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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 주고 약 안주는 학교를 위한 처방전

[삘릴리~ 학생인권 마술피리](10) 건강과 안전에 관한 권리

“밥 잘 먹고 튼튼해야 공부 잘하지.” 참으로 맞는 말이다. 사람에게 건강한 몸과 마음은 삶을 영위하는 데 있어 중요한 부분이다. 특히나 학생은 신체적인 성장기에 있는 만큼 건강에 이로운 환경에서 배움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요즘같이 하루가 멀다 하고 교육에서의 경쟁이 첨예해지고 오히려 입시 공부에 대한 압박 때문에 정신적 스트레스와 수면 부족, 운동 부족 등으로 학생들의 건강권이 침해 되고 있는 상황을 떠올릴 때 어른들이 아이들을 보며 던지는 위와 같은 말은 기만적으로 들릴 수밖에 없다. 끊임없이 기계를 돌리기 위해 가끔 기름칠(건강, 영양)을 하고 나사를 조이는(안전) 느낌과 비슷하다고 할까. 학교와 국가가 제시하는 ‘학생다움’의 기준을 준수하기 위한 조건으로 학생의 건강과 안전에 관한 권리가 해석되는 현실에서 대체 “무엇으로부터” 학생들의 권리를 지키겠다는 것인지를 명확히 따져봐야 한다.

지지와 공감으로서의 치유와 상담

전날 까지 한 교실에서 공부하던 급우의 자살소식을 전해 들었을 때, 학급에 남아있는 아이들은 어떠한 기분을 느끼게 될까. 친구의 죽음을 접한 후의 심리적 충격과 그로 인한 트라우마는 이들 인생에 어떠한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까.
대부분의 학교는 학생들에 대한 보다 면밀한 보살핌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이러한 질문에 무감각하다. 오히려 학교의 명예 실추를 염려하여 발생한 문제를 성급히 덮어버리기 일쑤이다. 학교에서는 정체성, 문화, 개성 등이 저마다 다른 학생들이 한곳에 모여 매우 다양한 관계를 맺는다. 이를 염두에 둔다면, 학생의 정신 건강과 치유를 위한 정책을 수립해야할 학교 당국의 책임은 더욱 절실해진다. 점점 더 많은 학생들이 과도한 입시 스트레스로 우울증, 정서불안 등의 증세를 보이는 현실을 근본적으로 개선하기 위해 학교는 일단 감당할만한 교육을 제공해야 한다.

2006년 보건복지가족부가 제공한 통계를 보면 자살이 청소년 사망 원인의 2위를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교우 관계나 학업, 가정 문제로 정신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학생들이 늘어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학교는 학교 안에 다양한 어려움을 지닌 학생들이 존재함을 인정하고, 그에 적실한 상담 및 치유 활동을 제공해야 한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치유가 ‘정상성의 회복’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학교 안의 청소년 동성애자의 경우 자신의 성정체성을 심각하게 고민하지만 그 고민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자기 자신을 부정해야 하는 상황을 끊임없이 마주한다. 동성애를 변태나 에이즈의 주범으로 묘사하는 교과서를 접하며, 편견에 가득 찬 교사의 한마디를 들으며 자기 존재에 대한 모멸감을 느끼기도 한다. 성정체성을 고민하는 청소년 가운데 77.4%가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으며, 이 가운데 47.7%가 실제 자살을 시도한 경험이 있다는 조사 결과는 학교 안에서의 이들의 위치와 고통을 잘 보여준다. 이들의 치유에 있어 필요한 것은 성정체성을 탐색하고 고민하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정보와 지지와 공감을 바탕으로 마음 속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상담자이다. 정상성의 회복, 즉 이성애자로의 귀환을 목표로 상담을 하고(상담 교사가 이성 파트너를 소개시켜주겠다는 등의 상담활동을 함. 일다 2007-08-17)동성애를 병으로 여겨 치유활동을 벌이는 것은 오히려 이들의 정신적 고통을 심화시킬 수 있다.

