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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으로 읽는 세상

사람 죽어도 집회 관리 자화자찬하는 경찰

[인권으로 읽는 세상] 백남기 농민 국가폭력 500일을 돌아보며

500일이 지났다. 죽은 사람은 있는데 죽인 자는 없다. 2015년 11월 14일 백남기 농민이 물대포에 맞아 쓰러진 순간을 많은 사람들이 목격했는데도, 국가는 물대포 탓이 아니라며 부검을 강제집행하려고 했다. 유족들에게 슬퍼할 겨를조차 주지 않았던 국가는 500일이 지나도록 아무런 응답도 하지 않으며, 돌아가신 백남기 농민과 유족들을 모욕한다.

예고된 국가폭력과 예정된 참사

317일 간의 사투 끝에 백남기 농민이 돌아가시기 며칠 전에야 국회 청문회(2016.9.12)가 겨우 열렸다. 청문회에서도 제대로 진상은 규명되지 않았다. 사건 발생 직후 관련 경찰들의 초기 진술이 담겨 있는 청문 감사 보고서를, 경찰은 아직도 내놓지 않고 있다. 가족들에게 최소한 사과를 해야 하지 않느냐는 요구에 강신명 전 경찰청장은 "사람이 다쳤다거나 사망했다고 해서 무조건 사과할 수 없다"며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해야 할 의무를 전면으로 부인했다.

백남기 농민이 쓰러지고 나흘 후 가족들은 살인 미수 혐의로 책임자들을 고발했다. 강신명 경찰청장, 구은수 서울지방경찰청장을 비롯한 지휘부와 살수차 충남9호에 탑승했던 한석진, 최윤석 경장 등 7명을 책임자로 지목했다. 그러나 500일이 되도록 누구도 기소되지 않았다. 오히려 줄줄이 승진하며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임기를 마치거나 공직을 유지하고 있다. 아무도 사과하지도, 책임지지도, 처벌받지도 않은 채 500일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500일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본다. 노동 개악, 세월호 인양과 진상 규명, 국정 교과서, 쌀 수입 등 우리의 삶을 흔드는 문제들에 대한 요구를 외치며 수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그러나 국가는 정부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차단하려고만 했다. 하루 전 공안대책협의회를 열어 미리 '불법 집회'로 낙인찍었다. 경찰은 갑호 비상명령을 발동하며 248개 중대 2만 병력, 물대포 19대, 경찰버스 679대, 캡사이신 분사기 580대를 총동원했다. 그 자리에 모였던 사람들은 그저 진압해야 할 '적'이었다.

곳곳에서 이슈별로 사전 집회를 열고 광화문 광장으로 한데 모이고자 했던 사람들은 차벽에 가로막혔다. 원천봉쇄로 집회의 자유를 가로막는 경찰에 항의하는 사람들을 경찰은 사격하듯 정조준하면서 물대포를 쏘았다. 부상자 발생 시 즉시 구호 조치를 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지만, 물대포는 부상자를 실은 응급차에도 집요하게 따라붙었다.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현장이었다. 백남기 농민의 죽음은 예고된 국가폭력으로 예정된 참사였다.

사람이 죽어도 집회 관리가 잘 됐다?

500일, 더는 기다릴 수 없다는 절박함으로 '대답 없는 검찰을 규탄하며 국가폭력 책임자 수사 및 기소를 촉구'하는 1인 시위를 시작했다. 살인 무기인 물대포를 집회 현장에서 추방하고, 집회의 목적을 근본적으로 가로막는 차벽을 금지하고, 청와대 앞이라는 이유로 때론 교통 소통을 이유로 제한되는 집회를 어디서나 자유롭게 열기 위해 현행 집시법(집회시위에관한법률)과 경직법(경찰관직무집행법)을 바꾸는 입법청원 운동도 시작했다.
많은 시민들이 입법청원 서명에 함께 하고 있다. 간혹 주저되거나 고민된다는 이야기가 들리기도 한다. 탄핵 반대 집회(이하 탄기국 집회)를 보면서 하는 이야기들이다. 경찰 대응의 모습이 달라도 너무 다르니 기가 막힌다, 구체적인 위협이 있는 상황에 대한 대응 방안은 필요하지 않겠냐는 등의 이야기다. 그러나 경찰이 폭력적으로 집회를 진압하려는 의도를 버릴 때 구체적 위험에 대처하는 능력도 갖추게 될 것이다.

