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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영화를 만나다] “이혼을 할 지언정 투쟁을 멈출 수는 없다”

여성 노동자들의 당당한 투쟁기록, <얼굴들>, 지혜 감독, 2006

여성노동자들, 세상을 향해 외치다

지혜 감독이 만든 영화 <얼굴들>은 시그네틱스 여성 노동자들의 투쟁 기록이다. 1998년 반도체회사 시그네틱스는 부도 위기를 맞으면서 파주로 공장을 이전하기고 결정했다. 이후 시그네틱스는 영풍회사에 인수되었고, 영풍은 파주공장으로 이전을 앞두고 안산에 공장을 지어 노동자들에게 안산으로 출근할 것을 통보하였다. 그러나 회사 측이 안산공장에 투자할 계획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여성노동자들은 파주 공장 고용을 요구하며 투쟁을 시작했다. 일터의 노동자로 일자리를 잃을 위기에 처한 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회사에 맞서 싸우는 것이다. 그러나 막상 투쟁을 시작해보니 이것이 만만치 않다. 그들은 ‘여성’으로서 우선 집안의 ‘가장’인 남편의 동의를 얻기 위해 가족을 설득해야 했다. (여성)노동자들의 싸움이었지만 그들의 지원부대인 가족대책위원회를 만들고 나서야 비로소 본격적인 투쟁에 돌입할 수 있었다.

결혼한 여성노동자들은 일터에서는 노동자이지만, 집으로 돌아가면 가정이라는 영역을 책임지는 사람, 자식들의 어머니이자, 남편의 아내이고, 시부모의 며느리다. 노동자이지만 그들은 임금노동의 가치보다 ‘보살핌’이라는 살림노동의 일차적인 책임자로 간주된다. 노동조합에 가입한 여성노동자들에게 가족들은 ‘승산 없는 싸움 하지 말고 다른 일자리를 알아보라’는 식이다. 그러나 <얼굴들>의 주인공들은 물러서지 않는다. 노동조합은 성별에 제한을 두지 않는다. 노동조합은 여자든 남자든, 나이가 적든 많든 노동자들이 자신의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만드는 조직이다. 그래서 노동조합의 힘은 ‘누구로 구성 되었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많은 조합원들이 힘을 모으는가’가 중요하다. 시그네틱스 여성노동자들은 자신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남편의 등에 숨지 않고 가족의 울타리에 안주하지 않고, 당당하게 세상 한복판에 섰다.
한강대교 위에서 고공농성을 하고 있는 시그네틱스 노동자들을 담은 <얼굴들> 영화의 한 장면.

▲ 한강대교 위에서 고공농성을 하고 있는 시그네틱스 노동자들을 담은 <얼굴들> 영화의 한 장면.



투쟁 중에도 가정을 책임져야 하고

일반적으로 (기혼) 남성노동자들은 투쟁할 때 부인이 가정을 전적으로 책임지는 상황에서 투쟁에만 전념하면 되지만, 여성노동자들은 투쟁하기 위해서 가정을 먼저 책임져야 했다. 그럼으로써 비로소 그녀들은 ‘가정’이라는 공간을 넘어설 수 있었다. 투쟁 과정에서도 그녀들은 평소보다 집안일을 더 완벽하게 잘 해야 했다. 집을 비우고 집회에 나가기 위해서는 자신의 빈자리가 드러나지 않게 미리 대책도 세워 놓는다. 장을 미리 봐서 냉장고를 꽉 채워 놓고, 맛있는 반찬을 넉넉히 만들어 놓고, 빨래도 바느질도 말끔하게 해놓는다. 어린 아이를 등에 업고서라도 투쟁에 나섰다. “승리하여 존경받는 어머니로 살아 갑시다”라고 크게 쓰인 종이 벽보에는 여성노동자들의 절실한 꿈이 박혀 있다. 투쟁의 승리만이 가족에게 지은 알 수 없는 ‘죄책감’을 씻어낼 수 있을 거라고 말한다. 그 죄책감을 떨쳐내기 위해서라도 그들은 자본과 맞서 싸워 승리해야 했다. ‘아이들과 가족의 미래를 위해서’라는 목표는 자신의 권리를 찾는 것에서부터 자존감을 회복하는 것과 공동의 투쟁의 목표가 되었다.

