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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오름 > 죽음을 기억하라

한미FTA 동의안 처리에 앞서 기억해야 할 사람

[기획] 죽음을 기억하라 (16) 허세욱

[편집인주] 모든 죽음은 산 자들에게 안타까움을 남기지만 어떤 죽음은 산 자들을 부끄럽게 한다. 이런 죽음은 죽은 자가 의도했든 아니든 우리 사회에 어떤 의미를 남긴다. 생물학적 죽음을 수반하지는 않더라도 사회로부터 배제되어 사실상 죽은 것과 마찬가지인 사회적 죽음도 있다. 죽음마다 다양한 사연이 있겠지만, 분명한 것은 죽음을 부르는 한국사회의 문제가 사라지지 않는 한 이런 죽음이 계속되리라는 점이다. <인권오름>은 노무현 정권 시기인 2003년부터 최근까지의 죽음 가운데 점점 잊히고 있지만 산 자들이 반드시 기억해야 할 죽음을 기록함으로써 한국사회 인권의 현실을 점검한다.


일하고 있는 사무실로 2008년 열사력이 배달되어 왔을 때 가장 먼저 확인한 것은 4월 15일에 새로 등재된 허세욱 열사의 이름이었다. 허세욱 열사는 2007년 4월 1일 한미자유무역협정(아래 한미FTA) 폐기를 외치며 분신하여 4월 15일에 돌아가신 민주노동당 당원이자 나의 동지였다.

동지, 허세욱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위험성은 이미 수년 전부터 여러 사회운동 단체에서 경고해 왔으나, 한미FTA에 초점을 맞춘 반대운동이 대중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한 것은 2006년 여름이었다. 관악구에서도 15개의 시민사회단체, 노동조합, 정당이 힘을 합쳐 한미FTA 저지를 위한 연대기구를 꾸리고 지역에서 선전활동을 진행하고 반대서명을 받았다.

허세욱 열사는 택시 운전을 해야 하는 날을 제외하고는 항상 열성적으로 활동에 참여했다. 그리고 돌아가실 때는 택시 승객들에게 나눠주기 위해 한미FTA반대 내용의 유인물을 반드시 챙겼다.

또한 그는 한미FTA의 본질을 숙지하여 자신이 만나는 사람들에게 알기 쉽게 설명해 주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한미FTA가 국가간 협정이다 보니 고학력자들도 모르는 용어가 많이 나오는데, 이런 용어의 뜻을 정확히 알고 계신 허세욱 열사를 보고도 생전에는 그냥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돌아가신 후 유품을 정리하면서 정태인 선생님 강연회 자료집에 중요한 부분마다 밑줄을 치고 전문용어를 한 번씩 자필로 써본 흔적들, 한미FTA 관련 기사를 꼼꼼히 줄까지 쳐가며 읽고 나서 스크랩해 둔 자료들을 발견하고 그 겸허하고 성실했던 삶의 자세를 떠올리며 부끄러워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2007년 3월 30일 시청 앞에서 진행된 한미FTA 반대 촛불문화제에서 손수 만든 몸자보를 하고 있는 허세욱 열사. 생전 그런 적이 없는 분이 이 날은 당신의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하셨다.

▲ 2007년 3월 30일 시청 앞에서 진행된 한미FTA 반대 촛불문화제에서 손수 만든 몸자보를 하고 있는 허세욱 열사. 생전 그런 적이 없는 분이 이 날은 당신의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하셨다.



강요된 침묵이 부른 죽음

노무현 정권은 한미FTA의 필요성을 강변하며 졸속적인 협상 추진에 반대하는 시민들의 목소리를 억눌렀다. 2006년 9월에 전국 각지에서 동시에 개최되었던 한미FTA 반대집회 이후 한미FTA 관련 대규모 집회를 원천봉쇄하기 시작했다. 또 한미FTA를 반대하는 TV광고를 불허하고 협정문을 사실상 공개하지 않는 등 군사정권이 저지르던 반인권, 반민주적 작태를 드러내 보이는 한편, 정부기관을 총동원하여 한미FTA 홍보공세를 펼치며 여론조작을 감행했다. 이러한 행태는 협상 타결이 임박할수록 극에 달해갔다.

반 년 넘게 아침저녁으로 선전활동과 서명 작업 등을 지속하며 한미FTA 반대의 대열에 동참해 왔던 사람들은 여론을 무시하고 민중들을 탄압하는 노무현 정권을 통해 형식적 민주주의가 얼마나 손쉽게 훼손될 수 있는가를 뼈저리게 느꼈다. 돌아가신 후 지인들의 기억을 짜 맞춰 봤을 때, 허세욱 열사는 이 과정에서 어느 누구보다 더 깊은 절망감을 느꼈던 것 같고 그래서 더 절박하게 그 어떤 돌파구를 고민했던 것이 아닐까? 2007년 3월에 들어서면서부터 집회 참석 횟수가 너무 잦아서 “끼 거르지 말고 근무도 꼬박꼬박 하시라”고 말씀드린 적이 있고, 동료 당원들도 자꾸 안색이 어두워지는 것을 걱정하곤 했다. 문성현 당 대표가 한미FTA 추진 중단을 촉구하며 청와대 앞에서 무기한 단식 농성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알려드리자 수차례 찾아가 안부를 묻고 “나 같은 사람이야 다쳐도 상관없고 죽어도 상관없지만 당 대표님 같은 분이 이게 무슨 고생이냐”라며 괴로워했다고 한다.

이렇듯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한미FTA를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으나,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 정부의 태도와 타결이 임박한 협정을 되돌려 놓기 위해 허세욱 열사는 4월 1일 한미FTA 최종협상장이었던 하이야트 호텔 앞에서 자신의 몸에 불을 놓았다. 많은 언론에서 택시 기사인 그가 “한미FTA 폐기”를 외치며 분신하기까지의 삶의 이력을 소개했다. 많은 이들이 그의 소박하고 진실한 삶에 감동했으며 그가 소생하기를 간절히 염원했으나 그 바람은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 분신과 죽음 앞에서도 노무현 정권은 아랑곳하지 않고 협상을 타결했으며 시민들의 거센 항의에 한미FTA저지범국민운동본부 대표들과 노동조합 간부들을 연행하는 것으로 답했다. 현재 한미FTA는 국회의 비준 동의를 기다리고 있다. 그 시기가 2월 임시국회가 될지 총선 이후가 될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민주노동당을 제외한 모든 정당들은 한미FTA 비준안을 통과시키려 할 것이고, 이에 반대하는 시민사회운동 진영과 시민들은 비준 저지에 나설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이명박 정권도 노무현 정권과 같은 태도를 반복한다면 허세욱 열사와 같은 희생자가 또다시 발생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민주화 투쟁의 성과를 무로 돌리는 태도를 견지했을 때 분명 더 큰 국민적 저항에 맞닥뜨리게 될 것이라는 점을 새 정부는 명심해야 할 것이다. 살아있는 우리들 또한 허세욱 열사의 분신이 역사의 반동을 막기 위한 저항이었음을 기억하고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협하는 세력과 움직임을 경계하고 반대해야 할 것이다.
덧붙임

◎ 이봉화 님은 민주노동당 관악구위원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