‘꾀병’은 없다

가끔 학교는 학생들도 인간이며, 그러기에 아플 수 있다는 사실을 잊는 듯하다. 학생이 쓰러질 정도로 아픈 것이 아니거나, 부모님의 확인전화가 없으면 교실을 떠나 보건실이나 병원에 가서 안정을 취하는 일이 쉽지 않다. 공부하기 싫어 부리는 ‘꾀병’에 대한 방치는 사실 학생들이 교실에서 벗어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비행’에 대한 교사의 두려움과 연결된다. 낮 시간에 거리를 돌아다니는 학생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다는 것, 청소년은 곧 학생이며 학생은 교실 안에서 교사의 관리와 감시 하에 있어야 바람직한 모습이라는 사회의 강박 때문에 학생은 아파도 좀처럼 쉬거나, 병원에 갈 수 없다. 몸이 아픈 학생의 호소는 존중해야 하며, 적절한 의료 조치를 받는 절차가 까다로워서는 안 된다.


[자료: 교육인적자원부]

▲ [자료: 교육인적자원부]



학교 안의 병원이라고 할 수 있는 보건실의 경우는 최적화 되어 있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할 문제는 보건실 예산 확충 및 적절한 수의 보건 교사 배치이다. 경북지역의 경우 학교 예산 중 1%만이 보건 교육에 할당되고 있으며, 보건 교사 배치 비율이 56%로 두 학교당 한 명의 보건 교사가 있는 꼴이라는 통계자료가 발표되기도 했다. (2008년 (사)보건교육포럼) 보건 교사가 없는 학교 대부분이 농어촌에 있거나 의료서비스가 도시에 비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지역이라 농촌 지역 소규모 학교 학생들의 경우 학교 안전사고가 났을 때 즉각적인 대처가 어려운 것은 물론이고 의료 혜택 불편, 학교 보건 교육 차질 등이 우려되고 있다.

먹을 것 가지고 장난치지 말라

급식의 질 확보 역시 학생 건강권에 있어 중요한 화두이다. 학교에서 1~2식을 해결하는 학생들이 많으므로 급식은 학생의 건강권과 직결된다. 2006년 대형 식중독 사고를 계기로 2010년까지 모든 학교 급식을 직영 전환하도록 학교 급식법이 개정되긴 했지만, 급식 시스템 자체에 공공 영역의 개입을 확대하는 등 보완할 부분이 많은 실정이다. 그러나 조전혁 의원 등 18인이 위탁급식도 선택할 수 있도록 인증제를 도입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학교급식법 개정안을 최근 국회에 제출해 현행 법안의 취지가 사라질 위기에 처해있다.

[사진출처: 인터넷뉴스 바이러스]<br />

▲ [사진출처: 인터넷뉴스 바이러스]



조전혁 의원 등은 학교 급식을 시장의 흐름에 맡겨 직영과 위탁의 경쟁을 통해 학교 급식의 질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시민 생활의 필수 영역들이 민영화 될 경우 어떤 결과가 초래되었는지를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이것이 얼마나 현실성 없는 이야기인지 금세 증명된다. 공공 영역에 급식의 질을 관리하고 제어할 수 있는 실질적 권한이 없는 경우, 먹거리의 안전성을 보장할 최소한의 장치가 사라지게 된다. 이와 함께 급식에 대한 교육 당국의 지원도 사라져 급식비 부담이 전액 학생과 학부모에게 떠맡겨진다.
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외부 기업에 급식을 위탁하면 급식의 질적인 문제뿐 아니라 급식에 대한 보편적인 접근권 역시 보장될 수 없다. 학교 급식이 직영으로 운영될 때에도 급식소에 지문 인식기를 설치하는 등 운영의 편의만을 생각해 학생들의 인권을 침해하는 사건들이 발생했는데, 위탁 운영이 늘어나면 이러한 인권 침해 사항이 정당한 이윤 추구를 제재할 수 없다는 이유로 합리화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돈이 없으면, 밥을 굶는 것이 당연하다는 논리가 학교에서 통용될 판이다. 국가가 초중등교육에서 책임 있는 무상 교육을 실현하고자 한다면 학생들의 ‘먹을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보다 적극적인 행동을 취해야 하며 그 일환으로 확실한 직영 관리 감독 시스템을 확보해야 한다. 급식비 마련이 어려운 학생이 급식 지원을 받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는 권리이며, 학교는 이를 인정하고 빈곤 학생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급식비 미납 학생이나 급식 지원을 받는 학생이 당사자의 의사와 무관하게 공개되는 일은 없는지, 급식비 납부에 대한 공개 독촉을 받거나 부정적 시선에 노출되어 수치심을 느끼는 일은 없는지, 학교 안팎에서 활용할 수 있는 지원책에 대한 정보가 적극 제공되고 있는지 등에 대한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1등급 인간, 5등급 인간

