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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이야기

일반교통방해 변론 가이드북을 펴내며

집회시위 제대로 모임에서는 요즘 집회시위 현장에서 거의 대부분 일반교통방해로 연행되거나 소환되는 상황에 맞서 집단적인 공동대응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일반교통방해 변론 가이드북을 제작중입니다. 이 가이드북이 어떤 의미에서 제작되고 확산되기를 바라는지에 대해서 후원인분들과 함께 나누고자 활동이야기에 실어봅니다.

기본적 인권이자 헌법적 권리로서 집회시위

 “신고를 하지 아니하였다는 이유만으로 그 옥외집회 또는 시위를 헌법의 보호 범위를 벗어나 개최가 허용되지 않는 집회 내지 시위라고 단정할 수 없다. … 그 옥외집회 또는 시위로 인하여 타인의 법익이나 공공의 안녕질서에 대한 직접적인 위험이 명백하게 초래된 경우에 한하여 위 조항에 기하여 해산을 명할 수 있고...”(대법원 2012.4.26선고 2011도6294)

 

“공공의 안녕질서에 대하여 직접적이고 명백한 위험을 초래하지 않은 경우에는 이에 대하여 사전 금지 또는 제한을 위반하여 집회를 한 점을 들어 처벌하는 것 이외에 더 나아가 이에 대한 해산을 명하고 이에 불응하였다 하여 처벌할 수는 없다. 원심이 이 사건 집회가 사전에 금지 통고된 집회라는 이유만으로 해산을 명할 수 있다고 전제한 부분은 적절하지 아니하다”(대법원 2011.10.13. 선고 2009도13846)

 

얼마 전부터 집회 시위 현장에서 참가자들이 해산명령을 하는 경찰을 향해 불법적 행위라며 당당하게 항의하는 일이 많아지고 있다. 예전에는 강자의 편에 서서 집회 참가자들을 탄압하는 경찰을 규탄하고 울분을 토해냈다면, 이제는 약자의 울분이 아니라 정당한 권리를 주눅 들지 않고 외치고 있다. 집회시위가 남에게 피해를 주거나 특이한 사람들이 하는 이상한 행동이 아니라, 누구나 자유롭게 모이고 행동할 수 있는 기본적 인권이라는 것을 온 몸으로 주장하고 있다.

 

투쟁의 정당성과 더불어 이런 변화에 작은 기여를 한 게 있다면, 앞서 인용한 대법원의 판례들이다. 이 판례들은 집회 주최자들이 집시법이라는 현행법을 위반했더라도 ‘평화로운 집회 시위 그 자체는 보호되어야 한다’는 일관된 결정들이다. 공공의 안녕질서에 대한 직접적인 위험이 명백하게 초래된 경우가 아니라면 불법인 집회는 없다는 것이다. 비록 신고제를 근간으로 한 집시법을 용인하지만, 집회시위 그 자체를 헌법적 권리로서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판례들은 최근에 새롭게 등장한 게 아니다. 대법원은 꽤 오래 전부터 일관되게 평화적인 집회시위는 보호되어야 한다는 판결들을 내려왔지만, 우리가 이런 사례를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알려내지 못하면서 사회화시키지 못했던 것이다.

 

일반교통방해죄, 왜 공동 대응이 필요한가

형법 상 도로교통을 규율하는 법인 일반교통방해죄가 집회시위 참가자들을 처벌하는 가장 강력한 도구로 이용되고 있다. 사법부는 신고, 금지통고 유무와 상관없이 집회시위 그 자체는 헌법적 권리라면서 도로행진을 하는 시위의 경우에는 사전에 허가된 코스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단순 참가자까지 일반교통방해죄로 처벌을 하고 있는 것이다. 대법원이 집회에 대한 해산명령이 가능한 조건이라고 명시한 ‘공공의 안녕질서에 대해 직접적이고 명백한 위험을 초래한’ 경우가 아니라면 도로행진 여부와 상관없이 모든 집회시위는 보호받아야 하고 정당한 권리로서 실현되어야 한다. 헌법적 권리이므로 집시법으로 처벌할 수 없다는 집회시위를 일반교통방해죄로 처벌하는 이 모순적 상황을 타개해야 한다.

