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운동사랑방 후원하기

인권오름 > 막말의 시대

[막말의 시대] 헌법에서 노동 3권을 빼라고?

박기성 노동연구원장은 노동자가 조선시대 종인 줄 아는가!

노골적인 반인권 발언이 판치는 시대가 되었다. 보수주의라 할지라도 21세기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최소한의 양식은 있으리라 믿었으나 이명박 시대이후 그러한 양식은 찾아보기 힘들다. 고위 공직자가 저지른 위장전입, 뇌물 등 부정부패에 대해서는 ‘누구나 한 번쯤 저지를 수 있는 실수’ 아니냐며 정의가 사라진 관용을 베풀지만, 평범한 시민이 최소한의 인권을 주장할 때는 ‘서슬 퍼런 칼날’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자기 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사람들이 옴짝달싹하지 못하도록 ‘노동권’에는 빨간 불온딱지를 붙인다. (국방부가 정한 불온서적을 보라!)

퇴행하고 있는 한국의 노동정책

자본주의는 자본만으로 움직이지는 않는다는 것은 수백 년의 자본주의 역사적 경험 속에서 확인된 사실이다. 자본과 노동이 결합되어 생산물을 만들어내고 있다. 첨단 자본주의 시대에 과거와 같은 노동집약적 생산시스템이 아닐지라도 말이다. 그래서 자본주의를 옹호하는 사람도, 자본주의 비판하는 사람도 ‘생산을 멈추지 않기 위해 노동을 유지하려면’ 노동권을 보장해야한다고 합의하였고, 그 결과는 1945년 세계인권선언에도, 1967년 만들어진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에 관한 규약에도 명시된 노동의 권리, 노동3권이다. 이렇듯 노동3권은 자본주의라는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측면이 있기에 반자본주의적인 권리가 아님은 분명하다.

얼마 전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박기성 한국노동연구원 원장의 ‘헌법에서 노동 3권을 빼야 한다는 것이 제 소신’이라고 말하였다. 이는 자본주의에 대한 최소한의 양식도 저버렸을 뿐 아니라 노동문제를 연구하는 국책연구기관인 한국노동연구원의 장으로서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아무리 현 정부가 ‘친기업’을 표방한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지금은 노예제 시대도 아니며 노동자들이 조선시대 양반에 속한 종처럼 마구 부려먹어도 되는 존재들이 아니다.

노동3권인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회적 약자일 수밖에 없는 노동자들의 인권을 방어하기 위해 마련된 권리이다. 계약의 형태를 띠지만 고용을 하고 있는 자본가에게 막대한 힘이 있는 상황, 노동조건이나 노동과정이 고용주의 이해를 중심으로 구성되고 운영될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노동자의 최소한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노동3권은 마련되었다. 노동자의 자주적 결사를 보장하는 단결권과 단체교섭권이 없다면 고용주인 기업의 횡포는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그래서 이미 130여 년 전인 1870년대에 파업 등 단체행동권이 법적으로 보장되어 실질적인 노동3권은 중요 인권으로서 인식되어왔으며, 한국의 군부독재시절에도 헌법에 명시된 권리가 노동3권이다. 그래서 2001년 유엔 사회권위원회에서도 “파업행위를 범죄시하는 접근방식은 전적으로 수용될 수 없는 것”이며 과도한 경찰력이 사용되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기도 하였는데 이를 시정하려하기보다는 한술 더 떠 그 권리를 헌법에서 삭제하자는 주장을 하니 어이가 없을 뿐이다.

그가 당당하게 “OECD 국가 중에서 헌법에 노동3권을 규정한 나라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는 발언을 하였지만 실제 프랑스, 이탈리아, 일본, 스페인, 스위스, 포르투칼 등의 국가들에서 헌법으로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아무리 뉴라이트 출신이라도 이 정도로 무지하고 반노동의 소신이 있다면 연구원장을 유지할 능력이 부족한 것이다.

막말의 대가인 박기성 한국노동연구원장(사진 출처: 민중언론 참세상)

▲ 막말의 대가인 박기성 한국노동연구원장(사진 출처: 민중언론 참세상)


반노동의 소신은 다른 곳에서 쓰시길

박기성 씨의 이러한 반인권적이고 몰상식적인 발언은 이뿐만이 아니다. 어제 유원일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그는 취임 후 “모든 정규직을 비정규직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수시로 밝혔다고 한다. 지난 1997년 이후 한국에서 비정규직은 지속적으로 증가해 현재 비정규직의 규모는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에 따르면 840만 명이며 전체노동자의 50%가 넘는다. 비정규직으로 산다는 것은 저임금과 상시적인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생황을 의미하며, 심지어 4대 보험 등 최소한의 사회보장제도로부터 배제되는 경우도 많아 인간다운 삶, 인권의 사각지대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노동에 대해서 연구한다는, 기업의 이윤을 연구하는 게 아닌(?) 노동연구원의 수장이 그런 말을 했다는 것은 직분에 맞는 발언이 아니다. 한국 비정규직 노동자의 지위를 재고해야한다는 국제사회의 목소리에 전혀 귀 기울이지 않는 그는 연구원장의 자격이 없다. 정말 소신이 정규직을 비정규직으로 만드는 것이라면 전경련 소속의 연구기관으로 옮길 것을 권유한다. 그게 당신의 말도 안 되는 소신을 살릴 수 있는 길이니 말이다.

덧붙임

명숙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