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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교육, 날다] 지글지글 보글보글, 인권밥상 차려볼까?

교사들과 함께 하는 학생인권에 대한 고민

교사들만 모인 자리에서 ‘학생 인권’에 관한 이야기를 잘 풀어내기란 쉽지 않다. 교사모임의 초청을 받아 강연을 가보면 강연 내내 경계를 늦추지 않는 삐딱한 시선들을 자주 접하게 된다. 공격당할까 두려워서일까? ‘어디 날 설득할 테면 설득해보시지’라는 식으로 미리 공격적인 자세를 취하는 이들도 간혹 있다. 여성인권이 남성에게, 어린이인권이 성인에게, 노동자인권이 사용자에게 부담스러운 주제인 것처럼, 학생인권이 교사들에게 뜨거운 감자인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학생인권을 주제로 주로 혼자 떠들다 돌아오는 강연은 그리 유쾌한 경험은 아니다. 그런데 같은 주제라도 인권교육 방법론을 활용하여 다가서면 긴장은 덜고 공감은 더할 수 있다. 비책은 바로 학생인권을 외부 강연자가 아니라, 교사들 자신의 입을 통해 터져 나오게끔 하는 것.

날개 달기 - 맛깔지게 주제에 다가서기

함께 나눠먹을 밥상을 차리는 일은 사람의 마음을 참 즐겁고 풍요롭게 만든다. 특정한 사람에게만 의무로서 강요되지 않는다면 말이다. 보글보글 지글지글, 맛깔스런 밥상을 차리는 달뜬 마음으로 말문을 열게 하면, 교사로서 학생 인권을 다뤄야 하는 부담을 한결 가볍게 하면서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다. 실제 교사들과 함께 하는 인권연수에서 ‘인권이 꽃피는 교실 뷔페’ 활동을 진행해 보니 다양하고 신선한 생각들이 터져 나왔다.



먼저 모둠별로 색지와 크레파스, 가위 등을 나누어주고 생선구이, 찌개, 샐러드, 구절판 등 다양한 음식모양을 그리고 싶은 대로 그리게 한다. 음식모양의 종이 위에는 학생들 입장에 서서 ‘인권이 꽃피는 교실’을 만들려면 어떤 권리들이 필요할지 생각해보고 적어보게끔 한다. 시간의 한계도 있고 모둠마다 조금씩 다른 생각들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일정한 조건을 부여하는 것이 좋다. ‘이건 너무 당연한 거야’라고 생각하는 기본 먹거리 2-3가지에다 다른 모둠이 준비하지 않을 것 같은, 우리 모둠만의 아주 특별한 먹거리 3-5가지를 마련해 보라고 하는 식이다. “자, 그럼 인권뷔페에 내어놓을 음식 장만을 시작해 볼까요?”라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도란도란 이야기꽃이 피어나고 쓱싹쓱싹 가위질 소리가 공간을 채운다.

더불어 날갯짓 1 - 냠냠 함께 먹을 밥상에는 어떤 음식을?

모둠 활동이 끝나면, 모둠마다 하나씩 돌아가며 준비한 음식을 하나씩 소개하는 시간이다. 먼저 칠판에 밥상을 그린 전지를 붙여놓고, 참여한 교사들 모두에게 [맞아(YES)] 카드와 [글쎄(NO)] 카드를 각자 하나씩 나누어준다. 음식 소개가 끝날 때마다 그 음식을 함께 먹을 인권밥상에 올릴지 말지를 카드로 의사를 표시하도록 한다. 참여한 사람들 모두가 [맞아] 카드를 들어야 인권밥상에 올리고, 반대 의견이 하나라도 나온 음식은 옆에 따로 붙여 놓는다.

“우리 모둠에선 맛 좋고 질 좋은 음식을 먹을 권리를 준비했습니다. 학교에서 나오는 급식을 보면 질이 형편이 없는 경우가 많아요.”
“언어폭력은 안돼요. 학생들에게 함부로 말하는 교사들을 자주 볼 수 있는데, 학생들은 언어폭력을 당하지 않을 권리가 있지 않을까요?”
“공개적으로 아이들을 처벌하는 일이나 단체 기합은 이제 없어져야겠죠?”
“학생들한테 교사들이 사용한 컵을 씻게 한다거나 교장실, 교무실 청소를 맡기는 일은 없어져야 하지 않을까요? 함께 사용하는 공간은 함께 치우고, 교사들이 사용하는 공간이나 쓴 물건은 교사가 치워야죠.”

음식 소개가 끝나기가 무섭게 여기저기서 [맞아] 카드가 번쩍번쩍 올라온다. 만장일치를 받은 음식을 밥상에 붙이면서 돋움이(진행자)가 관련된 인권 기준이나 사례들을 소개해 주면 학생인권의 현실과 극복 방안이 쏙쏙 자연스럽게 정리된다.



