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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오름 > 죽음을 기억하라

쪽방·고시원·비닐하우스촌과 화재

[기획] 죽음을 기억하라 (14) 주거빈곤

[편집인주] 모든 죽음은 산 자들에게 안타까움을 남기지만 어떤 죽음은 산 자들을 부끄럽게 한다. 이런 죽음은 죽은 자가 의도했든 아니든 우리 사회에 어떤 의미를 남긴다. 생물학적 죽음을 수반하지는 않더라도 사회로부터 배제되어 사실상 죽은 것과 마찬가지인 사회적 죽음도 있다. 죽음마다 다양한 사연이 있겠지만, 분명한 것은 죽음을 부르는 한국사회의 문제가 사라지지 않는 한 이런 죽음이 계속되리라는 점이다. <인권오름>은 노무현 정권 시기인 2003년부터 최근까지의 죽음 가운데 점점 잊히고 있지만 산 자들이 반드시 기억해야 할 죽음을 기록함으로써 한국사회 인권의 현실을 점검한다.


2007년 4월 24일 새벽 3시, 서울 중구 남대문로에 있는 쪽방 3층에서 화재가 발생했고, 방에서 잠자고 있었던 일용노동자 이 씨는 갑작스러운 화마를 피하지 못하고 생을 마감했다. 봉제공장에서 일을 해 모은 돈으로 사업을 시작했다가 사기를 당해 모든 재산을 날리고 1평이 채 못 되는 일세 7000원짜리 좁은 방에서 새롭게 시작하기 위해 힘겨운 삶을 살아온 그였다. 화재로 시커멓게 불탄 쪽방은 개보수를 통해 화재가 발생하기 이전보다 좀 더 깨끗하게 변했지만, 그곳에서 이 씨를 만나는 것은 이제 불가능하다.

화재가 발생하기 전 화훼마을 골목

▲ 화재가 발생하기 전 화훼마을 골목



계속되는 화재, 그리고 빼앗긴 생명과 삶터

화재로 소중한 목숨과 삶터를 빼앗긴 사람들이 쪽방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2006년 7월 서울 잠실동 모 빌딩의 지하 노래방에서 불이 나 번지면서 빌딩 3·4층 고시원에 살던 8명이 숨지고, 12명이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고시원이 도시의 무직자나 일용노동자 등에게 저렴숙소로 활용되는 경우가 늘어나면서 고시원에서 화재가 발생하여 사람이 죽거나 다치는 사건도 계속되고 있다.

또한 신발생 무허가 주거지인 비닐하우스촌에서도 화재가 계속되고 있다. 2002년 4월에는 서울 서초구 내곡동 안골마을에서 화재가 발생하여 할머니 1명이, 경기도 고양시 원당동 비닐하우스에서 화재가 발생하여 어린이 2명이 사망하였다. 비닐하우촌은 화재가 발생하면 대형 화재로 이어지기 때문에 사람이 죽지 않더라도 마을의 일부나 전체를 불태워 삶터 자체가 사라지기도 한다. 2006년 10월에는 서울 송파구 화훼마을에서 화재가 발생하여 35동 168가구가 전소되었고, 화재에 대한 충격으로 주민 1명이 숨졌다. 화훼마을은 대형 화재만 4번째이다. 그리고 2007년 4월 서울 서초구내 비닐하우스촌인 아랫성뒤마을에서 불이 나 32가구 가운데 13가구가 전소되었다.

화재로 인한 죽음은 발생 당시에는 세상의 관심과 안타까움을 받게 되지만, 가난한 이들의 삶에 대한 관심이 따뜻한 봄이 되면 사라지는 것처럼 시간이 지나면 수없이 많은 사건에 파묻혀 버린다.

서울 서초구 우면동에 위치한 뚝방마을, 판자와 부직포가 주요 재질인 비닐하우스촌은 화재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 서울 서초구 우면동에 위치한 뚝방마을, 판자와 부직포가 주요 재질인 비닐하우스촌은 화재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부적절한 주거, 그리고 미흡한 안전대책

쪽방, 고시원, 비닐하우스촌 등에서 화재가 끊이지 않고 발생하는 원인은 두 가지로 생각할 수 있다. 첫 번째는 쪽방, 고시원, 비닐하우스촌의 특성상 화재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쪽방의 경우 목조로 되어 있거나 전반적으로 건물의 노후도가 심해 누전이나 부주의에 따른 화재가 발생할 여지가 크다. 고시원도 상황은 마찬가지인데, 실제로는 숙박시설로 이용되고 있음에도 숙박시설이 갖춰야 할 기준에 대한 규정이 존재하지 않았다. 대다수의 고시원은 상업건물의 일부를 합판으로 된 간이판막이를 설치하여 방을 만들기 때문에 화재가 발생하면 순식간에 전체로 퍼지고 좁은 통로와 비상구의 부재로 피난로를 확보하는 것도 어려운 실정이다. 한편 비닐하우스촌의 경우 화재가 발생한 건물 1동을 불태우고 진화되는 경우가 많은 쪽방과 고시원과 달리, 주요 재질이 가연성이 높은 판자와 부직포로 되어 있어 화재가 한 번 발생하면 대형 화재가 되는 경우가 많다.

