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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리] 표적단속, 분노와 무기력을 넘어

'권력의 공식'에 대항하는 '운동의 공식'이 필요하다

개구멍으로 행사된 주권, 표적단속은 정당한가?

계속되는 이주노조 지도부에 대한 단속과 강제추방. 표적단속과 기습추방의 과정을 반복하는 오만한 공권력은 ‘수치’도 ‘법치’도 모른다.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하는 방식의 기습적인 강제추방이 위법하고 부당하다는 사실을 법을 집행하는 법무부가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법무부는 보호소 울타리에 ‘개구멍’을 내어 당사자를 빼돌리는 방식으로 공권력을 행사하는 후안무치를 서슴지 않았고, 국가인권위원회의 긴급구제 결정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법절차 무시를 감행했다. ‘주권국가의 합법적인 행정권 행사’라는 오리발이 무색한 지경이다.

절차적인 문제를 넘어서, ‘표적단속’ 자체도 ‘국가주권의 행사’라는 명분으로 정당화되기 어렵다. UN 자유권위원회(시민·정치적권리위원회)는 『규약 상 외국인의 지위에 관한 일반논평 제15호』(1986년)에서 ‘일반적으로 외국인의 입국 및 거주에 관한 사항은 국가의 주권 사항이기는 하나, 이러한 주권적 결정이 차별적 기초 하에 이루어지는 경우에는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 규약이 적용’된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또한 차별이 금지되는 ‘기타 지위(other status)’에 노동조합원이라는 신분상의 지위가 포함되는 것도 분명하다. 따라서 법률에서 규정한 단속 권한의 행사라고 하더라도, 그 권한 행사가 이주노조 지도부라는 신분상의 차별에 기초해, 노조활동을 방해할 부당한 목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라면, 이는 명백한 권한의 남용으로 정당화 될 수 없다.

무능력과 무기력 사이에 존재하는 삶에 대한 공격

“체제는 빈곤과 싸울 능력이 없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과 싸운다.” 이주노조 지도부가 공권력의 ‘표적’이 되는 이유이다. 표적을 만들어 직접적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방식 이외에도, 체제는 이주정책이라는 세련된 형식의 싸움을 통해 이주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무능력을 감추고, 또 드러낸다.

정부는 ‘통합적 이민정책’이라는 명분으로, ‘두국민전략’(two-nations strategy)에 기초한 국가주의·민족주의적 배제와 통합을 추진하고 있다. 재외동포와 결혼이민자를 민족과 국민으로서 포섭하고, 전문기술인력을 ‘국익’과 경제의 관점에서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가운데, ‘단순노무인력’과 ‘불법체류자’를 적극적인 통제·관리의 대상으로 배제해나가는 기본 정책이 확고하게 수립, 시행되고 있다.

‘다문화주의’라는 상징을 동원하고, 국민의 일자리를 보호한다는 명분을 내세우며, 인종적·민족적 하위 노동시장을 형성하여 위계적으로 노동을 분할하는 통제의 전략은 ‘국민’과 내국인 ‘노동자’의 동의를 적극적으로 획득하는 헤게모니적인 방식으로 수행되고 있다. 그러나 이주운동, 사회운동은 국가가 일방적으로 설정한 정책 아젠다의 틀에 대항하는 의제와 실천의 방향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국민국가 체제는 ‘이주’라는 불가피한 현상에 대하여 근본적으로 무능력하지만, 이에 대항하는 운동은 아직 무기력하다. 그 무능력과 무기력의 틈새에서 이주노조는 표적이 되어 추방당하고, 미등록이주노동자 단속력을 할당하는 폭력적 방식으로 삶이 공격당하고 있다.

노동운동, 연대를 넘어 ‘나의 의제’로

사회 내부의 인종주의적 편견과 일정한 ‘동의’를 무기로 정부는 계속적으로 이주노조를 ‘표적’으로 삼아 단속·추방을 강행할 것이다. 게다가 대통령이 이주노조 설립문제가 재판 진행 중인 사실을 두고, “앞으로는 절대로 이런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며 표적단속 방식에 날개를 달아주기도 했다. 정부 대응의 정당성 여부를 떠나서, 이주노조는 ‘표적’을 만들어 내어주는 결과가 되어버리는 기존의 방식으로는 조직의 활동을 유지하기도, 반복되는 무기력을 감당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결국 이주노조의 합법성에 대한 대법원의 최종적인 판결과는 무관하게, ‘미등록 체류자’ 위주의 독자 노조라는 이주노조의 조직 자체에 대한 점검과 모색이 필요한 시기가 온 것으로 보인다. 일차적으로는 이주노조 내부에서의 논의를 통한 새로운 방향의 제시가 필요하겠지만, 이주노조의 모색은 그들 내부의 과제일 수만은 없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회에서 그러했듯이 ‘인종’과 ‘이민’ 문제는 진보적인 운동의 인계철선이다. 조직된 노동운동이 인종과 이민 문제에 주목하는 데 실패함으로써 자본과 국가가 주도하는 노동의 위계적 분할에 동원된 결과를 우리는 알고 있다. 우리 사회 이주운동이 처한 현재의 무기력에는 노동운동의 침묵도 상당한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민주노총 등 조직노동운동에게 이주노동자 운동의 과제는 아직 ‘사건’이 발생하면 연대하고 발언하는 수준의 ‘남의 의제’에 불과하다. 그러한 소극적 방식의 접근은 결국 노동운동 자체에게 부정적 부메랑이 되어 돌아갈 것이라는 사실을 노동운동의 역사는 분명히 기록하고 있다. 우리 사회의 노동운동도 스스로를 새롭게 구성하는 실천의 문제로서 이주운동의 모색을 ‘나의 의제’로 전면에 배치하는 적극적이고 책임 있는 자세가 절실히 요청된다. 현재 이주노조가 처한 도전적인 상황을 민주노총이 어떻게 수용하고 내부화할 것인지, 많은 사람들이 주목하고 있다.

권력의 공식에 대항하는 운동의 공식

법무부는 이주노조에서 ‘불법 사람’들을 제거하여 노조를 빈 형식으로 만들려는 ‘작전’을 집요하게 계속한 결과, ‘이주노조 지도부 = 단속·추방’이라는 ‘권력의 공식’을 만들어 냈다. 각계의 항의와 농성에도 불구하고, 3대 지도부 모두가 단속·추방의 동일한 절차로 내몰린 결과에 대해서 분노와 함께 무기력을 느끼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주노조는 이미 ‘권력의 공식’에 대항하는 새로운 ‘운동의 공식’을 만들어 내는 의미 있는 실험을 준비하고 있다. 6월 네팔에서 개최될 예정인 ‘송출국 노동자와 한국 이주노동자의 조직사업 강화를 위한 포럼’이 그것이다. 이 포럼은 한국에서 이주운동을 통해 성장한 활동가들이 단속·추방으로 운동을 중단하는 것이 아니라, 본국에서 운동을 지속하고, 이를 통해 이주노동자운동을 더욱 풍부하게 할 필요성에서 기획되었다고 한다. 추방이라는 결과로부터 새롭게 시작하는 이 기획이 ‘단속·추방 = 국제적 연대의 조직’이라는 새로운 운동의 공식을 만들어 나가는 소중한 출발이 될 것을 기대한다.

덧붙임

정정훈 님은 공익변호사그룹 공감 변호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