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산업의 슈퍼사이클을 타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2026년 1분기에 각각 57조원, 37조원 영업이익을 발표하자 사회 전체가 들썩이기 시작했다. ‘삼전닉스’ 주식 등락에 따라 뉴스가 요동을 치고, 삼성전자 노동자들의 성과급 협상 상황은 실시간으로 중계되었다. 삼성 노조가 파업을 하면 손실액 이 100조 원에 달한다는 보도가 넘쳐나더니, 파업 직전에 합의된 노사의 성과급 합의안을 두고 주주단체가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고 한다.
대통령의 개입에 이어 노동부 장관이 직접 노사협상의 중재자 역할을 하면서, 정부는 삼성의 노사관계를 국가경제의 문제로 규정했다. 이에 더해 청와대 정책실장이 반도체 산업의 초과 세수에 대한 국민 배당을 고민해보자는 제안까지 하니 온 나라가 들썩이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그런데 이러한 논의들은 반도체 기업이 벌어들인 초과이윤을 누구에게 분배할 지에 대한 것이다. 한국 사회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천문학적 규모의 이윤이 대체 어떻게 가능했는지, 지속가능한 것인지부터 살필 때, 우리는 이 거대한 이윤이 누구에게 분배되고, 무엇을 위해 사용되어야 할 지 답할 수 있다.
반도체 산업이라는 ‘사회적 부’
기업 이윤을 오직 경영의 성과로만 여기던 한국 사회였다. 하지만 이번 반도체 산업의 영업이익을 두고 개별 기업만의 성취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기여 속에서 형성된 ‘사회적 부’라는 인식과 함께 사회적 분배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펼쳐졌다. 그만큼 한국의 반도체 산업은 오랫동안 국가의 집중적인 지원아래 성장해왔기 때문이다. 메모리 반도체 산업은 막대한 자본 투자를 통해 공정 최신화를 시도하고 이에 성공한 기업이 이윤을 독점하는 구조다. 후발 주자인 삼성이 이 분야에서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정부가 80년대부터 소위 ‘대통령 프로젝트’라며 초기업적인 협력 연구를 추진하고 당시 선두에 있던 일본 기업들을 따라잡기 위한 온갖 지원을 아끼지 않았기 때문이다. 반도체 과잉 생산으로 가격이 폭락하면 법인세를 감면해 주며 반도체 기업을 지키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삼성은 공정 최신화에 성공하지 못한 결과, 대규모 적자로 곤경에 처해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반도체 산업에 대한 엄청난 규모의 감세를 이어갔고, 삼성전자는 2022년부터 24년까지 최대 7조 8천억원에서 최소 2500억 달하는 법인세 비용을 매해 환급받았다. 2025년에는 90조 원 가까운 세수 결손 와중에도 ‘K칩스법’이라는 반도체 기업에 대한 추가 세액공제법을 제정했다. 또한 반도체 산업에 필요한 재료 수급 문제부터 비메모리 반도체 산업으로의 확장까지 전방위적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으니, 반도체 기업의 이윤을 두고 개별 기업의 몫이 아니라 사회적 부라 일컫는 것은 전혀 과장이 아니다.
화려한 반도체 산업의 이면
반도체 산업에 대한 국가의 제도적 지원이 그저 세제혜택만은 아니다. 반도체 산업을 위해 이 사회가 희생시켜온 것이 무엇인지 돌아봐야 한다. 반도체 생산라인은 수백 가지 미세 공정이 연속적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재가동을 할 때마다 반도체 생산 수율이 떨어지기 쉽다. 이를 피하기 위해서 반도체 기업들은 365일 24시간 내내 쉬지 않고 공장을 운영한다. 즉, 삼성전자와 SK 하이닉스 노동자들은 밤낮없는 교대제 고강도 노동에 시달리는 것이다. 연구개발인력의 경우, 특별연장근로를 통해 주 64시간까지 늘어나는 장시간 노동이 비일비재하다. 또한 노동자가 작업장에서 사용하는 화학물질에 대한 알권리를 요구하고, 질병 산재 인정 조건을 확장하는 목소리가 힘있게 조직됐던 현장이 바로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이었다. 2019년 정부 역학 조사에 따르면 6개 반도체 회사에서 암에 걸린 노동자가 3,442명이고, 그 중 1,178명이 사망했다. 그 절반은 삼성에서 발생했다. 삼성 반도체 노동자들이 죽음의 원인을 밝히고 산재 인정을 위해 싸우는 동안 삼성전자는 전 세계 반도체 매출 1위 업체가 되었다. 반도체 기업과 정부가 합작해 반도체 노동자들을 장시간 노동과 죽음으로 내몰며 달성한 결과였다.
