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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교육, 날다] 반성폭력 교육 속으로, 고 고~

반성폭력 교육과 인권교육의 만남

“날 수 있겠어요?”
‘인권교육, 날다’ 꼭지에, 얼마 전 있었던 반성폭력 교육에 대하여 쓰겠다고 하자 교육을 같이 준비했던 이가 한 말이다. 왜냐는 질문에, 인권교육 방식을 차용하면 인권교육이 되는 것이냐는 되물음이 돌아왔다. 정말?! - 처음에는 웃음 가득 배었던 저 말이, 되물음과 함께 더 큰 궁금증을 자아냈다.
그래서 다시 한번, 그때 그 반성폭력 교육 시간으로 돌아가 궁금증의 답을, 더불어 날갯짓을, 찾아보았다.

[날개달기] 그때 그 반성폭력 교육 : 활동 소개

지난 8월 24일, 인권운동사랑방 상임·돋움·자원활동가들이 모여 반성폭력 교육을 진행했다. 준비는 인권운동사랑방 내 성폭력반대위원회에서 하였고 내규에 제시되어 있는 성폭력의 개념에 대해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들은 저마다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혹은 동의하는지 등을 이야기 나누고자 반성폭력 교육, 그 첫 번째 자리를 마련한 것이었다.

성폭력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모이기는 처음이어서 준비한 '돋움'도 자리한 '꿈틀이'도 긴장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우선 간단한 몸풀기 맘열기 활동으로 서먹함을 없앤 꿈틀이들은 모두 네 모둠으로 나누어 각각 어떠한 상황을 받았다(첫 번째 교육활동 : 사사건건). 주어진 상황에 대하여, ① 그 상황 속 당사자들의 의도를 파악, ② 그 당사자들을 피해와 가해의 구도로 볼 수 있는지 ③ 그렇다면 어떤 이유에서인지 즉, 성폭력 여부를 판단해보라는 활동이었다. 물론 꿈틀이들에게 주어진 상황들은 많은 사람들이 성폭력이다/아니다 라고 규정하기 어려워하는 성폭력의 경계에 위치한 것들이었다. 두 번째 교육활동인 ‘오목조목’은 각 모둠의 논의를 토대로 성폭력의 개념을 구체화 혹은 모둠원끼리 성폭력의 개념에 대하여 굵직하게라도 합의해 보자는 의도에서 준비하였다.

[더불어 날갯짓 1] 사사건건, 꼬리에 꼬리를 문 말들이 더불어 한 걸음 나아가게 하다

주어진 상황에 대하여 열띤 논의를 한 모둠들은 그 내용을 다른 꿈틀이들 앞에서 발표를 했는데…. 제각각 다른 상황이라 그런지 다른 모둠 이야기에 열심히 귀를 기울였다. 또 듣기만 하기엔 근질근질한지 각 모둠 발표가 끝나기 무섭게 이런저런 질문과 그에 대한 나름 답변을 열심히 풀어놓았다. 여기 몇몇 이야기들을 담아보았다.

‘사사건건’ 장면 하나 : 누나가 많은 막내아들로 평소 여성들에게 거리낌없이 행동하는 그가, 기분이 좋지 않아 잔뜩 찡그리고 있는 내게 생리하냐며 물었다면?



“생리는 여성의 몸에 대한 대표적 상징으로, 그 사회적 의미에는 여성의 몸에 대한 비하가 녹아있는 것 같아요. 짜증을 내는 남성한테 남성이 ‘너 생리하냐?’며 농담을 건네기도 하잖아요. 한편, 별다른 의도 없이 말했다며 배려를 이야기하기도 하는데, 여기에 담긴 배려에는 통제의 욕구도 들어가 있다고 보여요. 가령, 등이 보이는 부분을 가려주는 남성의 행동은 배려일까 통제일까요? (침묵) 누군가에게 성적 대상이 되는 건 싫은데 배려라는 이름으로 나(여성)를 그렇게 보는 것. 이것은 분명 성폭력적 요소를 담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지하철에서 다리를 벌리고 앉아있는 남자 친구에게 다리 좀 오므리라고 하는 것도 일종의 통제가 되어 남자친구에게 폭력적일 수 있을까?”

