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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 노숙당사자모임과 함께하는 주거인권학교 ⑩] 이건 언제 적 얘기야?

현실을 변화시키는 꿈, ‘보고싶은 인권뉴스’

# 1
“서울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노숙당사자모임’이 전국 규모의 단체로 확대되었다고 합니다. 이와 함께 명칭을 ‘전국노숙당사자모임’으로 바꾸고 대전, 대구, 부산 등 전국 광역시에 지부를 설치하게 되었습니다.”

# 2
“전국노숙당사자모임 결성 1주년을 맞는 오늘, 서울 경찰청과 시청 앞에서는 3000여 명의 회원들이 모여 결의대회를 가졌습니다. 이날 당사자 모임은 공권력에 의한 차별과 노숙인에 대한 예비 범죄자 취급을 규탄하였습니다. 또한 경찰의 노숙인 안전 보장에 대한 무대책을 비판하며 경찰의 불법적 행정을 개선하기 위해 노숙인 자치 경찰대를 창단하였습니다.”

# 3
“2006년 제도권 금융기관에서 소외된 노숙당사자들을 위해 당사자 스스로 개설한 거리은행이 시행된 지 햇수로 4년을 맞아 전국 광역시로 확대되었다고 합니다. 거리은행은 상환 기간에 제한없이 필요한 사람이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은행입니다. 종자돈 100만원으로 시작됐던 거리은행은 현재 1500만원 규모로 성장했습니다.”

# 4
“인권운동사랑방과 전국노숙당사자모임이 주관하는 주거인권학교를 졸업한 5기 졸업생들이 상암동의 국민임대아파트를 점거했습니다. 이들은 국민임대주택이 노숙인과 같은 주거빈곤층에겐 그림의 떡에 불과하므로 보증금 없이 값싼 월세로 노숙인에게 제공하라고 정부에 요구했습니다.”

# 5
“남산공원에서 노숙하며 손수레를 이용하여 고물 등을 수집하던 노숙인들이 노동에 비해 지나치게 적은 임금을 정부가 보조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들은 한 달 내내 밤낮으로 벌어야 수입이 30만원에 불과하다며, 최저 임금 이상으로 정부가 지원해 줄 것을 요구하면서 거리행진을 펼쳤습니다.”

위에 적은 5가지 일들은 도대체 언제 일어난 일들일까요? 스무 고개라도 해볼까요? 그동안 인권오름에 연재됐던 기사들을 꾸준히 보신 분들이라면 짐작하실 수도 있을 듯한데, 너무 막막한가요?


미래의 청사진 가상뉴스에 담아

참가자들이 보고싶은 노숙인권뉴스를 발표하고 있다.

▲ 참가자들이 보고싶은 노숙인권뉴스를 발표하고 있다.



아, 앞의 뉴스들은 주거인권학교의 마지막 프로그램에서 나온 뉴스들입니다. <보고싶은 인권뉴스>라는 이번 프로그램은 10년이 지난 시점에서 과거를 돌아보며 뉴스를 만들어보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주거인권학교가 첫 문을 연 지 10년이 지나는 동안 노숙인 인권에 어떤 변화가 생기게 될까? 이런 의문을 갖고 가상 뉴스를 만들어보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전국노숙당사자모임은 2007년에 결성된다는 것이고, 노숙인 자치경찰대는 2008년에 창단된다는 것이고, 2009년에는 거리은행이 전국 규모로 확대된다는 것이고, 상암동 아파트를 2010년에 점거한다는 것이고, 2016년에는 정부에 대해 최저임금 보장을 요구하는 거리행진을 한다는 것입니다.

무슨 뉴스를 만들까 머리를 맞대고...

▲ 무슨 뉴스를 만들까 머리를 맞대고...



말로는 뭘 못하냐구요? 현실감이 없으면 어때요, 이런 그림을 구체적으로 그릴 수 있다는 것이 대단하게 평가되어야지요. 현재에만 몰두해 있는 사람들에게는 미래를 가상한다는 것이 그저 현실감 없는 뜬 구름에 불과할지 몰라도, 미래를 계획하고 추진하려는 사람들에게는 바로 치밀한 청사진이 됩니다. 가상이란 비록 현실은 아닐지언정 현실화시킬 수 있는 힘이 되기도 합니다.


