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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으로 살다] 지정학적 위치가 아닌 얼굴 있는 존재들의 장소로

강정, 삶의 터전에서 사람으로 살다

[편집인주] 17회 서울인권영화제가 ‘세상에 사람으로 살다’라는 슬로건으로 5월 25일부터 28일까지 나흘 간 청계광장에서 열린다. 강정, 용산, 그리고 재능농성장과 쌍용차 분향소... 우리 사회의 현 주소를 보여주는 투쟁장소들. 그들은 왜 그곳에서 그토록 오랜 시간 싸우고 있는 걸까. 개발의 이름으로, 이윤의 이름으로 삶터를, 일터를 빼앗으려는 국가와 자본에 대항하여 싸우는 사람들이 곳곳에 있다. 터전이라 함은 단지 물리적인 의미만이 아니다. 자신의 존재, 관계, 역사의 뿌리가 고스란히 뻗어있는 곳이다. 그러하기에 대체될 수 없고, 쉽게 떠날 수 없다. 그러나 장소를 갖지 못한 사람들도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장애인과 성소수자 등 수많은 소수자들은 자신의 존재로 역사를 써나갈 장소를 찾기 위한 투쟁을 하고 있다. 상영관을 대관할 수 없어 거리상영 5년 째, 서울인권영화제가 인권영화관을 세우려는 거리는 어떤 의미일까. 장소를 지키고, 드러내고, 확장하기 위한 투쟁은 그 자체로 세상에 사람으로 살기 위한 외침이다. 그 외침을 들어보자.

지난 2008년, 강정에 들어가 처음 살기 시작했다. 주민 소개를 받으며 나는 한명 한명을 알게 될 때마다 도표를 그리며 외워야만 했다. 강정은 외지인도 거의 없는 마을인데다 궨당이라는 친족관계로 서로 얽혀 있어서, 한 사람은 누구의 자식이자, 6촌이자, 사돈이자, 갑장(*)인 관계 등의 수식이 한꺼번에 소개되었기 때문이다. 그때 강정마을에서 한 주민을 안다는 것은 다른 주민들과의 관계망을 함께 아는 것임을 깨달았다.

이런 마을에 국방부는 2007년 개발 ‘혜택’으로서 해군기지를 짓겠다고 했다. 군사기지라는 위화감을 주지 않도록 담장을 제주 돌담으로 만들고, 주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수영장, 테니스장 같은 부대시설을 만들겠다고 했다. 하지만 일부 주민들에 의해 찬반토론 없이 박수로 유치안이 통과된 후(**), 원래 제시액보다 턱없이 낮은 해녀보상금, 토지 강제수용, 밀어붙이기식 공사 진행 등의 문제들은 기존의 군사기지 건설과정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주민들은 초창기 해군이 말했던 모든 이야기가 거짓이었음을 하나둘씩 알아가기 시작했다.

[사진: 강정지킴이가 보내온 최근 구럼비 해안의 모습]

▲ [사진: 강정지킴이가 보내온 최근 구럼비 해안의 모습]


해군기지가 필요하다고 역설하는 사람들의 주장을 가만 살펴보면 모두 하나같이 다음의 문장으로 시작되고 있는 걸 볼 수 있다.

“우리나라는 반도국가로서 지정학적으로 해양국가로서의 위치의 나라이다. 따라서….”

이 문장이 나오면 그 뒤의 이야기는 안 들어도 짐작된다. “지정학적으로”라는 개념 자체가 해군기지 건설을 필연적으로 요청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지정학(地政學)은 말 그대로 땅을 정치적으로 구획하고 배분하는 개념이다. 1,2차 세계대전에 주요하게 쓰였고, 특히 나치즘에서 이 개념을 주요하게 사용했다고 한다. 인간의 몸처럼 유기적인 것으로 국가를 바라보면서, 당시 유행했던 우생학과 진화론적 세계관에 힘입어, 국가의 몸이 진화하고 발전하려면 더 넓은 국토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사회교과서부터 각종 국방 관련 홍보까지 자주 접하는 ‘한국은 대륙과 일본을 연결하는 교량적 위치이기에 언제나 양국의 갈등에 휘말려든다’는 설명도 이러한 관점에 바탕을 둔 것이다.

이러한 접근은 땅에 살고 있는 구체적인 사람들의 삶을 ‘인공위성의 시각(!)’으로 재단하게 한다. 국경을 중심으로 한 영토의 크기, 그리고 그 크기를 보호하기 위한 무력의 보유량으로 국력이 판단될 뿐이다. 때문에 개개인의 모든 성적·계급적·지리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그 사이의 공통성을 얽어매는 추상적인 원리로서의 국민만 남게 된다. 이런 국민은 각각의 특성을 가진 ‘얼굴 있는 존재’가 아닌, 인구(人口)일 뿐이다. 인공위성에서 내려다보면, 땅에 발붙이고 사는 사람들은 그저 한낱 미물처럼 보이지 않겠는가.

