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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교육, 날다] 어린이 인권을 찾는 꿈틀이들의 날갯짓

권리그림 짝 찾다보면 속내 훌훌 터져나와

“친구들하고 비밀일기를 쓰는데 다른 애들이 보았을 때 기분이 나빴어.”
“동생이랑 싸우면 부모님은 동생 편만 든다. 내가 동생이 되고 싶었다. 억울했다.”
“남자라도 가고 싶으면 군대 가면 되지 왜 꼭 의무적으로 가야 하는 걸까?”
“부모님이 우리들의 의견에 귀기울여주고, 우리들 말을 무시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난 친구들끼리 모임을 만들어 본 적이 없는데, 그렇다면 정말 재미있을 것 같아.”


초등학교 5학년인 36명의 ‘꿈틀이’(*)들과 두 시간에 걸쳐, 우리가 가지고 있는 권리들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나만의 비밀로 하고 싶은 것을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는, 성별이나 나이 등 차이에 상관없이 평등할 권리가 있다는, 평화롭게 모임을 만들고 집회를 열 수 있는 권리나 의견을 자유로이 말하고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는 이야기에 모두들 고개를 끄덕인다. 하지만, 원하는 종교를 믿고 있니? 전쟁이 나면 아이들도 총을 가지고 싸워야 할까? 집에서 가족회의를 해 본 적 있니? 잘못을 하면 매를 맞는 건 당연한 걸까? 라는 질문에는 갸우뚱거리며 속내를 털어놓는다. 어느새 인권은 많이 들어봄직한 말이 되어 식상한 느낌마저 주지만, 그 말을 채우고 있는 알맹이들은 여전히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인권교육을 통해, 훌훌 털어내고 훨훨 날아올라보자 손을 내민다.


날개 달기 - 권리그림의 짝을 찾아봐

먼저 유엔어린이․청소년 권리조약을 바탕으로 정리한 권리그림과 질문을 담은 쪽지를 준비했다. 꿈틀이들에게 권리그림과 질문쪽지를 한 장씩 나누어주고, 꿈틀이들이 자기 짝을 찾아보도록 했다. 짝을 찾으면 쪽지에 담긴 질문에 대한 자기 경험이나 의견을 속닥속닥 나눈 다음, 대략 서너 개의 권리끼리 묶어 그 자리에서 옹기종기 두레(모둠)를 만들었다. 다른 두레와의 내용 나눔을 위해 도화지에 자기의 권리질문쪽지나 그림을 붙이며 이야기를 적기도 한다.

권리그림과 질문 쪽지의 짝을 맞춘 뒤 자기 경험과 의견을 덧붙이는 꿈틀이들

▲ 권리그림과 질문 쪽지의 짝을 맞춘 뒤 자기 경험과 의견을 덧붙이는 꿈틀이들



더불어 날갯짓 - 소통하는 즐거움, 성급한 욕심

서로의 생각까지 주고받고 나니 꿈틀이들의 반응은 정말 다양했다.

“(친구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어서 (친구들하고) 많이 친해진 것 같아 즐거웠어요.” “힘들었던 일들을 되돌아볼 수 있었어요.” 힘들었던 일이 뭔지 되묻자, “엄마 아빠가 마음이 안 맞아 이혼할 때 내가 누구랑 살 건지 아무도 물어보지 않았었다”고 대답한다. “속이 다 시원해요.” 어른들한테 하고 싶은 이야기를 모두 쏟아낸 게 후련했던 모양이다.

이렇듯 소통의 즐거움을 맛보고, 일상에서 얻었던 상처를 되돌아보며 위안을 얻는 꿈틀이들의 모습이, 이런저런 고민이나 불만이 ‘내가 착하지 않아서’ 생긴 게 아니라는 데서 오는 자유로움에 큰 숨을 내뿜는 꿈틀이들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이러한 즐거움과 위안, 시원함이 어린이들이 자기 삶의 중심에 서게 하는 힘이 되리라. 누구나 가지는 당연한 권리가 나의 삶에서도 당연하게 여겨질 때, 내 목소리를 내고 다른 이들과 함께할 수 있는 마음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제각각 드러낸 꿈틀이들의 생각에는 어떻게, 어디까지 이야기하는 것이 좋을까 고민이 되기도 했다.

