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 이야기

국정원, 존재 그 자체가 국가폭력이다

2월 23일 국회 정문 앞에서 정의화 국회의장이 테러방지법안을 직권상정하려는 것에 대한 항의로 시민필리버스터가 시작되었습니다. 국회는 시민을 대변하는 민의의 공간입니다. 국회에서 어떤 법을 만들 때 그 법이 미치는 영향을 토론하는 것은 매우 필수적인 일입니다. 그러나 정의화 국회의장은 당시 시점을 ‘전시·사변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로 선포하며 의회의 토론을 강제로 중단시켰습니다. 그래서 시민들은 국회 앞에서 ‘시민필리버스터’를 진행하며 우리 스스로 정치를 만들어갔습니다. 2월 23일부터 3월 2일까지 24시간 내내 끊이지 않고 시민 필리버스터는 이어졌으며 약 300명에 가까운 시민들이 마이크를 잡았습니다. 시민들 스스로 정보를 공유하고 토론을 이어가고 있는 모습은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이 과정에서 주류 언론을 통해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테러방지법의 문제점 가령, 국정원에게 과도한 권한을 주고 있는 점, 국민에 대한 감시와 통제를 강화하려는 법임을 널리널리 알려냈습니다. 비록 테러방지법이 국회를 통과하기는 했지만, 국정원에 대한 시민감시가 필요하다는 인식을 시민필리버스터를 통해 만들어냈던 것이죠.

 

인권시민단체들은 지난해부터 테러방지법 제정 반대운동을 해왔습니다. 주류 언론을 통해서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국회 앞 기자회견도 하고 여야의원들에게 의견서를 전달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연말에 박근혜 정권과 새누리당이 19회 국회에서 기를 쓰고 노동악법과 테러방지법을 ‘강제로’ 통과시키려하자 그에 맞서 시민필리버스터가 시작된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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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앞에서 시민 필리버스터 중인 사랑방 활동가들

테러방지법은 비밀경찰 국정원의 활동에 ‘합법'의 옷을 입히는 일입니다. 한마디로 그동안 국정원이 ‘불법’으로 해왔던 일들을 법의 틀 안으로 잘 갈무리 하려는 것입니다. 국가의 모든 활동은 시민의 통제범위 속에서 움직여야 합니다. 이러한 이유로 비밀경찰 국정원은 민주주의 시대 사라져야할 운명입니다. 그럼에도 국정원이 테러방지법을 통해 자신들의 운명을 개척(?)하는 모양새는 결국 이 정권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국정원을 통해 시민들의 일상을 감시하여 사회적인 비판여론을 잠재우려는 것뿐이지 않나 싶습니다. 민중총궐기를 테러와 IS에 비유하는 모양새를 보면 결국 집회를 하는 사람들을 테러집단으로 규정하여 위치정보나 계좌정보를 털어내려고 하는 것이 결국 테러방지법의 목적이 아닐까 싶습니다.

 

테러방지법 제정을 둘러싸고 청와대와 새누리당, 국정원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북’을 불러들이고 있습니다. 3월 8일자 조선일보 1면 기사는 북이 한국 주요 인사들의 휴대폰을 해킹하고 있다는 보도를 했는데 이후 청와대를 비롯해 새누리당은 사이버테러방지법을 밀어붙이는 형국입니다. ‘북의 어떤 행위 → 남한 정부,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법 제정 → 남한 내 공안기구 득세’ 이런 프레임과 패턴이 지난 70여 년간 반복해서 이루어진 정부의 통치행위입니다. 북과 연결 지어진 것인지, 테러집단과 연결 지어진 것인지 확인하기 위해서 누군가의 금융, 통신, 위치, 출입국 정보를 수집하겠다는 발상은 결국 우리 사회 인권이 보장되지 않은 예외의 범위를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예외는 제한된 범위에서 규정되지 않고 권력자의 입맛에 따라 이주민이 되기도 하고, 통합진보당 당원이 되기도 하며, 북이탈주민이 되기도 합니다. 심지어 집회참여자들이 되기도 합니다. 최근까지 집회참여자들을 가장 위협하는 것이 일반교통방해죄 적용에 따른 벌금이었는데, 이제는 테러방지법 적용을 방어해야할 때입니다.

 

테러방지법도 통과되었으니 국정원은 법이라는 합법의 틀 안에서 업무를 하겠지요. 인권활동가의 입장에서는 더 어려워진 게임의 공간 안에 던져진 느낌이 듭니다. 국정원의 위법 행위나 그로 인한 피해를 드러내는 일 자체가 쉽지 않은 상황임은 분명합니다. 그럴수록 ‘국정원의 존재 자체가 국가폭력이다’ 라는 접근을 끈질기게 잡고 가야할 것 같습니다. 분단체제를 기생하여 살아갈 수밖에 없는 국정원의 성격상 우리의 인권운동이 분단체제를 겨냥하는 시선도 잘 갖추기 위한 노력도 필요하겠습니다. 국정원의 권력 남용이나 오용을 넘어 공안기구 존재 자체에 대한 질문을 만들어 보는 것, 우리의 정치공동체를 어떻게 재구성할 것에 관한 새로운 프레임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