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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교육, 날다] 인권으로 버무린 공부방 ‘가치반찬’

공부방 교사들과 함께 고민한 더욱 인권적인 공부방의 모습은~

공부방에서 아이들과 함께 ‘왁자지껄’ 인권교육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교사가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온다. 그러더니 아이들을 향해 “조용히 해! 내가 인권수업이니까 안 때리는 줄 알아?”라며 찬물을 쏴~악 끼얹고 나간다. 인권교육을 하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완전 황당...-_-;; 하지만 더욱 황당한 일은 이런 상황이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 인권교육에 대한 이해가 없는 곳에서 교육을 진행할 경우 심심찮게 접하게 된다는 것이다. 인권이 이처럼 특별한 수업 시간에만 존재하는 그저 좋은 이야기가 아니라 일상에서 만나는 즐거운 이야기가 되기 위해 무엇이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 공부방 교사들과 함께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았다.

날개달기 - 즐겁게 ‘가치반찬’ 만들기

공부방은 교육 공동체이자 지역 공동체를 꿈꾸는 공간이다. 그러다보면 함께 지향하는 가치들이 생기게 되는데, 이런 가치들은 추상적인 선언으로만 끝나지 않고 구체적인 상황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결국 공부방에서 추구하는 가치가 무엇이냐에 따라 공부방의 운영방식이나 관계, 그리고 환경 등 일상이 달라질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가치들 속에 인권을 녹여내는 일은 공부방 구석구석을 인권으로 통통하게 살찌우는데 필요한 작업이다.


이른바 ‘가치반찬’ 만들기가 바로 그것. 가치들의 사전적인 개념보다는 공부방에서 생활하면서 접하게 되는 생생하고 말랑말랑한 경험에 인권을 가미하면 어떤 ‘가치반찬’이 만들어지는지 이야기해보고, 나눠준 종이에 음식 모양을 그린 후 담도록 한다. 시간을 고려해 가치반찬은 최대 4개를 넘지 않도록 한다. 그런 다음 그러한 가치들을 공부방에서 실현시키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요리 재료), 어떻게 실천할 수 있는지(조리법) 그리고 인권침해로 이어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할 점(주의점)은 무엇인지를 요리법으로 대신 표현해 전지에 적도록 한다. “구절판 어때?”, “쌈이 가득한 야채가 맛있겠는데.” 자칫 추상적으로 흐를 수 있는 가치에 대한 이야기가 어느새 즐거운 요리 시간으로 변했다.

더불어 날개짓 1 - 맛깔스런 반찬 요리법을 공개합니다

가치를 담은 그릇에 인권을 버무려 맛깔스러운 반찬이 만들어지면 모둠별로 돌아가며 가치반찬에 대한 소개를 하고 조리법을 공개한다. 그럼 다른 모둠에서는 가치 반찬을 전체 밥상에 올릴지 말지, 못 올린다면 왜 그런지, 또는 더 맛있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이야기한다.


‘지역과 더불어’ 가치반찬은 ‘우리 동네 사람들, 다른 동네 사람들, 끈끈한 정, 자주 만남, 연대의식, 관심’ 재료가 필요하다. ① ‘관심’을 씻어 놓는다. ② ‘우리 동네 사람’과 ‘다른 동네사람들’의 ‘관심’을 볶는다. ③ ‘자주만남’을 총총 썰어 ➁에 넣어 볶는다. ➃ 불을 끄고 ➂볶은 것에 ‘연대의식’을 넣고 버무린다. ➄ 그릇에 담고 ‘끈끈한 정’으로 꾸민다. 이 가치반찬은 먹을수록 몸에 좋으며, 끈끈한 정, 관심 등 식은 재료는 데워 먹어야 더욱 맛있다.

