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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_세상3] “오세훈 서울시장이 한번 이용해보면 좋겠다”

<(준)홈리스 행동>의 노숙인 활동가 송주상씨

<편집자 주>

빈곤과 차별에 대한 이야기를 전했던 [삶_세상]이 독자 여러분과 함께 '자유'를 찾아 가려고 합니다. 자유는 철 지난 화두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지금 우리는 정말 자유로운가요? 자유는 모든 것을 개인에게 맡기는 것만으로 얻어지는 것인지, 어느 순간 자유가 권력을 위한 단어가 되어버린 것은 아닌지 질문을 던지려고 합니다. 신'자유'주의 시대, 우리 모두 평등하게 누려야 할 '자유'를 [삶_세상 3]에서 함께 찾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거리에 계신 분들은 축구공이나 다름없다. 이리 차이고 저리 차이고 더 이상 갈 데고 없고, 빼앗길 것도 없고 잃을 것도 없고, 내려갈 곳도 없고 완전 밑바닥이다.”

거리의 노숙인들은 '자유'분방하게 살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주상씨는 노숙하는 사람들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게 "자유롭게 왔다갔다하면서 쉴 수 있는 곳"이라고 말했다. 노동시장에서 밀려나고, 주거지마저 불안정해져 머물 곳을 찾기 위해 역사로 몰려들었지만, 대합실에서 이동하거나 잠자는 것부터가 자유롭지 못하다. 더욱이 범죄 유발집단으로 인식되어 개인신상정보를 수시로 채집당하기 일쑤다. 이들이 진정 자유로울 수 있는 우선적 조건은 “차별과 멸시에서 벗어나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동등하게 대우받는 것.”임을 주상씨는 강조한다.

‘선량한’ 시민 VS ‘불순한’ 노숙인

“거리에 있다는 게 무슨 죄 길래 사람대접도 제대로 못 받고...IMF라는 게, 정부가 잘못을 해서 그런 거잖아요. 중소기업에서 부도가 나고 구조조정한다고 정리해고하니까 다 거리로 나온 거지.”

노숙은 빈곤층의 존재를 당연시하는 자본주의 사회가 낳은 기형적인 거주상태일 뿐이지만 노숙인들에 대한 멸시의 눈길은 바뀌지 않는다.

“우릴 알콜중독자, 정신질환자로 봐요. 오히려 거리 한구석에서 얌전하게 지내려는 사람들도 많고. 일하고 싶어도 받아주는 곳이 없어 거리를 헤매기도 하는데. 역사에 있는 술에 찌든 사람들만 부각시켜요”

남루한 행색이 시민의 불쾌감을 조장한다는 이유로 대합실에서 쫓겨나는 등 철도공안과 공익요원들에 의해 행동을 제약당하는 건 기본이고, 각종 형태의 폭력에 시달리기까지 한다. 서울역사에서 오랫동안 노숙을 해온 주상씨에게는 아직도 철도공안에게 맞은 기억들이 생생하다. 단지 눈이 풀려있다는 이유로 공안실에 끌려가 발길질을 당하는가 하면 지하철에서 손수건을 팔다 단속에 걸려 3명의 전경에게 끌려가 무릎을 꿇린 채 구타당하고 그날 번 돈을 다 빼앗기기도 했다.

이렇게 법적 울타리에서 완전히 벗어나있는 노숙인들의 현실은 언론의 초점에서도 늘 비껴나 있지만 주류미디어나 공안당국은 방화사건이 터질 때마다 “노숙인 차림” 운운하며, ‘노숙인 집단‘을 범죄자의 이미지로 덧칠한다. 주상씨는 2007년 숭례문 화재 사건을 꺼내며 목소리를 높였다.

“무슨 사건만 있으면 아저씨들이 표적이 되요. 그때(숭례문 화재)는 어이없이 노숙인이 불을 지폈다고 목격자가 그렇게 증언했지만, 결론은 아니었잖아요”

당시, 방화범이 잡히고 나서야 목격자가 노숙인 운동단체 홈페이지에 사과글을 올렸지만, 이미 사람들에게 익숙해진 '노숙인=예비범죄자'라는 공식을 뒤집을 수는 없었다.
노숙인들에 대한 이러한 편견은 말할 것도 없이 노숙인들을 쫓는 감시의 시선과 과잉단속으로 이어진다. 언젠가부터 노숙인 단속반이라는 것도 만들어졌다.

