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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리 2] 지문과 함께 굴종까지 받아낸다

‘합법적 경찰폭력’에 맞선 김자현 씨의 저항

수사과정에서 이루어지는 ‘강제지문날인’은 합법을 가장한 ‘경찰폭력’의 또 다른 얼굴이다. 지난 7월 9일 분당경찰서에서 김자현 씨가 보여준 강제지문날인에 대한 불복종은 수사과정에서 강제지문날인이 어떻게 폭력적으로 개인의 인격과 존엄성을 훼손하는지 보여준다. 또한 김자현 씨의 불복종은 ‘합법’으로 포장된 피의자 조사 후 지문날인 강요에 대해 인권의 이름으로 어떻게 저항해야 하는지 새로운 일깨움을 주고 있다.


강제지문채취에 온몸으로 저항

지난 7월 10일 평택 평화대행진에 참여했다가 경찰에 의해 강제 연행된 김자현 씨가 수사과정에서 경찰의 강압적인 지문 채취에 항의하다 못해 스스로 자신의 열손가락을 병뚜껑으로 베고 이빨로 물어뜯어 지문을 훼손하는 믿기 어려운 일이 벌여졌다. 자현 씨는 평소 자신의 양심과 소신에 따라 지문날인을 거부했고, 그에 따라 주민등록증도 만들지 않고 여권으로 생활하고 있는 18세 청소년이다. 당시에는 이미 자현 씨의 신분 확인이 끝났으며, 더 이상 수집할 증거 자료도 없었다. 평화를 위해 평화롭게 행진하는 행진단을 무차별 연행한 것 자체가 심각한 문제라는 점을 논외로 하더라도, 자현 씨의 경우는 사건 당일 즉결심판에 넘겨질 것이 확실할 정도로 경미한 사건이었다. 지문채취는 서류와 관행상 필요한 요건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이었다.

여경 여럿이 달려들어 김자현 씨의 지문을 강제로 채취하고 있다. <사진 출처: 평화바람>

▲ 여경 여럿이 달려들어 김자현 씨의 지문을 강제로 채취하고 있다. <사진 출처: 평화바람>



경찰은 김자현 씨가 경찰의 강압적인 진술강요와 관행적인 지문날인 요구에 저항하자 지문 압수수색영장을 신청해서 지문채취를 강행했다. 그러나 자현 씨는 영장 발부에도 불구하고 양심에 따라 지문 채취를 거부한다며 완강히 저항했다. 그러자 경찰은 여경들을 동원해 지문날인을 강제 집행하려고 했고, 이에 대한 저항으로 자현 씨는 경찰이 제공한 비타민 음료의 철제 병뚜껑으로 자신의 열손가락 끝마디를 긁고 베어 지문을 훼손했다. 상황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경찰은 자현 씨의 열손가락에서 피가 흘러나와 손이 피범벅이 됐음에도 불구하고, 이 사실을 보호자에게 알리지도 않은 채 지문채취를 강행했다. 7~8명의 여경들이 자현 씨의 사지를 제압하고 말을 못하게 목을 조르고 팔을 꺾어 지문을 채취하려 했다. 이에 자현 씨는 손을 꼭 쥐고 저항했으며 이 과정에서 이빨로 물어뜯고 손으로 짓이기는 등의 지문 훼손을 계속했다. 심지어 경찰은 보호자의 병원 후송 요청도 거부하고 간단한 응급치료 후 다시 손가락에 검은 잉크를 묻히는 만행을 저질렀다.


강제지문채취를 통해 얻고자 하는 것

김자현 씨 사례를 통해 수사과정에서 드러난 경찰폭력은 합법을 가장한 과잉 공권력 행사이자 굴종을 강제하는 폭압임에 분명하다.

국가가 발행한 국가신분증이 있음에도 지문을 통해서만 본인임을 증명하게 하고, 신문 조서를 서명이 아닌 지문날인으로 하게끔 하는 것은 과도하게 신체정보를 수집하는 ‘과잉행위’에 해당한다. 당시 자현 씨는 여권을 통해 신분확인을 할 수 있었고, 피의자 신문조서도 서명으로 충분한 상황이었다. 국가신분증이 아무런 효력을 발생할 수 없다면 왜 국가는 신분증 발급을 남발하는가? 국가가 발행한 신분증을 국가가 인정하지 않는 꼴은 도대체 뭔가?

