸 두 명의 활동가가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았다. 오랜 시간 함께 해 온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놓는다는 것은 분명 쉽지 않은 일이었을 텐데, 자신의 경험 속에서 지난 시간을 성찰하며, 지금의 노동 운동에 대한 이야기를 기꺼이 꺼내놓아 주었다.

토론 내용을 정리하고 있던 중 현대자동차노조가 ‘노동자 신규 채용 시 장기 근속자 자녀를 우선 채용’하는 내용을 담은 단체 협약안을 의결했다는 뉴스를 접했다. 고용 불안이 장기화되고, 청년 실업 문제가 심화되고 있는 현 한국 상황에서, 현 노조원들의 자녀에게 우선적인 채용을 보장하라는 그들의 주장은 아무리 너그럽게 이해하려해도, 정규직 고용 자체를 세습화하려는 이기주의로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재부팅이 절실한 노동 운동 - 노동 운동, 방향키를 돌려라”라는 제목으로 이야기를 시작한 임혜숙 님의 주장이 더욱 절실하게 느껴졌다.



재부팅이 절실한 노동 운동 - 노동 운동, 방향키를 돌려라

이번 가나다 토론회는 금속노조에서 정책실장으로 활동해 온 임혜숙 님의 이야기로 시작되었다. 임혜숙 님은 발표를 준비하면서 주변에 이런 발표를 준비 중이라는 말을 했을 때 “그런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하다니 자신감이 충만한 거냐? 아니면 거절하지 못하는 소심함을 가진 거냐?”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그만큼 이 이야기를 꺼내는 일이 쉽지 않았다고 했다.

임혜숙 님은 현 대기업 정규직 중심의 노조에 대한 비판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한국의 일천칠백만 노동자 중에 조직된 노동자는 2010년 기준 약 195만 명으로 전체 노동자의 11.4%밖에 되지 않는다. 1989년에 조직률이 20%에 달했던 사실에 비추어 볼 때 지난 20여 년간 조직률은 절반으로 떨어진 것이다. 특히 비정규직 노조 가입률은 1.9%에 불과해, 현재의 노조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이해를 대변하기를 기대하기에 너무 어려운 구조로 변해버렸다고 강조했다. 또한 현재 통계상으로 보면 산업별 노동조합(산별노조)으로의 전환이 83%에 육박했음에도 교섭권, 쟁의권, 재정 운영권 등은 여전히 기업 단위 조직에 있어서 기업별 조직체계가 지속된다는 것이다. 한편, 노동자계급의 정치 세력화가 부진하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되었다. 조합원들 스스로가 노동자계급을 대표하는 정당에 투표하지 않는 현상, 특히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이 분리된 이후에는 정치에 대한 불신과 냉소가 팽배해진 상황이라고 한다. 또 다른 문제는 현재의 노조가 주체성을 잃어버린 연대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산별노조체제에서 각 지역본부가 지역 단위에서 일어나는 일상 사업을 조직하고, 투쟁을 조직하는 구심체 역할을 해야 하는데 그 역할을 잘 못하면서, 각 노조 간의 연대가 기자회견 등의 매우 형식적 방식으로만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마음으로부터 우러난 진정한 연대의 모습들이 많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 외에도 임혜숙 님은 취업 비리, 조합비 유용, 성폭력 사건 등 민주노총을 둘러싼 다양한 문제들을 지적하고, 노조 지도부를 뽑는 직선제가 주로 정파 간의 대립과 갈등으로 번지는 등 내부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는 것도 문제라고 설명했다. 무엇보다도 경제 위기가 오랜 기간 지속되면서 “회사가 살아야 우리도 산다”라는 의식이 노동자들에게 팽배해졌고, 우리 사주제도 등이 확대되면서 노동자들의 기업에 대한 귀속 의식을 강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의 투쟁이 노동 조건 개선과 잔업 반대를 위한 것이었다면, 지금은 잔업을 따오지 못하는 노조 위원장은 다음 선거에서 100% 패배하는 상황으로 역전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임금 인상 투쟁의 목표가 기본급을 인상시키는 방식보다는 회사의 성과나 실적을 배분받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면서 실질적인 노동 조건의 향상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것 역시 문제로 지적했다.

마지막으로 임혜숙 님은 현재 노동 운동이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바로 비정규직에 대한 무능에 있다고 보았다. 민주노총이 2003년에서 2006년 사이에 20차례 총파업을 했고, 그 중 1번을 제외한 19차례가 모두 비정규직 관련 파업이었음에도, 비정규직 노동자의 노동 조건 개선을 이끌어내는 데 무능했다는 것이다. 임혜숙 님은 이를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 중심의 민주노총의 존재적 한계로 보았다. 실제로 전국적 규모의 비정규직 투쟁에는 민주노총 노조원이 참여하고 있지만, 자기 현장의 비정규직 문제에는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 진단을 바탕으로 임혜숙 님은 이제 본격적으로 노조 운동이 ‘방향키’를 돌려야 할 때라고 주장했다. 이미 과거 민주 노조 운동을 할 때와 지금의 외부적 환경은 너무 많이 변화했고, 비정규직 노조 운동 중심으로 방향키를 이동하지 않으면 안 되는 절실한 상황에 봉착해 있다며 이야기를 마쳤다.