헌법재판소 탄핵 결정이 예고된 3월 10일 세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취재하는 기자나 '젊다는 이유만으로' 주변에 있던 시민들이 폭행당하기도 했다. 2015년 11월 14일 이후 다시 갑호 비상명령을 발동한 경찰은 '전략적 인내'라고 대응 기조를 밝혔다. 차벽에만 의존하면서 대다수 경찰이 차벽 뒤로 빠지면서 현장에서 생명과 안전에 위험이 발생하는 상황들에 적절히 개입하지 않았다. 민중총궐기 당시에도 '불법 시위에 엄정 대응'했다며 스스로 호평한 경찰은 이번에도 집회 관리가 잘됐다며 자화자찬했다. '인내'든 '진압'이든 집회시위 참여자를 '적'으로 간주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경찰이 집회를 '관리'하려 드는 한 시민의 생명과 안전은 언제나 위험에 처하게 된다. 차벽과 물대포는 집회를 원천봉쇄하는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 2011년 헌법재판소가 차벽이 위헌이라고 결정(2009헌마406)했으며 차벽 설치가 위법한 공무집행이므로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는 판결도 줄을 잇는다. 그러나 법원의 판결과 상관없이 이동을 제한하고 감금하는 경찰의 행태는 지속되어 왔다. 경찰은 차벽이 이격조치의 수단으로 물리적 충돌을 예방하는 효과적 수단이라고 주장하지만 실제로 차벽은 오히려 사고 발생의 원인이 되어왔다.

물대포도 마찬가지다. 경찰은 이격장비로서 물리적 충돌을 예방한다고 주장하며, 살수차가 '인권 보호 장비'라는 말도 서슴지 않는다. 그러나 백남기 농민이 돌아가시기 이전에도 물대포에 맞아 집회 참가자의 생명과 안전이 위험에 처하는 상황이 반복되어 왔다. 민중총궐기 때는 더욱 오래, 더욱 많이 물대포 살수를 했다. 약 6시간 동안 지속적으로 202톤의 물을 440리터의 최루액 및 120리터 색소와 혼합한, 최장시간 최대량의 살수였다. 집요하고도 지속적인 조준 살수와 상반신을 겨냥한 직사 살수로 경찰은 백남기 농민을 죽였다.

광장의 민주주의가 지켜지려면

차벽과 물대포는 경찰이 집회를 금지하려는 목적과 맞닿아있다. 집회가 열리기도 전부터 경찰은 불법적이고 폭력적일 것이라 예단했다. 2015년 11월 14일 민중총궐기 관련 집회 신고 63건 중 15건을 경찰은 주요도로라는 이유로 금지통고 했고, 광화문 사거리나 청와대 인근의 집회 신고는 예외 없이 금지 통고했다.

경찰의 집회 금지 권한이 사라질 때 평화롭고 안전한 집회가 가능하다. 작년 10월 말부터 매주 박근혜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집회가 열렸다. 반복되는 경찰의 금지 통고에 대해 퇴진행동은 법원에 집행정지 가처분신청을 제기했다. 집시법이 제정된 이후 처음으로 청와대 앞 100미터까지 집회와 행진을 했다. 2003년 헌법재판소도 밝혔듯(2000헌바67·83) "누구나 어떤 장소에서 자신이 계획한 집회를 할 것인가를 원칙적으로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아직 집회와 시위의 자유는 법에 의해 제한당하고 있다.

다시 500일의 시간을 돌아본다. 폭력 국가에 맞서 시민의 힘으로 부검 영장을 막아내고 백남기 농민의 존엄을 함께 지켜냈다. 박근혜 퇴진을 외치며 촛불을 들고 광장에 모였고 박근혜는 탄핵되었다. 그러나 국가 폭력의 해결 없이 민주주의는 불가능하다. 집회시위를 하기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하는 상황이 지속된다면 민주주의는 이내 질식할 것이다. 백남기 농민 국가 폭력의 진상 규명, 책임자 처벌, 재발 방지 대책이 함께 이루어질 때 우리가 연 민주주의가 단단하게 뿌리내릴 수 있다. 백남기 농민이 쓰러지기 전날까지도 정성껏 심고 돌보았다는 밀밭을 떠올리며, 이 봄 진실과 정의의 밀싹이 움트길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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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대포 추방!
: 살수차 사용범위 엄격히 제한, 직사·혼합살수 금지, 사용현황 기록 등 경직법 10조 5항 신설
◎ 차벽 설치 금지!
: 구조물 설치로 집회시위 방해 행위를 금지하는 집시법 13조 2항 신설
◎ 어디서나 자유로운 집회!
: 국회, 법원, 청와대 앞 100m 집회를 금지하는 집시법 11조 삭제
: 교통소통을 이유로 한 집회를 금지하는 집시법 12조 1항 개정 및 2항 삭제
* 입법청원 서명은 백남기 농민 국가폭력 500일인 3월 27일부터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 구속 500일인 4월 25일까지 진행됩니다. 이후 국회에 제출하여 법을 개정하기 위한 활동을 지속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