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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여성의 입으로, 여성의 주거권 말하기

[기획]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⑤

대학 내 여학생 휴게실과 같은 여성 전용 공간의 필요성이나 밤거리를 마음대로 다닐 수 있는 권리 등 여성과 공간에 대한 이야기는 종종 있어왔다. 또한 '어머니'의 생활공간이 집에 한정되어 있음을, '집 안'에서도 '주방은 엄마 방, 안방은 아빠 방'과 같은 도식이 여성 스스로를 위한 공간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어왔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들은 가족 바깥의 이야기거나 가족 안의 이야기일 뿐, '가족'을 넘어서 여성에게 필요한 '집'을 요구할 권리로까지 나아가지 못했다. 누구나 평화롭고 안전하게 존엄을 유지하며 살 집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면 여성에게 그러한 권리는 얼마나 보장되고 있는지, 여성 노숙인의 경험을 시작으로 물어보려고 한다.


여성 노숙인, 그녀들의 현실

한국 사회에서 여성 노숙인은 그리 가시화되지 않았다. 외환위기 이후 급증한 노숙인들을, 사회는 일자리를 잃어 주거를 유지하거나 획득하지 못한 이들로 다루었다. 그들은 모두 하나로 묶였으며 개개인의 경험을 말할 수 있는 기회가 없었다. 그러다보니 많은 사람들은 노숙인을 생각할 때 남성을 떠올린다. 노동, 일자리, 실업 등이 남성의 이미지인 데다가 주거를 유지하거나 획득하는 권리는 남성가장의 몫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성 노숙인은 눈에 띠지 않을 뿐, 분명히 존재한다.

"노상 생활을 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 여성은 자신의 무방비 상태를 노출하지 않기 위해 남장, 대화 및 관계의 단절, 노숙인으로 보이지 않기 위한 청결 유지 등의 수단을 사용한다"는 서울대학교 사회복지학과 대학원생 김홍수영 씨의 말은 여성 노숙인이 단순히 '노숙인 중 성별이 여자인 사람'만이 아님을 짐작케 한다. 특히, 절대적 빈곤의 상태에 놓여 무력해진 여성이나 정신 질환 등의 이유로 신체적 저항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여성 노숙인에게는 성폭력의 위험이 훨씬 크다. 열린여성센터 서정화 소장은 "여성 노숙인들 중에는 밤에 어떻게든 지내다가 낮에 지하철을 타고 돌면서 잠을 자는 사람들도 있다"며 선뜻 거리로 나올 수 없는 여성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러나 여성 노숙인이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뿐만 아니라 여성 노숙인의 존재 자체가 여성억압의 현실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점이 더욱 중요하다.

"좀 젊으신 분들은 다방, 아니면 숙식을 제공하는 술집이나 이런 쪽으로 빠지고 나이가 드신 분들은 식당가로 빠지시죠." 노숙인의 인권에 대해 논문을 썼던 김홍수영씨는 이렇게 식당으로 유입된 여성들은 저임금과 긴 노동시간으로 고통받는다고 덧붙인다. "그녀들에게 식당에서 자야 한다는 사실은 노동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24시간 그곳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열린여성센터의 서정화 소장은 식당에서 지내다가 노숙하게 된 한 여성의 사례를 들려주었다. "이 분은 매일 일하다가 휴가를 얻으면 모텔방을 얻어서 휴가를 보냈어요. 하루종일 모텔방에서 밥먹고 쉬면서 혼자 지내는 거예요." 그러나 "집에서 살림만 하다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는 현실은 여성들을 "식당에서 식당으로 전전"하게 만든다.

일다 조이여울 편집장은 "티켓다방과 성매매집결지로 유입되는 여성들은 '잘 곳'을 마련하기 위해 그곳을 찾는다. 특히 가정폭력이나 빈곤을 이유로 가출한 청소녀들은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돈을 벌기 쉽지 않은 구조에 있기 때문에 더더욱 쉽게 티켓다방과 성매매집결지로 흘러들어간다"고 지적한다. 여성노숙인들 중에도 쪽방이라도 들어가기 위해 거리에서 만난 남성노숙인과 동거를 하는 경우가 있다.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자원으로 하여 생존할 수밖에 없는 빈곤의 상황을 남성은 상상할 수도 없을 테지만 공간에 대한 여성의 요구는 왜곡된 형태로만 실현되는 것이다. 조이여울 편집장은 "여성에게 주거권을 보장하라는 것은 '성매매로의 유입을 막기 위함'이 아니라 '인간답게 살기 위함'"이라고 강조한다.