"영등포구청에서는 예산을 들여 노숙인들에게 노숙인들 단속을 시킨답시고 경찰 복장을 입힌 채로 발대식까지 했어요. (단속이 아니라) 그냥 잡담이나 하고 뱅뱅 돌아다니는 거죠. 또 역 뒤쪽엔 노숙인 단속한다고 설치한 컨테이너박스가 있는데, 나이 드신 분들이 가끔 나와서 노숙인들이 근처에서 술 먹고 있으면 제재하고...“

어느 날은 주상씨가 역사주변을 살피다가 낮술을 먹고 노숙인들에게 시비 거는 공익요원을 잡으러 동사무소까지 쫒아가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는 바라지도 못 하고, 방해받지 않는 휴식, 자유로운 이동, 춥지 않고 안전한 잠자리가 절실히 원하는 건 당연하다.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빼앗긴 자유를 이야기하는 송주상씨

▲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빼앗긴 자유를 이야기하는 송주상씨



자유는 잠자리와 맞바꿀 수 있는 것인가

누구는 ‘쉼터’로 들어가면 되지 않느냐고 물을 수도 있다. 그러나 주상씨는 “오세훈 서울시장이 한번 이용해보면 좋겠다”며 진저리를 쳤다. 정부와 서울시가 노숙 대책이라고 만든 쉼터는 갈 곳 없는 노숙인들이 쉴 수 있는 곳이 아니라 거의 ‘수용소’에 가깝다. 특히 종교단체에서 운영하는 일부 쉼터에서는 밥 주고 재워주는 조건으로 종교행사 참여를 강요하기도 한다.

“술 먹고 들어오면 안 되고, 프로그램 다 참석해야하고, 외출 외박 시에 허가받아야하고, 예배에 빠지거나 싸움하면 강제퇴소당하고, 10시나 11시에 예배 끝나고도 새벽기도에 또 참여해야 해요. 대체 우리가 신앙심이 있어서 예배를 보겠어요?”

쉼터에 입소하는 순간부터 ‘인신의 자유‘는 ’제공되는 숙식‘과 맞바꾸거나 포기해야 할 것에 불과하다. 이곳에서 노숙인들은 종교를 자율적으로 선택할 ‘자기결정권’도, 자신의 일과를 계획할 ‘자유’도 없는 존재로 취급당한다.

주상씨는 작년부터 1평짜리 쪽방을 얻어 생활하고 있다. 하지만 “최후의 거주지인 쪽방”마저 철거될 예정이라 언제 다시 거리로 내쫓길지 모르지만 쉼터는 죽어도 다시가기 싫다. 거리가 자유로운 활보를 보장해주는 공간은 아니지만 쉼터보다는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정해진 규율을 강요받지 않는 대신, 거리에서 치러야 하는 대가는 결코 적지 않다. 자신의 생활공간인 역사 주위를 배회하다가 하루에도 몇 번씩 받게 되는 불심검문은, 이제 가장 짜증나지만 자연스런 일상이 되어버렸다. 차림새가 깨끗하지 않고 단지 ‘수상쩍게’ 배낭을 짊어지고 있다는 이유로 의심과 감시의 타깃이 되는 것이다.

“무조건 신분증 좀 보자고 해요. 그러면 아저씨들은 잘 모르니까 신분증을 제시하다가 자기도 모르는 벌금이 걸려있어 어쩔 수 없이 끌려가는 경우가 있어요. (…)서울역에서 ‘박 경장’이라고 불리는 유명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파출소 오기 전에 아저씨들 이름 다 조회를 해봐요. 벌금이 있는지 없는지 파악하고, 있으면 그 사람들만 골라서 잡으러 다니는 거예요. 들리는 소문에 실적이 좋아서 지금은 승진했다는데...”

