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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테러방지법 저지 넘어 국정원 개혁으로

국민행동, 테러방지법 제정 저지 위한 워크숍 열어

지난 2001년부터 국가정보원(아래 국정원)이 테러방지법으로 권한확대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가운데 테러방지법 저지투쟁을 넘어 국정원 개혁운동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논의가 구체화됐다. 지난 5월 17일 테러방지법 제정반대 국민행동(아래 국민행동)이 국회에서 개최한 '테러방지법과 국가정보원' 워크숍에서는 오는 6월 임시국회에서 테러방지법이 제정될 위험성과 함께 국정원 개혁 방안이 폭넓게 논의됐다.

17일 열린 워크숍

▲ 17일 열린 워크숍



"두 개의 국가보안법 가지게 될 최악의 상황"

그동안 국정원의 테러방지법 제정 시도는 인권·시민단체의 반대로 번번이 실패해왔지만 최근 공성진 의원(한나라당)을 비롯한 21명의 의원이 '테러대응체계의 확립과 대테러활동 등에 관한 법률안'(아래 공성진안)을 발의했고, 이와 비슷한 법안이 여당인 열린우리당에 의해 곧 발의될 것으로 알려져 위기감이 더해지고 있다. 이번 워크숍은 이런 상황에 대비해 테러방지법 제정을 저지하기 위한 인식의 공유 차원에서 개최됐다.

이계수 교수(건국대 법학)는 이런 상황을 "국가보안법이 폐지되지 않은 위에 제2의 국가보안법일 가능성이 높은 테러방지법이 제정되는 최악의 상황이 올 수 있다"는 말로 압축했다. 민가협의 박성희 활동가는 "테러방지법 제정을 반대하는 것에서 나아가 이제는 국정원의 개혁을 같이 주장해야 한다. 국정원 개혁이 이뤄지지 않은 위에서 국정원의 권한을 강화하는 테러방지법의 제정을 저지하자는 것"이 워크숍의 취지임을 숨기지 않았다.


비밀정보기관에 칼자루 쥐어줄 수 없다

송호창 변호사는 "(테러방지법안이) '테러'의 개념부터 자의적·주관적 해석의 여지를 두어 헌법상의 죄형법정주의에 위반된다는 논란조차 극복하지 못한 상황에서 테러에 대한 모든 권한을 국정원에 집중시키는 것은 모든 관계부처 위에 군림하여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새로운 권력기관을 탄생시키기에 충분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김선일 사건에서 국정원은 고유한 정보기관으로서의 기능조차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면서 "국정원에게 정보수집 기능 이외의 권한과 역할을 부여하는 것은 국가정보기관 기능을 더욱 저하시킴과 동시에 다른 국가기관 위에 군림하는 거대 권력을 낳는 기형적이고, 최악의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오동석 교수는 발제문을 통해 공성진 안이나 열린우리당이 준비 중인 법안대로 하면 "국정원이 대테러센터를 장악하게 되어 국정원에 다른 행정기관의 역할을 기획·조정할 수 있어 이를 빌미로 다른 행정기관 위에 군림하던 과거의 전철을 밟을 위험성이 높아진다"고 조목조목 분석했다. 그는 "대테러활동이 인권보장과 법치주의 실현 그리고 헌법상 권력분립원리에 적합한 민주주의적 대응방식으로 진행되려면 국정원 중심의 집권적 구조가 아닌 각 기관과의 협조망을 견고하게 갖추는 식의 접근이 더욱더 헌법에 부합한다"며 그 위험성을 제시했다.

황필규 변호사는 유엔인권고등판무관실에서 발행한 문서를 '테러와 국제인권'이란 제목으로 번역해 제시하면서 "한국 정부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산하의 대테러위원회(CTC)에 2001년부터 2004년까지 매년 보고서를 제출하면서 기존 법제와 조치가 테러에 대응하는 적절한 수단임을 역설하였다"고 말했다. 그는 "유엔에 그렇게 보고한 한국 정부가 테러방지법의 제정을 추진하고 있는 것은 모순"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수사권 폐지·국내정치 관여 금지해야"

장유식 변호사는 국정원의 개혁과제로 △대공수사는 검찰과 경찰 조직으로 충분하므로 국정원이 가진 수사권 폐지 △정치적 중립 의무화와 국정원장을 탄핵소추대상으로 명문화하는 등의 국내정치 관여 금지 △정보 및 보안업무 조정권을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 넘겨 국정원의 조정권 폐지 △법률적 근거 없이 사생활을 광범하게 침해하는 신원조사 폐지 △국정원장의 기밀 파기 권한·국정원의 보안감사권한을 폐지하는 등 보안권한 축소 △각종 예결산 특례를 인정한 예산회계특례법 폐지·정보감독위원회 설치 등을 통한 통제 강화 등을 꼽았다.

장 변호사는 "인권침해와 용공조작이라는 과거의 어두운 그림자를 지워버릴 강력한 개혁이 필요했고, 그것이 참여정부의 약속"이었음을 지적한 뒤 "개혁은 지지부진한 가운데 테러방지법 제정을 통한 권한 강화를 계속 시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국정원이 과거사를 정리하기 위한 자체 위원회를 설치했지만 이제 시작일 뿐인 상황에서 테러방지법 제정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비밀정보기관 평가할 외부평가단 필요"

이 교수는 장 변호사의 주장을 인정하면서 "국정원으로 대표되는 비밀정보기관은 해방 이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국회 등 외부기관에 의한 기관종합평가를 받은 바가 없음"을 상기시키고 "국정원 개혁은 국회를 중심으로 한 비밀정보기관 평가단의 객관적인 평가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주장을 내놓았다. 이 교수는 9.11 이후 조성된 세계적 공안정국을 이용하여 각국 정부는 "냉전시대 이후 축소된 국가정보기관들의 입지를 강화하는 숙원사업을 해결하는 방향으로 테러방지법을 제정하고 있다"면서 미국을 비롯한 각국 정부들이 테러방지라는 명분으로 저지른 민주주의와 인권의 침해 상황들을 제시했다.

한편 국민행동은 6월 임시국회에서 테러방지법이 제정되는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해 여야 정당의 지도부와 관련 의원들과 면담하고, 각종 매체를 이용해 국정원 개혁과 테러방지법 제정의 위험성을 알리는 등의 여론 조성작업에 나서기로 했다. 6월 임시국회는 테러방지법 제정으로 권한 강화를 꾀하는 국정원과 이를 저지하려는 인권·시민 진영간의 불꽃튀는 전장이 될 전망이다. 지금까지는 국정원이 연패했으나 이번에는 만만치 않다는 것이 국민행동 측의 진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