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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개발 이데올로기가 불러온 폭력

오산수청동사건관련진상조사단 최종보고서 발표

무리한 강제철거 과정에서 철거용역이 사망한 오산 수청동 사건의 진상이 왜곡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18일 다산인권센터, 원불교인권위, 오산자치시민연대 등 오산수청동사건관련진상조사단(아래 진상조사단)이 지난 한달동안 진행된 조사결과를 담은 최종보고서를 발표한 것.

18일 열린 기자회견 [출처] 다산인권센터

▲ 18일 열린 기자회견 [출처] 다산인권센터



지난 4월 18일 구성된 진상조사단은 지금까지 △유가족 조문 △수청동철거민대책위 면담 △단전·단수, 생필품 반입 통제에 대한 국가인권위 긴급구제 신청 △오산시청·오산소방서 관계자 면담 등을 진행해 왔다. 하지만 화성경찰서, 주공 오산신도시사업단은 진상조사단의 면담요구나 서면질의에 대해 별다른 이유 없이 응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화염병에 시너까지? 사인 의혹 일어

지난해 4월 경기도지사가 승인한 '오산세교지구택지개발사업'은 오산시 세교동·수청동 일원 98만평을 올해말까지 택지로 조성하고 이후 민간사업자에게 분할 매각해 아파트를 건설하는 공공주택사업으로 대한주택공사(아래 주공)가 시행을 맡았다.

주공은 토지수용결정 직후인 4월 15일부터 경찰 2개 중대의 비호 아래 용역경비업체 (주)백경스페셜가드 직원들을 동원해 현장봉쇄를 강화했다. 위기의식을 느낀 주민들은 철제 슬레이트 등으로 15미터 높이의 골리앗을 설치했다. 16일 오후 2시경 안전모를 쓴 용역업체 직원 50여명이 소화기와 해머, 노루발못뽑이(빠루), 절단기 등을 들고 4차례 현장 진입을 시도했다. 진상조사단이 용역직원으로부터 받은 진술에 따르면 주공 직원 1명이 현장에 함께 들어가 농성자들을 끌어내라고 지시했다.

이 과정에서 용역직원 이 아무개 씨가 불 타 숨지고 3명이 부상당했다. 이에 대해 경찰은 이 아무개 씨가 농성건물인 101동 진입을 시도하다 농성자들이 던진 화염병에 맞았으며, 옷에 붙은 불로 허둥대고 있는 이 씨를 향해 농성자들이 한차례 더 시너를 끼얹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진상조사단이 만난 목격자들에 따르면 △이 씨는 101동 현관 입구가 아닌 101동과 102동 사이 중간지점에서 사망해 있었고 △화염병이 터질 당시 용역직원들은 혼비백산해 흩어졌고 사람이 죽었다는 걸 아무도 몰랐으며 △당시 용역직원들이 102동 3층과 4층에서 소화기를 던졌는데 그 장소가 사망위치와 같았다는 점을 들어 "무엇인가의 충격에 의해 이미 사망했거나, 혹은 몸을 운신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며 용역직원들이 던진 소화기에 맞아 사망했을 가능성을 지적했다. 진상조사단은 "화성경찰서는 고의적으로 허위사실을 조작·유포한 것에 책임져야 할 것"이라며 철저한 수사로 사인을 명확히 밝힐 것을 요구했다.


주민 협의 요구 거절한 주공

진상조사단은 토지수용과 보상 등, 주민과의 협의 및 이해당사자로서 문제 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는 주공의 책임을 지적했다. 주민들은 2003년부터 철거민대책위원회(아래 철대위)를 구성해 주공 측에 면담과 협의를 요구했지만 매번 주민들의 요구를 거절해 왔다는 것. 진상조사단은 "사업시행자가 용역원을 고용하는 것은 건물에 대한 철거를 행하기 위함일 뿐, 사람을 강제로 끌어내거나, 사람에게 직접적인 공격 등을 할 수 없다"며 "(사망사건은 주공이) 해당철거주민간의 협의를 통한 문제해결이 아닌 경찰력과 용역경비원 등을 이용하여, 주민의 농성을 막기만 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잘못된 발상에서 비롯되었다"고 밝혔다.


폭력사태 방조한 경찰

진상조사단은 당시 용역직원들이 공방 가운데 약 1시간 30분동안 3차례 진입시도를 하면서 극단적인 물리적 충돌이 발생했는데도 경찰이 이를 방조했다고 지적했다. 진상조사단은 "당시 대규모의 전의경이 현장에 배치되었고 화성경찰서 정보과·경비교통과 등 담당형사들이 있었음에도 불고하고 두 이해당사자간의 심각한 물리적 충돌을 미연에 방지하지 않은 책임이 분명"하다며 "용역직원들이 첫 번째 진입을 시도했을 때 설사 그 행위를 막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2번째, 3번째 재차 이루어지는 양자간의 물리적 충돌을 보고만 있었다는 것은 경찰의 직무유기를 넘어선 예견된 피해에 대한 방조"라고 밝혔다.