자신이 알지도 모르는 명의 도용(대포차) 때문에 끌려갔다며 주상씨는 ‘박 경장’에게 당한 경험을 들려줬다. 대포차나 명의도용과 같은 범죄에 노출된 노숙인들의 사기피해가 파다하는 사실을 경찰이 모를 리 없다. 그런데도 보호는커녕, 자신의 수사실적을 올리기 위해 경찰직과 공무라는 ‘권력’을 남용하는 일들도 벌어지고 있다.

권리에 대한 배움은 저항의 시작

노숙인이라는 이유로 때때로 경찰과 공안의 자의적 구금과 같은 초법적 행위도 감내해야 하는 위치에 처하기도 한다. 주상씨가 경찰서에 발을 디딘 그 날도, 헌법에 열거된 ‘신체의 자유’며 ‘법 앞의 평등’, ‘인신보호권’은 헌신짝처럼 버려졌다.

“99년도에 싸움이 일어나서 영등포경찰서에 끌려갔어요. 아무 잘못이 없는데다 몰매를 맞았는데도 나를 가해자로 대하더라고요. 소동을 피우다 책상에 이마를 박았을 뿐인데, 철조망 있는 보호실에서 양쪽에 수갑 차고 열십자로 몸을 묶인 상태에서 형사놈들에게 엄청 맞았어요. 맞다 보니까 내가 지쳐서 ‘미안합니다, 죄송합니다’하니까 풀어주더라고요. 맞은 것에 대해 나중에 문제제기하니까, 한다는 소리가 ‘당시는 CCTV가 고장나서 작동되지 않았다’에요. 그러면서 넘기더라고요.”

노숙인이라고 '죽도록' 때리는 국가권력이 죽음에 예를 갖추겠는가. 2005년 서울역에서 일어난 사건이 그렇다. “사람을 요만한 짐짝에 실어서, 이리갔다 저리갔다 하면서 방치하고 사망에까지 이르게 한”것도 모자라, “119 불러서 사체를 잽싸게 빼돌린” 철도공안과 역무원들의 반인권적 행태를 목격한 노숙인들의 분노와 모멸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서울역 노숙인 사망사건은 결국 ‘노숙당사자 모임’을 낳았다.

“당시에 아저씨들은 있을 수 없고 있어서는 안 될 일이 벌어진 거라고 생각해서 많이 흥분했어요. 항의하다 연행도 되고, 공안들이 막는데도 천막을 치고 농성을 벌였어요”

“당사자 아니면 노숙인들에게 쉽게 다가설 수 없다”는 생각으로 2005년 ‘노숙인인권과복지를실천하는사람들(약칭 노실사)’에서 노숙인 인권활동을 시작한 주상씨도 여기에 참가했다. 현재 그가 속한 노숙인단체<(준)홈리스 행동>는 출범을 몇 달 앞두고 노숙인들에 대한 인권교육을 계획하고 있다.

“배워서 대응할 수 있는 것들이 우선 교육되어야해요. (인권단체들이 만든) '인권을 지키는 시위대를 위한 안내서'라는 선전물을 받고 난 후로 저는 불심검문 안 당해요. 전경들도 그걸 알아서 함부로 못하거든요. 불심검문이나 공권력의 폭력은 불법이라 대응할 수 있는 건데도 당해왔던 것들이잖아요. 교육을 통해서 인권, 국민으로서의 권리 등 우리가 몰랐던 사실들을 배우면 충분히 우리들의 목소리를 담아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애초부터 ‘일반시민’의 이익이란 이름으로 제한되는 자유, ‘생존과 맞바꿀 수 있는 자유’란 존재하지 않는다. 주상씨는 다른 시민들과 평등하게 응당 누려야할 자유를 결코 포기하지 않는 것만이 ‘인간으로서 생존하기’ 위한 발판임을 안다. 그래서인지 발가벗은 폭력 앞에서 늘 위축되고 주눅들어있는 노숙인의 이미지를 그에게서 찾아볼 수 없었다.


덧붙임

유유리님은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