가부장적인 한국 사회에서 여성들은 노동자이면서도 노동자로서의 자격을 얻기 어렵다. 여성은 항상 정치적 주체로서의 독립적인 노동자가 아닌, ‘누구누구의 어머니’나 ‘남편의 아내’라는 부차적인 정체성에 갇혀 있다. 여성의 노동이란 주로 사람을 보살피고, 필요에 따라 그때그때 보조적인 역할을 하는 정도로 인식된다. 그래서 여성 노동은 국가, 사회, 기업, 가족 등과 같은 조직에서 부차적인 노동으로, 값싸게 활용된다. 법적으로는 여성에서 평등한 권리가 주어졌다고 하나, 여성의 노동과 역할은 여전히 불안정한 상태에 있고, 사회적으로 불평등한 위치에 놓여 있다.

영화에서 만난 아줌마 노동자. 그들은 ‘아줌마의 깡’으로 6년이라는 긴 투쟁을 이어갔다. 하지만 회사 측이 끝까지 교섭에 나오지 않자 투쟁의 위기를 맞는다. 이런 상황에서도 그녀들은 자신이 스스로 선택한 길이라며 이 투쟁이 승리하지 않을지라도 후회하지 않겠다고 한다. 그들은 죽기를 각오하고 한강대교에서 고공농성을 진행하고, 열흘이 넘는 단식 농성에, 칼바람이 몰아치는 여의도 시멘트 바닥에 앉아 삭발·농성을 한다. 회사 측과 교섭자리는 만들어졌지만 사측은 파주공장에 노조는 받을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며 교섭을 결렬시켰다. 그러나 여성노동자들은 포기하지 않고 지금도 투쟁하고 있다.
영화에서는 시그네틱스 여성 노동자들이 단식 농성 중에도 멈출 수 없는 가족과 가정일에 대한 고민을 들려준다.

▲ 영화에서는 시그네틱스 여성 노동자들이 단식 농성 중에도 멈출 수 없는 가족과 가정일에 대한 고민을 들려준다.



뉴코아에서 만난 시그네틱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이랜드 홈에버와 뉴코아, 킴스클럽 등과 같은 대형매장도 여성 노동자가 대부분이다. 유독 여성 노동자에게만 급격히 늘어나는 임시직, 시간제근무, 파견근무 등과 같은 변칙적인 불평등한 노동조건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언제 경찰의 침탈이 들이 닥칠지 모르는 상황이지만 여성 노동자들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뉴코아 강남 매장 점거농성장을 방문한 지혜 감독과 시그네틱스 여성 노동자들은 힘차게 그녀들을 지지했다. 시그네틱스 투쟁을 진행하고 있는 한 여성 노동자는 남편이 투쟁에 반대한다면 이혼을 할지언정 투쟁을 멈출 수는 없다고 말하며 자신의 삶에 있어서의 노동조합 활동의 의미에 대해 설명했다.

투쟁을 하면서도 가사일까지 책임져야 하는 그녀들의 삶은 고단하기만 하지만, 그녀들은 투쟁을 통해 ‘누군가의 무엇’이라는 부차적 존재로서의 자기 자신이 아닌 독립적인 정치적 주체로서의 자신을 세워가고 있다. 비록 투쟁의 결과는 그리 성공적이지 않다고 하더라도 독립된 정치적 주체로서 자신의 자존감을 잃지 않기 위해 결정한 스스로의 선택에 대해 “후회하지 않는다”고 하는 여성 노동자들의 삶은, 그래서 그 결과와는 무관하게, 빛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