너무나 척박한 환경 속에서 해 온 지난 20년 간의 노동 운동

공공연구노조 정책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성우 님은 앞선 임혜숙 님의 분석에 전적으로 공감을 표시하면서도 한편으로 희망적인 전망을 함께 나누고자 했다. 현재 노동 운동이 가진 문제는 분석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이러한 분석이 이루어지고 있음에도 그것을 풀어나가려는 실천과 의지가 부족한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그러나 또한 한편으로 노동 운동이 직면한 척박한 환경에 대해서도 이해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성우 님은 노동3권에 대한 교육이 고등학교 이전에 이루어지는 다른 나라들과 달리 한국의 노동 운동은 너무나 척박한 환경에서 이루어져왔음을 간과할 수는 없다고 했다. 노동조합에 부정적인 시각이 팽배한 한국 사회에서 분명 한국의 노동 운동은 아주 걸음마 단계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어떻게든 걸어온 것은 분명하다는 것이다. 노동 운동에 너그럽지 않았던 사회에서, 또한 IMF 경제 위기 이후 노동자들의 상황이 점점 열악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분명 노동 운동은 많은 문제를 여전히 안고 있지만 또한 많은 것을 이루어왔다는 것이다.

이성우 님이 속한 전국과학기술노동조합이 처음으로 94년 산별노조를 만들었다고 했다. 과거 81년에서 88년까지는 법적으로 기업별 노조가 강제되어있던 상태이기 때문에, 87년 노조가 들불처럼 만들어지던 시기에 산별노조는 법적으로 불가능했다. 이성우 님이 꿈꾸었던 민주 노조 운동의 세 가지 목표는 전국적 중앙조직 건설, 노동자 정치 세력화, 산별 노조 건설이었고, 형식적으로 이 세 가지 목표는 다 달성된 것처럼 보인다고 했다. 물론 그 목표를 세세하게 따져 들어가면 여전히 문제투성이지만, 지난 24년간이 민주 노조 운동의 중요한 성과를 만들어낸 시기라는 점은 분명하다고 보았다.

이성우 님은 노조 탄압이 가속화된 이명박 정부 들어서 외부적 환경에 의해 노조 운동이 더 어려워지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철도 노조의 합법 파업조차 대통령이 불법이라고 하니까 불법이 되는 현실, 분명 사회적 환경이 노동조합을 고립시키고 힘들게 만드는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지난 3년간, 민영화 과정을 통한 공공기관 통폐합, 대졸 초임 삭감, 기존의 임금 체계 자체를 파괴하는 이진 아웃제도 등 각종 불안감과 압박 속에서 조합 활동을 하는 것이 점차 어려워지고 있다고 했다. 여전히 노동조합을 조직함과 동시에 해고되는 노동자들이 많다는 것이다. 기륭 노동자, 기타를 만드는 콜텍 노동자들, 계룡대 시설관리 노동자들을 그 예로 들었다. 과거에는 100일, 200일만 돼도 투쟁이 힘을 받았는데, 이젠 투쟁 자체가 너무 장기화되고 있는 것도 문제라고 이야기했다.

이성우 님은 이제 노동 운동의 새로운 에너지는 영세사업장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서 올 수 밖에 없다고 보았다. 이성우 님은 비정규직 운동을 통해 새로운 희망을 일구어내는 투쟁을 만들어내는 것이 바로 우리들에게 맡겨진 숙제라고 강조했다. 비정규직 운동은 단지 노동 운동 차원이 아니라, 사회운동 속에서 자리를 잡고, 적녹보라와 더 폭넓은 연대를 통해 사회 속에서 일어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는 분명 노동 운동 속에서 희망을 볼 수밖에 없으며, 이후의 노동 운동은 전체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길로 나아가면서, 사회 운동과 노동 운동이 함께 나아가야 한다며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그리 새롭지 않은 속내, 새로워져야 할 것은 투쟁

임혜숙 님과 이성우 님 모두 현재의 대기업 정규직 노조 중심의 노동 운동이 가진 한계와 철저한 자기반성의 필요성을 지적하며, 노동 운동의 방향키를 바꿀 운동의 동력을 비정규직 노동 운동에서 찾았다. 2%에도 못 미치는 조직률을 보이는 비정규직 노동자. 사실 비정규직 노동의 문제는 이미 너무나 많이 지적되어 왔다. 그러나 모두가 문제라고 인식하고 있지만, 이를 바꾸기 위한 사회 전체적인 노력이 부족했던 것 또한 사실이다. 노동 운동의 속내를 들어보았지만, 사실 그 속내가 새로운 것은 아니다. 새로움은 그 속내 속의 현실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바꾸어내기 위한 투쟁을 할 때 만들어질 것이다. 이번에 통과된 현대자동차노조의 단협안이 보여주듯이 그 전망은 그다지 화창하지만은 않다. 화창하지 않더라도, 지금 우리는 새로운 노동 운동의 방향키를 돌릴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있다.
덧붙임

이안지영 님은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