반도체 산업이 소모하는 건, 노동자의 생명과 시간만이 아니다. 삼성전자는 2023년 한 해에 2만 2409 GWh로 단일 기업 중 가장 많은 양의 전기를 소비했는데, 전체 산업용 전력의 약 17%였다. SK 하이닉스도 약 1만 2천GWh에 달한다. 또한 물먹는 하마로 불리는 반도체를 생산하기 위해 삼성전자와 SK 하이닉스가 하루에 사용하는 물의 양만 40만 톤이 넘는다. 여기에 삼성전자와 SK 하이닉스가 1,000조 원 규모로 투자 예정인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가 건설된다면 전력 수요와 물 소비량은 감당하기 힘들 정도가 된다. 이에 정부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 필요한 전력, 용수, 폐수 처리 등 반도체 산업의 기반 시설 건설을 지원하기 위해 반도체특별법을 제정했다. 한국의 반도체 기업이 만들어내는 막대한 이윤이 누구의 몫인가라는 질문만으로는 반도체 산업이 착취하고 수탈해온 사회적 자원과 노동 그리고 지속가능성이라는 물음을 살피지 못하게 만든다.
긴급조정권 운운이 아닌 정부의 책임과 역할
하지만 삼성전자는 물론, 정부도 이 거대한 이윤의 이면을 살필 생각은 없는 듯하다. 삼성전자 노사 협상과정에서 이재명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고위인사들은 반도체 산업의 과실이 개별 기업의 성취가 아니라 사회적 성과임을 강조하며 노조의 양보를 촉구했다. 하지만 그에 걸맞는 사회적 환수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지금 정부가 말하는 초과 세수는 그저 삼성전자와 SK 하이닉스가 막대하게 벌어들인 돈에 대해 당연히 내야 하는 법인세를 말할 뿐이다. 그저 세수 규모가 크다는 이유 하나로 사회적 분배, 국민 배당과 같은 말 잔치만 벌이고 있는 셈이다.
오히려 정부는 사회적 분배는커녕 반도체 기업의 대리인을 자처했다. 김민석 총리는 노사협의가 안될 시, 정부가 강제로 쟁의행위를 중단시키는 ‘긴급조정권’을 발동하겠다며 으름장을 놓았다. 이에 호응하며 이재명 대통령은 “노동3권은 사회적 약자인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며 삼성전자 노동자들은 ‘사회적 약자’가 아니므로 노동기본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해괴한 주장을 늘어놓았다. 경쟁체제에서 성과압박에 내몰리며 유해물질로 가득찬 일터에서 쓰러졌던 삼성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결성해 투쟁해 온 시간은 삭제되고, 정부와 언론에 의해 삼성 노동자들은 노동기본권조차 부정되는 이기적인 집단으로 매도당했다. “노동권만큼 기업경영권도 존중돼야”한다며 노사협상을 마치 동등한 두 가지 권리가 충돌하는 문제처럼 말한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에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가 처한 구조적 차별과 폭력에 대한 이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정부는 하청노동자와 사회적 지원을 앞세워 삼성 노동자를 공격할 게 아니라, 삼성 자본의 착취에 대해 적정한 보상과 사회적 책임을 질 수 있도록 나서야 했다.