더불어 날갯짓 2 - 올릴까 말까 고민되네

문제는 아직까지도 공동 밥상에 올라가는 음식보다 올라가지 못하는 음식이 훨씬 더 많다는 것. 모둠 안에서는 그마나 의견의 일치를 보고 음식을 준비했지만, 학생 인권 사안이 워낙 논쟁적이고 오랜 관행들을 건드리다 보니 모두의 동의를 얻기란 쉽지 않다. 체벌 금지, 두발 자유, 학생회의 학교운영위원회 참여권, 일기 검사 금지, 휴대폰 압수 금지 등을 두고 교사들 내부에서도 의견 차가 크다. 반대 카드를 든 교사들 중 한두 명에게 아직은 먹을지 말지 고민이 되는 이유를 말해보게 하면 자연스럽게 전체 토론이 오고간다.



- “우리 모둠에선 ‘우유 강제급식은 안돼’를 준비했어요. 몸에 좋다는 이유만으로 먹기 싫은 음식을 억지로 강요하는 건 인권침해 아닐까요?” ↔ “하지만 아이들이 편식을 하는 경우도 많고 몸에 좋은 음식을 아예 손도 안대는 경우가 많아요. 교육적인 차원에서도 지도를 해야지요.”

- “저도 그렇지만 아이들한테 심부름을 시키는 일이 많아요. 특히 수업시간 중 심부름은 아이들의 학습권을 침해하는 일이기도 하지요.” ↔ “하지만 교사들 업무량이 사실 너무 많아요. 또 수업시간 중에 아이들을 다 버려두고 나갈 수는 없잖아요? 심부름을 시킬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있다는 걸 이해해줬음 해요.”

- “아이들한테 똑같은 교복 입혀 놓고 똑같은 머리 모양 하게 하고서 어떻게 다양성을 교육할 수 있을까요? 교복이나 두발 등 자기 몸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합시다.” ↔ “하지만 사복을 입으면 못사는 집 아이들이 상처를 많이 받게 될 거예요. 머리 하는 데도 돈이 많이 들구요. 안 그래도 민감한 나이인데….”

- “똥 싸고 싶을 때는 굳이 허락을 받지 않고도 화장실에 조용히 다녀올 수 있어야 해요.” ↔ “쉬는 시간에 화장실 가는 습관을 기르려면 수업시간에 못가게 해야 되지 않나요?”

- “사랑의 매도 아파요. 우리가 사랑의 매라는 이름으로 아이들을 계속 체벌에 익숙해지도록 만들지 않나요? 체벌 금지를 함께 드시면 좋겠어요.” ↔ “이유를 말해주고 때리는 건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아요. 감정적이지 않고 절차만 잘 갖춘다면 매를 드는 게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해요.”

이처럼 학생 인권과 관련해서는 이미 합의된 내용보다 아직도 합의를 이루어내야 할 내용이 휠씬 더 많다. 이 때 돋움이는 반대 의견을 내놓은 교사의 진정한 욕구에 대해 공감을 표해 주고, 하나의 방향으로 결론을 내려주기보다는 좀더 생각해볼 지점으로 안내하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 교사의 인권과 학생 인권을 함께 증진시킬 수 있는 방안은 없는지, 교육과 인권이 함께 갈 수 있는 방안은 없는지, 어리다는 이유로 학생이라는 이유로 성인이자 교사인 자신에게는 견딜 수 없는 일을 자연스럽게 요구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마음을 맞대어 - 먹지 못한 음식들 어찌 할까?

활동을 끝마치고 나면 썰렁한 밥상과 아직도 공동 밥상에 올리지 못한 음식들이 한 눈에 들어온다. 헤치고 나아가야 할 인식의 장벽들을 확인하는 순간이다. 돋움이 역시 갸웃갸웃 고민되는 권리도 있고, ‘이건 너무나 기본적인 양보할 수 없는 권리’라고 분명히 말해주고 싶은 욕구도 꿈틀거린다. 그대로 문을 닫기엔 아무래도 찝찝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인권교육이 아직까지는 짧은 시간 동안 이루어지는 일회성 교육인 경우가 많다. 어쩌겠는가? 문을 닫을 수밖에.

‘인권교육이 좀더 체계화된다면, 아니 인권교육 시간이 조금만 더 허락된다면 어떨까? 인권밥상 차리기 활동을 통해 나온 논쟁점을 두고 심화토론을 이어가고, 학생인권을 위한 교사 실천 선언을 함께 만들어보는 활동까지 해본다면? 아마도 교사들의 학생인권 감수성을 건드리는 수준에서 끝맺지 않고 고민과 실천을 독려할 수 있는 활동이 될 수 있을 거야.’ 이런 기대가 조만간 현실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인권교육을 위한 도움말 하나]

음식 만들기를 활용한 인권교육 활동은 학생인권뿐 아니라 다른 주제들도 다양하게 다룰 수 있다. 노동인권 뷔페, 인권이 꽃피는 가족 뷔페, 성평등한 조직문화 뷔페 등등. 참여자들 사이의 합의 수준을 확인하고 싶다면 찬반 투표를 거치는 것이 좋고, 참여자들이 가진 다양하고도 반짝이는 생각들을 자유롭게 풀어놓는 게 더 중요한 자리라면 찬반 투표를 생략하면 된다. 아래 그림은 지난 8월 ‘2회 청소년노동인권교육 워크숍’ 자리에서 노동인권을 주제로 인권밥상을 차려본 활동이다. 한 상 가득 차려진 권리 내용들을 지켜보자니 절로 배가 부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