꿈꾼다는 것, 의지만으로 되지 않아

아저씨들은 두 팀으로 나누어서 10년 후의 노숙인권뉴스를 만들어보았는데, 위 뉴스를 작성한 팀이 한 해 한 해 지나는 시기마다 노숙당사자들이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 머리를 짜는 동안, 다른 한 팀에서 약간 색다른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미래를 이야기하려다보니 답답한 현실이 더 마음에 걸리셨나 봅니다. 장밋빛 미래를 꿈꾸는 것은 의지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더군요. 노숙인의 요구가 받아들여진 적도 없고 노숙인의 요구가 무엇인지 들어보려고도 한 적 없고 늘 복지제도의 대상, 자선의 대상, 왜곡 보도의 대상으로만 취급되었던 처지에서 당사자로서 무엇을 하겠다는 상상력을 박탈당한 것은 아닐까 하는 안타까움이 있었습니다. 아저씨들은 현재 어떤 일을 어떤 조건에서 하고 싶은지에 대한 희망을 구체적으로 밝히셨습니다.

아저씨들은 어떤 뉴스를 보고 싶으셨을까? 인터뷰로 의견을 모아보기도 했다.

▲ 아저씨들은 어떤 뉴스를 보고 싶으셨을까? 인터뷰로 의견을 모아보기도 했다.



“양계장에서 일을 했었어요. 사료를 잘못 줘서 쫓겨났는데 닭 기르는 건 잘 알아. 잘 할 수 있어요. 좀더 욕심 부리면 농사도 짓고 토종닭이나 오리 같은 걸 풀어놓고 기르면서 살면 좋겠어요.”
“지금 서울시에서 하는 노숙인 일자리 프로젝트가 계속 지속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정정당당하게 일해서 돈을 모으면 좋겠는데, 무슨 일이든 오랫동안 할 수 있는 일이었으면 하는 게 바람입니다.”
“청소업을 하고 싶어. 지금 준비하고 있는데 시작하는 데 드는 돈이 너무 많아. 뭐든 하면 한 달에 80만원은 나오지 않을까.”

노숙인은 일차적으로 집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일차적으로 집이 필요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아저씨들은 일에 대한 열망이 더 큰 것처럼 보였습니다. 왜 집에 대한 열망보다 일에 대한 열망을 더 크게 피력하시는 것일까 의문을 잠시 가졌었는데, 노숙인에게 필요한 것이 집이 먼저냐 일이 먼저냐 하는 것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소모전이 아닐까요? 집이 없어지면 일은 덩달아 없어집니다. 그리고 집이 없이 일을 하는 것은 힘이 듭니다. 집이 없으면 일이고 자시고 에라 모르겠다 자포자기 심정이 되는데 집이 있으면 일을 해야겠다는 마음이 더 강하게 든다고 합니다. 어쩌면 일에 대한 열망은 집에 대한 열망의 다른 표현입니다.

돈 많이 버는 일, 멋져 보이는 일, 대접 받는 일, 어렵지 않은 일, 그런 일을 고르지 않고 어떤 일이든 오랫동안 계속 할 수만 있으면 좋겠다고 하는 사람, 집값은 억억거리며 분수도 모르고 계속 오르기만 하는데 한 달에 60~80만원이면 충분하다고 말하는 사람, 인권 사각 지대의 가장 모서리로 내몰리면서도 자기 요구를 말하기 어려워하는 사람, 그런 사람들에게 당신은 요구할 권리가 있으며 더 큰 꿈을 가져도 좋다는 말을 하기 위해 주거인권학교는 민들레 홀씨처럼 바람타고 여기저기로 퍼져 나갈 겁니다. 마지막 시간이 끝나고 헤어질 때 가장 많이 나눈 인사가 “다시 만나자”는 것이었으니까요.



<보고싶은 인권뉴스>는...

미래의 어떤 시점에서 과거를 돌아보며 인권이 실현되는 사회로 나아가는 과정을 함께 그려보는 프로그램입니다.

먼저 1990년대 중반부터 현재까지의 뉴스들을 간추려 방송 형식으로 참가자들에게 정리해줍니다. 틈틈이 인터뷰 형식으로 참가자들의 의견을 모아보기도 합니다. 준비된 방송이 끝나면 모둠별로 ‘노숙이 사라진’ 시점에서 과거 역사를 정리하는 뉴스를 만들도록 합니다.

모둠별로 준비한 뉴스를 보면서 인권실현을 위해 필요한 정책은 무엇인지, 우리는 어떤 행동을 준비해야 하는지 함께 이야기 나눕니다.
덧붙임

이현정 님은 서울영상집단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인권운동사랑방 신자유주의와인권팀과 함께 주거인권학교를 진행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