“글쎄, 통제는 사회적인 권력관계를 보면서 써야 하는 낱말이 아닐까? 그 상황에서는 ‘통제한다’는 낱말보다 ‘주위를 배려한다’는 의미가 더 강하다고 생각해요.”

“성폭력 여부는 피해 당사자의 느낌이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잘 모르겠어요. 가해자가 아무리 의도가 좋았다고 해도 피해자가 폭력적으로 느꼈다면, 그 의도는 절대 ‘좋은’ 의도가 될 수 없는 것인지, 가해자의 배려는 전혀 고려될 수 없는 것인지 말이지요.”

“성폭력이라는 것도 관계에서 발생하는 거잖아요. (그렇다면) 가해자가 가진 의도가 무엇이었든 간에 고려될 수 없냐는 질문, 즉 가해가 본인이 갖기에 좋은 의도라는 것은 관계를 일방향적으로 보는 거라고 생각해요. 누군가의 감정이 관계 안으로 들어오면 그것은 또 다르게 해석되고, 그 해석에 따라 관계가 새롭게 만들어지는 거지요. 그렇기에 가해자 의도라는 것은 의도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시 해석되면서 관계 안에서 또다른 힘으로 작동하게 되죠.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가해자는 좋은 의도에서였다며 성폭력이라고 규정되는 것을 부인하게 되고, 아무리 좋은 의도에서라도 누구는 불편하고 폭력적으로 느끼는 거겠지요.”

‘사사건건’ 장면 둘 : 집회 중 둘러앉은 자리에서, 평소 친하게 지내던 그/녀가 누군가의 우스갯소리에 신나게 웃으며 내 허벅지를 툭툭 쳤다면?



“어떠한 행동에 대하여 불쾌했다고 하는데도 계속 한다면 그것은 명백한 성폭력이겠지요. 하지만 그 경우가 아니라면 참 애매한 것 같아요. 특히 친한 사람끼리는 톡톡 친다든지 하는 스킨십(신체적 접촉)을 많이 하는데, 오히려 친한 사이일수록 불쾌해도 불쾌하다고 말하기 어렵지요. 아! 물론, 스킨십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요. 그렇기에 모든 스킨십을 성폭력이라고 단정하기는 뭣하다고 봅니다. 그렇기 때문에 스킨십이 불쾌하다고 의견을 밝힌 다음이 아니라면 스킨십을 성폭력이다/아니다 규정하기 힘들고, 오히려 스킨십 하는 사람이 어떤 이에게는 성폭력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음을 염두에 두고, 조심 ․ 민감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한편, 신체적 접촉으로 인해 느끼는 불쾌감이 반드시 ‘성’폭력인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기도 했어요.”

“그렇기 때문에, 다양한 상황들에 대하여 이런 것은 성폭력이다/아니다 라고 명백하게 정의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여겨져요.”

“네. 성폭력이라고 판단하는 틀이 딱히 정해져 있을 수 있을까 싶어요. 그러기에 성폭력이다/아니다 규정하기보다는 끊임없이 성찰하며 이야기 나누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고 중요하다고 봐요.”

[더불어 날갯짓 2] 오목조목, 우리끼리 따져본 성폭력 개념

첫 번째 교육활동으로, 서로서로 성폭력에 대하여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면, 이를 바탕으로 ‘반, 성, 폭, 력’ 네 개의 모둠 안에서 성폭력의 개념을 합의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모둠마다의 발표를 들으며 논의과정이 얼마나 치열했었는지 알 수 있었다. 결코 만만치 않았을 그때 그 논의 속으로…



(‘반’ 모둠) 내규에 나와 있는 - 성에 기반한 모든 육체/정신/환경적 침해 및 차별행위를 의미한다는 - 성폭력 개념에서, 환경적 침해를 어디까지 볼 것인지 의견이 분분했어요. 그물만 무지 촘촘히 하여 아무 것도 놓치지 않겠다는 것이냐는 이야기도 나왔지요. 개념 자체가 너무 광범위하다고요. 하지만 작은 고민도 이야기할 수 있도록 하는 성폭력의 개념 장치가 결국은 모두에게 유익하지 않겠느냐 하고 의견이 모아졌지요. 즉, 한 명이라도 성폭력이라고 느끼는 상황이 벌어질 때 모두가 논의해 볼 필요성을 갖도록 하는 성폭력 개념은 좋다고 이야기 나눴습니다.

