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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국제미아’된 탈북자

김용화 씨, 생사기로에 놓여


북한을 탈출한 지 10년이 지나도록 국적없이 세계를 떠돌고 있는 한 탈북자가 생사의 기로에 놓여 있다.

평안남도 순안군 오금리에서 태어난 김용화 씨는 지난 88년 함흥철도국 소속 승무지도원으로 근무하던 중 우연히 발생한 철도사고로 처벌의 위협을 느끼자 압록강을 건너 중국 길림성으로 탈출했다. 중국 당국과 북조선 사회안전부의 추적을 피해 중국 곳곳을 전전하던 김 씨는 92년 한․중수교가 체결되자, 북경 주재 한국대사관을 세 차례나 찾아가 망명을 요청했다. 그러나 당시 한국대사관 측은 북한을 탈출한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김 씨의 망명 요청을 거절했다.

생명의 위협을 계속 느끼던 김 씨는 95년 2월 베트남으로 밀입국, 현지 한국대사관에서 다시 망명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하고, 급기야 밀입국 혐의로 베트남 경찰에 체포되기까지 했다. 이후 김 씨는 이송 도중 탈출, 다시 중국으로 돌아와 같은 해 6월 0.5t짜리 쪽배를 타고 충남 서산 앞바다에 도착, 마침내 한국 밀입국에 성공했다.

그러나 험난한 밀항 끝에 한국 땅에 도착한 김 씨의 앞날도 순탄치 않았다. 이번에도 김 씨는 ‘중국인 거민증’을 갖고 있다는 이유로 탈북자로서의 지위를 인정받지 못했던 것이다. 이에 대해 김 씨는 중국체류 탈북자 중 신변안전을 위해 위조 거민증을 갖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며, 자신도 북한과 중국의 합동수사단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경찰로부터 위조 거민증을 사들였을 뿐이라고 항변했다. 그러나 김 씨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외국인보호소에 수용되어 중국으로의 강제송환이 결정됐다.

3년 간 한국에 체류하고 있는 동안 정부를 상대로 강제퇴거명령취소 청구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던 김 씨는 소송에서 아무런 희망을 발견하지 못하자 소송을 취하한 후, 결국 또다시 일본으로의 밀항을 결심하게 된다.

올 4월 18일 일본으로의 밀항을 시도, 다음날 후쿠오카 해상의 한 섬에 도달한 김 씨는 도착 즉시 일본 해상보안청에 의해 체포됐다. 그를 조사한 일본 정부 역시 중국정부가 발급한 신분증명서를 갖고 있다는 이유로 중국 송환을 결정했고, 난민 신청도 기각했다. 당시 진도 앞바다에서 그의 일본 밀항을 도왔던 탈북자 조영호, 황규술 씨도 현재 출입국관리법 위반 등의 혐의로 수감되어 있는 상태다.

이러한 김 씨의 사정을 접한 일본의 「북조선인의 생명과 인권을 지키는 모임」과 종교단체 등은 일본 주재 각국 대사관과 언론에 호소문을 보내 일본 정부의 강제출국 방침 철회와 한국정부의 탈북자 인정 등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에서도 난민지위에 관한 조약에 따라 김 씨가 정치적으로 박해받을 가능성이 있는 난민인지의 여부를 판단하기로 했다.

그러나, 김 씨에게는 시간이 얼마 남겨져 있지 않다. 이달 말까지 그가 탈북자임을 증명하지 못하게 되면, 중국으로 강제 소환될 운명에 놓여 있는 것이다. 김 씨는 현재 중국으로의 송환은 곧 북한으로의 송환으로 이어지고, 이는 곧 죽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운명의 순간을 앞두고 김대중 대통령에게 보낸 김 씨의 탄원서가 애절하다. “제2의 고향으로 믿고 찾아온 남한 땅에서 이렇게 처참한 비극을 겪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왜 남과 북은 모두 저에게 죽음밖에 선고하지 않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