천식에 걸린 학생이 오래달리기를 하다 쓰러져 병원으로 후송되었다는 이야기는 체력장으로 대표되는 학생 체력의 등급화가 낳는 문제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체력장, 신체검사 등을 통한 학생 몸에 대한 통제와 관리는 근대 이후에 이루어진 것으로 국가에서 필요로 하는 노동자와 군인을 양성하기 위한 제도화된 양식이라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비장애 남학생 중심의 체력 측정 및 등급화는 그 자체로서 여성, 장애 학생에 대한 차별을 낳는다. 각종 체육 시설 지원 또한 여성, 장애 학생에 대한 적극적 지원을 우선으로 하지 않아 시설 이용에 있어서도 차별은 유지되고 있다.
표준화된 체형, 마른 몸에 대한 상찬이 이어지면서 일부 학교에서 운영되고 있는 비만 특별 관리반의 경우도 인권 침해의 요소가 많다. 학생의 선택권을 무시하고 본인 동의 없이 반강제로 실시되는 경우가 많으며, 비만은 곧 자기 관리 부족이라는 이미지로 연결돼 비만 학생 개인에 대한 낙인으로 이어진다. 저소득층 일수록 비만 아동이 많다는 통계 등은 비만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문제임을 말해준다. 좀 더 시스템 차원의 접근이 필요하며,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인권 침해 요소가 발생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수학여행에 가려면 각서를 써야한다?

안전사고가 학생의 부주의 때문에 발생한다는 인식은 수업시간 외 운동장 사용을 금지하는 등 학생의 행동에 대한 과도한 제한조치를 취하는 근거로 작용한다. 이는 안전을 명분으로 학생 개인의 행동을 과도하게 제한하는 것으로, 학생의 활동을 부당하게 제한하지 않으면서 학생들의 안전권을 보장할 수 있는 방안을 적극 마련하는 것이 우선이 되어야 한다. 또한 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학교는 책임을 회피해 학생 및 학부모가 그 부담을 고스란히 짊어지게 해서는 안 된다. 학교 안에서 발생하는 사고뿐 아니라 학교 밖 교육 활동, 실습기간, 훈련기간 등에 발생하는 사고도 학교 당국이 정당한 책임을 져야 한다.

2007년 5월 울산의 한 초등학교에서는 수학여행을 데려가는 조건으로 장애학생에게 안전사고가 발생하면 학교와 교사의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내용의 동의서를 장애학생의 부모에게서 받았을 뿐만 아니라, 학부모에게 수학여행에 동행하되 학생들이 탄 버스에 동승하지 말고 개인 승용차로 뒤따라오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경향신문> 2007.5.24) 2005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재가(在家)장애인의 15.8%가 초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했고, 중학교를 마치지 못한 경우는 45.2%,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한 경우는 62.0%라는 사실은 학교가 장애를 가진 학생에게 얼마나 차별적인 공간인지를 짐작케 한다. 장애인이 불편을 겪는 이유는 장애 때문이 아니라, 비장애인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는 사회적 여건 때문이라는 점을 고려하여 학교는 장애 학생의 교육권과 안전권을 보장하기 위한 더욱 적극적 노력을 수행할 필요가 있다. 올해부터 시행된 장애차별금지법으로 장애 학생 차별 금지에 대한 법적 기준이 강화되었으나 더욱 중요한 것은 각급 학교들이 이를 받아들여 시정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다. 시도 교육청들이 이를 뒷받침하여 차별학교 제재 및 보조 인력 배치를 위한 예산 지원을 실시하는 것 또한 필수적이다.