(‘성’ 모둠) 내규나 (성폭력 신고 등의) 절차를 아무리 구체적으로 만든다든지 현실적으로 보이는 것으로는 (성폭력에 대한) 궁극적 해결이 힘들다고 봐요. 이를 위해서는 끊임없이 성찰해야 한다고 여겨지고 판례가 쌓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것도 물론 한계를 가지고 있지만 최선의 방향이라고 봅니다. 한편, 성폭력 예방 등 관련 고민들이 인권운동사랑방 내에서 우선순위에 있었는가 생각해봤어요. 다른 사업과 마찬가지로 성폭력에 대해 같이 고민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폭’ 모둠) 우리는 내규에 대하여 세세하게 따져봤는데요. 우선, 인권운동사랑방 내규 이름이 ‘성차별 금지 및 성폭력 사건 해결을 위한 내규’인데, 차별이 폭력에 들어가지 않나요? 그렇기에 우리는 성폭력 사건 해결을 위한 내규라고 명명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예방에 대한 내규도 필요하겠다고 생각했죠. 한편, 우리 내규의 성 범주에 섹스, 젠더 뿐 아니라 섹슈얼리티(성적 자기결정권)도 포함해야 할 거예요. 또 다양한 사례와 고민을 모아 법원에서 판례를 통해 판결하듯 그때그때 자료로 사용했으면 좋겠어요.

(‘력’ 모둠) 우리 모둠은 성차별과 성폭력의 관계에 대하여 주로 이야기했어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성차별이 성폭력 안에 들어가는 것으로 동의하는 것 같은데, 이러한 포함관계가 아니라 동일한 집합으로 봐야 하는 것이 아닐까 제기되었어요. 모든 성폭력의 기인을 성차별이라고 본다면 어느 것이 어느 것을 포함하고 있다는 관계는 아무래도 아니라는 거지요. 그렇다면 왜 구분했을까? 성폭력은 사적인 영역에서 다뤄진 반면, 성차별은 공적 영역에서 다뤄진 연유에서라고 봅니다. 즉, 성폭력과 성차별은 기존 다뤄진 영역이 다르다는 것이지 개념은 같게 봐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서지요.

[마음을 맞대어] 사사건건 이리저리 오목조목 살피고 얻은 건?

한 모둠 한 모둠 발표할 때마다 여기저기서 공감과 이의 및 질문들이 터져 나왔다. 공감은 서로의 생각을 좀더 편안하게 이야기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었고, 이의는 서로의 성(폭력)에 대한 인식차를 확인시켜주며 미처 생각지 못했던 부분을 둘러볼 수 있도록 해 주었다. 한편, 계속되는 질문과 답변들은 모두의 감수성을 한 걸음 더 나아가도록 하였다.

하지만 시간이 부족해 이야기를 끊어야 했다. 그것은 여간 고통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조금씩 트는 꿈틀이들의 말문을, 더 말랑말랑해질 수 있는 성(폭력)에 대한 인식을, 허겁지겁 얼버무리며 덮는 것 같아 무척 안타까웠다. 그리고 서로의 이견에 대하여 ‘당신은 그렇게 생각하는군요, 나는 이렇습니다’라는 식의 평행선 같은 반응에 대해서도 갑갑함을 느꼈다. 어떻게 하면 소통을 더 유연하고 유의미하게 만들 수 있을까?

그래도 분명, 이번 교육활동을 통해 조금은 더 넓어졌을 ‘나’의 성폭력에 대한 인식. 이는 성폭력에서 오는 반인권적 상황에 대하여 불편하게 여기고 저항하게 만들 것이다. 그렇다면 ‘나’의 인권 감수성은 조금 더 자랐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당연히! 한 차례 교육활동으로 이만큼 얻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앞으로 날아오르는 데 조금은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두 번째 반성폭력 교육활동 때에는, 이번에 얻은 고민들을 더 잘 녹여내리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