경찰이 봉쇄하고 있는 철거현장 [출처] 전국철거민연합

▲ 경찰이 봉쇄하고 있는 철거현장 [출처] 전국철거민연합



또 경찰에 대해 "설사 철거민들이 범죄를 저질렀다 하더라도, 무죄추정의 원칙이 분명하게 적용됨에도 불고하고, 또 대부분의 철거투쟁에서…주민들의 위법행위는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행위였음이 짐작되며, 또 그러한 위법행위가 모두 사업시행자 또는 시공사가 계약을 체결한 용역회사직원과의 마찰을 통해 행해진다"며 "경찰력의 무리한 집행은 철거민들을 범죄자로 만들어, 보상과정에서의 원만한 협의진행 등을 사실상 방해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한편 철거용역의 폭력 문제도 지적됐다. 진상조사단은 "철거라는 단순한 임무를 국가로부터 대집행 받는 용역들의 주임무는 건물의 철거에 있지 국가의 법으로부터 보호받는 국민에 대한 공권력의 권한을 위임받은 것은 아"닌데도 "현실에서는 경찰의 비호와 방관아래 경찰력으로부터 행해져야할 공권력의 집행이 불법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개발논의 편승해 시민 배제한 오산시

오산시청 또한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진상조사단은 오산시 주택보급률이 2004년말 현재 89%로 경기도내 다른 시군의 80∼90%에 비해 "결코 낙후하지 않은 주거환경"으로 "택지개발은 주공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오산시를 위한 것이 아니라…(주공의)…이익논리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자치단체로서 오산시청은…투기목적의 개인 사업자나 특정기업의 이익 차원이 아닌, 실제 거주하고 있는 주민들에게 그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노력해야 했다"고 밝혔다.

대책위는 오산시가 사업에 대한 공고·공람만 했을 뿐 주민의견 수렴을 위한 자리나 내실있는 공청회를 개최하지 않은 점에 대해 "원주민을 강제로 철거하면서 그들의 희생을 담보한 개발이 추진됨에도 불구하고 수수방관했다는 것은 분명 자치단체로서의 역할을 포기한 행위"라고 비판했다.

또 농성현장에 대한 단수조치에 대해 오산시가 '이유없이 수도를 사용하지 않을 경우', '3개월 이상 요금이 체납될 경우' 취할 수 있다는 '오산시수도급수조례'를 근거로 드는 태도에 대해 대책위는 "물은 인간 생존의 가장 최소의 조건"이라며 "반인륜적이고 주민들의 목숨을 옭죄는 행위"로 "철저히 고립되고 있는 주민들의 희생과 그 아픔은 자치단체가 앞으로 두고두고 갚아야 할 빚으로 남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철대위와 전국철거민연합(아래 전철연)은 (이주자 택지 요구가) 투기목적이라는 비난에 대해 "주민들이 모두 이주자 택지를 매매하지 않겠다고 약속하고 있으며, 필요한 경우 그에 대한 증빙절차를 거치면 될 것"이라며 오히려 사회적으로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투기행위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우선적으로 마련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제철거는 인권침해"

진상조사단은 "공익사업이라는 명분에 걸 맞는 개발과정에서의 절차상의 민주와, 또 토지나 물건의 권리를 취득하는 데 있어서 끝까지 협의를 통한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며, 어떠한 경우에도 강제철거 행위는 심각한 인권침해"라고 지적했다. 또 "개발행위가 이루어지게 되면, 인근의 물가상승으로 인해 주택가격은 폭등"해 "공시지가를 기준으로 산정되는 이주자보상비로는 주택을 구입할 수 없다"며 "주택소유주는 개발과정에서 세입자로 전락하게 되고, 세입자는 자신의 정주공간을 떠나거나, 최악의 주거상황을 강요당하게 된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유엔인권고등판무관은 1998년 강제철거를 "거주자(주민)가 삶의 터전(집과 땅)으로부터 비자발적으로 이주·철거·퇴거당하는 행위"로 규정하고 "거주자의 의사에 반하는 철거(퇴거)는 보상, 이주비보조, 재정착 등의 배려 유무에 관계없이 강제철거로 간주된다"고 선언했다.

1993년 유엔인권위도 △강제철거(퇴거)는 인권에 대한, 특히 적절한 주거권리에 대한 심각한 침해이고 △정부는 강제철거를 없애기 위한 즉각적인 조치를 취해야 하며 △정부는 현재 강제철거의 위협에 직면한 모든 사람들의 점유안정을 위한 협의를 하고, 관련된 사람이나 집단의 효과적인 참여와 자문, 협상에 기초하여 강제퇴거로부터 완벽하게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수단을 취해야 하고 △모든 정부는 강제철거되는 사람이나 지역사회에 그들의 희망과 필요에 따라 적절한 보상과 충분한 대안적인 거처나 토지를 제공해야 하며 △여기에는 영향을 받는 사람이나 집단과 상호만족할 만한 협상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권고했다.

필리핀의 '도시개발 및 주택법'(Urban Development and Housing Act, 1992)은 강제철거가 발생되지 않도록 정부는 노력해야 하며, 불가피한 철거(정당한 철거)의 경우에도 특정집단 주민의 주거안정을 위해 철거 자체를 3년간 중지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영국의 '철거로부터의 보호법'(The Protection From Eviction Act)은 불법적으로 강제철거를 자행하거나 임차가구에 대하여 부당한 대우를 한 경우 강력한 처벌과 벌금을 부과한다.

진상조사단은 이번 사건에 대해 "공익사업이라는 명분아래 부여받은 행정대집행이라는 막강한 권한을 힘없는 서민들에게 행사하는 것은 도덕적으로도 지탄받기에 충분하다"고 비판했다. 또 "서민의 희생과 양보를 통해 창출된 이익은 반드시 서민들에게 환수되어야 할 것이며, 그것이 특정 기업이나 개인의 이윤추구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오산수청동철거투쟁비상대책위원회'는 현재 오산역 앞에서 매일 촛불집회를 열고 있고 분당 주택공사 본사 앞에서 1인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또 전철연은 6월 1일 주택공사 경기본부 앞에서 대규모 항의집회를 열 예정이다.

철대위와 전철연 집회 모습 [출처] 전국철거민연합

▲ 철대위와 전철연 집회 모습 [출처] 전국철거민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