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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으로 읽는 세상] 인권이 밥 먹여준다

<편집인 주>

세상에 너무나 크고 작은 일들이 넘쳐나지요. 그 일들을 보며 우리가 벼려야 할 인권의 가치, 인권이 보장되는 사회 질서와 관계는 무엇인지 생각하는게 필요한 시대입니다. 넘쳐나는 '인권' 속에서 진짜 인권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나누기 위해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들이 하나의 주제에 대해 매주 논의하고 글을 쓰기로 했습니다. 인권감수성을 건드리는 소박한 글들이 여러분의 마음에 때로는 촉촉하게, 때로는 날카롭게 다가가기를 기대합니다.

6월 4일 박근혜 정부는 ‘고용률 70% 달성’ 로드맵을 발표했다. 얼마 전부터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 ‘반듯한 시간제 일자리’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내더니, 시간제 일자리 93만 개를 핵심으로 하는 로드맵을 발표한 것이다. 특히 시간제 일자리를 홍보하면서 정부는 한국 사회가 남성 위주의 장시간 전일제 근로를 중심으로 노동시장이 형성되었다면서, 남녀가 함께 일하면서 일, 가정이 양립 가능할 수 있도록 ‘다양한’ 시간제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마치 조금만 일해도 충분히 인간답게 살 수 있는데, 사람들이 일 중독자인 것처럼. 마치 모든 여성들이 남성들의 임금으로 가사와 육아를 꾸려가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남성 위주의 장시간 전일제 근로라는 정부의 노동시장 진단은 대기업 정규직 남성 노동자를 중심으로 하는 일부 계층에 국한된 진단이며, 이런 계층이 형성된 것 마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언제나 저임금에 시달려왔던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일할 나이가 되면 공장으로 도시로 몰려들었고 남성의 임금만으로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어려워 여성들은 출산 이후, 더욱 열악한 여성 노동시장에 뛰어들어 일과 가사를 병행했다. 물론 한국 사회에서도 남성가장의 장시간 노동-여성의 가사노동이라는 모델이 확산되었던 때가 있었다. 비록 먹고 살만했던 시기로 기억되는 80년대 중후반 이후 반짝 호황기였다. 대학진학률도 비약적으로 증가하는 등 소위 중산층이 형성되었던 때다. 하지만 97년 외환위기는 80년대 후반의 이런 예외적인 상황을 다시 원래대로 돌려놓았다. 이제는 너무나 일상적인 풍경이 된 정리해고, 비정규직, 파견노동과 같이 인건비 줄이기 위한 모든 수단이 동원되는, 즉 저임금 시대에는 장시간 노동을 해야만 먹고 살 수 있다.

그런데 비정규직과 불안정 노동이 일상화된 시기에 ‘반듯한 시간제 일자리’를 확대하겠다는 건 대체 무슨 말일까? 기업들은 이미 ‘반듯하지 않은 시간제 일자리’를 비정규직, 파견노동을 통해 충분히 활용하고 있는데 말이다. 결국 정부가 힘을 쓸 수 있는 공공부문에서 시간제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것이다. 임금과 고용에서 전일제 일자리와 차별하지 않겠다고 하지만 기본급의 비중이 턱없이 낮은 한국의 임금구조에서 시간제 일자리는 필연적으로 저임금 노동이 될 수밖에 없다. 실제 정부 대책에서도 시간제 일자리는 연금지급 대상이 아니다. 일 가정 양립이라는 수사를 쓰지만 결국 시간제 일자리는 저임금의 여성노동을 지칭하는 다른 말이 될 뿐이다. 전일제 일자리에서는 가사를 병행하기 힘들고 고용하는 입장에서도 부담스러우니, 아예 저임금 시간제 일자리에서 일하면서 여성에게 가사와 일을 병행하라며 이중노동의 부담을 제도적으로 북돋는 것이다.

서울 시청광장에 열린 중장년 일자리 대박람회 모습

▲ 서울 시청광장에 열린 중장년 일자리 대박람회 모습


정부의 경제정책, 고용정책과 같은 것들은 언제나 이렇게 온갖 수사와 거짓으로 덮여있다. 하지만 우리는 정책을 꼼꼼하게 살펴보기도 전에, 정부의 이런 일자리 정책이 성공한 적이 거의 없다는 것을 경험 속에서 이미 알고 있다. 그래서 정부의 말에 쉽게 속지 않는다. 하지만 정부의 말에 쉽게 속지 않는 한편, 우리는 동시에 일자리를 만드는 것, 경제를 살리는 것은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물론 일개 기업인이 할 수 있는 일도 아니라고 본다. 소위 경기(經紀)라는, 자연법칙과도 같은 인간 외부의 힘이 관철되는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자본이 이윤을 추구하는 것은 자연스럽고, 이 과정에서 경기는 오르락내리락하기 마련인데, 이 이윤추구가 가로막히면 회사가 망하고, 경제가 망하고, 우리 모두 망한다.’는 논리가 이 사회의 자연법칙이다.

그에 비해 인권은 전혀 ‘자연스러운’ 법칙이 아니고 그런 만큼 강력하지 않게 느껴진다. 그래서 우리는 정부의 ‘반듯한 시간제 일자리’라는 신조어를 비웃으면서도, 우리가 원하는 ‘반듯한 일자리’가 무엇인지 적극적으로 주장하지 못하고 대신 미국발 경제 회생 소식이 날아들기를 기다리게 된다. 그래서 경제 영역에서 인권은 힘이 없는 목소리가 된다. ‘비정규직의 차별’은 인권문제이지만, ‘비정규직’의 존재 자체는 인권 문제가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인권은 사회의 물질적 생산과 소비를 매개하는 가장 중요한 원리가 되어야 한다. 인권의 원리로 생산과 소비를 재조직해야 한다는 상상과 포부를 가져보자. 삼성이 초유의 이윤을 추구하는 것보다 우리가 건강하게 일할 권리를 추구하는 것은 덜 자연스러운가? 경기가 나빠지면 주주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수천 명을 정리해고하는 힘은, 하루아침에 소모품으로 버려지는 것을 거부하는 인간의 힘보다 강력한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정부 정책을 비난하면서도 경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한숨 쉬는 대신 평등과 연대, 인권을 제1의 법칙으로 생산이 조직되는 세상을 위해 싸우자. 그리하여 인권이 밥 먹여주는, 인권으로 밥 먹는 세상으로 가는 길을 떠나자.
덧붙임

정록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입니다.