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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겉은 반듯, 속은 곪았다

이랜드 불법·부당행위 진상조사 결과

지난 6월 16일 파업 돌입 이후 현재까지 90여 일째 파업중인 이랜드에선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져 왔는가? 비정규노동자 기본권보장과 차별철폐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공동대표 김금수)가 김윤자 교수 등 6명의 노동사회단체 인사들로 구성한 '이랜드 진상 조사위원회'는 6일 이랜드 그룹의 불법․부당행위에 대한 진상조사 결과를 발표하였다.

지난 8월 1일부터 22일까지 노사 양측을 분주히 오가며 관련자료를 검토한 이번 진상조사단 위원장인 박석운 노동인권회관 소장은 "탈세 문제도 적고 사회봉사를 강조하는 기독교 정신으로 무장하는 등 외관상 반듯한 기업이나 유독 노사관계에 있어서는 곪아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몸은 21세기 있으나 머리로는 19세기적 사고를 종업원에게 강요하고 있다"는 말로 이랜드 그룹의 문제를 집약했다.

박 소장의 표현대로 이랜드 그룹(회장 박성수)은 기독교 윤리에 입각한 기업이라며 투명경영을 강조하고 있으나, 노사 관계에 있어서는 노조 설립 이후 줄곧 부당노동행위가 계속되면서 노조에 대한 노골적인 반감이 계속 문제를 일으켜 왔음이 드러났다.


불법파견노동 판쳐

우선 전체 그룹 노동자 2480명 가운데 비정규직 노동자가 750여명에 이른다는 수치에서 드러나듯 정규직 노동자를 비정규직으로 대체하면서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조건을 강요하고 위장도급을 통하여 불법파견을 일삼아 온 것으로 드러났다. 일례로 이랜드의 부곡물류센터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사원들은 시간당 2천원의 임금(월 5십만6천원)을 받으며 냉난방 시설이 전혀 갖춰지지 않은 열악한 환경에서 일해왔고, 같은 곳에서 일하는 도급(파견)업체 소속 노동자들의 작업은 실정법상 허용된 파견대상 업무가 아닌데도 불법적인 파견노동을 계속해왔고 실제로는 정규직원과 동일한 업무를 수행하고 있음이 밝혀졌다. 이 부분에 대해 회사측은 합법적인 업무위탁계약이라고 주장하며 입증 자료의 제출을 약속했으나 현재까지 아무런 자료도 제출하지 못하고 있다.


단체협약 무시

노조활동 탄압으로 대표되는 사측의 부당노동행위도 지탄의 대상이 되었다. 한마디로 이랜드 사측의 입장은 '노조 불인정'에 입각하고 있기 때문에 조합원에 대한 개인별 성향 파악과 노조원 탈퇴 압력행사, 부당해고 등이 집요하게 이루어져 왔다. 장기 파업의 주된 이유도 사측이 단체협약을 무시하는 데 있다. 지난 97년 '그룹' 차원에서 맺은 단체협약이 만료됨에 따라 노조측은 당시 맺은 협약에 근거하여 그룹차원의 노사 '단일교섭'을 요구하는데 반해, 회사는 노동부의 중재안조차 거부한 채 '별도 법인별' 개별교섭을 고수하고 있다. 진상조사단은 이런 행위를 단체협약위반이자 노조의 정당한 단체교섭요구를 거부하는 부당노동행위로 판단하고 있다.


성희롱 불감증 또 한번 확인

특히 이번 조사가 던진 파문은 서비스 교육을 빙자해 이루어진 성희롱에 있다. 애초 '비정규직' 문제에 초점을 두고 조사를 진행하던 중 불거져 나온 성희롱 문제에 대해서는 노조측 관계자들도 "이렇게 심각할 줄 몰랐다"라며 고개를 저은 것으로 알려졌다. 조사단에 따르면 사측은 올 5월 17일부터 7월 12일까지 7차례에 걸쳐 각각 1박 2일의 일정으로 군부대 교육을 진행했다. 이때 이랜드 사목을 지낸 적이 있는 군목과 인솔자인 관리직 사원들이 "군인들을 즐겁게 해주는 것도 교육이다", "그냥 인사만 하지 말고 포옹도 꽉 하여라", "음식을 먹여 주어라", "안아 주어라"는 구체적인 지시를 했고, 심지어는 인솔자였던 지점장이 "다음 번에는 모두 젊고 싱싱한 아가씨들로만 뽑아서 보내주겠다"고 약속하는 등 회사측이 성희롱을 부추긴 혐의를 받고 있다. 진상조사단이 이 문제의 심각성을 환기시키자 회사측은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며 이해를 못하다가 나중에야 당황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성희롱에 대한 사측의 무감각증뿐만 아니라 평소 노동자를 '대상화'시킨 문화에 젖어있음을 보여주는 씁쓸한 사례이다. 이후 비정규 공대위는 여성단체들과 함께 이 문제를 추가로 조사할 예정이다.

진상조사단은 이런 결과를 토대로 △노조의 단체교섭 요구에 대해 '단일교섭'에 성실하게 임할 것 △해외 체류중인 박성수 회장이 빨리 귀국하여 책임 있는 자세를 보이고 협상에 나설 것 △노조의 정당한 파업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이를 근거로 무더기 중징계 조치를 내린 것을 철회하고 원상 회복할 것 △불법파견업체와의 계약을 해지하고 실정법대로 해당 노동자를 직접 고용할 것 △비정규직 조합원의 근로조건에 관해 노조와의 성실한 대화에 임할 것을 사측에 요구하였다. 아울러 노조측에 대해서도 사용자 비방과 회사 혐오 표현을 자제하고 교섭 분위기를 만들 것을 주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