경찰의 ‘과잉행위’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영장을 발부받아 집행하는 과정에서는 극악무도에 이른다. 영장을 발부받았다고 해서 경찰의 ‘폭력’과 ‘강제’가 그 자체로 정당성을 갖는 것은 결코 아니다. 자신이 원하지 않는데도 지문날인을 통해서만 본인임을 증명하도록 하는 것은 피의자의 입장에서는 ‘굴종’을 강요당하는 것과 같다. 예전처럼 강압적 분위기만으로는 안 되니까 무조건 영장을 청구하는 경찰이나 자동판매기마냥 자동적으로 영장을 발부해주는 법원이나 ‘합법’이라는 틀로 피의자의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강탈하기는 매한가지이다. 지문날인을 거부하는 것은 수사관을 골탕 먹이기 위해 부러 귀찮게 하는 일 정도로 오해하고, 거부자를 불온한 국가관을 가진 ‘악질’로 인식하는 경찰의 태도로 미루어볼 때, 어떻게든 영장을 들이밀어 지문을 강제 채취하는 것은 피의자를 국가의 권위 앞에 굴종시키려는 의도라고밖에 볼 수 없다. 결국 경찰이 받아내고자 한 것은 ‘지문’만이 아니라 자신의 양심을 꺾고 국가와 법의 권위에 무릎 꿇는 ‘굴종’인 셈이다.


뿌리 깊은 반인권적 수사관행

경찰이 이성을 잃고, 인권에 눈감고, 최소한의 인간성마저 저버린 채 김자현 씨에게 만행을 저지를 수 있었던 데는 권위주의정권 시기부터 뿌리깊게 박혀 있는 수사 관행과 잘못된 법률도 큰 원인으로 자리잡고 있다.

자신의 몸을 상처냄으로써 신념을 지켜낼 수밖에 없었던 김자현 씨. <사진 출처: 참세상>

▲ 자신의 몸을 상처냄으로써 신념을 지켜낼 수밖에 없었던 김자현 씨. <사진 출처: 참세상>



일반적으로 피의자로서 경찰서에 연행되었을 때, 지문이 요구되는 경우는 신원확인과정, 조서 확인, 수사자료표 작성 세 가지이다. 먼저 신원확인과정의 경우는, 지문날인이 아닌 각종 신분증 및 여타의 신원확인 방법으로 피의자의 신원을 확인할 수 있으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찰은 관행적으로 신원확인이 된 피의자에게 지문날인을 요구해왔고, 이에 대한 저항과 불복종이 김자현 씨의 경우처럼 지속되어 왔다.

다음으로 조서확인과 간인 과정에서 지문을 날인하도록 하는 경우인데, 이것은 법률적 근거도 없을 뿐만 아니라 서명으로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일에 굳이 피의자의 민감한 신체정보인 지문을 요구하는 것으로서 공권력을 과도하게 사용하는 행위이다. 경찰은 피의자에게 조서간인 과정에서 서명을 해도 된다는 고지를 하지도 않고, 지문날인 과정에서 동의를 받지도 않았다. 이처럼 법률의 규정에도 없고, 당사자의 동의조차도 받지 않은 채 강권에 의해 일방적으로 지문날인을 강요하는 것은 수사권의 과도한 사용으로 비판받아 마땅하다.

마지막 수사자료표의 경우, 경찰은 단지 신원확인을 위해서 지문을 받는 것이 아니라 재범의 방지와 과거 범죄행위의 확인을 위한 필요에 의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으나 이것은 변명에 불과하다. 재범이 우려되거나 과거 범죄행적을 확인한다는 것은 현재 피의자가 가진 혐의사실이 확정적 범죄가 되었을 때 필요한 일이다. 피의자는 아직 범죄에 대한 수사를 받고 있는 사람이므로 이 사람을 범죄인으로 취급하는 것은 헌법이 천명하고 있는 무죄추정의 원칙을 부정하는 행위이다. 또한 범법행위의 확신과 이에 대한 형벌의 부과는 법원에서 이루어질 일이지 경찰조사과정에서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검찰과 경찰이 법원의 권한에 대해 월권행위를 하고 있었다는 일인데 이것은 형사소송절차에 비추어볼 때 부당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단지 피의자로서 수사자료표를 작성하는 때에는 굳이 지문을 날인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수사자료표 상의 지문날인의 근거가 되고 있는 법무부령 ‘지문을채취할형사피의자의범위에관한규칙’도 일반적인 지문 채취의 경우로서 ① 신원확인이 어려울 때 ② 피의자를 구속하는 때 ③ 수사상 특히 필요하다고 인정하여 피의자의 동의를 얻은 때와 같은 세 가지 규칙을 제시하고 있다. 김자현 씨의 경우는 대체신분증으로서의 여권을 가지고 있었고, 구속과는 무관했으며, 수사상 필요 즉 증거자료로서의 효용도 없었으며, 동의를 얻은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문제는 이 규칙이 이러한 기준과는 별도로 지문을 채취할 법률 목록을 지나치게 폭넓게 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형법을 비롯하여 41개의 법률이 포함되며 집회와시위에관한법률도 여기에 포함되고 있다.

