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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기고> '일을 통한 빈곤탈출지원정책'=빛 좋은 개살구

11월 10일 재정경제부, 보건복지부, 노동부, 기획예산처, 빈부격차·차별시정위원회는 '일을 통한 빈곤탈출지원정책'을 국정회의에서 보고하고, 이것이 참여복지의 기본방향임을 밝혔다. 그 동안 참여복지의 실체가 명확하지 않았던 반면, '일을 통한 빈곤탈출'은 참여복지의 성격을 잘 보여준다. 김대중 정부는 노동연계복지(workfare)의 한국 토종인 '생산적 복지'를 만들어냈고 국민기초생활보장법(아래 기초법)을 비롯한 사회복지의 확대를 이뤄냈다. 그러나 실제로는 노동과 복지를 연계시키면서 사회 전반에 노동윤리를 강화해왔다. 참여복지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노동능력이 있는 사람들의 생존권을 볼모로 노동을 강요하며, '노동을 하도록 하는 복지'를 기본방향으로 제시했다. '일을 통한 빈곤탈출 지원정책'은 언뜻 보기에는 좋은 정책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우리의 생활을 풍요롭게 하기보다는 피폐하게 만들 가능성이 높다.

정부의 정책은 크게 두 가지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나는 사회적 일자리창출, 자활사업 확대, 창업지원 등의 일자리 창출정책이고 다른 하나는 근로소득세액공제(아래 EITC)의 도입을 통한 근로빈곤층의 소득보장이다.

'일자리 창출정책'은 현실의 노동시장상황을 무시하고 있다. 빈곤층과 노동빈곤층이 처한 기본적인 문제는 노동시장에서의 저임금과 불안정 노동이다. 임금노동자의 55%가 넘는 사람들이 불안정노동자들이고, 대부분 정규직의 절반 정도의 임금을 받는다. 또한 상당수 저소득층이 임시직과 일용직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일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의 빈곤을 해결 할 근본적인 방안은 노동시장에서의 '임금인상'과 '고용안정'이다. 이것이 전제되지 않는 한 일자리를 통한 빈곤탈출은 불가능하다. 세계 제1의 노동시장유연화를 자랑하는 한국정부는 오히려 기간제 노동과 파견노동을 마음껏 사용하라는 비정규직법안 개악을 단행하고 있다. 결국 기업은 합법적으로 기간제 노동과 파견노동을 마음껏 사용할 수 있게 되어 '성역 없는' 노동시장유연화가 이뤄질 것이다. 그런데, 국정과제회의는 노동시장 유연화와 비정규직 법안 개악에 대해서는 눈감은 채 빈곤에서 벗어나려면 노동시장에 참여하라고 독려한다. 과연, 어디서 어떤 일을 하란 말인가?

더욱이 이들이 말하는 '사회적 일자리'는 결국, 국가의 책임을 민간에게 떠넘기면서 저임금 노동자를 대량 양산하겠다는 것에 불과하다. 괜찮은 일자리를 창출한다고 하지만, 그들이 제기한 예산이나 운영 방식, 일자리의 형태를 볼 때, '괜찮은 일자리'가 아니라 저임금의 불안정 노동을 창출할 가능성이 오히려 높다.

한 편으로는 '그래 복지라도 잘되어 있어 우리 가족 잘 먹고 잘 살수 있다면' 힘든 일은 버텨볼 수도 있다. 그러나 정부 정책에서 도입을 검토하는 EITC는 우리의 생활을 더 피폐하게 만든다. EITC는 소득세액을 감해주거나 되돌려주는 것이기에 우선 일을 해서 소득세가 있어야만 한다. 미국에서는 EITC 도입 이후 혜택을 받기 위해 불안정노동자로 진입하는 층이 증대되고 있다. 결국 어떤 상황에서도 일을 해야만 생존권이 보장되며, 일할 능력이 있지만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은 국민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국가의 의지를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EITC의 도입과 더불어 '노동무능력자'에게만 기초법의 적용을 한정할 것이라는 근거 있는 의혹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EITC의 효과도 미비하다. EITC 적용대상자가 차상위계층까지 한정돼 있어 노동빈곤층에 대한 소득보장이라고 말하기 민망할 정도로 그 적용범위가 제한적이다. 또한 실제 차상위계층도 절대적 빈곤에 가깝다는 점에서 이들 역시 기초법의 수급대상자에 포함되어야 한다. 특히, 이들 대부분의 일자리가 저임금의 불안정노동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EITC 도입은 기초법의 생계급여를 더 이상 확대하지 않고, 노동시장의 불안정성을 그대로 용인하겠다는 정부의 무책임함을 드러낼 뿐이다.

정부는 사회적 일자리 창출과 EITC 도입을 통해 노동빈곤층의 소득보장과 노동유인이 높아질 것이라 선전하고 있다. 하지만 그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울 정도로 제도적 환경이 보장되어 있지 않은 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결국 정부 정책은 '일을 통한 빈곤탈출'이 아니라 '일하지 않으면 먹지도 말라'는 엄포로 빈민, 노동자, 민중에게 강제노역과 불안정한 생활을 강조하고 있는 셈이다.

복지와 생존권은 노동을 못하더라도 기본적인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권리이다. 실업과 불안정노동이 더 이상 개인의 무책임 때문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발생하는 문제라 할 때 노동시장 참여와 무관하게 보장되는 것이 바로 사회복지이며 생존권이어야 한다.

◎ 성은미 님은 빈곤사회연대 정책팀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