결국 강정에 해군기지를 짓겠다는 건 국가가 주민들을 미물로 보겠다는 것이며, 주민들의 관계와 숨결이 닿은 장소(place)를 국가가 언제든지 동원/배제할 수 있는 공간(space)으로 만들겠다는 의지이다. 관계망 속에 서로 얽혀 살고 있는 얼굴 있는 주민들을 그저 ‘먹는 입’(人口)으로 한정하고, 강정을 자기 몸의 일부로 마음대로 통치하겠다는 것이다. 지금 강정에서 국가는 공적 권력을 가장 사적인 방식으로 행사하고 있다. 마을의 자치규약과 회의체계는 무시되고, 2만 원짜리 경범죄 사안으로도 현행범 체포가 마구잡이로 되고 있으며, 주민과 지킴이들을 향한 경찰과 군인의 린치 수준의 국가폭력이 늘어가고 있다.

‘지정학적 위치’라는 건 이미 주어진 운명 같은 실재가 아니라, 군비확장을 위해 자국 영토를 동원하는 이론적 근거일 뿐이다. 그런 상태에서 항상 위협인식은 과장되고, 국민의 삶과는 전혀 상관없는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강정 주민 입장에서 보면, 중국과 일본에 대한 견제/방어(=폭력)로서의 해군기지는 자기 땅에 대한 파괴일 뿐만 아니라, 주민들이 인접국가와 맺는 관계를 모두 파괴할 뿐이다. 강정의 해녀들은 물질한 해산물 대부분을 한국이 아닌 일본 시장에 판다. 그래서 엔화의 화폐가치는 이들에게 일상적인 관심사이다. 또 라디오 주파수를 돌리다보면 중국 방송도 잡히는 곳이 이곳이다. 그만큼 제주도는 중국과 일본에 대해 국가 중앙과는 다른 방식으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군비확장안이 가동되기 시작하면, 다른 정책들과는 비교도 안 되게 훨씬 강력하게 작동되어서 국가의 다른 모든 기능을 정지시킨다는데 있다. 따라서 강정을 해군기지로부터 지키는 것은, 그간 수많은 싸움을 통해 만들어온 협상·합의·견제 등의 국가장치들을 주민 입장에서 재구성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국민국가 내에서 결코 균일하지 않은(균일할 수 없는) 장소의 얼굴을 드러내는 것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연일 시행되고 있는 발파와 준설로 설사 구럼비가 시멘트덩어리가 된다 해도 끝나는 싸움이 아니다. “기지가 들어오멍 어떵 할거고, 안 들어오멍 어떵 할껀가? 여기서 사는 사람은 계속 살아야 하지 않겠나.” 구럼비가 만들어내던 용천수인 할망물, 이 물이 영험해서 늘 제사상에 올리는 강정주민의 삶이 계속되는 한, 강정을 삶의 터전으로 지키는 싸움은 계속될 것이다. 삶이 계속될 때 얼굴 있는 존재들의 터전을 집어삼켜온 국가에 제동을 걸 수 있는 힘이 될 것이다.
* 갑장은 동갑이라는 말로, 갑장모임은 마을에서 중요한 친목모임 중 하나이다. 해군기지가 건설되기 전 강정에 이러한 친목모임은 300여개가 넘었다고 한다. 이후 찬반으로 갈라진 의견 때문에 이 모임들은 모두 깨진 상태다.

** 강정마을에 있는 풍림콘도가 들어왔을 당시, 마을주민들은 8차례 토론회를 개최해서 콘도로 인한 환경파괴정도와 마을에 대한 보상비 등에 대한 절차들을 충분히 논의했었다.

17회 서울인권영화제 첫째날(5.25.금) 저항_연대의 날

절망은 저항으로 승화됩니다. 저항은 연대로 열매를 맺습니다. 저 멀리 팔레스타인에서, 버마에서, 제주 강정에서, 부산 영도다리에서 그리고 촛불 광장에서. 다시, 연대의 장을 펼칩니다.