이미 ‘반도체노동자의건강과인권지킴이 반올림’에서는 삼성전자의 영업이익을 반도체 노동자의 직업병 예방을 위해 적극적으로 사용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개별 기업 차원의 사회공헌에 그칠 일이 아니라,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 직업병 예방을 위한 사회적 재원으로 제도화해야 한다. 또한 모두가 반도체 하청 노동자에 대한 보상을 이야기하지만, 여전히 하청 노동자는 원청을 상대로 노동3권을 행사하기 어렵고, 원청이 하청노동자에게 성과급을 지불할 의무는 없다. 초과이윤에 대한 사회적 환수를 통해서든 적절한 방안을 찾아 원하청 분배와 소득격차를 줄여가야 한다. 그 답을 찾아야 하는 책임은 지금의 현실과 구조를 만들어 온 정부와 재벌 대기업에게 있다.
반도체에 볼모 잡힌 삶에서 벗어나자
반도체 산업의 구조적 문제를 이제는 직시해야 한다. 지금 우리가 마주한 호황은 반도체라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잡아서 얻게 된 이윤이 아니다. 산업이 확장되고, 공정이 최신화될수록 생태적 한계를 초과하는 자원을 소모하게 되는 것이 바로 반도체 산업이다. 사회 전체의 자원을 빨아들이도록 만드는 블랙홀을 끌어안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그렇게 힘들게 생산하더라도 반도체는 호황과 불황을 반복하는 사이클 산업이라는 점이다. 당장의 이윤에 취해 반도체 생산 시설에 재투자하고 공정을 개발할수록 수요를 넘어서는 과잉생산 국면에 들어서지만 이미 규모화된 시설은 생산량 조절이 어렵기 때문에 반도체 가격은 하락한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공정 개발의 성공과 그에 맞는 수요를 찾아내는 일에 성공하지 못하면 산업 전체의 위기를 불러온다.
당장 1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생산 공장의 규모는 세계 최대지만 HBM 메모리 반도체 개발이 어려웠던 삼성이 이를 그대로 보여준다. 삼성전자의 평택 공장 확장 공사는 2024년부터 건설이 중단되었고, 이번 파업으로 멈추면 큰일이 날것처럼 여기던 생산라인이 당시에는 가동을 멈추기도 했다. 지금의 극적인 호황은 그 뒤에 이어질 극적인 실패의 예고인 셈이다. 환경을 파괴하고 생태적 자원은 자원대로 소모하면서 거대 자본에 의해 규모화된 반도체 산업의 리스크는 더욱 커진다. 이런 산업을 두고 과연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며 산업의 확장만이 정답이라는 것은 사회적 기만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무조건적인 반도체 산업의 생산기반 확충이나 재투자가 아니라, 반도체 산업이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담보 할 수 있는 산업인가에 대한 진지한 재고이다.
주식 사서 부자 되라던 정부가 주식 안 하는 사람까지도 반도체 산업의 과실을 나눌 수 있도록 삼성전자와 SK 하이닉스의 법인세 기반 ‘국민 배당’을 아이디어로 언급한다. 이는 사회 구성원 전체의 삶을 반도체 산업의 흥망에 내맞기는 꼴이나 다름 없다. 사회적 분배를 말하지만 구성원들의 박탈감을 달래며, 반도체 산업의 확장에 모든 사회적 자원을 집중시키고, 결국엔 우리의 삶을 침식시키는 것이다. 반도체 산업 이면의 착취와 수탈의 장면은 감춘 채 말이다. 이제 반도체 산업에 삶을 맡기는 사회에 장밋빛 미래는 없다는 사실을 직시하자. 지금의 초과이윤은 국가 경제를 끌어올릴 부가 아니라 이 산업에 사회를 더욱 종속시키고 더 큰 위기를 반복하게 만들 위험을 경고하는 신호다. 먼저 반도체 산업의 무한 확장부터 중단하자. 그리고 반도체 산업이 초토화한 지구적 사회생태적 역량과 자원들을 회복하는데 우리 손에 쥔 초과이윤을 사용하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