여성의 '독립'을 말한다

가부장제는 남성 중심의 노동 시장 구조를 끊임없이 재생산한다. 여성의 노동력은 잉여 노동력으로 간주하여 주변화시키며 가족을 기본으로 하는 임금 정책은 단신 비혼 여성, 독신모, 여성 가장의 빈곤을 특히 가속화한다. 이러한 구조는 여성 노숙인에게서 극단적인 상황으로 드러나지만 여성들 대부분이 놓여있는 현실이기도 하다.

한국레즈비언상담소 김김찬영 소장은 "여성은 집이 있더라도 공간의 주인이 되기 힘들다"며 독립을 시도하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독립을 원하는 대부분의 비혼 여성들은 전세 혹은 월세 집을 얻고 가재도구를 마련하고 공과금을 내고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한 조건을 갖추는 데에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게다가 "혼자 살면서 사소하게 부딪치는 문제들도 독립에 부담이 된다. 남자가 요리나 가사 일을 배우지 못한 것처럼 여자는 세면대 고치고 못 박는 일 같은 것을 잘 못한다."

특히, "집에서 독립을 인정하지 않는 것도 문제인데 집으로부터 물리적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 일부러 다른 지방으로 직장을 구하는 경우도 있다." 여성은 여성 개인으로서가 아니라 딸로서, 아내로서, 어머니로서 가족 안에 있어야 한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여성에게 독립은 결혼밖에 없다. 결혼자금으로 부모님들이 돈을 모아두기도 하는데 형제, 자매들이 결혼해서 나갈 때는 돈을 지원하면서 그냥 혼자 독립하려고 하면 돈을 지원하지 않는다."

그러나 독립을 한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여성이 처하는 일상적인 폭력의 위험은 독립을 "무서운 것"으로 만들기도 한다. 김김찬영 소장은 "배달 음식을 안 시킨다는 친구"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음식을 배달시키면 혼자 사는 게 티 나니까 배달하는 사람이 현관까지 들어오는 게 꺼려지는 거"라는 설명이다.

독립적인 공간이 있다고 '자기만의 방'을 갖게 되는 것은 아니다. 결혼 후 여성과 남성이 각각의 방을 따로 가진다는 것은 아직까지 한국 사회에서 매우 낯선 일이다. 비혼 여성이 혼자 사는 경우라고 프라이버시가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언니가 동생집에 불쑥 찾아갔다가 집에 아무도 없었는데 신혼방 분위기가 나서 동생의 성정체성을 의심하게 되어 아웃팅된 경우"를 들려주며 김김찬영 소장은 집에서 같이 살거나 떨어져 지내거나 독립의 문제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여성들도 혼자 있고 싶을 때가 있다. 때로는 아무의 방해도 받지 않고 일기를 쓴다거나 자위를 하는 등 자기만의 일을 하고 싶을 때가 있다. 여성에게 '자기만의 방'은 단순히 사생활을 보장받기 위한 것이 아니다. 여성이 가사노동의 담당자, 보육노동의 수행자, 대상화된 섹슈얼리티의 담지자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스스로의 삶을 영위하기 위한 시작인 것이다. 또한 여성에게 자신이 주인인 공간이 있다는 것은 '집 안'에서 자신이 원하는 가족을 꾸릴 수 있는 토대가 되고 '집 밖'에서 여성들에게 적대적이지 않은 네트워크나 커뮤니티를 만들 수 있는 기반이 된다.


여성의 입으로, 여성의 주거권 말하기

우리가 흔히 노숙인이라고 번역하는 '홈리스(homeless)'는 '적절한(reasonable) 주거를 누리지 못하는 사람'을 뜻한다. 어쩌면 많은 여성들은 자신들이 '적절한' 주거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고 막연히 느끼고 있을지도 모른다. 스스로의 요구와 욕구에 부합하는 공간을 가지지 못한 생활에 자주 불만을 느낄지도 모른다. 거리노숙을 하지 않는 여성이 그렇게 느낀다고 그것을 사치스러운 생각이라고 비난할 수만은 없다.

유네스코는 주거권(housing-right)의 요소로 "점유의 법적 안전성, 거주의 적절성, 위치, 경제적/물리적 접근성, 문화적 수용가능성"을 제시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남성의 입으로 이야기되어온 것을 여성의 눈으로 다시 볼 필요가 있지는 않을까. 아주 작은 상황에서부터 여성들의 입으로 여성의 경험을 이야기하고 사회적으로 가시화시켜야 한다. 사소할 수도 있지만 분명히 정치적인, 자신의 생활이 시작되는 주거와 그 권리에 대해서 여성의 입으로 말하는 것을 시작해보면 어떨까.
덧붙임

성진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신자유주의와 인권팀'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