‘우주, 나, 다른 사람, 지렁이, 흙, 자기애, 살림, 땀, 시간’을 재료로 ‘생명 존중’ 반찬을 만드는 법은 ① 각 재료의 소중함을 안다. ➁ ‘우주’에 ‘자기애’와 ‘살림’을 넣고 은근한 불에 조린다. ➂ 조린 음식에 ‘땀’으로 간을 한다. ④ 푹 익으면 그릇에 담아낸다. 센 불에 조리면 악취가 나기 때문에 조심해야 하며, 충분한 땀이 들어가야 간이 적당하다. 먹을 때는 싹싹 긁어 남기지 않는다.

‘민주주의’ 반찬은 ‘주체성, 자기표현, 귀 기울여 듣기, 소수존중, 기다림, 정기・비정기 소통마당’을 재료로 ➀ ‘주체성’을 채썰어 ‘자기표현’ 가루를 묻힌다. ➁ 묻힌 재료를 ‘기다림’에 튀겨내며 잘 튀겨지는지 ‘귀 기울여’ 듣는다. ➂ 튀긴 것을 ‘소수존중 소스’에 찍어 먹는다. 만약 ‘소수존중 소스’를 안 찍어 먹으면 혀를 델 수 있고, ‘자기표현’ 가루를 묻히지 않고 튀기면 타서 맛이 없다.

‘다름존중, 비폭력, 저항, 대화, 믿음, 성찰’ 재료로 만든 ‘평화’ 반찬, ‘다양함, 믿음, 배려, 존중, 열의’ 재료들이 각각의 맛과 향을 잃지 않도록 따로따로 조리해야 하는 ‘공동체’ 반찬 등 군침이 꿀꺽, 먹고 싶은 가치반찬이 상 위에 한 가득 차려졌다.


더불어 날개짓 2 - 좀더 맛있게 먹기 위해

반대 의견이 많지 않아 대부분의 가치반찬이 상위에 올랐지만 여전히 더 맛있게 먹기 위해 주의해야 할 점이나 요리법을 바꿨으면 하는 건 뭘까?

공부방에서 추구하는 가치들에 인권을 가미해 조리하기 위해서는 칼과 도구를 사용하는 손놀림이 보다 섬세할 필요가 있다. ‘가난’ 반찬을 준비한 모둠에서는 “가난이 부자의 반대말이 아니며, 아무리 자발적인 선택이라고 하더라도 당위 때문에 자신을 괴롭히지 말 것을 주의해야 한다”고 조리 비법을 공개했다. 또한 ‘공동체’ 반찬을 하다보면 자칫 조직을 우선적으로 고려해 “개인의 차이나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경우가 생긴다"며 개인에게 희생을 강요하지 않는 것이 요리법의 가장 핵심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자발적인 선택이 아니라 총체적인 권리의 박탈로서 가난한 상태에 있는 지역의 아이들과 어른들에게 ‘가난’이라는 가치가 어떻게 느껴질지, 공동체 안에서 다수결이 아닌 다른 방식의 민주주의란 무엇인지 가치반찬에 대한 요리법이 좀더 연구될 필요성이 제기되기도 했다.

머리를 맞대어 - 일상의 변화를 꿈꾸며

공부방에 깊이 뿌리를 박고 있던 가치들을 조목조목 따져보니 인권이 빠진 가치란 오히려 사람들을 억압하는 족쇄가 될 수도 있다. 때로는 추상적인 이야기라고만 생각하거나 너무 당연한 이야기인 것 같아 아무런 문제의식도 가지지 못했던 가치들이 우리의 일상에 숨어들어 반인권적인 환경과 관계를 만들어 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일상에 인권의 돋보기를 들이대지 않는다면 인권교육은 꿈틀이들에게 공허한 울림이 될 수밖에 없다. 결국 평화와 민주주의, 생명 존중 등 인권이 지지하는 이러한 가치들은 일상생활의 경험을 통해 직접 체험함으로써 가장 잘 자각될 수 있다. 따라서 인권교육을 기획하는 것만큼이나 일상을 인권의 눈으로 살피고,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이나 관계 등을 인권적으로 바꾸는 것이야말로 인권교육의 숨겨진 요리법이 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