시장 논리에 앞선 교육환경의 질 보장

학생은 일상의 많은 부분을 학교에서 보낸다. 학생뿐 아니라 학교를 일터로 삼고 있는 학교 구성원 모두를 위해서도 쾌적하고 건강한 학교 환경 조성은 필수적이다. 학교는 학생이 편하고 건강하게 생활하고 배울 수 있도록 기본 시설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이는 냉난방 시설, 위생 설비, 학습 공간의 조도, 책걸상 크기, 수납공간 등의 물리적인 여건을 이야기함과 동시에 교사 1인당 학생 수의 축소, 학급당 학생 수의 축소 등 질적인 교육 환경의 개선 모두를 포괄한다.
학교 현장에서 실질적으로 학생의 안전 관리에 대한 책임은 1차적으로 교사에게 돌아간다. 교사 1인당 학생 수가 많으면 그만큼 사각지대가 발생해 학생 개별에게 적절한 돌봄을 제공하기 힘들어지며, 동시에 교사의 업무량이 과다해진다. 또한 좁은 공간에서 다수의 학생이 생활할 경우 각종 시설에 대한 접근 및 이용률이 떨어져 자연히 학생 복지 수준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한국은 여전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교원 1인당 학생 수가 최악의 수준임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학생 수 감소 예측에 따른 교사 정원 감축 방안’에 따라 내년에 일부 지자체의 교사 수를 줄이기로 결정해 비판을 받고 있다. 전체 학생 수는 줄었지만, 학급 수는 오히려 늘어 교사의 부담은 가중된 상황임에도 이를 고려하지 않고 인건비를 줄인다는 얄팍한 경제 논리에만 천착해 오히려 교육의 질을 후퇴시키고 있는 것이다.

학생의 건강과 안전에 관한 권리는 이들이 자신의 생명을 누리고 건강하게 살기 위해 갖춰져야 할 필요조건이다. 그러나 오히려 학교와 국가는 미성숙한 학생들에 대한 통제의 이유로, 동의에 기반을 두지 않은 각종 강제의 명분으로 학생들의 건강과 안전을 언급한다. 과도한 게임은 학생들의 몸과 마음을 이롭지 못하게 한다며 부모에 의한 게임 아이디 삭제와 같은 제재 조치를 취하면서도 과도한 공부로 인한 스트레스와 수면 부족을 방지하기 위해 학원 이용 시간을 제재하는 조치는 취하지 않는 것을 보면 학생의 건강과 안전 보다는 그들의 몸과 정신에 대한 표준화된 통제와 관리가 이 사회의 더 큰 관심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도대체 무엇으로부터 학생의 건강을 지켜낼 것인가. 감당할 수 없는 교육, 원치 않는 경쟁, 정상성의 강요, 인권보다는 무분별한 경제 개발을 중시하는 세상으로부터 학생들을 ‘보호’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교육권, 표현의 자유, 양심의 자유 등 여타 다른 학생인권과 관련을 맺을 때에야 비로소 학생을 주체로 하는 건강권, 안전권이 될 수 있다는 사고의 전환이 시급하다. 학생들의 건강한 현재 속에, 그토록 사회가 바라는 학생들의 건강한 미래가 담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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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임

* 한낱 님은 인권교육센터 ‘들’의 활동회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