12:00 <기억으로 묶다> 촛불다큐_우리 집회할까요? Shall We Protest?_Chotbul Documentary
미나리, 해ㅋ | 한국 | 2009 | 다큐 | 42분 25초 | K KS
2008년 5월 2일과 3일. 첫 촛불 시위는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이 다큐멘터리는 이명박 정부와 보수언론에 맞서 인터넷에서 스스로 정보를 생산하고 공유하며 정부정책을 비판하고 행동에 나선 사람들이 5월 2일과 3일의 촛불문화제를 조직한 과정의 일부를 다룬 것이다.

12:50 팔레스타인의 파편들 Fragments of Palestine
마리 카스파리 | 독일 | 2011 | 다큐 | 88분 | E A KS ES
군복무를 거부하고, 이스라엘에 의해 왜곡된 진실을 바로잡기 위한 활동을 하는 이스라엘인 마자(Maja). 누이가 이스라엘 군인에게 살해당하고, 연극 제작을 통해 저항하는 팔레스타인인 라비아(Rabea).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평화적인 저항을 지지해주기 위해, 영국에서 온 조디(Jody). 영화는 팔레스타인에 주둔한 이스라엘 군대에 평화적인 방식으로 저항하는 세 명의 젊은이를 담담하게 보여준다.

14:30 어느 화창한 날 One Fine Day
클라스 벤스 | 네덜란드 | 2011 | 다큐 | 70분 29초 | E A S G C KS ES
버마 스님과 칠레 학생, 독일 신부, 이라크 여성, 미국의 전직 운동선수, 중국의 젊은이. 서로 다른 문화적·종교적 배경을 가진 여섯 사람. 그들 모두 작은 비폭력적인 저항을 통해 사회에 중요하고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온다.

15:50 창살로 막을 수 없는 자유 Into the Current : Burma's Political Prisoners
잔느 할러시 | 버마, 태국 | 2012 | 다큐 | 77분 | E B KS TA
민주화 운동가들이 정치범으로 수용되어 수감·고문을 당하는 버마의 어두운 정치현실 한편에는, 동시에 자유를 되찾으려는 버마인들의 확고한 노력이 있어왔다. 영화는 강력한 시각적, 역사적 증거를 통해 군부 독재의 폐해를 보여준다.

17:50 구럼비 가는 길에 펜스를 치던 날.
조성봉 | 한국 | 2011 | 다큐 | 8분 10초 | K TA ⓥ
2011년 9월 2일 새벽 4시 반. 경찰은 제주 강정마을에 400여명의 공권력을 투입 주민들을 고립시킨 채 해군기지 건설 공사장 주변에 펜스를 설치하고 주민과 활동가들을 연행했다. 구럼비로 가는 모든 길은 차단되었다.

17:58 구럼비야 사랑해.
조성봉 | 한국 | 2011 | 다큐 | 11분 11초 | K TA ⓥ
기만과 탈법위에 시작된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사업. 막무가내식 건설 강행으로 아름다운 제주 강정은 멍들어간다. 제주도 강정 주민들은 해군 기지 건설을 막기 위해 몇 년간 힘든 싸움을 계속 해 오고 있다.

18:09 여기는 강정마을입니다.
박성수 | 한국 | 2011 | 다큐 | 8분 49초 | K TA ⓥ
사람을 따스하게 품을 줄 아는 생명이 살아 숨 쉬는 강정마을 너럭바위 구럼비. 국가공권력은 무력을 동원해서 해군기지 건설을 강행하지만, 불굴의 의지로 강정을 지키려는 이들의 투쟁은 이곳 강정마을에서 멈추지 않는다.

19:00 개막식

19:50 <개막작> 버스를 타라 Get on the Bus
김정근 | 한국 | 2012 | 다큐 | 80분 | HDV | 컬러 | 16:9 | K KS
SNS와 희망버스는 2011년, 새로운 운동에 물꼬를 텄다. 공고하고 일방적이던 언론을 균열시켰고, 오만하던 정치권과 재계에 각성을 요구했다. 높다란 한진중공업의 담장을 넘어섰으며, 차벽에 가로막힌 영도 봉래교차로에서 물대포를 맞으며 밤을 지새웠고, 청학수변공원에서는 집회가 축제가 되는 순간도 맞이했다. 희망버스는 점차 진화했고 누구나 참여가 가능한 거대한 난장판이 되었다. 다시 제자리에 선 희망버스. 과연 어떻게 진화할까.

상영작언어 K한국어 E영어 A아라비아어 S스페인어 B버마 G독일어 C중국어 D네덜란드어 F프랑스어 Am암하라어 N노르웨이어 Sw스와힐리어
자막 KS한글자막 ES영어자막
장애인 접근권 화 화면해설
TA 관객과의 대화
비디오로 행동하라
덧붙임

보라 님은 평화연구활동가입니다.(purpleavenue1@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