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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전투경찰, 존재이유 없다"

'전·의경의 역할과 인권' 토론회 열려

집회·시위 현장에 으레 투입되는 전·의경 부대를 해체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8월 31일 <시민의신문>과 인권실천시민연대가 '전·의경의 역할과 인권'을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시위 현장에 투입되는 군대 : 전·의경

전투경찰대설치법에 따르면 전투경찰은 대간첩작전을 수행하는 전투경찰과 치안보조업무를 수행하는 전투경찰로 구성된다. 동법 시행령 제2조에서는 전자를 작전전투경찰순경(아래 전경), 후자를 의무전투경찰순경(아래 의경)으로 정의하고 있다. 전경과 의경은 병역법 제25조 1항에 따라 전환복무된 자중에서 임용된다. 전환복무의 형태로 배치 받아 대간첩작전과 치안보조임무를 수행하게 하는 것.

2004년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시위진압에 동원되는 경력은 전경 1만8984명, 의경 3만2435명 등 5만1419명에 이른다. 전경은 △서울(21.6%) △제주(11.8%) △전남(10.9%) 순으로 배치되어 있고 의경은 △서울(34.9%) △경기(14.2%) △부산(9.3%) 순이다. 송기춘 교수(전북대 법학)는 "특히 전경의 경우 대간첩작전 등이 주 임무라면 대침투작전이 예상되는 해안과 국가중요시설이 많이 소재하고 있는 지역에 많이 배치되어야 하는 것이 원칙"인데 "시위다발지역으로 예상되는 지역에 집중적으로 운용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2005년 '경찰통계연보'에 따르면, 연도별 시위인원은 2000년 442만3000명을 정점으로 2004년 303만4660명으로 줄어드는 추세인데 비해 동원되는 경찰은 2000년 348만1551명에서 2004년 396만5760명으로 오히려 늘어났다.

김상균 교수(천안대 경찰행정학)는 "경찰의 시위대응양식은 많은 경찰력(대부분 전·의경)을 동원하여 시위차단 및 해체작전을 전개하는 인해전술에 가까운 대처양식"이라고 분석했다.

송기춘 교수(전북대 법학)도 "지금과 같은 전투경찰제도는 박정희 정부시절에 대간첩작전의 수행을 위하여 출발하였으나 지금까지 주로 시위진압 등 치안활동에 동원되어 왔다"며 "지금까지 군사와 치안은 제대로 구분되지 못하고 혼동된 상태에 있다"고 말했다. 또 "특히 군대는 민주적인 조직의 운영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에 더욱 민간을 통제하기에 적합하지 않다"며 "계엄이나 전시가 아닌 평시에 군대가 민간인을 상대로 경찰권을 행사하려면 이에 대해서는 헌법개정을 해야만 가능한 일일 것"이라고 밝혔다.

1991년 당시 전투경찰이었던 박석진씨는 "전투경찰은 군인 중에 차출되기 때문에 다른 병역의 의무를 지는 사람과의 평등권에 위배되며, 자신의 양심에 반하는 일을 명령받기 때문에 양심의 자유를 가질 권리까지 침해받는다"며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1995년 헌법재판소는 재판관 9명 가운데 5명 합헌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전·의경부대 자해사망비율 정규군 두 배에 육박

전투경찰은 대부분 실전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군대는 평시에 주로 훈련상황이지만, 전투경찰은 주로 지금 일어나는 상황에 대처해야 하는 실정에 직면하고 있다는 점에서 업무상의 긴장감이 더 심하다. 이로 인해 군대에서는 구타가 많이 사라지고 있는 것에 비해 전투경찰 안에서는 구타로 인한 피해사례가 심심치 않게 발견된다.

정재영 군사상자유가족연대 사무처장은 "정규군에서 연간 발생하는 사망자의 숫자는 2000년을 기점으로 낮아지기 시작하여, 10만 명당 자해사망자의 비율이 9,7명인 반면 전·의경부대에서의 자해사망비율은 지난 5년의 통계를 볼 때 거의 두 배에 육박하는 16명에 이른다"며 "전체경찰 중 적지 않은 숫자를 차지하는 전·의경의 권익과, 특히 사망한 대원들의 처우문제, 불합리해 보이는 수사과정 등에 대해서는 심각한 우려를 가지지 않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또 정 사무처장은 "지난 2004년 서울경찰청 예하 모 경찰서 기동대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의 경우를 보면, 간부에게 호출되어 얼차려와 구타를 당하던 병사가 5층에서 추락하여 사망했으나 결과적으로 단순폭행으로 벌금 150만원 처분을 받은 것이 전부였다"며 "이 사고를 조사하는 과정을 통해 사고발생 경찰서의 수사관계자들이 공정하고 객관적인 입장에서 소속 전·의경대원들의 사망사고수사를 할 수 없다는 것과 내부자이기도 한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모든 집회, 시위에 동원되는 전투경찰

'전투경찰대설치법'에 대한 1995년 헌법재판소의 합헌결정에 따르면 "불법한 집회와 시위로 말미암아 공공질서가 교란됐거나 교란될 우려가 있는 경우 경찰 본래의 임무인 공공의 안녕과 질서 유지를 위해 시위진압 명령을 한 것이 행복추구권과 양심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고 밝히고 있다. 합헌 결정에서조차 '불법한 집회와 시위로 말미암아'라는 제한적인 해석을 내리고 있는 것.

이에 대해 허창영 인권실천시민연대 간사는 "합법적이고, 흔히 경찰들이 자주 사용하는 '현존하는 명백한 위험 발생'이 예상되지 않는 통상적인 집회와 시위에까지 전투경찰을 시위진압에 동원하는 것에 대해서는 고려치 않고 있다"며 "현실에서는 국가의 안녕과 공공질서를 전혀 해치지 않는 평화적이고 합법적인 집회와 시위, 심지어 1인 시위와 단 몇 명이 모여서 하는 캠페인성 시위까지도 전투경찰은 어김없이 동원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본래의 임무 상실한 전투경찰 존재이유 없어

허 간사는 "전투경찰의 본래임무인 '대간첩작전'은 지금의 사회상황에서는 거의 일어나지 않는 일"이라며 "가깝게는 1996년 동해 잠수함침투 사건이 있었지만 실제 이때의 작전은 거의 군부대에 의해 이루어져 본래의 임무를 상실하고, 치안업무라는 보조임무만을 위해 기능하는 전투경찰의 존재이유는 별로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또 "전투경찰 폐지가 예산부족으로 인해 현실성이 없다는 문제제기는 현재의 전·의경만큼의 인력이 필요한지 논의 후에 얘기되어야 한다"며 "전투경찰의 폐지가 공론화 되는 것이 우선"이라고 주장했다.


노사갈등이 있을 때 전·의경이 이성적인 대화로 이끌어?

한편 토론회에 참석한 김성진 경찰청 경비국 전경관리계장은 "전·의경 제도를 어떻게 발전시켜 나갈 것인가 앞으로 고민하겠다"며 "전·의경의 통제를 줄이고 실태조사, 토론회를 지속적으로 실시하는 등 개선하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 계장은 "한국을 무에서 유를 창조한 나라라고 외국에서 평가하는데 이 과정에서 전·의경의 긍정적인 역할도 있었다"며 "현재 한국을 이끌고 있는 여러 사업체에 노사갈등이 있을 때 중간자적인 입장에서 서로 이성적인 대화로 갈 수 있게 하는 전·의경 제도의 긍정적인 면도 알아야한다"고 주장해 빈축을 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