두 번째는 정부 차원에서 화재 예방 및 주거환경 개선을 위한 노력이 부재하다는 것이다. 되풀이되는 화재에도 불구하고, 쪽방, 고시원, 비닐하우스촌은 별다른 안전대책이 마련되지 않은 채 방치되고 있다. 화재로 목숨이나 삶터를 빼앗긴 사람들에 대한 지원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부적절한 주거로 인한 화재 발생에 대한 책임을 부적절한 주거지를 선택한 개인에게 돌릴 뿐이다. 그런데 최저주거기준에 미달하고 화재 발생 위험이 상존하는 부적절한 주거를 ‘사람이 살기에 적합한 수준’으로 개선하여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안전을 보장할 책임은 정부에게 있다. 하지만 정부는 자신의 책임을 다하지 않음으로써, 스스로의 힘으로는 ‘적절한 주거’를 확보할 수 없는 가난한 이들에게 언제 화재가 발생할지 모르는 위험한 곳에서 계속 거주하도록 강요하고 있다. 이는 앞으로도 화재로 인해 목숨을 잃는 피해자가 계속 생길 수 있음을 의미한다.

대전의 한 쪽방

▲ 대전의 한 쪽방



적절한 주거를 제공하기 위해 힘써야 한다

휴식을 취해야 하는 공간인 내 집에서 항상 화재에 대한 두려움을 느껴야 한다면, 그 삶은 당연히 불행할 수밖에 없다. 각종 위험으로부터 ‘안전하고 싶다’는 것은 모든 인간이 갖고 있는 본능이고, 안전함은 ‘적절한 주거’가 갖춰야 할 가장 기본적인 요소이다.

본인의 부주의가 아닌 주거빈곤 상태로 인해 발생한 화재로 목숨을 잃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쪽방, 고시원, 비닐하우스촌에서의 화재와 그로 인한 죽음에 접근할 때, 화재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이들이 ‘적절한 주거에서 살 권리’를 확보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적절한 주거에서 살 권리’인 주거권은 모든 사람의 권리이다. 유엔 사회권규약의 ‘일반논평 4’에 의하면, 적절한 주거는 ①점유의 법적 보장, ②서비스, 물자, 시설, 인프라에 대한 가용성, ③비용의 적절성, ④거주 가능성, ⑤접근성, ⑥적절한 위치, ⑦문화적 적절성을 모두 충족해야 한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 ‘적절한 주거에서 살 권리’가 법적으로 충분히 보장되지 않고 있다. 2003년 7월 ‘주택법’이 개정되면서 최저주거기준이 법제화되었지만 최저주거기준 미달가구를 해소하기 위한 정책적 노력이 부족한 상황이다. 최저주거기준은 ‘인간다운 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최소한의 주거생활 기준’으로, ①가구구성별 최소주거면적 및 용도별 방의 개수, ②필수적인 설비 기준, ③구조·성능·환경 기준으로 구체화된다. 구조·성능·환경 기준에서 “내열·내화·방열에 양호한 재질 확보”를 언급함으로써 화재로부터 안전해야 함을 명시하고 있다.

물리적 주거빈곤(최저주거기준 미달)으로 인한 죽음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일차적으로는 화재 예방을 위한 안전대책을 마련하고 시행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와 함께 화재 등의 위험이 상존하는 부적절한 주거를 적절한 주거로 바꾸기 위한 노력이 적극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주택보급률이 100%를 넘어섰지만 여전히 5가구 중 1가구는 최저주거기준에 미달하는 열악한 주택에서 거주하고 있는 오늘의 실태는 이러한 노력이 얼마나 절실한지를 보여준다. 다행히 최근 쪽방과 비닐하우스촌에 거주하는 주민들에게 매입임대주택, 전세임대주택, 국민임대주택 등을 공급하기 시작했다. 임대주택의 유형과 공급전달체계, 임대기간과 임대료 등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이 남아 있지만, 최저주거기준에 미달하는 대표적인 주거빈곤가구를 정책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고 여겨진다. 앞으로는 이 정책이 최저주거기준 미달 가구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보편적인 정책으로 발전되어야 한다. 안전함을 요구하는 최저주거기준이 충족된다면, 어쩔 수 없이 화재가 발생하더라도 그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덧붙임

◎ 김윤이 님은 한국도시연구소 연구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