그러나 집시법의 경우는 지문으로서 얻을 수 있는 수사상의 증거확보능력이 사실상 없음에도 불구하고 피의자의 동의 없이도 지문을 채취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그래서 지금까지 지문날인 거부자들은 이번과 같은 단순 집회 참여와 연행에도 지문날인을 강요받았으며, 저항하는 경우에는 경찰은 손쉽게 압수수색영장을 신청했다. 그리고 법원은 관성적으로 너무나 쉽게 별다른 근거 없이도 영장을 발부했다. 경찰은 영장을 들었다는 이유로 강제 집행을 서슴지 않았다. 영장을 발부 받았다고 해서 어떠한 폭력을 동원해서라도 강제 집행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번 사건은 잘못된 법과 그 법을 편의적으로 이용한 경찰이 법의 이름으로 인권에 반하는 폭력을 저지른 것이다.


그녀의 저항, 막다른길을 뛰어넘다

전 국민 열손가락 지문날인제도는 반인권적 제도로서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침해하는 행위이다. 전 세계 어느 나라도 자국 국민들을 범죄자로 취급하면서 추상적이고 장기적인 목적으로 전 국민의 열손가락 지문정보를 일괄 수집하는 행위를 하지 않는다. 이 제도는 과거에는 군사정권 시절 국민을 감시하고 통제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로, 오늘날에는 경찰의 행정편의주의 만족을 위한 제도로 기능하고 있다. 지문날인제도에 대해 작년 5월 헌법재판소는 전 국민 열손가락지문날인제도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렸다. 국가안보를 위해 지문날인제도가 필요하다는 근거도 없는 경찰의 주장을 헌법재판소는 그대로 반복했다. 더욱이 헌법재판소는 행정편의를 위해서는 국민의 기본권이 얼마든지 제한될 수 있다는 해괴한 논리를 전개하기도 했다.

인권보장의 최후보루인 헌법재판소가 경찰청의 대변인으로 전락해서 얼토당토않은 이유로 전 국민 열손가락 지문날인을 합헌이라고 판결해 버린 나라, 그리고 이제는 전 국민이 모두들 익숙해져 열손가락 지문날인을 ‘국가에 대한 의무’로 받아들이고 있는 나라. 이런 나라에서 김자현 씨 사건과 같은 끔찍한 비극이 벌어진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렇지만 자현 씨의 실천이 비극으로만 끝나지 않는 이유는 그녀의 저항이 인권운동에 던지는 울림이 있기 때문이다.

2003년 12월 인권활동가 30명은 국회에서 '집시법 개악 반대' 등을 외치다 경찰에 연행되었다. 이들은 지문날인을 완강하게 거부하여 지문을 날인하지 않은 채 당일 밤 모두 석방되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이들의 불복종은 경찰로 하여금 법원으로부터 영장을 발부받아 지문날인을 강제하게끔 하는 또 다른 관행으로 이어졌다. 영장을 가져와도 계속 개길 거냐는 식이었고 인권활동가들은 그 앞에서 무력했다. 그런데 자현 씨는 이러한 경찰과 법원의 관행에 쐐기를 박음으로써, 우리에게 아무리 영장에 의한 것이라도 ‘강제’ 지문날인에 ‘불복종’해야 함을 깨우쳐줬다. 인간의 존엄은 법보다 우선하며, 폭력을 정당화하는 잘못된 법과 관행은 불복종을 통해 허물어뜨려야 함을 보여준 김자현 씨의 용기는 그래서 더욱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덧붙임

지음 님은 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