예를 들어 인간답게 살 권리와 관련해 노숙인에 대한 생각을 물었더니, “길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힘이 들까? 내가 도와주고 싶다. 우리가 어떻게 해야 도와줄 수 있을까? 나도 그렇게 되면 어떨까? 나는 열심히 돈을 벌어야겠다”고 답한 꿈틀이가 있었다. 노숙인이 된 이유를 개인의 탓으로만 여겨서는 안되는데…, 자선이나 봉사를 넘어서야 하는데…하는 생각으로 입이 오물거렸다.

매 맞거나 무관심에 상처받지 않을 권리에 대해서는 “잘못을 하면 맞는 건 당연하지만 사소한 일로 때리는 것은 당연하지 않다고 생각해”라고 말하기도 했다. 무엇이 잘못인지는 누가 정하지, 맞는다고 해서 잘못을 뉘우치게 될까, 잘못하면 맞는 게 당연하다는 원리는 폭력을 낳게 되지 않나, 이런 저런 질문거리들이 떠올랐다. 하지만 누구에게도 사람을 때릴 권리는 없다고 말로만 전하는 것은 ‘입 바른 소리’로만 들릴 테니 어떻게 해야 하지 싶었다.

아프지 않게 보살핌과 치료를 받을 권리를 다루면서 보건소에 가서 예방주사를 맞아본 적이 있냐고 물었더니 “보건소에서 아이들의 울음소리를 듣고 겁이 났어. 떨리고 기다릴 때 뒤로 가고 싶었어”라는 생뚱맞은 대답도 나왔다. 건강하게 자랄 권리를 위해 무료 예방주사는 기본이라고 생각해 물어본 것이었는데, 치료에 대한 공포를 먼저 떠올리는 꿈틀이를 보고 이럴 수도 있겠구나 싶어 웃음이 터져나왔다. 일상 속에 녹아있는 권리를 찾아 꿈틀이의 눈높이로 말 건네는 것이 녹녹치 않음을 새삼 느끼는 순간이었다.


마음을 맞대어 - 이제부터가 시작이야

이번 활동을 통해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권리에는 무엇 무엇이 있는지 살피고 그러한 권리들이 내 일상 속에 얼마나 녹아있는지 들여다보았다. 인권에 대한 생각의 물꼬를 트면서 꿈틀이들이 쏟아내는 질문과 마음에, 인권교육의 한없는 ‘꺼리’들과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다. 그런데 마음 한 켠에선 꿈틀이들에게 ‘더 많이’, 그리고 ‘얼른’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 자리잡아간다. 이러한 마음은 돋움(**)이라면 누구나 가지는 마음일 텐데…….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한다. 원하는 것을 처음부터 모두 얻을 수는 없다는 걸. 그런 욕심이 정답을 알려주는 교육을 만들어버린다는 걸 말이다. 그래서 꿈틀이들과의 인권교육은 이제 시작이다.

<용어 소개> '꿈틀이'와 '돋움'이란?

* 꿈틀이 - 인권교육을 통해, 내 안에 잠자고 있는 힘을 꿈틀꿈틀 깨우며 나를 내 삶의 중심에 세우려는 이. <인권오름>은 학생, 학습자, 참가자라는 말을 대신해 ‘꿈틀이’라는 말을 쓰기로 한다.

** 돋움 - 인권교육을 통해, 꿈틀이가 자기 삶의 중심에 설 수 있도록 북돋우는 이. <인권오름>은 교사, 교육자, 진행자 등의 말을 대신해 ‘돋움’이라는 말을 쓰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