 

저들이 일반교통방해를 전가의 보도로 휘두를 수 있게 된 데는 우리의 공동 대응이 부재한 탓도 있다. 마치 미신고집회, 금지 통고된 집회는 당연히 불법집회일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처럼, 허가받지 않은 도로행진은 집회시위가 아니라 교통 방해행위라고 우리 스스로 생각했던 것이다. 현재 사법부의 논리대로 모든 도로행진이 일반교통방해 행위 요건을 갖추고 있다는 것을 수용하게 된다면 적어도 논리적으로는 인도에서의 집회나 행진도 교통방해 행위 요건을 갖추게 된다. 하지만 집회시위가 경찰이 허가했기 때문에 적법하거나 합법인 게 아니라 ‘평화적’으로 행사된 기본권이기 때문이듯, 집회시위가 일반교통방해에 해당되는지 여부는 경찰의 허가가 아니라, 교통안전에 직접적인 위험을 명백하게 초래했는지 여부가 되어야 한다. 이런 주장을 재판당사자는 물론 변호인조차 하기 쉽지 않았던 게 현실이다. 도로에 내려와 교통소통을 방해한 것을 부정할 수는 없으니, 상황의 불가피성, 교통방해의 경미함을 중심으로 벌금액수를 줄이는 데 집중하는 게 일반교통방해죄에 대한 일반적인 대응이 되었다. 검경 조사는 도로에 있었는지 여부에 대한 사실관계에 집중되고, 재판은 일반교통방해죄의 유무죄를 다투기보다 벌금을 얼마나 줄이는 게 합리적인지를 가늠하는 게 대다수다.

 

집회시위에 참가해서 100만원 벌금을 받으면 다들 놀라던 때가 있었다. 이제는 일반교통방해로 300, 500만원으로 약식기소를 당하고 정식재판을 해서 100만원, 200만원으로 깎였다고 가슴을 쓸어내려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우회도로의 존재, 실질적 교통방해의 경미함을 주장했더니 검찰은 현장에 있었던 버스 운전자들에게 교통방해에 대한 증언을 모아서 대응하기 시작했다. 어떤 이는 운 좋게 일반교통방해죄 벌금이 50만원이 되기도 하고 무죄까지도 받지만 전체적인 대응 총론이 없는 상황에서 일반교통방해를 둘러싼 지형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 가장 원칙적이고 인권적인 게 가장 현실적인 상황이 되고 있다. 우리가 교통소통 상황에 대해 변명을 해야 하는 수세적 지형을 근본적으로 바꿔내야 한다. 도로에서 집회시위를 하는 데 경찰은 참가자들의 교통안전을 도모했는지, 집회시위를 보호하고 교통소통을 원활히 하기 위한 역할을 다 했는지 추궁할 수 있어야 한다.

 

일반교통방해죄 공동 대응은 우리 스스로 ‘평화적’ 집회시위가 일반교통방해죄로 처벌 될 수 없는 기본권임을 분명히 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더 나아가 적극적으로 보호되어야 할 ‘평화적’ 집회시위 참가자들이 일반교통방해죄 현행범으로 체포되고 기소되는 현실은 심각한 집회방해 행위이자 기본권 침해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일반교통방해죄에 대한 우리의 태세가 이렇게 바뀐다면, 시위대에 대한 경찰의 체포와 해산을 집회방해행위로 고소고발하는 것도 가능하다. 미신고, 금지통고된 도로행진에 대해서도 주최자에 대한 처벌과는 별개로 시위 자체가 보호되어야 한다는 것을 적극적으로 주장하고 다툴 수 있는 것이다. 하물며 신고된 집회시위의 경우, 행진 코스이탈을 이유로 기소하는 게 말도 안 되는 우스꽝스러운 상황이 되게 해야 한다. 일반교통방해로 기소된 상황은 각자 다를 수 있지만, 교통을 방해했다는 사실을 인정한 후 사태의 경중을 다투는 게 아니라, 기소된 집회시위가 헌법이 보장하는 ‘평화적’인지 여부를 가린 후 교통 소통은 그에 따라 수인되어야 할 부가적인 상황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일반교통방해죄로 집회시위를 탄압하는 저들이 거둔 가장 큰 수확은 우리 스스로 도로행진을 하는 집회시위를 감히 헌법적 권리로 생각하고 행동하지 못하게 한 것이다. 우리의 공동행동은 바로 여기에서 시작한다. 해산명령을 하는 경찰들을 준엄하게 꾸짖을 수 있는 당당함을 일반교통방해죄에 대해서도 우리가 가질 수 있다면, 그 당당함으로부터 나오는 공동행동은 재판 결과뿐 만 아니라 도로 시위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을 바꿔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